카다피 ‘42년 철권통치’ 궁지…“마지막 총알까지 쏠것” |
카다피는 ‘권력 사수’ “시위대에 굴복 않겠다” 아들들이 유혈진압 지휘
시위대는 ‘피의 보복’ “정치 개혁만으론 안돼” 군부대 향해 자살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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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http://img.hani.co.kr/section-image/05/news2/btn_hkr.gif) |
류재훈 기자 |
리비아, 카다피, 그리고 민주화 시위 사태 3
리비아 민주화 시위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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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마르 카다피(69) 리비아 국가지도자의 42년 통치가 최대 위기를 맞으면서 카다피 쪽이나 시위대 쪽이나 ‘사생결단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20일(현지시각) 제2의 도시 벵가지 등 동부도시 시위가 서쪽으로 1000여㎞ 떨어진 수도 트리폴리로까지 확대되기 수시간 전, 카다피의 둘째아들 사이프 이슬람 카다피가 국영텔레비전에 나와 “리비아는 튀니지와 이집트가 아니다. 마지막 총알 한발까지 쏘며 싸우겠다”고 연설한 것은 카다피 정권이 순순히 시위대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튀니지의 자인 엘아비딘 벤알리 전 대통령이나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확산되는 민주화 시위에 야권세력과 대화하겠다고 나섰던 것과 달리, 리비아는 초반부터 무차별 유혈진압에 들어갔다.
서구사회와 2000년대 이후 관계 개선을 했다고는 하나 리비아는 이집트처럼 미국의 영향권에 있는 나라도 아니다. 런던에서 발행되는 아랍어 신문 <샤피크 알아우사트>는 카다피 일가와 가까운 소식통을 인용해 “카다피가 유럽에 있는 모든 친척들을 리비아에 돌아오도록 지시했고 그들은 리비아에서 죽을 결의가 돼 있다”고 전했다.
1969년 카다피가 이집트의 나세르 혁명에 고무돼 비밀결사조직인 자유통일장교단을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켰던 곳이 벵가지였던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당시 카다피가 벵가지의 관공서를 장악한 지 2시간 만에 국왕이 퇴위하면서 무혈쿠데타는 성공했다.
이후 자신의 저서 <그린북>에서 기존 정당민주주의를 파산한 제도라 비판하며 일종의 직접민주주의를 설파한 그는 1977년 국명까지 자마히리야(사회주의 인민주권 민주주의)로 바꾼 뒤 ‘당근과 채찍’으로 리비아를 철권통치해왔다.
세계 10대 석유생산국으로 꼽히는 리비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아프리카 전체에서 4위이고 여타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절대빈곤율도 낮다. 하지만 반대세력에겐 망명지까지 요원들을 보내 철저하게 보복했고, 특히 1996년엔 트리폴리 인근 아부 살림 교도소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중화기 등을 난사해 1000여명을 학살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에게 “중동의 미친개”라고 불린 카다피는 미군의 트리폴리 공습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적이 있다.
반서구·반외세를 내세웠던 카다피는 2003년 팬암기 폭파사건 등에 대해 거액을 배상하고 테러 지원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계기로 미국과 영국 등과 관계를 회복하는 대외이미지 개선과 함께 민영화 작업 및 외국투자 유치 등 실리 추구에 나섰다. 그러나 그는 정부의 어떤 공식 직함도 갖지 않고도 국내에선 여전히 전제적 통치자로 군림해왔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으로 확산된 민주화 요구 시위를 지켜보면서 많은 전문가들은 리비아의 막대한 석유자원과 부족간의 갈등, 그리고 무자비한 보안군 등을 고려할 때 정권교체가 거의 어렵다는 판단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군부대를 향해 사실상 “자살공격”에 나설 정도로 비분강개해진 리비아 시위대들의 기세는 카다피의 정치개혁 약속만으로는 멈출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정권 유지의 열쇠는 군과 각 부족의 충성심에 달려 있지만, 카다피로선 어느 쪽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속에서 시위대와 카다피 쪽이 끝까지 맞설 경우 대규모 유혈사태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류재훈 기자 |
- ▲ 출처=telegraph 웹사이트
“중화기 무장 외국용병이 진압..사망자 최소 233명”
수도 트리폴리 등으로 시위 급격 확산
튀니지와 이집트의 민주화 시민봉기에 영향을 받은 리비아 시위 사태가 확산일로를 걸으면서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40여년 정권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현 정권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군(軍)도 일부 시위대에 동참하고 있어 일부에서 카다피 정권의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이 와중에 카다피의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는 사이프 알-이슬람은 긴급 TV연설을 통해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면 내전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도 개혁 요구를 받아들일 의사가 있음을 내비쳐 향후 결과가 주목된다.
◇“용병 동원”..탱크 시위대에 발포 = 전통적으로 카다피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은 제2의 벵가지는 20일 사실상 시위대의 손에 넘어간 상태로, 이곳에서는 일부 군인들도 시위대에 동참한 상태라고 미국 CNN이 보도했다.
목격자들은 벵가지 시내에서 ‘선더볼트 부대’의 일부 군인들이 카다피의 경호원들과 충돌해 다치는 등 반정부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시위가 격화될수록 보안군의 진압도 더욱 강경해지고 있어 사상자가 속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시위 사망자 추모식을 진행하던 반정부 시위대는 폭탄을 실은 차량 등을 이용해 벵가지 시내에 있는 알파딜 아부 오마르 군 기지를 공격했으며, 이를 진압하려는 보안군이 실탄을 발사하면서 25명이 숨졌다고 현지 병원 관계자들이 전했다.
미국 뉴욕 소재 인권단체인 휴먼라이트워치(HRW)는 이날 하루 최소 60명이 숨졌으며, 이로써 리비아 시위 사태로 인한 사망자는 최소 233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한 목격자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벵가지의 상황은 매우 암울하다. ‘집단학살’이라는 말로만 이곳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으며, 벵가지에서 상점을 운영 중인 모하메드 압둘 라만(42)씨는 AP통신에 “벵가지는 전쟁상황”이라면서 일부 시위대들이 경찰 청사를 불태우고 있다고 전했다.
외신들은 진압군이 탱크와 헬기를 동원해 유혈진압에 나서고 있으며, 시위대를 향해 박격포와 대공화기를 쏘는 등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목격자들의 증언을 인용, 보도했다.
특히 시위 참가자들은 외국 용병들이 진압에 동원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한 리비아 언론인은 “살인청부업자들이 차드와 같은 나라에서 들어오고 있다”면서 “그들은 시위대 해산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어 공포의 대상”이라고 전했으며, 한 벵가지 시민도 “용병들은 아랍어를 모르고 프랑스어를 쓰고 있기 때문에 설득할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반정부 분위기 확산 = 일부 군인들이 카다피에 대한 충성을 포기하고 시위대에 합류한 가운데 압델 에후니 아랍연맹 주재 리비아 대사도 이날 정부가 무고한 국민을 살상하고 있다면서 사직하는 등 반정부 분위기가 급격히 확산하는 모습이다.
에후니 대사는 “시위대는 정상적인 것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카다피는 끝났다. 그는 국민을 잃었기 때문에 하루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며 조만간 정권이 무너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지금까지 주로 벵가지에서 이뤄졌던 반정부 시위가 이날 수도 트리폴리와 서부 해안지역 등으로 확산하면서 이번 시위 사태를 동부지역에 봉쇄하려던 카다피 정부의 노력은 사실상 무산됐다.
영국 BBC는 이날 트리폴리에서 하루 종일 총성이 잇따랐으며, 보안군은 최루탄과 실탄으로 시위대에 대한 강경진압에 나섰고 시내 중심가 녹색광장에서는 반정부 시위대와 친정부 시위대가 충돌했다고 목격자들을 인용, 보도했다.
이와 함께 리바아 동부의 부족인 ‘알주와이야’의 지도자는 정부가 시위대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24시간 내에 서방국가로의 원유수출을 차단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알 와팔라’ 부족의 지도자인 아크람 알-와팔리도 “우리의 형제(카다피 국가원수)에게 ‘우리는 더이상 형제가 아니다. 리비아를 떠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카다피 아들, 긴급 TV 연설 = 카다피의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는 사이프 알-이슬람은 이날 관영TV로 생중계된 국민 연설을 통해 반정부 시위가 계속될 경우 내전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알-이슬람은 최근 반정부 시위로 정권이 붕괴한 이웃국가들을 언급하면서 “리비아는 튀니지와 이집트가 아니다”라며 “무기를 들고 마지막 총알이 남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말해 지난 42년간 리비아를 통치해 온 정권을 순순히 내줄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일각에서 제기된 카다피의 베네수엘라 출국설과는 달리 아버지는 리비아에 있으며 군으로부터 변함없는 지지를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 군사 기지와 탱크, 무기 등이 반정부 시위대에 장악된 사실은 인정했다.
사이프 알-이슬람은 이번 시위에서 군이 시위 대처 훈련을 받지 않아서 실수를 저질렀다고 밝혀 유혈진압 사실을 처음으로 간접 인정했다.
그는 그러나 며칠 내로 ’역사적인 국가적 이니셔티브’를 내놓겠다고 말해 소요사태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개혁조치를 조만간 발표할 것임을 예고했다.
이어 일부 제한조치를 철폐하고 헌법과 관련한 논의를 시작할 용의가 있다면서 언론법과 형법 등을 포함해 일부 법도 개정하겠다고 제안했다.
◇서방국가 ‘폭력진압’ 비난 = 미국을 비롯해 서방국가들이 리비아 정부에 대해 진압 자제를 촉구하고 나서면서 리비아도 앞서 시민봉기로 장기 독재정권이 무너진 튀니지와 이집트의 전례를 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이날 성명에서 “사실을 확인 중이나 수백명의 주민이 사망했다는 믿을 만한 소식을 접했다”면서 “평화적인 시위대에 대한 폭력 사용에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943년까지 30년간 리비아를 지배한 뒤 지금까지 정치.경제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탈리아 외교부는 이날 리비아가 헌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이탈리아 외교부는 프랑코 프라티니 장관이 리비아 정부와 긴밀하게 접촉하고 있으며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에게 리비아의 개헌 가능성에 대해 대화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헌법 개정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리비아에 거주하고 있는 수백명의 튀니지인들은 리비아 사태를 ‘대학살’이라고 부르며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