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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164 : 신라의 역사 63 (제43대 희강왕)

두바퀴인생 2011. 2. 22. 00:14

 

 

한국의 역사 164 : 신라의 역사 63 (제43대 희강왕)

 

 

제43대 희강왕

희강왕(僖康王, ?~838년, 재위: 836년~838년)은 신라의 제43대 왕이다. 성은 김씨이고 이름은 제륭(悌隆)이다. 아버지는 원성왕의 손자인 김헌정(金憲貞, 후에 익성대왕(翌成大王)으로 추봉)이고 어머니는 포도부인(包道夫人, 후에 순성태후(順成太后)로 추봉)이다.

 

생애

836년 흥덕왕이 사망하자, 아찬 김우징(金祐徵)과 조카인 예징(禮徵), 김양(金陽)의 지지를 받는 숙부 김균정과 서로 왕위 계승을 놓고 시중 김명(金明), 아찬(阿飡) 이홍(利弘), 배훤백(裵萱伯)의 지지를 받는 제륭이 대립하였다. 이 과정에서 균정이 전사하고 김양은 화살을 맞아 우징 등과 더불어 청해진궁복(弓福)에게 달아나 의탁하였다. 싸움에 이긴 제륭이 즉위하였고, 김명이 상대등(上大等)에, 이홍이 시중에 임명되었다.

 

왕위 계승전에서 왕을 지지한 김명을 상대등에, 이홍을 시중에 임명하여 권력의 안정을 도모했지만, 재위 3년째가 되는 838년 정월에는 옹립자인 김명, 이홍등이 군을 일으켜 왕의 측근 귀족을 살해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왕은 자신을 옹립 한 귀족 세력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을 자각하여, 왕위에 있는것을 포기하여 궁중에서 목을 묶어 자살했다. 그 이후에 희강왕으로 시호를 받고, 매장하였고, 그 왕릉은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망성리의 사적 제 220호가 비정 되고 있다.

 

가계

  • 아버지 : 김헌정(金憲貞) - 익성대왕(翌成大王)으로 추봉.
  • 어머니 : 포도부인 박씨(包道夫人 朴氏) - 후에 순성태후(順成太后)로 추봉.
  • 왕후 : 문목왕후(文穆王后) - 갈문왕 김충공(金忠恭)의 딸

 

참고

 

 

 

 

제43대 희강왕 실록

( ? ~ 서기 838년, 재위기간 : 서기 836년 12월~ 838년 정월, 1년 1개월)

 

1. 희강왕의 짧은 영화와 김명의 반란

희강왕은 원성왕의 손자인 이찬 김헌정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포도부인 박씨이다. 이름은 제륭 또는 제옹이라고 하며, 헌덕왕과 함께 애장을 제거하는데 가담하여 권좌에 올랐다.

 

836년 12월 흥덕왕이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자, 신라 조정은 왕위 계승권 다툼에 휘말렸다. 흥덕왕의 종제 균정과 조카 제륭이 서로 파벌을 형성하여 왕위를 차지하려고 했던 것이다.

 

당시 시중 김명과 아찬 이홍, 배훤백 등은 제륭을 받들었고, 균정의 아들 우징과 조카 예징, 김양 등은 균정을 받들었다. 그들은 흥덕왕의 죽음이 임박하자, 각기 군대를 이끌고 대궐로 들어가 전쟁을 벌였다. 그 와중에 김양이 화살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그 바람에 제륭파가 승세를 굳혔고, 균정은 살해되었으며 김양과 우징은 달아났다. 그래서 제륭이 즉위하게 되었다.

 

제륭은 왕위에 올라 우선 사형수 이외의 죄수를 모두 사면하여 자기의 왕위 계승을 전국에 알렸다. 또 아버지 김헌정을 익성대왕에, 어머니 박씨를 순성태후에 추봉했다. 또 자기가 즉위하는 데 큰 도움을 준 김명을 상대등에 임명하고, 아찬 이홍을 시중에 임명하여 조정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정국은 쉽게 안정되지 않았다. 그와 싸우다 패배하여 달아난 우징이 아버지 균정이 살해된 사실을 백성들에게 알리면서 반역을 선동하고 있었는데, 김명과 이홍은 그를 잡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징은 청해진의 장보고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었기에 함부로 잡아들일 수가 없었다. 또 균정의 매부 예징과 아찬 양순마저 청해진으로 가서 머물렀다.

 

당시 장보고는 정병 1만을 거느리고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는 신라 조정의 명령을 듣지 않는 인물이라 김명 등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그런 가운데 김명과 이홍이 서로 짜고 군대를 일으켜 희강왕의 측근들을 대거 죽여 버렸다. 이에 겁을 먹은 희강왕은 자기도 살해 당할 것을 염려하여 궁중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니, 이때가 재위 3년째인 838년 정월이었다.

 

능은 소산에 마련하였다.

 

희강왕의 왕비는 문목부인 김씨이며 갈문왕 충공의 딸이다. 그녀 소생으로 아들 의종과 계명이 있다. 

 

의종은 당나라에 숙위한 적이 있으며, 희강왕 2년인 837년에 돌아왔다. 하지만 그 이후 행적은 기록되지 않았다.

 

계명은 제48대 경문왕의 아버지이다. 그외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