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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시대의 흐름

'안보 수출'과 글로벌 파워

 

 

 

'안보 수출'과 글로벌 파워

 

다양성의 융합이 힘의 원천
‘거시적 안보’ 개념 절실하다

 


글로벌 파워는 다양한 요구를 충족할 때 가능하다. 미국의 세계 최강 지위는 정치, 경제, 외교, 군사, 과학,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친 1∼2위 능력이 갖다준 결과물이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아인슈타인 등 세계적 두뇌가 미국에 집결하면서 ‘팍스 아메리카’는 시작됐다. 죽은 마이클 잭슨이 연간 3000억원을 벌어들이는 미국의 문화 파워, 세계 시장을 달러로 좌지우지하는 경제 파워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미국 문제는 곧 세계 문제다.

◇조민호 논설위원

한국이 이명박 정부 들어 글로벌 파워를 자주 거론한다. 동아시아 한반도에 머물지 않고 세계 속 한국의 힘을 구상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잘만 하면 시대정신으로 끌어올릴 수도 있는 흥분되는 아이템이다. 잠재력도 충분하다. 가속도가 붙는 정치·사회 선진화, 세계 10위권의 경제력, ‘한류’로 상징되는 문화 파워,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극찬하는 교육 인프라, 놀랄 만한 과학기술적 성과 등이 말해 준다. 미국, 그리고 그에 발 벗고 도전하는 중국만큼은 몰라도 한국은 언젠가 그들이 무시하지 못할 글로벌 리더십을 과시할 것이란 기대감에 뭉클하다.

글로벌 파워의 요체는 다양성의 ‘융합’ ‘통섭’이다. 그 다양성에 몇몇 항목이 빠지면 파워는 반감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경제력이 좋아도 문화의 힘이 떨어지면 승수효과는 난망하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한류만 해도 경제와 문화의 융합에서 나오는 것이다. 동식물은 ‘생물학적 다양성(biodiversity)’이 확보될 때 번식과 생존 능력이 탁월하다. 국가도 다양한 능력을 두루 갖추면서 그것을 통합적으로 엮어낼 때 강한 힘이 나오는 것이다. 세계적 리더십은 ‘다양성 융합’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분단 국가다. 65년간의 분단은 큰 손실일 수도 있지만 역으로 큰 에너지원이 될 수도 있다. 쪼개지고 갈라진 것을 붙이고 통합하는 에너지가 남다르다. 다양성 측면에서 우리는 바로 그 통일·안보 개념을 하나 더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오랜 분단의 고통을 겪은 우리만이 소유한 유무형의 자원이다. 일본도 없는 블루 오션이다.

파병, 군사 교류협력, 무기 판매, 비무장지대(DMZ)의 안보 관광지화 등은 분단과 안보가 안겨주는 자산이다. 아랍에미리트(UAE) 특전사 130명 파병도 같은 범주다. 그것이 정치, 외교, 경제 등과 융합될 때 글로벌 파워는 훨씬 상승할 것이다. 압축하면 ‘안보 컨설팅’ 또는 ‘안보 수출’의 신개념이다. UAE는 우리에게 원자력발전소를 제공하고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안보 상품을 주게 됨으로써 경제, 외교, 군사적 관계가 두터워진다면 협상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미국, 러시아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국력을 키웠다.

                                             

 

 


안보 수출은 1960년대 이후 일부 아랍과 아프리카에서 활동한 북한의 군사고문단과는 차원이 다르다. 북의 고문단은 테러, 정권 안보, 대남 공작 등을 목표한 ‘혁명 수출’이 특징이다. 경제, 외교, 평화 목적의 우리 안보 수출 개념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라크, 아프간 같은 전투지역이나 저강도 분쟁지역 파병과도 구별된다. UAE 사례에서 보듯 발주 국가로서는 패권을 겨냥한 초강국보다는 한국 같은 분단 노하우를 지닌 중견국가(Middle Power)가 매력적이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기회다.

안보란 개념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UAE 파병을 절대 반대한다”고 한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어제 발언이 상징한다.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다. 국민 합의와 국회동의는 기본이고 미국 등 주변 국가의 협조도 필요하다. 군 당국이 이 사업을 독점하듯 해서는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는 사실도 알아 둘 일이다. 글로벌 파워 개념은 단순히 군사 문제가 아니다. 국가 차원의 민·관·군 통합적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갈등은 사라질 것이다.

좁은 한반도에서 북한과만 대적하는 ‘미시적 안보’로 머물기에는 우리의 안보 자산이 너무 아깝다. 컨설팅이든 뭐든 이제는 이데올로기적, 정파적 판단을 넘어 ‘거시적 안보’로 진화시키는 패러다임 전환이 중요하다. 그게 글로벌 파워를 기르는 첫걸음이다. 안보란 말을 낯설고 까칠하게 느낄 것까지는 없다. 접하고 보면 부드러운 말이다.

조민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