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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27 : 고구려 역사 10 (제7대 차대왕) 본문
한국의 역사 27 : 고구려 역사 10 (제7대 차대왕 )
제7대 차대왕
차대왕(次大王, 71년~165년, 재위 146년~165년)은 고구려의 제7대 군주이다. 휘는 수성(遂成)이다. 태조대왕(太祖大王)의 동생으로, 태조대왕 때에는 장군으로 활약하고 국정을 대신 살폈다.
146년 선양을 받아 76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폭정으로 인해 명림답부(明臨荅夫)에게 살해되었다.
기원전 37년 ~ 668년 | |
---|---|
476년 고구려 전성기 때의 지도 | |
공용어 | 고대 한국어 |
수도 | 졸본 (기원전 37년 ~ 3년) 국내성 (3년 ~ 427년) 평양성 (427년 ~ 668년) |
정치체제 | 군주제 |
인구 최대치 668년 |
69만호 (약 3,500,000명) |
성립 | 기원전 37년 |
멸망 | 668년 |
초대 군주 | 동명성왕 기원전 37년 ~ 기원전 18년 |
최후 군주 | 보장왕 642년 ~ 668년 |
성립 이전 | 부여 |
해체 이후 | 발해, 신라 |
즉위 이전
태조대왕 치세 후반부터 장군으로 활약하였다. 121년 후한(後漢)의 침입에 대항하여 출전한 수성은 거짓 항복으로 적군을 속여 안심하게 하고 험한 곳을 차지하고 막았으며 몰래 현도(玄菟)·요동(遼東)을 공격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이 해부터 태조대왕을 대신하여 국정과 군사를 통괄하였으며 132년부터 차기 왕위를 넘보는 언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146년, 수성은 측근들의 부추김을 받아 쿠데타를 모의하였으나 실행하기 전에 태조대왕이 먼저 선위하고 물러났다.
치세
147년 차대왕은 자신의 왕위 계승을 반대한 우보(右輔)고복장(高福章)을 처형하였으며 좌보 목도루(穆度婁)도 은퇴하였다. 이에 차대왕은 국가의 주요 요직에 자신의 측근을 임명하였다.
148년에는 태조왕의 맏아들 고막근(高莫勤)을 죽였으며 둘째아들 고막덕(高莫德)은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자살하였다.
165년에 연나부(椽那部) 조의(皂衣) 명림답부에게 살해되었다.
가족 관계
- 태조왕 : 차대왕의 형으로 전해지지만, 《후한서》에는 차대왕의 아버지로 기록되어 있다.
- 고추안 :(高鄒安. ? ~ ?) : 차대왕의 아들이다. 명림답부에 의해 차대왕이 살해되고 신대왕이 왕위에 오르자, 궁궐을 빠져나가 몸을 숨겼다. 신대왕이 즉위 후, 대사면령을 내리자 신대왕을 찾아가 살려줄 것을 청하였다. 이에 신대왕은 그를 사면하고, 양국군에 봉했다. 그 이후 삶은 전해지지 않는다.
동시대 백제, 신라
고구려 왕 계보도 (삼국사기에 의거)
해모수═╤═유화부인(하백의 딸)
│
소서노═╤═ 1.추모(BC37~BC19)═╤═예씨부인
│ │
┌┴┐ 2.유리명왕(BC19~AD18)═╤═송양왕의 딸
비류 온조 │
┌─┬─────┬────---┬────-┼─────------┐
도절 해명 3.대무신왕(무휼) 여진 4.민중왕(해색주) 재사═╤═부여태후
(AD 18~ 44) (44~48) │
갈사국왕녀═╣ ╠═ 원비 ┌──────┼─────---┐
호동 5.모본왕(해우). 6.태조왕(궁) 7.차대왕(수성) 8.신대왕(백고)
(48~53) (53~146) (146~165) (165 ~ 179)
┌┴┐ │ │
막덕 막근 추안 ㅣ
┌────────---┬───────────┬─────────────┴┐
9.고국천왕(이이모) 발기 ╔═10.산상왕(연우)╤후녀(주통부인) 계수
(179~197)║ ║ (197~227) │
╚ 우씨왕후(우소의 딸)═══=====╝ 11.동천왕(교체)(227~248)
┌────────────────────--┼──┐
관나부인(장발미녀)══12.중천왕(연불)(248~270) ═╤═연씨왕후 예물 사구
│
┌───────┬───────────────------┴───┬──┬──l
(??) 13.서천왕(약로)(270~292) ═╤═우씨왕후(우수의 딸) 달가 일우 소발 공주(?)══명림홀도
┌──────────--┴───-─┐ (부마도위)
14.봉상왕(상부)(292~300) 돌고
┌┴┐ │
(?) (?) 15.미천왕(을불)(300~331)
├───────────┐
16.고국원왕(사유)(331~371) 무
┌────────┴────┐
17.소수림왕(구부)(371~384) 18.고국양왕(이련)(384~391)
│
19.광개토대왕(담덕)(391~413)
│
20.장수왕(거련)(413~491)
├──────┐
조다 승천
│
21. 문자왕(나운)(491~519)
┌──────────────────┴─────┐
22.안장왕(흥안)(518~531)══한씨미녀 23.안원왕(보연)(531~545)
│
24.양원왕(평성)(545~559)
│
25.평원왕(양성)(559~590)
┌────────────┼───────────┬──┐
26.영양왕(원)(590~618) 27.영류왕(건무)(618~642) 태양 평강공주═온달
│ │ (부마도위)
환권 28.보장왕(보장)(642~668)
┌──┬──┼──┬──┐
복남 임무 덕남 덕무 안승
자살,타살 등 일찍 죽은 왕자 타살된 왕, ══ 부부관계 |
.왕족인 고추가(古鄒加) 재사(再思)는 2대 유리왕의 아들이자, 6대 태조왕의 생부입니다.
.왕족인 고추가(古鄒加) 돌고(固, ?~293)는 13대 서천왕의 차남으로 형인 14대 봉상왕에 의해 죽음을 당합니다. 15대 미천왕의 생부입니다.
. 장수왕의 아들인 조다(助多)는 생부인 20대 장수왕이 413~491년 오래 재위하는 바람에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먼저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이 21대 문자왕(文咨王/?~519)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제7대 차대왕 실록(71년~165년, 재위 서기 146년 12월-165년 10월, 18년 3개월)
폭군 차대왕의 즉위와 피의 숙청
태조를 몰아내고 차대왕이 왕위에 오르자 고구려 조정은 피바람에 휩싸인다. 차대왕은 즉위하자 측근들을 요직에 배치하고 반대세력을 제거하는 한편, 걸림돌이 되는 왕족들을 가차없이 죽였다. 이로인해 조정은 혼란에 휩싸이고, 피의 숙청으로 권력을 독차지한 차대왕은 폭정을 계속한다.
차대왕은 유리명왕의 여섯째 아들 재사의 차남이며, 태조의 동복 아우로 태조 초기에 수렴청정을 했던 태후 해씨 소생이다. 서기 71년에 태어났으며, 이름은 수성이다. 친형 태조의 총애를 받아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서기 121년부터는 국정을 도맡았다. 이후 권력을 독식하며 왕위 찬탈을 꿈꾸다가 서기 146년 12월 태조를 압박하여 상왕으로 물러앉히고 고구려 제7대 왕에 올랐다. 그 때 그의 나이 76세였다.
왕위에 오른 차대왕은 즉위 2개월 만인 2월에 우선 자신의 최측근인 관나부 우태 미유의 작위를 패자로 격상시킨 후 좌보에 임명하였으며, 3월에는 정적 고복장을 사형에 처했다. 고복장이 죽자 좌보로 있던 목도루는 병을 핑계삼아 퇴직을 자청한다. 차대왕은 목도루가 존경받던 신하지만 퇴직을 청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측근인 환나부 우태 어지류의 직위를 대부부로 격상시켜 좌보로 임명하였다. 또 자신의 왕위 찬탈에 큰 역활을 한 비류나부의 양신을 조의에서 우태로 작위를 격상시켜 중외대부에 재수했다. 이렇게 하여 조정은 차대왕의 측근들로 채워졌다.
이렇게 자신의 독재체제를 구축한 차대왕은 서기 148년 3월에는 태조왕의 근신들이 끓임없이 역모를 도모할 것으로 간주하고 자신의 조카이자 태조왕의 맏아들인 막근태자를 죽인다. 이 소식을 들은 태조왕의 둘째 아들 막덕은 스스로 목숨을 끓는다.
차대왕의 폭정은 날로 심해졌으며, 그의 향락으로 인해 백성은 굶주림과 학정에 고통받고 간신들은 부패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같은 폭정이 계속되던 서기 165년 3월, 차대왕의 폭정에 두 아들이 무참하게 죽는 것을 보면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분노와 노기로 가득찬 세월을 별궁에서 보내던 태조왕은 결국 119세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그해 10월 드디어 차대왕의 폭정도 종말을 고한다. 연나부 조의 명림답부가 주동이 되어 정변을 일으켜 차대왕을 시해했다. 이 정변에는 차대왕의 측근들도 가담하였는데, 차대왕의 폭정이 얼마나 극악하였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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