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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시대의 흐름

동북아 지역 신냉전

 

 

동북아 지역 신냉전

 

 

 

 

캄차카반도 남단의 쿠릴열도(북방 4개섬), 동중국해 해상의 센카쿠열도, 남중국해의 시사군도와 난사군도….

 

'잠자는 화약고'로 불렸던 동아시아 영토 분쟁이 최근 봇물처럼 동시에 터져 나오고 있다. 아시아 역내의 경제협력ㆍ공동시장 논의에도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G20 서울 정상회의(11~12일)와 요코하마 APEC 정상회담(13~14일)에서도 아시아 역내 국가들의 협조와 협의가 원만하게 이뤄질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미국의 군사ㆍ안보 영향력이 축소된 가운데 과거 '국지전' 양상을 보였던 영토 분쟁은 경제ㆍ외교력을 총동원한 '전면전'으로 확대됐고 21세기 아시아 지역의 패권 향배에도 민감하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000억배럴의 해양석유, 77억t 규모의 천연가스.

5개의 섬과 3개의 암초로 이뤄진 센카쿠열도에 매장돼 있다고 추정되는 지하자원들이다. 중국과 일본이 각각 역사적 근거와 지리적 인접성 등을 앞세워 자국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 이면을 들춰보면 국가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막대한 천연자원이 매장돼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에토로후, 구나시리, 시코탄, 하보마이 등 러시아와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쿠릴열도 4개섬 해저에도 해양석유, 천연가스, 금 등 풍부한 자원이 매장돼 있다. 한류와 난류가 1200㎞에 걸쳐 교차하는 쿠릴열도 일대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수산물 어장 가운데 한 곳이다.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 6개국이 분쟁을 빚고 있는 남중국해에도 해저에 매장된 석유량이 무려 2000억배럴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곳 바다를 특정 국가의 영토로 가정하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전체 석유 매장량과 비슷한 규모를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자국 연안으로부터 200해리까지 지하자원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 주는 '배타적경제수역(EEZ)'의 개념이 새롭게 도입되면서 해양 도서들에 대한 각국의 관심은 한층 더 높아지게 됐다. 독일의 시사주간 슈피겔지는 무려 6개국이 분쟁에 얽힌 남중국해를 비롯해 자원 확보를 위한 아시아의 영토 분쟁이 갈수록 가열되고 있다며 신(新)냉전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지전'에서 '전면전'으로

= 더 심각한 문제는 중국, 러시아 등 과거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가세하면서 영유권 주장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11월 초 1800여 명의 인민해방군 병력과 100여 척의 군함과 잠수함, 항공기 등을 동원해 남중국해의 북단에 위치한 하이난다오 해상에서 대규모 사격훈련을 실시했다.

 

주변국 언론들은 "이번 훈련은 베트남을 비롯한 분쟁 당사국들에 대한 경고일 뿐 아니라 미국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한 일종의 무력시위"라고 해석했다. 이에 앞서 중국은 지난 6월 남중국해 영토 분쟁이 빚어지자 사오관 지역에 전략적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며 본격적인 무력 행사에 돌입했다. 러시아도 지난 6월과 7월 쿠릴열도 에토로후섬에서 1500명의 병력과 전차, 대포 등을 동원해 대규모 해상상륙 훈련을 실시했다.

 

동아시아 국제정세는 냉전체제 붕괴 이후 자국 이익주의가 선행하고 있는 데다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 축소,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 성장, 일본의 영향력 약화, 천연자원의 무기화 등이 맞물리면서 영토 분쟁이 더욱 노골적이고 복잡해진 구도를 띠게 됐다. 특히 중국은 센카쿠열도 분쟁이 빚어지자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는 경제적인 제재 방법까지 동원해 사실상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도 했다. 중국은 6~7일 일본 교토에서 개최되는 APEC 재무장관 회담에 자국의 재정부장(재무장관)을 참석시키지 않는 등 아직도 공식적인 외교회담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국주의가 낳은 역사의 상흔

= 삿포로, 오타루, 왓카나이, 도마코마이…. 일본 홋카이도의 주요 도시들 이름은 대부분 아이누어에서 비롯됐다.

 

남쿠릴열도에 거주했던 아이누족은 2차 대전 직후 옛소련군이 진격해 오자 대부분 홋카이도로 이주했고 대신 러시아인들이 대거 이주해 새 주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2차 대전 막바지인 1945년 8월 8일 구소련이 대일본 선전포고와 함께 이 땅을 점령했고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을 통해 소련의 영유권이 인정됐다.

 

홋카이도와 쿠릴열도를 일본 소수민족인 아이누족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일본으로서는 땅을 치고 억울해할 일이지만 현행 국제법상으로는 러시아에 유리한 구도다.

 

일본은 2월 7일을 '북방영토의 날'로 제정하고 이 문제를 담당하는 별도 장관 직을 신설했을 정도로 옛 영토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동아시아의 영토 분쟁은 이처럼 19세기 말 이후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영토를 뺏고 빼앗기는 피의 역사가 만들어낸 상흔들이다.

 

주인 없는 영토는 먼저 차지하는 나라의 소유라는 이른바 '무주선점(無主先占)'의 제국주의 논리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역사적 당위성을 강조하려는 침략피해 국가들의 논리 공방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고대 신라의 영토로 분명하게 표기돼 있는 독도의 경우 일본이 한ㆍ일합방 의정서를 체결하기 직전인 1905년 시마네현에 강제로 편입시키면서 분쟁 지역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동중국해의 센카쿠열도는 이보다 앞서 1895년 청ㆍ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자국의 영토로 편입했지만 중국은 강제 점령에 따른 실효지배는 원칙적으로 무효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원아시아'를 향한 멀고 먼 길

= 아시아 각국들은 '21세기 아시아 시대'를 기치로 내걸고 유럽연합(EU)과 유사한 형태의 시장ㆍ경제 통합 논의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영토 분쟁이 외교ㆍ군사적 마찰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원아시아' 논의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 영토 분쟁 와중에서 아시아는 '사분오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태평양전쟁의 가해 국가로 일본을 지목하며 공동으로 압박전선을 구축했고 이에 맞서는 일본은 베트남과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과 제휴를 강화하며 영토 방어에 나섰다.

 

여기에 태평양전쟁의 승전국인 미국이 과거의 영토 지분을 앞세워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준동을 경계하는 압박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모리모토 사토시 다쿠쇼쿠대 교수는 "미국이 후텐마 기지의 오키나와 주둔을 밀어붙인 이유도 아시아 역내의 국지전 가능성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최근 잇따른 영토 분쟁 와중에도 "아시아 영유권 분쟁에 역외 국가가 개입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며 미국의 개입을 의식한 발언들을 쏟아냈다.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은 제1차 환율ㆍ무역 분쟁에 이어 아시아 영토 분쟁에서 제2라운드 격돌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11ㆍ2 중간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정권이 대패한 이후 미국의 외교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도 동아시아 영토 분쟁의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도쿄 = 채수환 특파원 / 서울 = 박준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