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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7 : 시대별 개관 6 (대한민국/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

두바퀴인생 2010. 9. 10. 15:49

 

한국의 역사 7 : 시대별 개관 6 (대한민국/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

 

대한민국

 
현대의 서울.

 

 

한국은 태평양 전쟁에서의 연합군의 승리와 한민족의 지속적인 독립운동의 영향으로 1945년 8월광복을 맞이하였다. 광복 직후 한반도내에는 건국준비위원회등이 치안과 행정권을 담당하여 혼란한 해방정국 상황을 일시적으로 수습하였으나, 9월 한반도 분할 정책과 포고령으로 불인정 되었고, 곧이어 한반도에는 군정기를 맞게 된다. 군정기 기간동안 좌∙우익 세력의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었고, 좌우합작운동등 추진되었으나 구심점을 잃게되었다. 트루먼 독트린이 계기가 되어 냉전이 시작되고, 계속되는 좌,우익 세력의 대립으로 인해 남북 각각 단독정부 수립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남북이 분단되어 통일 국가를 세우지 못하였다. 특히, 1950년 6∙25 전쟁을 겪으면서 수백만의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하였고, 분단은 더욱 고착화되고 기반시설은 대부분 초토화되어 남북한 사이간의 상호 불신이 더욱 깊어 갔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참상과 깊은 후유증속에, 1950년대에는 미국으로부터 경제 원조받는등 삼백산업의 발달로 전쟁의 참혹한 폐허의 상처를 딛고 복구해나아갔다. 1960년대 이후에는 경공업 및 경제개발계획등 유례없는 고속 성장을 이룩하며, 1970년대들어서 중화학공업에 육성에 크게 기울이며 북조선의 경제 수준을 추월하는등 크게 발전해나아갔고, 1980년대에는 '3저 호황'으로 경제안정기를 맞아 첨단산업 발달하였다. 1990년대말에 IMF로 경제위기난을 겪기도 하였지만, IMF난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변모하였다. 광복 후에 대한민국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경제 발전을 이룩하였는데, 이는 커다란 사회 변화를 가져왔다. 농업 사회에서 공업 사회로, 다시 정보화 사회로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가치관도 많이 변하였다.

또한, 4∙19 혁명5∙18 광주 민주화 운동, 6월 항쟁 등 수많은 민주화 운동으로 부패한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권위주의적 정치 문화가 점차 극복되었으며, 사회의 민주화도 꾸준히 이루어져 가고있다.

 

광복 이후에는 학문 활동이 활발해지고 넓어지면서,교육의 기회가 크게 확대되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서구 문화가 급속하게 유입되면서 가치관의 혼란과 전통문화의 위축 현상을 가져오기도 하였다는점이 있다. 오늘날 민주화와 더불어 문화의 다양화가 촉진되고, 반도체 등 몇몇 과학 기술 분야는 세계적인 수준까지 도달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945년 8월광복을 맞이함과 동시에, 한반도 분할 점령과 한국내 공산주의 세력과 민족주의 세력간의 갈등이 깊어져 갔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는 소련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이 집권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김일성의 공산주의 계열은 조만식을 주축으로 한 민족주의계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했다. 이어서 북조선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토지 및 주요 산업을 국유화 시켰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수립되자 같은 해 9월 4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조선)정부를 수립하였다. 그후 한국 전쟁을 일으켰고, 격렬한 전쟁 속에 1953년 휴전함으로써 이후 분단은 더욱 고착화되었고, 남북한 모두 기반시설은 대부분 초토화되어 서로간의 상호 불신이 깊어져만 갔다.

 

한국전쟁 이후, 김일성은 일당 독재체제를 구축하고자 내부에 대대적인 숙청을 가했다. 김일성은 남로당계에게 전쟁의 패한 책임을 물린다는 명목으로 전쟁 직후 숙청하였다. 소련파, 연안파는 김일성의 독주를 견제를 시도하다 8월 종파사건으로 축청되었고, 갑산파의 대대적인 숙청 등으로 권력을 장악하였고, 5개년 경제계획, 천리마 운동, 모든 농지의 협동농장화 등을 단행하였다. 1972년에는 남한의 유신 체제와 함께 주체사상을 헌법에 명문화하여 김일성 유일 독재체제로 가게 되었다.

 

1980년대에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의 후계 체제가 공식화되면서, 1990년대 김일성의 사후 김정일 중심 체제로 유훈통치가 강화되어 갔다. 1992년 헌법 개정을 통해서 주석의 권한을 축소하는 대신, 군사 관련 기능 및 권한을 국방위원회로 통합하여 김정일 체제가 별다른 파벌 분쟁없이 공고해져 갔다. 그리고 1998년 헌법 개정을 한번 더 하면서 주석제가 폐지되고, 국방위원장의 권한이 강화되어 김정일의 유일체제가 완전히 확립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생산력 저하,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몰락으로 인하여 교역 상대국이 상실되었고, 에너지와 원자재, 식량 등의 자원에서 심각한 부족을 겪게 되며, 1990년대 이후 들어서는 매년 마이너스 성장율을 보이고 있다. 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에서는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고자 1984년합영법 제정, 1994년에는 신합영법 개정을 통하여 일부지역에 한해 자유무역지대를 설치하고 '제한적 개방'을 표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