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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6 : 시대별 개관 5 (일제강점기) 본문
한국의 역사 6 : 시대별 개관 5(일제 강점기)
시대별 개관 5 : 일제 강점기
한국의 역사 (연표)
구석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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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묘청의 서경천도운동
・ 삼별초의 항쟁
・ 홍건적의 고려 침공
조선
・ 역대국왕 / 조선왕조실록
・ 임진왜란 / 병자·정묘호란
・ 경복궁·창덕궁·종묘·화성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대한민국임시정부
군정기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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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 삼별초의 항쟁
・ 홍건적의 고려 침공
・ 임진왜란 / 병자·정묘호란
・ 경복궁·창덕궁·종묘·화성
대한민국임시정부
인민공화국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는 일본 제국(이하 일제)이 한반도를 강제적으로 점령하여 식민지로 삼은 시기로서, 제1기인 무단 통치 시기, 제2기인 민족 분열 통치 시기(소위 문화통치), 제3기인 민족 말살 통치 시기로 나뉜다.
1910년대
1910년대는 일제가 조선 총독부를 설치하고, 군대를 파견하여 의병 활동을 억누르고 국내의 저항 세력을 무단으로 통치한 시기이다. 언론, 집회, 출판, 결사의 자유 등의 기본권을 박탈하고, 독립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또, 헌병 경찰과 헌병 보조원을 전국에 배치하고 즉결 처분권을 부여하여 한국인을 태형에 처하기도 했다.
토지조사사업을 공포하여 식민지 수탈을 시작하였고, 회사령을 공포하여 국내의 자본 세력을 억압하고 일본 자본 세력의 편의를 봐주었다. 이 시기의 한국인 노동자는 극악한 환경과 저임금, 민족적 차별까지 받으며 혹사되었다.
또 산림령, 광업령, 어업령을 공포하여 민족자원약탈을 적극적으로 수탈하였다.
한편 한일합병으로 국내에서 민족 해방 운동이 어렵게 되자 민족 해방 운동가들은 국내에서는 비밀결사형태로 조직되었다. 근대 때부터 존재해왔던 대표적 비밀결사 항일 운동 단체인 신민회는 안악 사건과 105인 사건을 계기로 해체되고 말았다.
해외에서는 만주와 연해주. 미주 지역 등에서 민족 해방 운동의 근거지를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았다. 특히 만주와 연해주 일대는 토지조사사업을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이 많이 이주하여, 간도 일대에 한인촌, 연해주 일대에 신한촌 등을 형성하여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큰 도움이 되었다.
1920년대
일제의 탄압에 핍박받던 한국인들은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전개된 세계적인 민족해방운동의 조류에 편승하여 1919년 대규모 민족해방운동인 3·1 운동을 전개했다.
3·1 운동이 발발하자 일제는 무단통치로는 조선을 효과적으로 지배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친일파를 육성하기 위한, 이른바 '문화통치'을 시행했다. 이 문화통치는 가혹한 식민 통치를 은폐하려는 술책에 불과했다. 헌병 경찰제를 보통 경찰제로 전환하였지만, 경찰의 수와 장비는 오히려 증강되고, 독립운동가를 색출하기위한 '고등경찰제'를 도입하여, 일제의 행태는 더욱 악랄해졌다.
그리고 일제는 무단통치시기에 금지되었던 언론`출판의 자유를 일부 허용하여 신문 발행을 허가하였다. 그러나 신문에 대한 검열을 통해 삭제, 정간, 폐간을 자행하였다. 또한 결사의 자유를 일부 허용하여 단체의 설립을 일부 인정하였으나, 1925년 치안유지법을 제정하여 조선인을 기만하였다.
또 조선인의 교육의 기회를 늘리겠다고 선전하였다. 그러나 식민지 노동력 양성을 위한 산학과 같은 초급 학문이나 기술 교육만을 허용하였고, 민립 대학 설립을 위한 운동도 탄압하였다.
즉, 일제는 조선인을 기만하고 식민통치를 은폐하려는 목적으로, 민족의 분열과 이간을 조장하였다. 결국, 실력양성운동을 주장하던 민족주의세력 내에서 자치론자가 등장하여, 일제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한편 해외에서는 3·1운동에서 드러난 조선 민족의 독립의지를 담아 1919년 4월 중국의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내부의 독립운동 방법론 차이에 따른 분열과 일제의 방해 공작으로 인해 임시정부 주도의 독립 운동은 한동안 그 세력이 약화되었다. 또한 간도와 만주 연해주의 조선 동포들을 기반으로 조직된 항일무장단체들은 3·1운동을 계기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중심으로 한 국경 지방에서 격렬한 무장투쟁을 벌였다. 특히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군은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물리쳤다.
국내에는 천마산대, 구월산대 등의 유격활동을 하는 게릴라부대 등이 존재하였다. 특히 천마산대는 임시정부와 국내를 연결하는 역할도 하였다.
국내에서는 천도교 계열과 사회주의자의 연대가 계기가 된 6·10 만세 사건(1926년)과, 해외에서의 불어온 좌우합작의 분위기로 인해 국내에서도 민족유일당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때에 만들어진 것이 일제강점기의 가장 큰 민족단체였던 신간회이다. 신간회는 자치운동을 주장하는 세력과 결별한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자 계열이 모여 만든 좌우합작단체인데, 국내의 많은 대중운동을 주도해 나갔다. 3·1 운동 이후 가장 큰 항일 운동이었던 광주학생운동(1929년)에도 신간회는 진상조사단을 파견하고, 노동운동이 항일운동으로 변화되는 성격을 지닌 원산 노동자 총파업도 지원하였다. 특히 신간회는 많은 사회 대중운동을 주도해 나갔는데, 대표적인 여성 단체였던 근우회를 자매단체로 두기도 하였고, 형평 운동이나 청년 운동 등 많은 대중 운동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국내외에서 일본요인의 암살, 파괴활동을 적극적으로 펴나가는 김원봉이 주도하는 의열단 투쟁도 활발하였다.
1930년대와 1940년대
1920년대 대공황에 시달리던 일제는 그 타개책으로 식민지 확보를 통한 블록경제를 선택하였다. 그에 따라 1930년대 일제는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대륙침략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한반도를 대륙 침략의 병참기지로 삼았다. 또한, 1941년 일제가 미국의 진주만을 선전 포고도 없이 불법적으로 기습함으로써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였다.
조선에서는 일제의 강제 징용으로 이른바 국가총동원령을 내려, 한국인 노동력이 착취되었고, 학도 지원병, 징병제 등을 실시하여 수많은 젊은이를 전쟁에 동원하였다. 또, 젊은 여성을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강제 동원하여 군수 공장 등에서 혹사시켰으며, 그 중 일부는 전선으로 끌고 가 일본군 위안부의 명목아래 성노예로 삼는 만행을 저질렀다.
한편 침체되었던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독립 활동은 김구를 중심으로 한인 애국단의 활약으로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애국단의 일원이었던 이봉창, 윤봉길의 의거로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도 끌어내 후에 중일전쟁 이후에 창설된 한국 광복군의 발판이 될 수 있었다.
30년대의 독립 운동의 중심점은 김원봉과 김규식이 주도하는 조선민족혁명당이었다. 이후 김원봉과 김규식, 그리고 민족혁명당 산하의 조선의용대 일부 세력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합류하였다.
만주지역에 자유시 참변과 미쓰야 협정으로 사실상 중단된 무장 독립 투쟁 노선도 1930년대 초반부터 한중연합작전을 전개해 다시 재개되었다. 그러나 만주침략이 본격화 된, 만주국 수립 이후에는 만주에서의 무장 투쟁이 힘들어지자, 지청천과 같은 혁신의회 계열의 한국독립군 인사들은 임정의 요청을 받고 중국 관내로 이동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같은 여건 속에서도 만주에서는 한중연합작전을 넘어선 한중연합부대인 동북항일연군을 조직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중일 전쟁 이후 중국 관내에서는 많은 항일 무장 부대가 편성되기 시작하였다. 김원봉과 김규식, 지청천, 조소앙이 주도하는 조선민족혁명당 산하의 조선의용대와, 임시정부의 한국 광복군, 김두봉 등이 주도한 조선독립동맹 산하의 조선의용군 등이 대표적이다. 조선민족혁명당의 주도 인사들이 충칭의 임시정부로 합류하자, 당 산하의 조선의용대의 다수의 세력은 화북으로 이동하여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로 개편하였다. 그후 화북지대는 조선의용군으로 개편하고 독립동맹의 산하 군조직으로 편성되었다.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9일, 연합군에 가담해 일본과 독일에 대해 선전포고를 발표하고 한국 광복군을 연합군과 연합작전을 시행하였다. 미얀마와 인도 일대에서는 영국군의 지원요청으로 주로 심리전 역할을 담당하였고, 미국의 OSS 전략사무국과 함께 정진군을 편성하여 국내진공작전을 준비하였으니, 도중에 일본이 항복하여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일제강점기는 제국주의 일본이 연합군에게 패망함으로써 1945년 8월 15일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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