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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 새벽 10 (새로운 출발...)

두바퀴인생 2011. 1. 8. 06:23

 

 

우면산 새벽 10 (새로운 출발...) 

 

 

                                                                                                눈내린 국립국악원 전경

 

새해가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격동의 지난해가 엇그제 같은데... 세월은 참으로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구제역은 조류 독감과 더불어 확산 일로에 있고 가축 약 100만두 이상이 이미 살처분되었다고 한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고 눈이 내린 지방을 다니면서 방역을 진행하던 공무원들이 연달아 죽음을 당하고 지처 쓰러진 공무원도 많다고 한다. 조기 대처를 미흡하게 진행하던 방역 당국의 실수로 인해 아까운 가축과 인명의 손실이 크다. 지혜롭지 못하고 안일함에 빠져 있던 결과치고는 너무나 참담하다. 이것은 천재지변이 아니고 인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 후폭풍이 몰아칠 것이다. 쇠고기, 돼지고기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고 계란 값을 포함하여 닭고기, 오리고기도 덩달아 오를 것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피해는 국민들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무능한 공무원들이 안이함에 빠져 도박장이나 드나들고 승진과 편암함만 추구하다가 벌어진 불행이다. 

 

 

 

 

우리 사회는 불황으로 인하여 그동안 수많은 젊은이들이 몇 년 동안 '공시족'이라하여 공무원을 지망하여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되어 공직에 몸을 담갔지만, 그동안 우리 공직 사회에 뿌리내린 나쁜 관습을 그대로 답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이 연줄이 출세의 첩경이라는 사실과 안이한 공직 생활에 젖어들 때쯤에는 무언가 자신이 선택한 공직 사회의 미래가 없는 다람쥐 채바퀴 같은 평생 생활에 염증을 느낄 때가 올 것이다.

 

유능한 젊은이들이 공직 사회에 뿌리내려 새로운 사고와 가치관으로 진정한 목민의 자세로 공직 사회를 개혁한다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수많은 공직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번 방역 작업에 참가하여 목숨을 잃은 그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싶다. 이러한 분들의 고귀한 희생을 통해서 국가의 미래는 그들에게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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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경찰대학을 나온 유능했던 젊은이들이 경찰 생활을 통해 경찰의 새로운 상을 구현하기는 커녕 자신도 모르게 지금까지의 경찰이 걸어온 길처럼 비리와 부패에 연루되고 부정적인 태도와 사고로 변할 수 밖에 없다면 경찰의 미래는 암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건설현장 식당 운영권을 놓고 경찰 고위층에 엄청난 로비가 진행되었다는 소식을 접할 때 마음이 서글퍼지기만 하는 것은 안타까울 뿐이다. 경찰대 출신들의 경찰 개혁을 위해 초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또 군대도 장교들이 4년 동안 철저한 교육으로 전인교육을 받은 후 사관학교를 졸업하면 진정으로 군인다운 군인이 되어야 한다고 모두들 생각하고 소위 계급장을 달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그들 중 일부는 누구보다도 더 부패해지는 것은 인간들의 마음속에 탐욕에 대한 뿌리깊은 욕망이 잠재되어 있는 인간 본연의 근원적인 문제일 것이다. 가난한 집안 출신일수록 돈 맛을 보면 사람은 순식간에 달라진다. 그래도 군인들이 가장 가난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군생활의 열악함과 재테크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군인들에게는 기본 봉급은 물론 가는 곳마다 살 수 있는 관사가 주어지고 부식비, 판공비, 운영유지비, 출장비, 휴가비 등 별도의 수당이 주어지며, 차량이 제공되고 모든 군복이 보급되며, 각종 면세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크게 돈의 필요성을 못 느끼며 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50~70년대 국민들이 못 먹고 못 살 때는 군인에게 시집가는 것이 처녀들의 꿈이었다.

 

 

 

주거지가 제한 됨을 물론 대부분 전방 지역이나 고지대, 격오지 등에 근무하다 보면 돈의 필요성을 크게 못 느끼고 살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 재테크에 대한 관념이 부족하고 투기를 할 줄 모른다. 물론 일부 지혜로운 군인 부인들은 치마바람을 일으키며 주식, 부동산 등에 투기도 하였지만 대부분 군인들과 그 가족들은 국가에서 주어지는 혜택으로 별다른 아쉬움을 느끼지 못하다보니 본인이 전역할 때 쯤에는 모은 재산이 없어 거지들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연금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못한 장교 전역자들은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 쯤에는 대부분 군복을 벗고 군을 떠나야 한다. 군 조직상 피라미드 형태로 위로 올라갈수록 자리가 줄어드니 결국은 동기생들 간에 경쟁이 이루어지며 나중에 장성 승진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찍 군을 떠나게 되어 있다. 가문의 영광이라는 장성도 승진할 때는 좋아도 치열한 경쟁을 통해 사단장, 군단장, 군사령관 ,참모총장,합참의장, 국방장관으로 올라가면서 장성 동기생들이 하나 둘 줄줄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그들은 아파트 2,3,4,5,6,7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옛날 3공 시절에는 장성들이 전역하면 국가 공기업에 자리라도 주었지만, 이제는 국물도 없다. 전역 후 취업하기도 어렵고 군출신을 받아주는 데가 없다. 그래서 집에 빈둥거리자니 가족들에게 쪽팔리고 눈치가 보이니 어디 적당한 곳에 조그만한 사무실 하나 내고 '00안보문제연구소'라는 간판을 달고 동기생들을 불러 바둑, 장기, 고스톱을 치거나, 현실 정치나 군을 비판하며 소일하는게 통상이다. 경조사비도 월 수십만원 소요되고 연락처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청첩장을 보낸다. 장군 체면상 부조금도 적게 할 수가 없다. 군인공제회, 국방부 산하기관, 재향군인회 등을 기웃거리며 적당한 자리 하나 차지하기를 기대하지만 현정권에 연줄이 없으면 그것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니면 적당한 지방 대학에 안보학 시간 강사 자리라도 맡게 되면  다행이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한다. 실전 경험은 있을 지 몰라도 안보에 대한 이론적인 전문성 부족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옛날 현역 시절에는 목숨이라도 내 놓을 것 같던 부하들도 가진 것 없는 퇴역 장군이라도 찿아 올 사람도 없다. 현역 시절 부하들로부터 존경받을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디 취직이라도 하여 업무상 로비라도 하려면 체면상, 도리상 뒷돈 거래도 할 줄 모른다. 옛날 끗발로 계약이 성사되기를 기대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는다. 

 

영관급 이하 장교로 전역하여 사회로 나온 사람들은 중년의 나이에 직장을 구해야 되고 가족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된다. 자녀들이 한창 자랄 나이에 그리고 사교육비를 포함하여 엄청난 교육비를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현실이다. 군을 무시하고 군출신을 천시하는 이런 사회에서 한창 일할 나이에 사회 경험도 적고 전문성도 부족하여 취업은 물론 직장을 구하기도 힘들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사기를 당하여 퇴직금을 포함 전재산을 다 날리고 부인과 이혼하고 집을 나와서 노숙자가 된 사람도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가족들의 등쌀에 모두 고개숙인 가장이 될 수 밖에 없으며 이혼은 물론 가정 파탄이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또 자살,이민,노숙자 신세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물론 일부 몰지각한 장교들은 예산, 계약, 인사, 관리, 병참, 보급, 정비, 물자 등을 취급하는 병과나 부서에서 치부를 일삼다가 사건이 터져 구속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 금액이나 규모가 사회에 비해 코끼리 비스켓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또 일부는 보직과 승진을 위해 상급자들에게 금품을 제공하거나 상급자 집에서 자신의 마누라가 거의 식모 생활을 하다시피 하면서 눈도장을 찍어야 상급자 사모님에게 인정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진급하거나 주요 직책에 보직된 자는 결국 더많은 비리를 저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새해를 맞아 이 대통령이 군 개혁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장성 별판을 없애고 사제 군복을 금지한다고 전투형 군인으로 탈바꿈 되는게 아닐 것이다. 근본적인 사고의 문제이다. 군내 비리의 핵심은 헌병과 기무 부대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군내에서 벌이고 있는 무소불위의 동향 보고라는 작태를 통해 장교들을 감시하고 위협하며 인사, 보직에 관여하며 때때로 지휘관에게 용돈을 요구하고 용돈을 주지 않을 경우에는 비위 사실을 확대하여 동향보고를 올리게 된다. 그러면 상급부대는 지휘관은 그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기는 커녕 언론이나 사회에 알려지면 자신에게도 누가 끼칠까봐서 쉬쉬하거나 대상자를 징계에 회부하고 처벌을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지휘관들이 기관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불법과 비리를 조장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계약 등 예산과 관련된 부서를 담당하는 군인이나 군무원은 기관원과 짜고 거액의 비리를 저지르는 경우도 많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군내 비리가 기관원들이 개입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기관원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필요하다. 물론 조금이라도 예하부대에서 금전 거래, 향응 제공 등의 사실이 적발될 경우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벌을 내리는 조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비리 사실을 가감없이 자유롭게 언론에 제공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번 이러한 사실에 관련된 사람은 오명을 벗더라도 또 사건이 무혐의로 판결이 나더라도 그 사람은 다시 군생활을 다시 할 수 가 없다.  이미 조직에서 눈밖에 난 사람을 누가 승진시키고 예우해 줄 것인가?

 

군의 개혁은 비리를 제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보면 합당할 것이며, 그 첩경은 필요악 조직인 헌병과 기무, 법무, 감찰 등을 대대적으로 개혁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군인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책을 읽지 않으니 머리에 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승진이나 보직도 전술.전기와 전략, 그리고 군대 관리 및 용병술, 미래전 등에 대하여 논문을 쓰게 하고 발표 및 토론을 전개하여 군사 전략.전술을 함양한 유능한 전술.전략가를 선발해야 할 것이다. 지휘관 평정이나 서류 심사만으로 진행하고 있는 현재의 진급 심사제도는 개혁되어야 한다. 지휘관 평정은 지휘관에게 잘 보여야 잘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지휘관에게 수시로 상납하거나 아부하거나 가족이 식모살이를 해야한다는 의미와 같다. 근무 태도보다 상급자 자가용을 고쳐오고 시트를 새로 갈고 타어어를 새것으로 갈아주는 부하가 이쁘지, 밤 늦도록 상급자 눈치보며 야근만 한다고 이쁜 부하가 아니다는 사실이다. 뇌물에 한 번 맛들인 사람은 그 유혹을 절대로 뿌리칠 수가 없다. 생일 때마다 케이크속에 두둑한 돈 봉투를 넣어 인사오는 부하가 이쁘지 언제 생일인지도 모르는 부하가 이쁠리가 없을 것이다.

 

실화 한 가지를 소개한다.

Y라는 유능한 한 장군이 있었는데, 그는 동기생 중에서도 똑똑하거니와 전략.전술통으로 이름이 나 있던 사람이다. 그가 전방의 모 사단에 사단장으로 부임하여 GP현대화 공사를 시작하였다. 옛날에는 DMZ안에 저명한 고지 위에 철책을 2중 3중으로 두르고 GP를 운용했지만, 그때 GP현대화는 모든 시설이 지하화는 물론 외벽을 콘크리트로 성벽처럼 올리고 요새화하는 작업이었다. 당시 공사 책임을 맡은 모 중령이 공사를 진행하면서 전임 대대장이 철책 공사를 통해 남겨 주었던 합판, 목재를 포함한 수많은 양의 자재를 빼돌려 비자금을 마련하여 사단장 사모님께 수시로 드렸다. 청빈하고 가난하게만 살아오다 돈맛을 본 사단장 부인은 그 장교도 이쁘지만 가족이 사단장 공관에서 식모살이까지 해주니 그토록 예쁠수가 없었다. 충성스런 부하로 치겨세우니 남편이 덩달아 칭찬하기 마련이고 이불속에서 모든 인사는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장교는 대대장 보직이 끝나고 사단 일반참모로 등용되었다.

 

모든 뒷 돈은 그 장교가 대주니 사단장은 더욱 힘을 쓸 수가 있었고 지시하면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여 구해오고 조치하는 그의 능력에 사단장은 감탄하면서 그를 총애하였다. 그래서 그 장군은 사단장이 끝나고 군단장으로 발탁되었고 나중에는 군사령관까지 올라갔다. 그 장군은 군사령관에 보직되자 본부대장을 갑자기 보직해임시켜 버리고 새로운 본부대장을 뽑도록 인사참모에게 지시했다. 그래서 인사참모는 여러번 수많은 장교카드를 갖고 결재를 올렸으나 매번 퇴짜를 받았다. 고심끝에 주변 사람들에게 소문을 들으니 그 장군을 따라다니는 심복같은 유능한 장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장교의 카드를 결재 올렸더니 드디어 결재가 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군사령부 본부대장으로 보직되었다. 그림자처럼 그 장군 뒤를 따라 다니면서 뒷바라지를 하니 진급도 누구보다도 빨리 할 수 있었고 주요 보직도 마음만 먹으면 어디던지 다른 사람들을 제치고 꿰차고 들어갔다. 그 병과의  인사까지도 육본 보임장교을 통해 은근히 압력을 넣으며 행사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 병과의 장군들까지도 승진을 위해 그 대령에게는 굽신거릴 정도였다. 그리고 그 장군이 총장으로 승진되어 승승장구를 누릴 동안 그 장교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면서 갖가지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다. 물론 그기에는 해당 기관원들도 동참하여 합세하였고 주기적으로 용돈도 받았다. 그러자 주변에는 그 장교에 대한 적대적인 사람들이 늘어만 갔다. 그들은 그 장교로 인해 진급과 보직에서 직간접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마침내 잘나가던 Y총장이 보직이 끝나고 합참의장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군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자 얼마 후 그 장교에 대한 투서가 금방 날아들었다. 기관에서 조사 결과 비리는 엄청났다. 결국 그 장교는 군복을 벗는 조건으로 그 사건은 마무리 되고 말았는데, 조사해서 터뜨려 보아야 기관원들 자신들도 다치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우리군의 현실태이다.

 

군인 중 책을 읽는 사람은 일부 군사학교 교수, 전문 분야에 근무하는 군인을 제외하고 대부분 운동이나 훈련, 도박, 주색잡기로 세월을 소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산,파주,연천,전곡,다목리,사창리,화천,양구,원통,인제,현리,속초,양양을 포함하여 이북 지역의 마을은 교통도 불편할 뿐만아니라 병원도 없으며 레져 시설도 거의 없던 곳이며 78년 이전까지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곳이다. 이런 지역에서 서울을 한 번 나오려면 3~4시간 이상 걸렸다. 그래서 특별한 연고나 업무가 아니면 잘 나올 수가 없다. 당시 양구같은 곳은 홍천을 통해 가려면 3~4시간 이상 걸렸으나 춘천 소양댐에서 정기 여객선을 타면 1시간 반 정도면 양구에 도착하였다. 그래서 휴가, 전출입오는 장병들이 소양댐 배를 많이 이용하였다. 어느날 양구에서 젊은 군인 가족인 산모가 진통이 있어 춘천으로 급히 배를 타고 나오다가 배에서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입오는 장교들 사이에서 전해지기도 했다.

 

또 그 지역들은 대부분 산지로 밭농사가 대부분이며 감자, 옥수수가 주된 생산품이었다. 농지도 적고 생산량도 적어 무척 살기가 힘든 곳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이 음식점.다방.술집.하숙집을 차려 군인들이 뿌리는 돈으로 지금까지 먹고 살은 사람들이다. 심지어 부대 정문앞 구멍가게에도 뒷편에 방이 여러개 있었고 젊은 아가씨들이 3~5명 정도 기거하고 있었는데 그녀들은 그 부대의 사병에서 부터 장교들까지 대부분 상대하였으며 당시 막걸리 한 되만 먹으면 아가씨는 공짜로 제공될 정도였다.

 

봉급날이면 이곳들의 술집이나 다방,음식점들은 문전성시를 이루는데, 대부분 홀로 사는 총각이나 홀아비가 대부분이라 그들이 뿌리는 돈이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에 군인들의 피를 빨아먹고 살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전방에 살던 아가씨들은 대부분 불우한 가정의 가출 소녀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녀들은 다방.술집을 전전하던 아가씨들로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직업소개소를 통해 선금을 받고 의정부-동두천-전곡-연천, 포천-일동-이동,운천-동송-철원-지포리-와수리, 원주.춘천-화천.홍천-양구.인제-원통.현리.속초 등지로 흘러 들어갔다. 그곳에서 길게는 6개월 정도 짧게는 2~3개월 정도 돈을 벌다가 다른 곳으로 떠난다. 그 정도 기간이면 그 지역 유지를 포함하여 군간부 등 대부분 사람들을 섭렵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운 좋으면 총각이나 홀아비를 만나 결혼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처녀라고 속여 협박하여 돈을 갈취하거나 동거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고 나중에는 운좋게 결혼하는 경우도 많았고 대부분 하사관(부사관)들이 한 곳에 장기간 근무하다보니 자연적으로 그녀들과 동거하거나 결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군인 남편이 인접부대로 전출을 가면 두 집 살림, 자녀가 학교다니다가 중학교, 고등학교는 춘천이나 원주로 보내는데 그러면 세 집 살림이 시작된다. 그들은 그렇게 박봉에 열악한 환경에서도 긍지를 갖고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가난은 어쩔수 없이 군인들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찬비 눈보라 맞으며 젊음을 송두리채 바쳐 휴전선을 지켰지만 돌아온 것은 천대와 멸시뿐인 군대가 되었다. 군부대를 떠나라고 아우성이다. 군인 가족들이 민간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다른 민간 입주자들이 아파트 가격이 떨어진다고 군인 입주거부 데모를 하는 상황이다. 도시 개발에 따라 군부대가 이전을 하려도 이제는 갈 곳이 없는 군대가 되었다. 이 땅의 군대는 갈 곳도 없고 설 곳도 없다.

 

10.26 이후 군을 이용하여 정치군인들이 판을 쳤고 권력을 탐하다보니 부패해졌으며 문민정권시 하나회 숙청 이후 군의 위상은 영원히 추락하고 말았다. 선배들이 일군 모든 공을 허물어 버리고 무능한 군대, 무식한 군인,부패한 군대가 되어 버렸다. 이제는 군이 다시 제 자리를 찿지 못하면 국방개혁을 물거품이 될 것이며 국민들로부터 영원히 버림받는 군이 될 것이다.  

 

 

                                                                                              우리집 강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