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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의 새벽 9 (내부 분열)

두바퀴인생 2010. 12. 30. 03:50

 

 

우면산의 새벽 9 (내부 분열)

 

 

 

 

서울 지역을 포함하여 전국에 다시 폭설이 내렸다. 연이은 폭설로 도로가 마비되고 차량이동이 어려워지자 사람들이 출퇴근 시간대에는 대중교통으로 몰려들어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다. 지구의 이상기온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유럽 지역과 미국 지역도 폭설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발생되는 현상이라고 하니 지구 멸망의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는 듯하다.

 

작년 신년 초에 내린 눈으로 서울이 교통대란을 경험하였듯이 이번에는 서울시 공무원들이 밤을 지새며 제설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제설장비와 제설도구는 물론 염화칼슘이 부족하여 이면도로는 미쳐 손도 쓰지 못하고 있는 모습은 그대로다. 주민들도 자기집 앞을 쓸기를 꺼리고 특히 고급 빌리나 아파트 일대는 성실한 관리인들은 열심히 눈을 쓸고 있으나 종같은 관리인들은 관리실에서 얼굴도 내밀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래도 방치된 눈이 얼고 그 위에 또 눈이 내리니 밤새 얼어붙은 도로는 차량 접촉 사고는 물론 이동간 넘어져 골절상을 당하는 것이 자신이나 자신들의 가족이라면 그대로 둘 것인가? 서울 시민은 이미 시민의식도 없고 자발적인 봉사정신도 없다. 옆 집에 누가 살던지 관심도 없고 눈 쓸기는 커녕 계단과 복도 청소는 물론 휴지나 전단지 하나 줏는 법이 없다. 주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종처럼 살고 있는 수많은 세입자들이 얼마나 자기집 앞의 눈을 쓸고 있을 것인지... 하루 벌이가 급하고 먹고 살기도 급한데 무슨 눔의 눈을 쓸랴? 생각이 바뀌어야 행동이 바뀌는 법이다.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가축들의 살처분 숫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방역 당국이 땀을 흘리면서 밤샘 방역 활동을 펴고 있으나 구제역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어 축산 농가뿐만 아니라 전국민들이 가슴을 애태우고 있다. 이번 구제역으로 관련 음식점은 물론 곧 일어날 각종 축산물 가격 폭등이 뒤따를 것이다. 자연을 멀리하고 집단적인 축사에서 인공 사료로 축산을 하다보니 영양공급과 위생상태가 열악하고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구제역을 초기 대응에서 실패하자 급속도로 확산되기에 이른 것이다. 초기 방역 부실은 물론 그런 가운데서도 통제를 따르지 않고 무작정 축산물을 운반하는 차량들에 의해 확산되기도 하였고 일부 업주들은 가축을 몰래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등  규정을 위반하는 형태가 이런 참극을 불러오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방역 당국의 공무원들이 추위와 힘든 살처분에 엄청난 고생을 하고 있으며 소독액이 얼어 작동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미련하고 무능한 관련 당국이 사전 치밀한 대비책을 강구하지 못하여 겪는 이중 고생이며 피해일 것이다. 하루 빨리 구제역이 소멸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정부의 새해업무보고 내용이 샅샅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국가 외교.국방분야의 보고 내용이 북한과 중국의 반발을 사고 있다. 외교통일부의 흡수통일론은 당연히 국가전략이며 남한이 추구하는 통일정책이다. 이 내용에 대해서 중국 언론과 북한은 한국 정부에 대한 비난의 칼날을 세우면서 언론 공세를 펴고 있다. 그들의 언론에 휘둘리고 말초적으로 대응하고 기본을 망각하고 물러서는 형태는 국권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최근 해경함을 들이받은 중국 선원들을 조기 석방한 문제도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북은 국방백서의 주적 표현에 대해서 선전포고라며 협박하고 있다. 왜 우린 이런 나라가 되었나? 중국의 동북 공정이나 한만국경에 병력 집결, 탈북자 체포 북송, 현역 소령 정보장교 1년간 구금 등에 대해서 왜 우리는 한마디도 공개적으로 언론에서 그들에게 이야기 하지 못하는가? 북의 대남전략과 정책, 북의 인권, 기아문제, 탈북자, 강제수용소, 꽃제비 등 인권문제 등을 왜 공개적으로 신랄하게 비판하지 못하는가? 왜 우리는 우리들의 국방백서에 주적 표현에 대해서 북의 간섭을 받아야 하는가? 친복.종북 단체나 인사는 중국의 인권, 탈북자, 북의 인권, 기아상태에 대해서 왜 입을 다물고 있는가? 만만한 대통령만을 비판하고 쌍소리하는 게 전부인가? 우리 사회가 분열과 갈등의 심연으로 빠져들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들은 언론 플래이로 국내 정치.사회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지도자와 지도층은 이런 갈등을 통합시킬 능력도 없는 무능력자에 불과한가? 국방부의 합동군 사령부 창설, 서북도서사령부 창설 등에 대해서도 공개할 것이 있고 공개하지 못할 것이 있거늘 모든 국가 정책이 실시간으로 고스란히 언론에 노출되고 있는 작태는 국가 전략.전술을 적들에게 미리 공개하고 대응하라는 것이나 진배 없을 것이다.

 

최근 어느 지자체 군수가 군청에 일부 기자 출입을 통제한 모양이다. 수십개의 언론사 기자들이 군청을 들락거리며 자료를 요구하고 횡포를 일삼는 모습이 얼마나 한심하였으면 그랬을까?  구독자도 거의 없는 것은 물론 각종 청탁과 이권에 개입하여 공무원을 공갈.협박하며 위협하고 이권을 챙기는 사이비 기자들이 활개를 치는 한심한 세상이다. 간판만 갖춘 언론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설립되어 그들이 일삼고 있는 언론 횡포는 상상을 초월하는 탈법과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현실이다.  

 

 

 

내부 분열

 

아니나 다를까, 또 적전(敵前)분열이다. 아무리 싸우다가도 더 큰일 앞에서는 서로 머리를 맞대는 것이 지혜다. 그런데 이건, 예나 지금이나 또 똑같은 행태다. 천안함사건, 연평도 도발 등에 어찌 대처할 것인지, 사격연습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그 이후는 또 어찌할 것인지, 이 모두가 실로 이념과 정파를 벗어난 생존의 문제다. 그런데도 옛날 국사책에서나 보던 주전파, 주화파 싸움질을 지금도 똑같이 해대고 있으니 이 어찌 개탄스럽지 아니하겠는가. 이 나라 지식인들이나 정치꾼들,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인가.

이 나라 지식인들 중 ‘좌파꼴통’의 우두머리는 누구인가. 누구 누구다. 그러면 이 나라 ‘우파꼴통’의 우두머리는 누구인가. 누구 누구다. 이 나라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이 분들의 연세는 대체로 70세 이상이다. 돌아가신 분들도 있다. 그 아래로 60대, 50대, 40대들이 줄줄이 잇고 있다. 가히 중간 보스급이나 행동대장급이다.

그런데 이들 좌파·우파 사이의 관계는 어떠한가. 한마디로 적대적이다. 대화하고 소통하는 법이 없다. 간혹 부딪쳤다 하면 일이 커진다. 핏대를 올리며 싸운다. 이념이 정파로 확대되면 더욱 치열해진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정파적 이익은 눈을 뒤집히게 한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둔갑하는 압권은 국회다. 1985년 12월에는 철봉이, 1998년에는 해머가, 2007년 12월에는 전기톱이, 2008년 12월에는 물대포와 소화기가 등장했다. 격투기, 육탄전에 부상자가 늘 속출했다.

이념과 정파는 왜 필요한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소통이 안 되나. 스스로 이념과 정파의 저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념과 정파를 통해 제 잇속을 챙겨야겠다는 동물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에서 가장 시급하게 선결되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국민통합이다. 제 이념과 정파가 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국민통합이 무너진 후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초가삼간 타는 줄 모르고 싸움질에 혈안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제 이념과 정파로 싹쓸이가 가능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일시적으로 권력을 장악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영구불변한 것은 없다. 그러니 제 것으로 싹쓸이하려 하면 어김없이 싸움질이 뒤따르고, 국민통합은 깨진다.

이처럼 갈가리 찢어져 난장판이 된 대한민국, 여기서 가장 먼저 국민통합에 나서 주어야 할 이들은 누구일까. 바로 원로들 아닐까. 예로부터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싸우지 마라.”고 가르쳤다. 아무래도 젊은이들은 이래저래 다투기 마련이다. 열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마다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가세해서 편싸움에 끼어들던가? 아니다. 싸움질하는 젊은이들의 그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아서라. 너무 심하게 싸우지 마라.”고 타일렀던 것이다.

사람의 생애주기를 소청장로(少靑長老)로 나눌 때 이를 계절로 보면 춘하추동이 된다. 또 그 시기에 맞는 덕목으로 보면 인의예지가 된다. 그래서 원로는 겨울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시기의 덕목은 지혜가 된다. 이처럼 원로의 덕목은 지혜다. 그래서 지혜로운 원로는 늘 싸움을 말리고 화해를 주선하는 현명함을 발휘한다.

그런데 이 나라의 소위 원로라는 분들은 어떠한가. 혹시 끝끝내 소속 이념과 정파의 ‘오야붕’ 노릇에 끗발을 날리고 있는 이들은 없는가. 오히려 젊은이들을 충동질하고 자신의 못다한 한을 풀어달라고 악을 쓰는 이들은 없는가. 이는 지혜로운 모습이 아니다. 원로다운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호소한다. “우리 원로들, 젊은이들 싸움질 말리고 죽읍시다. 서로 화해시키고 죽읍시다. 국민통합하고 죽읍시다.”라고 말씀해 달라고.

찬반 선호가 뚜렷했던 부시 전 미국 대통령 같은 사람에게서도 배울 게 있다. 그는 퇴임후 첫 연설에서 “나는 정치보다 나라를 더 사랑한다.”고 했다. 최근 자서전을 출간한 후에도 “내가 오바마를 비판하는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나도 차츰 나이가 들어간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다짐하게 된다.

 

 

 


 

귀족자제 전방근무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22일 당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정치인과 공직자, 기업인 등 사회지도층 자제의 병역의무를 엄격히 관리하고 전방에서 복무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전 대표는 “6·25전쟁 당시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 등 미국 지도층 자제가 참전해 35명이 죽었다”면서 지도층의 사회적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는 “중국의 마오쩌둥은 ‘내 아들이 가지 않으면 누구도 가지 않을 것’이라며 6·25전쟁에 큰아들을 보냈고 그는 결국 전사했다”는 사실도 부각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등 안보의식이 부각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백번 동의할 만하다. 지도층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이 땅에는 뿌리내릴 수 없는 것인가. 언론과 학계 등에서 수도 없이 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우리 지도층은 당사자는 물론 그 자제들까지 병역 면탈과 기피 시비가 끊이질 않는다. 사회적 책임은커녕 기본의무조차 저버리는 지도층의 그릇된 행태가 일반사회에서 ‘부자와 권력자에 대한 혐오감’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2년 전 영국의 헤리 왕자가 아프가니스탄 전장에서 복무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지난해 대기업 2, 3세와 그 친인척을 대상으로 병역관계를 조사한 결과 면제율이 33%로 나타났다. 면제 사유도 과체중, 장기유학, 이중국적 등이 많아 병역 기피 의혹이 물씬 풍겼다. 일반인보다는 기업인, 정치인, 관료의 자제가 면제율이 월등히 높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후진성을 말해 준다.

국가안보와 부국강병은 지도층이 솔선하고 국민이 따를 때 지켜지는 것이다. 선진국, 강대국은 그냥 되는 게 아니다. 스스로 사회지도층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식을 최전방에 보내는 양식쯤은 있어야 할 것이다. 병무당국은 한때 추진됐던 사회지도층 자제, 운동선수, 연예인 등 ‘사회관심자원’에 대한 병역 중점관리제도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

 

 

 

                                                                                        우리집 강아지

 

삼전도와 연평도

 

병자호란 때 인조는 청 태종에게 세번 큰 절과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궤구고두례를 하며 삼전도에서 항복과 용서를 빌었다. 그 자리에는 ‘대청황제공덕비’, 이른바 삼전도비가 세워졌다. 잠실 롯데월드 석촌호숫가로, 현재 한국의 풍요와 환락을 상징하는 유흥촌이다.

우리의 처지도 그만큼 좋아진 것인가? 삼전도는 지배층의 완고한 이데올로기 집착과 그릇된 정세판단의 산물이다. 그때 동아시아의 격변하는 패권질서에 눈감고 허상의 명분에 집착한 재앙이다. 명과 청의 패권다툼에 속절없이 빨려들어간 참화이다. 그 삼전도가 연평도로 살아나고 있다.

연평도 역시 현재 동아시아 패권질서 격변의 산물이다. 단순히 남북한 관계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이 격돌하는 패권다툼의 최전선이다. 병자호란 때나 지금이나, 조선과 한국은 그 패권다툼에서 비켜서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패권다툼의 마당 구실을 자처하고 있다.

정묘·병자호란 때 화이론과 명에 대한 ‘부모지국’의 ‘재조지은’ 사대관계는 지금의 친미반북주의와 ‘한-미 혈맹’ 관계와 유사하다. 중화를 숭상하고 오랑캐와는 같은 하늘을 질 수 없다는 화이론, 부모의 나라 명이 임진왜란 때 파병해 조선을 거듭나게 한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식자층들의 인식 앞에 조선의 국력, 명의 쇠락과 청의 굴기 등은 결국 아무 의미가 없었다.

조-청 관계는 ‘명의 재조지은을 배반하고 오랑캐와 화친한’ 광해군 타도를 명분으로 내건 인조반정 이후 파탄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이 ‘북한에 퍼주기를 하고, 한-미 동맹을 약화시켰다’며 들어선 이명박 정부 이후 한-북·중관계와 닮은꼴이다. 중국은 이명박 대통령 방중 때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한-미-일 군사동맹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향후 한국과의 관계를 시사했다.

정묘호란으로 명보다는 청과의 관계 구속성이 이미 커졌지만, 조선은 여전히 화이론과 재조지은의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며 사신교환에서 의전문제 등으로 청과 사사건건 알력을 빚었다. 중국과 수교한 이후 한국은 이제 대중 수출액이 대미·대일 수출액을 합친 것보다 많다. 경제에서는 미·일보다 관계 구속력이 더 크다. 천안함 사건 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방중하자, 한국 정부는 중국대사를 불러 공개적으로 항의하는 ‘외교적 대담성’을 보였다. 중국은 당연히 공개적인 강력한 반발로 되받았다.

조-청 관계는 명의 장수 공유덕과 경중명이 청으로 귀순하는 사건으로 파탄났다. 군선을 빌려달라는 청의 요구를 거절하던 조선은 이들을 추격하라는 명의 요구에 순응해 식량과 수군을 제공해 청과 전투까지 벌여, 병자호란으로 치닫는다. 천안함 사건 뒤 한국은 미국의 조지워싱턴 항모를 서해에 초치한 대규모 연합군사훈련을 중국 코밑에서 감행했다. 남북한 관계를 미-중 패권다툼의 마당으로 제공한 계기였다.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 이래 순조롭던 중국 등 북방세력과의 관계는 이제 북·중·러 대 한·미·일의 대립구도로 바뀌었다. 남북한은 미·일 대 중·러라는 남방해양세력 대 북방대륙세력의 첨병 노릇을 한다. 연평도 포격훈련 재개를 놓고 러시아의 유엔 안보리 소집은 이런 구도에 도장을 찍었다. 서해에서 한-중 어로분쟁은 중-일의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을 방불케 하며 중국은 강경자세를 보인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연평도 포격훈련 재개를 놓고 “지금이 주변 강대국에 휘둘리던 (19세기 말) 조선시대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럼 현재 북한과의 전쟁불사론은 병자호란 전야 조정에서 드높던 척화론과 다른 것일까?

“내가 대국에 화호(和好)를 의탁한 지 10년인데 이제 이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은 내가 어둡고 미혹하기 때문에 스스로 천토(天討)를 재촉하여 만백성이 어육이 되게 한 것이니, 죄는 나 한 사람에게 있다.”(‘삼전도비’에서)

청의 강박이기는 했지만, 인조는 절절한 후회를 삼전도비에 남겼다.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이명박 대통령은 어육이 된 국민을 앞에 두고 어떤 비를 남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