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이다. 공식 명칭은 대리비아 아랍 사회주의 인민 자마히리야국(아랍어: الجماهيرية العربية الليبية الشعبية الإشتراكية العظمى 알-아라비야 알-리비야 아스-샤 비야 알-이스티라키야 알-우즈마[*]) 또는 리비아 아랍 사회주의 자마히리야이며 수도는 트리폴리(아랍어로는 "타라불루스")이다.
역사
리비아는 마그레브 문화권과 이집트 문화권 사이에 위치하여 고대에는 지중해 무역중개 거점이었으며, 페니키아, 오스만 터키, 이태리 등 계속되는 외세의
침략에 따른 오랜 식민지 역사를 갖고 있다.
고대에는 베르베르인이 살고 있었으나 BC 1,000년경 페니키아인들이 무역거점을 찾아 리비아의 서부해안에 진출하였고, BC 800∼700년에는 3개의 식민도시, Leptis Magna, Uaiat(현재 Tripoli) 및 Sabratha를 건설하였다. BC 631년경에서 그리스인들이 동부지역에 진출, Cyrene, Belunis (현재 Benghazi), Apolonia 등 그리스 식민도시를 건설하였다.
BC 86년부터 AD 4세기 중반까지 로마지배를 받게되며 리비아는 올리브, 포도, 밀, 보리 등 농산물을 로마에 공급하는 '로마의 곡창지대'로 번성하였으며
AD 193년에는 Leptis Magna(현재의 Homs시) 출신인 Septimius Sebellus가 로마황제에 등극하기도 하였다.
로마제국의 쇠퇴로 리비아는 AD 431년 Oerman계의 Vandal족에 의해 정복되었다. 리비아는 6세기경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재차 정복되나 원주민인 Berber부족의 반란으로 사실상 무정부상태가 지속되었다.
644∼645간에 걸쳐 실시된 아랍군의 마그레브 지역 2차 원정에 의해 Tripoli가 함락되었다. 아랍은 이슬람교와 아랍어를 동반하여 리비아를 정복함에 따라 이후의 리비아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15세기부터 리비아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그 후 1911년, 이탈리아-투르크 전쟁으로 이탈리아가 리비아를 차지하였다. 1938년이 되자 9만명에 달한 이탈리아 이주자들이 트리폴리, 벵가지 주변에서 농장을 열었다.
이태리는 1911.9.29 오스만 터키제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동년 10.3 트리폴리 상륙작전을 시작으로 수차례 리비아 전역에 대한 식민지화를 시도하였으나 예상외의 리비아인의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까지 이태리는 Tripoli, Benghazi, Berna,Tobruk 등 지중해 연안지역 도시들을 장악하는 데 불과하였으나 1931 OmarMukhtar (일명 "사막의 라이온")가 이태리군에 체포, 교수형에 처해짐을 끝으로 리비아인의 이태리군에 대한 저항은 종식되고 리비아의 대부분은 이태리 식민지가 되었다.
이탈리아는 독일과 일본과 함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패전국으로 격하되었다. 이 때를 틈타 영국과 프랑스가 이 땅을 차지하고 군정을 실시했다. 2차 대전후 1949. 12월 유엔에서 리비아 독립지지 결의가 채택되자 리비아는 1951.12. 24 Muhammad Idris를 국왕으로 하는 연방왕국으로 독립을 선포하였다.
당시 국호는 리비아 연합 왕국(United Kingdom of Libya)이었다. 연합 왕국은 입헌 군주제를 시행하였고, 내각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1969년 9월 1일 당시 약관 27세의 Muammar Al-Qadhafi 대위를 중심으로 한 청년장교 그룹이 트리폴리에서 무혈 쿠테타를 일으켜 수일만에 전국을 장악, 왕정을 폐지하고 아랍공화국을 선포하였다. 쿠테타 당시 터키에서 치료중이던 국왕 Idris는 이집트로 망명, 1983년 93세로 사망하였다.
카다피 지도자는 1973년 사회주의와 이슬람교를 혼합한 "Third Universal Theory"를 통치이념으로 삼고,1977.3 인민주권선언에 따라 "사회주의 인민주권
민주주의 체제" (Jamahiriya 체제)를 수립,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72년에 이집트, 시리아와 연합하여 아랍 공화국 연방이 세워졌지만 1977년, 이집트의 친(親) 이스라엘 정책에 반발하여 탈퇴를 선언, 이슬람 사회주의에 근거한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그 때문에 독재 정치, 인권 탄압, 반미 행동, 핵실험으로 인해 2003년도까지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2011년 현재 세계 최장기집권자인 카다피 국가원수의 독재에 반대하는 리비아 민중들의 민주화 투쟁이 진행 중이다.
지리
이집트, 튀니지, 알제리, 수단, 차드, 니제르와 국경을 접한다. 리비아의 전체 면적은 1,759,540㎢로 세계에서 17번째로 큰 나라이다. 리비아는 인도네시아보다 조금 작으며 어림 잡아 알래스카 주와 같은 크기이다. 북쪽으로 지중해와 마주하며 남동쪽으로는 니제르, 서쪽으로는 튀니지, 알제리와 접한다.
리비아는 지중해에 인접한 아프리카 국가중 해안선 길이가 가장 길어 전체 해안선 길이만 1,770 km에 이른다. 사막의 열풍이 불어서 피해가 나기도 하는데 리비아에서는 기블리(gibli)라고 부른다. 봄과 가을에 하루~4일에 걸쳐 불기도 하는 현상으로 사하라 사막 일대에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오아시스도 전역에 흩어져 있으며 가장 중요한 식수공급처이다.
사막
리비아 사막은 북아프리카에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영국군(British Army)과 이탈리아군의 격전지였다.
행정 구역
수도는 트리폴리(아랍어로는 '타라불루스')이다. 다음은 2007년 새로 바뀐 리비아의 주(州)다.
주요 도시로 트리폴리, 벵가지, 알바이다, 미스라타가 있다.
기후
사막과 흡사한 기후가 나타나며 아주 건조하다. 하지만 북쪽 지방은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를 누릴 수 있다.
자연
지중해에 면한 북아프리카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이다. 트리폴리 부근에서 연간 300㎜ 정도의 비가 올 뿐 해안에서 멀어질수록 불모의 산지나 대지가 나타난다. 겨울철에는 강우가 있어 스텝성 기후가 나타나고 남쪽의 쿠후라함몰지와 리비아 사막에는 우량이 극히 적어 주민은 오아시스에 거주한다.
정치
이드리스 1세가 통치하는 입헌군주국으로 독립하였으나 1969년 9월 카다피의 군부 쿠데타가 발생,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카다피는 1974년에 잘루드 수상에게 권력을 대폭 이양한다고 선언했으나 여전히 리비아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1975년에 우라늄 매장지인 차드 북부 사하라를 합병하였으며 1977년에는 사회주의 인민 리비아아랍국으로 국명을 고쳤다.3월에 인민주권확립선언 (신헌법)을 채택하여 인민직접통치체제를 확립하고 전인민위원회 (내각)를 창설했다. 의회인 전인민회의는 1,000명 내외의 지방인민회의 대표들로 구성되고, 전인민회의총서기국은 혁명지휘위원회를 대신한 것으로 전인민위원회와 함께 1년에 2차례 개최되는 전인민회의에서 선출된다. 1979년에 카다피는 전인민회의 서기장직을 사임하였으나 ‘9월혁명의 지도자’라는 호칭으로 국가원수직을 계속 보유하고 있다. 아랍사회주의 연합이 유일 합법정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