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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카다피, 그리고 민주화 시위 사태 1

두바퀴인생 2011. 2. 26. 09:09

 

 

 

리비아, 카다피, 그리고 민주화 시위 사태 1

 

 

 

리비아는 어떤 나라인가?

 

리비아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이다. 공식 명칭은 대리비아 아랍 사회주의 인민 자마히리야국(아랍어: الجماهيرية العربية الليبية الشعبية الإشتراكية العظمى 알-아라비야 알-리비야 아스-샤 비야 알-이스티라키야 알-우즈마[*]) 또는 리비아 아랍 사회주의 자마히리야이며 수도트리폴리(아랍어로는 "타라불루스")이다.

 

역사

리비아는 마그레브 문화권과 이집트 문화권 사이에 위치하여 고대에는 지중해 무역중개 거점이었으며, 페니키아, 오스만 터키, 이태리 등 계속되는 외세의
침략에 따른 오랜 식민지 역사를 갖고 있다.

 

고대에는 베르베르인이 살고 있었으나 BC 1,000년경 페니키아인들이 무역거점을 찾아 리비아의 서부해안에 진출하였고, BC 800∼700년에는 3개의 식민도시, Leptis Magna, Uaiat(현재 Tripoli) 및 Sabratha를 건설하였다. BC 631년경에서 그리스인들이 동부지역에 진출, Cyrene, Belunis (현재 Benghazi), Apolonia 등 그리스 식민도시를 건설하였다.

 

BC 86년부터 AD 4세기 중반까지 로마지배를 받게되며 리비아는 올리브, 포도, 밀, 보리 등 농산물을 로마에 공급하는 '로마의 곡창지대'로 번성하였으며
AD 193년에는 Leptis Magna(현재의 Homs시) 출신인 Septimius Sebellus가 로마황제에 등극하기도 하였다.

 

로마제국의 쇠퇴로 리비아는 AD 431년 Oerman계의 Vandal족에 의해 정복되었다. 리비아는 6세기경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재차 정복되나 원주민인 Berber부족의 반란으로 사실상 무정부상태가 지속되었다.

 

644∼645간에 걸쳐 실시된 아랍군의 마그레브 지역 2차 원정에 의해 Tripoli가 함락되었다. 아랍은 이슬람교와 아랍어를 동반하여 리비아를 정복함에 따라 이후의 리비아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15세기부터 리비아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그 후 1911년, 이탈리아-투르크 전쟁으로 이탈리아가 리비아를 차지하였다. 1938년이 되자 9만명에 달한 이탈리아 이주자들이 트리폴리, 벵가지 주변에서 농장을 열었다.

 

이태리는 1911.9.29 오스만 터키제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동년 10.3 트리폴리 상륙작전을 시작으로 수차례 리비아 전역에 대한 식민지화를 시도하였으나 예상외의 리비아인의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까지 이태리는 Tripoli, Benghazi, Berna,Tobruk 등 지중해 연안지역 도시들을 장악하는 데 불과하였으나 1931  OmarMukhtar (일명 "사막의 라이온")가 이태리군에 체포, 교수형에 처해짐을 끝으로 리비아인의 이태리군에 대한 저항은 종식되고 리비아의 대부분은 이태리 식민지가 되었다.

 

 이탈리아독일일본과 함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패전국으로 격하되었다. 이 때를 틈타 영국프랑스가 이 땅을 차지하고 군정을 실시했다. 2차 대전후 1949. 12월 유엔에서 리비아 독립지지 결의가 채택되자 리비아는 1951.12. 24 Muhammad Idris를 국왕으로 하는 연방왕국으로 독립을 선포하였다.

 

당시 국호는 리비아 연합 왕국(United Kingdom of Libya)이었다. 연합 왕국은 입헌 군주제를 시행하였고, 내각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1969년 9월 1일 당시 약관 27세의 Muammar Al-Qadhafi 대위를 중심으로 한 청년장교 그룹이 트리폴리에서 무혈 쿠테타를 일으켜 수일만에 전국을 장악, 왕정을 폐지하고 아랍공화국을 선포하였다.  쿠테타 당시 터키에서 치료중이던 국왕 Idris는 이집트로 망명, 1983년 93세로 사망하였다.

 

카다피 지도자는 1973년 사회주의와 이슬람교를 혼합한 "Third Universal Theory"를 통치이념으로 삼고,1977.3 인민주권선언에 따라 "사회주의 인민주권
민주주의 체제" (Jamahiriya 체제)를 수립,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72년에 이집트, 시리아와 연합하여 아랍 공화국 연방이 세워졌지만 1977년, 이집트의 친(親) 이스라엘 정책에 반발하여 탈퇴를 선언, 이슬람 사회주의에 근거한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그 때문에 독재 정치, 인권 탄압, 반미 행동, 핵실험으로 인해 2003년도까지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2011년 현재 세계 최장기집권자인 카다피 국가원수의 독재에 반대하는 리비아 민중들의 민주화 투쟁이 진행 중이다.

 

지리

이집트, 튀니지, 알제리, 수단, 차드, 니제르와 국경을 접한다. 리비아의 전체 면적은 1,759,540㎢로 세계에서 17번째로 큰 나라이다. 리비아는 인도네시아보다 조금 작으며 어림 잡아 알래스카 주와 같은 크기이다. 북쪽으로 지중해와 마주하며 남동쪽으로는 니제르, 서쪽으로는 튀니지, 알제리와 접한다.

 

리비아는 지중해에 인접한 아프리카 국가중 해안선 길이가 가장 길어 전체 해안선 길이만 1,770 km에 이른다. 사막의 열풍이 불어서 피해가 나기도 하는데 리비아에서는 기블리(gibli)라고 부른다. 봄과 가을에 하루~4일에 걸쳐 불기도 하는 현상으로 사하라 사막 일대에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오아시스도 전역에 흩어져 있으며 가장 중요한 식수공급처이다.

 

사막

리비아 사막북아프리카에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영국군(British Army)과 이탈리아군의 격전지였다.

 

행정 구역

수도트리폴리(아랍어로는 '타라불루스')이다. 다음은 2007년 새로 바뀐 리비아의 주(州)다.

주요 도시로 트리폴리, 벵가지, 알바이다, 미스라타가 있다.

 

기후

사막과 흡사한 기후가 나타나며 아주 건조하다. 하지만 북쪽 지방은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를 누릴 수 있다.

 

자연

지중해에 면한 북아프리카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이다. 트리폴리 부근에서 연간 300㎜ 정도의 비가 올 뿐 해안에서 멀어질수록 불모의 산지나 대지가 나타난다. 겨울철에는 강우가 있어 스텝성 기후가 나타나고 남쪽의 쿠후라함몰지리비아 사막에는 우량이 극히 적어 주민은 오아시스에 거주한다.

 

정치

이드리스 1세가 통치하는 입헌군주국으로 독립하였으나 1969년 9월 카다피의 군부 쿠데타가 발생,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카다피는 1974년에 잘루드 수상에게 권력을 대폭 이양한다고 선언했으나 여전히 리비아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1975년에 우라늄 매장지인 차드 북부 사하라를 합병하였으며 1977년에는 사회주의 인민 리비아아랍국으로 국명을 고쳤다.3월에 인민주권확립선언 (신헌법)을 채택하여 인민직접통치체제를 확립하고 전인민위원회 (내각)를 창설했다. 의회인 전인민회의는 1,000명 내외의 지방인민회의 대표들로 구성되고, 전인민회의총서기국은 혁명지휘위원회를 대신한 것으로 전인민위원회와 함께 1년에 2차례 개최되는 전인민회의에서 선출된다. 1979년에 카다피는 전인민회의 서기장직을 사임하였으나 ‘9월혁명의 지도자’라는 호칭으로 국가원수직을 계속 보유하고 있다. 아랍사회주의 연합이 유일 합법정당이다.

 

                                                       

무아마르 알 카다피

 

 

이 나라는 지금까지도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대통령이 존재하나 국가원수는 카다피이다.

 

주민

아랍인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이탈리아인흑인을 비롯한 다른 민족들과 남부에 소수의 베르베르인이 살고 있다. 이슬람교가 국교이며 아랍어를 사용한다. 주민의 80%가 농경, 목축, 유목으로 생활하고 있었으나 석유가 채굴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도시로 유출하는 경향이 생겨 도시 노동자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문맹률은 60%이다

 

언어

공용어아랍어이다. 외국어로는 주로 영어가 쓰인다.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은 까닭으로 이탈리아어도 사용된다.

 

종교

이슬람교가 국교이며 다수를 차지한다. 이 나라는 이슬람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리비아 국기의 단순한 녹색은 엄격한 이슬람 국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군대

이 나라는 건강한 젊은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에 가야 하는 징병제를 실시한다. 한 때 핵실험 문제로 미국으로부터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경제

이 나라는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국가이나 경제적으로는 시장 경제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2007년 국제통화기금 통계에 의하면 리비아의 1인당 GDP는 $10,840로, 북아프리카에서 1위이다.

 

산업

1959년유전이 발견된 이래 세계유수의 석유산출국이 되어 경제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으로 농경지가 지중해안의 협소한 지역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전에는 아프리카의 가장 가난한 나라였으나, 현재에는 세계 제4위의 산유국으로 부국이 되었다. 석유무기화를 제창하여 생산제한·금수·가격인하 등 제반문제에 선봉을 서고 있다. 리비아는 본래 농업국으로 ·보리·감자·대추야자 등 식량작물과 올리브·감귤류 등이 재배되고, ·염소·낙타 등이 사육되어 피혁·양털 등을 수출하나 그 양은 극히 적고 식량의 85%를 수입한다. 정부의 경제정책의 기조는 석유수출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공업화를 비롯한 경제개발을 촉진하는 데 있다. 주요수입품목은 기계류·자동차·금속제품·전기기기 등이다.

 

대외 관계

리비아의 외교 정책은 1951년 12월 24일 국가 수립을 선언한 이래 많은 변동과 변화가 있었다. 왕국으로서, 리비아는 매우 친서방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다만, 리비아는 1953년에 가입한 아랍 연맹의 회원국으로서 보수적인 전통을 고수하는 나라로 여겨진다. 리비아 정부는 영국 및 미국과 긴밀한 동맹을 맺고 있었다. 양국은 리비아에 군사기지를 설치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리비아는 또한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와도 친밀한 유대관계를 구축하였고 1955년 소련과 완전한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대한관계

리비아는 남북한 동시수교국으로 대한민국과는 1978년 영사관계,1980년에 대사관계로 수교하였으며 북한과는 1974년에 수교하였다. 대한민국은 리비아와 의료협정,문화협정,경제기술협정을 맺었으며 현재 리비아 사막을 개발하고 있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 일명 GMR 사업은 대한민국에게 단순한 경제적 이익만을 남긴 것이 아니었다. 이 공사는 리바아 역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사업이었으며 사막을 옥토로 탈바꿈시켰다. GMR 공사로 인해 리비아의 수도권과 주요 소재지는 물 걱정 없이 살고 있다. 이 공사가 마무리되면 물이 부족한 이웃 아프리카 지역에 생활용수를 수출해 경제적 이익도 볼 수 있으리라 전망된다. 이 대수로 공사는 리비아인들 못지 않게 대한민국에도 큰 의미가 있다. 리비아와의 원활한 사업을 위해 한때 리비아와 항공 노선을 개설하였으며, 리비아 근무자를 위한 간호사와 의사를 비롯한 수많은 다른 직종의 종사자들도 리비아에서 근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경제적 가치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신뢰와 친근감을 리비아에 남겨주었다. 이 덕분에 대우 자동차는 북아프리카 지역 중 리비아에 공장을 두게 되었고, 리비아 차량의 절반 이상을 대우 자동차로 채우고 있다. [2] 그런데, 최근에 리비아에 선교하는 한국인 종교자가 체포된 일이 있었다.[3] 또한, 대한민국의 리비아 첩보 활동으로 관계가 냉각되고 있다.[4] 그래서 리비아에 있는 대한민국의 건설업체의 지위도 흔들리고 있다.[5] 하지만 이상득의원과 카다피와의 면담으로 한국과 리비아는 관계를 다시 회복했다.[6][7]

 

그 외 국가관계

이 나라는 한 때 차드와 전쟁을 한 적이 있다. 미국,영국 등 서방과의 관계는 지도자 카다피의 대(對) 서방 도전행위 때문에 한때 미국 등 서방국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당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제재조치 해제 이후에는 서방과의 관계도 회복되었다. 벨라루스와 리비아는 벨라루스 독립 직후인 1992년에 외교 관계를 맺었다. 벨라루스는 트리폴리에, 리비아는 민스크에 각각 대사관을 두고 있다.

 

문화

이슬람 문화는 리비아의 문화이다. 이슬람 문화는 리비아의 사회주의 이념에도 영향을 주어, '이슬람 사회주의'라는 독특한 이념을 형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