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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128 : 신라의 역사 27 (제19대 눌지왕 1) 본문
한국의 역사 128 : 신라의 역사 27 (제19대 눌지왕 1)
제19대 눌지왕
제19대 눌지왕 실록
( ? ~서기 458년, 재위 서기 417년 5월~ 458년 8월, 41년 3개월)
1. 실성왕의 음모와 눌지왕의 역공
눌지는 원래 내물왕의 태자였으나 나이가 어린 탓에 실성에게 왕위를 양보해야 했다. 그래서 실성왕의 딸을 시집보내 사위로 삼았는데, 이는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실성왕이 진심으로 원한 일은 아니었다. 실성왕은 내물왕이 자기를 고구려에 인질로 보낸 것을 원망하여 원한을 품고 있었기에 눌지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눌지를 사위로 삼은 것은 김씨 왕실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실성왕이 자기 딸을 눌지와 결혼시킨 것은 왕실의 압력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실성왕에게는 눌지가 대단히 부담스런 존재였다. 만약 내물왕 사망 당시 눌지가 성년이었다면 왕위가 실성에게 돌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실성왕은 늘 눌지의 대리자로서 왕위에 머물고 있는 셈이었다. 이럴 경우, 신라 사회에선 선왕의 태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관례였다.
탈해왕은 남해왕의 사위로서 왕위에 올랐다가 후에 유리왕의 후손인 파사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고, 미추왕도 조분왕의 사위로서 왕위를 이었다가 조분왕의 태자인 유례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마찬가지로 실성왕도 당연히 눌지에게 왕위를 물려주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실성왕은 내물왕의 자식들을 싫어했다. 그래서 눌지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지가 않았다. 더구나 성년이 다 된 눌지는 덕망이 있고 기상이 높아, 군자의 기풍을 갖추었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은근히 눌지를 부담스러워하고 있던 실성왕에겐 그런 말들이 귀에 거슬릴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눌지를 제거해 버려야 겠다고 생각한 실성왕은 결국 자객을 시켜 눌지를 죽이기로 했다. 내물왕의 세 아들 중 복호와 미사흔은 고구려와 왜에 인질로 가 있는 상황이라 눌지 하나만 죽이면 왕위는 자연스럽게 자기 아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실성왕은 눌지를 죽일 방도를 연구하다가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냈다. 그래서 자기가 고구려에 인질로 있던 때 알고 지내던 고구려인을 은밀히 불렀다.
"내가 구실을 만들어 고구려 군대를 청하고, 눌지로 하여금 그대를 맞이하게 할 터이니, 도상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눌지를 보거든 무조건 죽여 버리시요."
마침내 실성왕은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고구려에 군대를 청했고, 눌지로 하여금 마중나가도록 했다. 눌지는 실성왕의 속내를 눈치채지 못하고 고구려 군대를 맞이하기 위해 떠나, 마침내 고구려 군대와 만났다. 군대를 이끌고 온 고구려인은 바로 실성왕의 사주를 받은 자였다. 하지만 막상 눌지를 대면하게 된 고구려인은 눌지의 기상과 인덕을 알아보고 눌지에게 실성왕의 음모를 털어 놓았다.
"그대의 국왕이 나로 하여금 그대를 죽이라고 하였으나, 이제 그대를 보니 차마 죽일 수가 없소이다."
그 말을 듣고 눌지는 분개하였고, 그는 고구려인을 설득하여 자신과 함께 금성으로 가서 실성왕을 제거하자고 하였다. 고구려인들은 눌지의 제의를 받아들여 금성으로 군대를 몰아, 실성왕을 제거하고 눌지를 왕위에 앉힌 뒤에 고구려로 돌아갔다. 고구려 군대를 이용하여 눌지를 제거하려 했던 실성왕은 되레 그 고구려 군대에 목숨을 잃었으니,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이 되고 말았다.
당시 눌지에게는 병권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비록 실성왕이 자기를 제거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치더라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고구려 군대의 힘을 빌려 실성왕을 제거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실성왕 재위시에 신라는 고구려에 인질을 보내고 조공을 바치는 입장이었다. 이런 관계는 내물왕 때인 392년에 실성을 고구려에 보내고, 이어 400년 신라 땅을 거의 장악한 왜군을 광개토왕이 군대 5만을 보내 쫓아내고 구원한 이후부터 지속되었다. 말하자면 이때 고구려는 신라의 상국이었던 것이다.
실성왕은 바로 그 상국 고구려 군대를 끌여들여 눌지를 제거하려 했다. 실성왕이 어떤 구실로 고구려 군대를 끌여들인지는 몰라도 왕이 직접 고구려 군대를 끌여들이고, 그 군대를 영접하기 위해 왕위 계권자인 눌지를 보낸 것을 보면, 당시 고구려가 신라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고구려 군대가 실성왕을 죽이고, 눌지를 왕으로 세운 뒤에 돌아가는 사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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