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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마음의 평안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달리면서...6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달리면서...6

 

 

한강

한강 (漢江)
Seoul-Han.River-01.jpg
서울의 한강
국가 대한민국의 국기 대한민국
유역 대한민국 북부
길이 514 km
유역 면적 34397 km²
수원지 강원도, 태백시, 검룡소
하구 황해

 

한강(漢江)은 강원도 태백시검룡소에서 발원하여 황해로 흘러가는 강이다. 한반도 중부를 가로지르는 강으로 한반도를 흐르는 강들 중에서 가장 넓은 유역 면적을 가지고 있다. 고어로는 아리물(또는 아리수, 아리가람)이라고도 부르며, 발원지부터 동대천과의 합류지점까지의 구간은 조양강, 동대천과의 합류지점부터 평창강과의 합류지점까지의 구간은 동강, 평창강과의 합류지점부터 양수리까지의 구간은 남한강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길이 514킬로미터, 유역면적 34,397평방킬로미터이다. 서울에서 한강의 북쪽도로는 강변북로, 남쪽은 올림픽대로가 있다. 한강은 6호선, 8호선, 9호선, 분당선 (2010년에 한강을 통과하는 하저터널 건설), 인천국제공항철도, 인천 메트로 1호선을 제외한 모든 수도권 지하철 노선들이 교각 (1호선 (용산역~노량진역), 2호선 (강변역~성내역, 당산역~합정역), 3호선 (옥수역~압구정역), 4호선 (이촌역~동작역), 7호선 (뚝섬유원지역~청담역) 또는 하저터널 (5호선 (여의나루역~마포역, 광나루역~천호역)이 유일)을 통해 관통한다.

한강의 역사

암사동 선사유적지

 

구석기 시대부터 한강 유역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포전리 점말 동굴과 단양군 애곡리 수양개 선사유적지가 한강의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이다. 신석기 시대에는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을축년 대홍수 때 서울특별시 송파구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 신석기 유적이 발견되었다.

 

청동기 시대를 지나 철기시대에는 백제국을 비롯한 마한의 몇몇 소국이 한강에 자리를 잡았고, 그 중 하남 위례성에 도읍한 백제가 한강 일대를 통일하고 전성기를 맞았고, 이후에는 고구려가 한강을 점령하고 전성기를 맞는다. 진흥왕 때에 신라는 한강을 점령하고 전성기를 맞은 후에 백제와 고구려의 일부를 통일한다. 이처럼 한강 유역을 소유하면 나라가 번영했다는 것에서 한강은 한반도에서 지리, 인구, 외교 등에서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의 행정 구역

 

삼국시대 초기에는 한강을 한반도를 띠처럼 둘렀다는 뜻으로 대수라 불렀다. 그리고 고구려는 한강을 아리수, 백제욱리하라 했고, 동진과 교역하기 시작한 후에는 한수라 불렀다. 신라는 한강의 상류를 이하, 하류를 왕봉하라 하였다. 현재의 서울 일대는 고구려가 한산군이라 하였으나, 신라의 점령 이후에는 한주, 신주, 한산주, 남천주 등으로 부르며 군주, 도독을 두고 다스렸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이때 한강을 한산하, 북독이라고 했다.

 

고려시대에는 한강 유역 대부분을 양광도가, 그리고 북한강 유역은 교주도가 관활했고, 지방 3경 중 하나인 남경12목 중 광주목, 충주목, 청주목이 있었다. 당시 한강은 물줄기가 맑게 뻗어 내린다하여 열수라 했고, 모래가 많아 사평도, 사리진이라고도 불렀다.

 

고려가 멸망하고 건국된 조선은 한강 유역의 한양에 도읍을 정했다. 한양으로 천도한 이유는 한강의 수운 조건과 풍수지리설의 영향 그리고 정치적 배경으로 인한 것으로, 당시에 한강이 교통이 편리하고 지리적으로도 좋은 위치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양의 경창은 조세로 징수한 미곡과 포백을 운송하는 조운제도의 중심이 되었고 9개의 조창 중에서 충주의 가흥창, 원주의 흥원창, 춘천의 소양강창으로 총 3개소가 한강 중류와 상류에 위치했다. 한양 근처의 한강은 경강이라 했는데 조운을 통해 경강에 많은 상인이 모이며 하나의 경제권이 형성되었다. 이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서울 강(Seoul river)이라는 표현이 외국 문헌에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한강 곳곳에 을 설치하고 수비하게 하였다.

 

 

한강철교와 한강대교

 

 

조선 말에는 프랑스미국이 한강과 강화도에 침입했고, 개항을 한 후에는 증기선이 한강에서 운항하기도 하였다. 1900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철교인 한강철교가 완공되었고, 1916년에는 최초의 인도교가 가설되었다. 1912년, 1920년, 1925년에는 큰 홍수가 났었는데, 특히 1925년의 을축년 대홍수로 인해 한강 유역이 수몰되는 등의 큰 피해를 입었다.

 

광복 후에는 6.25 사변한강철교인도교가 파괴되었고, 이후 다시 재건되었다. 1970년에는 잠실지역의 하중도를 육지로 만드는 공사가 시작되어 육지와 연결됐고, 잠실지역이 개발되었다. 이 과정에서 남류하던 흐름을 끊으면서 하적호석촌호수가 생겨났다.[7]


근대화, 산업화로 당시 한강의 수질은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이에 한강종합개발사업을 통해 공원을 조성하고 올림픽대로가 만들어지고 수질을 개선시켰다. 이후 수위 유지를 위한 수중보가 잠실동신곡동에 건설되었다.

 

2007년에 서울시는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한강에서 수상택시 운영이 이뤄지고 있고, 공원 조성사업으로 한강공원의 개발사업 등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 정부는 한강에서 경인운하, 한반도 대운하 등을 건설하여 수운을 이용한 교통체계를 마련하려고 하나 효율성 등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10]


 

한강의 발원지

물줄기 가운데 강의 하류부터 가장 먼 곳을 발원지라 하는데, 옛 문헌에 의하면 한강의 발헌지는 오대산 우통수라는 샘이다. 조선총독부에서는 9년 동안 실측한 결과 발원지는 삼척군 하장면이고 그 길이는 514.4km라고 발표했다.하지만 이 실측은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고 현대에 새로 계측한 결과에 따르면,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금대봉검룡소가 발원지로 밝혀졌다. 발원지부터 하류까지의 길이는 497,5km이다.


 

한강이라는 이름

현재의 한강이라는 이름은 백제가 중국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중국식으로 한수(漢水)라 한 것이 한강으로 변한 것이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그 외에도 우리말 한가람에서 비롯되었는데, '한'은 크다는 뜻이고 '가람'은 크고 넓은 강을 의미하는 고어였다는 주장도 있다.

 

한강의 이름은 그 지역에 따라 다른 경우가 많은데, 송파부근의 한강을 삼전도라 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한강을 부르는 이름은 모든 지류를 통틀어 말하거나 양수리와 한강 하구 사이의 한강 본류를 일컫는 경우가 많다.

 

한강에 대한 기록이 있는 문헌은 삼국사기, 동국여지승람, 연려실기술, 세종실록지리지, 고려사지리지, 팔도지리지, 택리지 등이다.

 

한강의 지형과 지질

한강 유역의 지형

 

 

한강 유역은 주로 산계가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향하고 있으며, 해발 300m에서 500m 사이 높이의 산들이 주로 분포한 저산성 구릉지에 속한다. 한강의 지류들은 보통 수지상 하계망을 이루지만 가평, 춘천 등지의 경춘가도 부근 등에는 단층에 의한 직각상 하계망이 발달해 있다.

 

한강 유역의 대부분은 경기 육괴 지역에 속하며, 남한강 일부는 옥천지향사대에 속한다. 화성활동으로 북한산부터 철원 사이의 광주산맥 부근과 관악산에는 화강암 저반이 발달하였다. 양수리부터 하류 사이의 서울 지역은 연천계 편암편마암 그리고 중생대 말기의 불국사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강 남쪽에서부터 동북 쪽으로는 준편마암류와 편암류의 암석이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남한강을 비롯한 차령산맥 부근은 화강암이 발달했는데, 불국사 화강암과 함께 쥐라기대보화강암이 옥천지향사대를 중심으로 널리 퍼져있다.

 

충적층은 한강의 상류에서 평균 5.29m, 중류에서 5.97m, 하류에서 6.95m의 두께로 나타났다.

 

한강의 지류

한강에는 다른 곳에서 온 많은 하천들이 합쳐져 흘러 들어온다. 북한강경기도 양평군의 양수리에서 한강(남한강)과 합쳐지게 된다. 한강의 주요 지류는 다음과 같다.

발원지~양수리까지의 구간

양수리 이후의 구간

경기도 동부 합류
서울특별시 합류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
경기도 서부 합류
임진강

* 국가하천으로 지정된 지류

양수리 이후 구간의 다리

지금까지 한강을 가로지르는 여러 다리가 건설되었다. 하류에서 상류 순으로 다음과 같다. 현재까지 한강의 양수리 이후 구간에 있는 다리는 모두 27개이다. 대부분이 자정, 또는 오전 1시까지 야간 조명을 밝힌다.

 

 

양화대교
당산철교
반포대교와 잠수교

한강을 가로지르는 횡단 교량이 아닌 강변을 통과하는 종단 교량이 있다.

여의도 남단을 통과하는 한강의 샛강에는 세 개의 다리가 있다.(강 상류~하류 순으로 나열)

강 내부의 하중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가 있다.

한강시민공원

한강을 옛날과 같이 깨끗한 강으로 되살리자는 목표로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서울지역 41.5km의 구간(하일동-개화동)을 살아있는 강으로 변화시킨 공원이다. 아울러 강변에 시민 휴식공원과 축구장, 배구장, 농구장, 수영장 등 각종 체육시설과 수상스키장, 요트장, 보트장, 낚시터, 주차장 등을 갖추어 시민들의 오락·휴양지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사진

한강의 파노라마 사진

 

 

 

 동호대교(東湖大橋)

 

 

동호대교

 

동호대교(東湖大橋)는 서울특별시 성동구 옥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1980년 6월 착공하여 1985년 2월 2일 준공되었다. 한강에서 15번째로 만들어진 다리이다. 약 1.2km이다. 서울 지하철 3호선옥수역압구정역을 연결해주는 철교 역할도 하고 있다. 다만, 강변북로에서 어느 방향이라도 동호대교를 타거나 이 대교에서 강변북로 도로로 갈아탈 수는 없다.

 

 

                                                                                                 동호대교 

 

 

옥수동

서울특별시 성동구
옥수동(玉水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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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1.9km²
세대 가구 ()
인구 3만 2339명 (2001)
법정동
행정동 옥수동
법정리
행정리
읍사무소
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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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사무소
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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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민센터
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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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옥수동

옥수동(玉水洞)은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있는 동이다. 북쪽으로는 중구 신당동, 동쪽으로는 금호동3가와 금호동4가가 접해있고, 남쪽으로는 한강과 접해있으며, 서쪽으로는 용산구 한남동과 접해있다. 2001년 기준 면적은 1.95㎢, 인구는 3만 2339명이다.

 

마을에 옥정수(玉井水)라는 유명한 우물이 있어 옥정숫골이라고 부르다가, 옥수동이 되었다. 현재 옥정수는 옥수로를 개통하면서 매몰되었다.

역사

  • 조선시대, 두뭇개, 두멧개, 두물개 또는 한자음으로 두모주(豆毛洲), 두모포(豆毛浦)라고 불리움
  • 1751년, 한성부 남부 두모방(성외) 두모포계에 속하게 됨
  • 1894년, 갑오개혁 당시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남서(南署) 두모방(성외) 두모포계의 두모동이 됨
  • 1911년, 경기도령 제 3호에 의해 경성부 두모면 두모리가 됨
  • 1914년 4월 1일, 경기도고시 제 7호에 의하여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두모리로 소속 변경
  • 1936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 8호에 의해 경성부에 편입, 옥수정(町)으로 명칭 변경
  • 1943년 4월, 조선총독부령 제 163호에 의해 구(區)제도 실시에 따라 성동구역소 관할로 편입 [1]
  • 1946년, 일제잔재 청산에 따라 옥수동으로 명칭 변경
  • 1955년 4월 1일, 금호동을 흡수하여 금옥동으로 통폐합
  • 1959년 11월 1일, 행정구역 변경에 의하여 금북동, 금남동, 옥수동으로 나뉨
  • 1975년 대통령령 제 7816호에 의해 옥수동 일부가 한남동으로 편입
  • 2008년 8월 11일,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하여 옥수1동과 옥수2동이 옥수동으로 통합
  • 도로

동 동남부를 동호로가 지나며, 동호대교를 통해서 논현로로 연결된다. 독서당길한림말길이 동 내부를 동서로 관통하며, 두무개길이 한강을 따라 나있다.

  • 대중교통

독서당길을 지나는 버스들을 통해 서울 각지로 이동할 수 있으나, 동호대교를 건너 압구정동 방면으로 가는 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금호역 인근으로 가야한다. 철도교통의 경우 한강을 따라 동 남부를 경원선이, 동호로를 따라 서울 지하철 3호선이 지나가며, 옥수역을 통해서 두 노선의 이용이 가능하다.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으나, 888년(신라 진성여왕 2년)에 창건된 미타사(彌陀寺)라는 고찰이 있다.

주요 시설

  • 관공서
    • 서울특별시중부수도사업소
    • 옥수치안센터
  • 공공시설
    • 구립응산경로당(매봉경로당)
    • 옥수동우편취급국
    • 옥수종합복지센터

 

 

 

 

 

 

 

 

 

압구정동(狎鷗亭洞)

압구정동은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법정동이다. 동 전체가 아파트 단지로 이루어져 있다. 서쪽 1/3은 행정동 신사동에 속해있으며, 동쪽 2/3는 행정동 압구정동에 속해있다.

  • 면적 : 2.53㎢
  • 인구 : 2001년 기준 33,036명의 주민이 거주중
  • 인구밀도 : 13,058명/㎢

압구정동은 조선 세조한명회의 압구정이라는 정자가 있었기 때문에 불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당시 압구정동의 자연부락은 뒤주나, 먼오금, 옥골, 정자말 등이 있으며, 일제 강점기 당시 배나무 밭이 존재할 뿐 아니라 과수원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다가 현재는 도시개발에 의해 서울특별시의 신흥 주택가와 상업시설이 많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1]

 

압구정동에는 구현대아파트, 신현대아파트, 한양아파트, 미성아파트, 대림 아크로빌(구 현대아파트 65동) 등 고급형 아파트들이 많이 밀집한 곳으로 알려져 왔으며, 현대백화점이나 갤러리아백화점의 쇼핑시설이 있다.

 

압구정동을 관통하는 철도는 서울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등 1개의 전철역만 관통하고 있다.

 

 

 

 

 

 

 

 

 

 

 

 

 

                                                                                                 동호대교 

 

                                                                                  동호대교에서 바라본 강북

 

 

성남시 모러토리엄 선언

 

호화청사 논란을 빚은 경기도 성남시가 채무지급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12일 기자회견을 갖고 판교신도시 사업을 위해 조성한 판교특별회계에서 가져다 쓴 돈 5천200억 원을 당분간 갚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자체의 모라토리엄 선언은 국내 지자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성남시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정도로 재정난이 심각해진 것은 잘 알려져 있듯이 3천222억 원이 투입된 초호화 신청사 건립과 공원로 확장 등 과시성·선심성 사업에 돈을 펑펑 쓴 결과이다. 성남시의 모라토리엄 선언은 민주당의 이재명 신임 시장이 한나라당의 이대엽 전임 시장의 과오를 부각시키고 지방채 발행 승인권자인 행정안전부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란 분석이 일반적이다. 전국 기초단체 중 재정자립도 8위인 성남시가 이 지경에 이를 정도로 재정 상태가 곪아터진 것이다.

부산의 기초단체들도 남의 일로 치부하고 구경만 하고 있을 계제는 아니다. 성남시와 마찬가지로 재정 규모에 걸맞지 않은 호화 신청사 건립, 축제 등 과시성 사업 시행 등으로 재정 건전성이 매우 취약한 상태이다. 여기에 교부금과 세수의 감소로 일선 구·군의 재정자립도는 10~20% 수준으로,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러다 보니 예산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채권 발행을 늘려 부채를 키우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언제라도 제2의 성남시가 나올 수 있는 구조이다.

지난 1일 시작한 민선 5기 기초단체장들은 우선 불요불급한 경비 절감과 구조조정, 세수 발굴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높여야 한다. 또 선심성·과시성 사업을 당장 취소해야 한다. 선심행정의 피해는 결국 그 지역 주민에게 돌아간다. 지역 주민과 의회의 감시·견제 기능이 강화돼야 혈세 낭비를 막을 수 있다.

 

 

                                                                                                      강북 전경

 

부동산

 

 

지난 9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자 부동산 시장 침체는 가속화하는 분위기다. 주택 담보대출 이자부담이 그만큼 증가, 매수세가 더욱 위축된 것이다. 시장 급랭에 따른 50조원대에 달하는 금융권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문제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에 하반기 17만여가구의 아파트가 추가로 준공될 경우 입주대란 현실화 가능성은 더 커진다. 이는 곧 집값 하락과 담보대출 부실로 이어져 신용불량 및 파산자를 급증시키는 등 금융권 부실의 연쇄파급 효과로 나타날 것이다.

이런 징후는 이미 여러 군데서 감지된다. 강남 3구의 주택 거래가 완전히 막힌 가운데 가격이 17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고 강북권과 수도권 거래도 60% 이상 줄어들었다. 구리 등 수도권에서는 보금자리주택 가격보다 주변 아파트 가격이 더 떨어지는 기현상이 생겨났다. 완공 1년이 지나도 입주 절반을 채우지 못하고, 또 입주자는 19%대의 고리 연체이자로 신음하며 많은 주택건설사가 현금흐름이 깨져 부도 직전들이다. 수수방관할 때가 아닌 것 같다. LG경제연구원이 최근 하반기 경제 리스크 요인으로 부동산 관련 대출 부실 현실화를 최우선적으로 꼽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택건설업계의 천수답 경영이 빚어낸 결과라고는 하지만 앞뒤가 꽉 막힌 비상 탈출 상황이라면 숨통은 터야 한다. 동맥경화를 풀어줄 불쏘시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물론 출구전략이 이미 시행단계에 접어든 마당에 바람직하지 않을지 모른다. 윤증현 장관은 최근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되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완화는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경기정책 기조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금융과 자산 건전성만 주장하다 국가경제 전체가 흔들리게 해서는 안 된다. 부동산 대출관련 규제를 기술적으로 신축성 있게 운용할 경우 잠자는 부동산 시장을 깨워 전체 경기를 살릴 수도 있다. 너무 외곬으로 가지 말라는 의미다. 부동산정책은 타이밍이다. 너무 신중하다 시장의 불이 다 꺼진 후에는 때가 늦어진다. 금융규제의 탄력 운용과 함께 대출자금의 만기 연장, 소액 대출 활성화 등 작은 불쏘시개가 필요하다.

 

 

 

                                                                                                  강변 산책로

 

 

한국 연예계의 추태

 




표절, 폭행, 거짓말... 끝없는 연예게 사건사고 왜?

[OSEN=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이건 우연히 겹쳐서 일어나는 악재일 뿐일까. 연예계가 휘청하고 있다. 거의 한 주가 멀다하고 사건사고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연예계.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혹자들은 이것이 인터넷 같은 매체가 양산해내는 소문 탓으로 돌린다. 과거라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을 일들이 이제 낱낱이 드러나 문제가 되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환경이 그렇게 바뀌었다고 해서 문제가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니다.

가요계의 고질병인 표절에 대한 무신경함은 현 대중문화에서의 키워드가 된 이효리를 통해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한 앨범에 무려 여섯 곡이 표절. 물론 이효리는 자신도 피해자라고 밝혔지만 과거라면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티스트의 도의적 책임으로 한 동안은 자숙의 기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거의 쏟아져 나온 표절 논란으로 표절에 대한 예방주사를 잔뜩 맞아온 탓인지, 여기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별로 없어 보인다. 차질 없는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그 자체보다 이런 불감증이 더 심각해 보인다.

한창 잘 나가던 배우를 단 한 순간에 추락시켜버린 최철호의 폭행 사건도 마찬가지다. 음주 후 자제력을 잃고 벌어진 사건이라지만, 그 사건 자체보다 더 상황을 어렵게 만든 것은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했던 거짓말이다. 실수는 누구나 저지를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 실수를 덮기 위한 고의적인 거짓말은 당사자에 대한 신뢰 자체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뭐든 유리병처럼 투명하게 비치는 세상 속에서 언젠가는 드러날 거짓말을 그는 왜 했을까.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MC몽의 병역기피 의혹이나 타블로의 학력 의혹 역시 그저 인터넷이라는 환경이 만들어낸 구설수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만일 그것이 그저 구설수라면 왜 당사자들은 속 시원히 의혹을 걷어내려 하지 않을까. 병역문제나 국적문제가 특히 뜨겁게 되는 것은 그것이 담고 있는 함의가 대중들의 마음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에 종사하는 이들로서 그 마음을 헤아리고 확실한 진실을 제대로 드러내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드라마를 찍는 중간에 갑자기 군 입대를 발표하는 상황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지난 5월 갑작스럽게 군 입대 발표를 한 이준기는 당시 영화 '그랑프리'와 SBS 드라마 '신의'에 캐스팅된 상태였다. 최근 '나쁜 남자'에 출연하고 있는 김남길은 입대 3일 전인 12일 군입대를 발표했다. 이로써 드라마는 애초 20부작에서 17회로 조기종영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물론 소속사측은 본래 16부작이었으며 오히려 1회 연장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그 과정이 석연찮은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연예인의 개인적인 과욕이 드라마나 영화 자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잘 말해주는 사례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중들에게 전가된다.

물론 모든 연예인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대중문화라는 영역을 넘어서 사회에까지 귀감이 되는 행동을 보여주는 연예인들도 많다. 그렇다고 대중들이 이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기본적인 것을 지켜달라는 것뿐이다. 아티스트로서 표절하지 말라는 것이고, 표절을 했다면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며, 사건을 저질렀다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잘못을 빌라는 것이고, 군대에 가는 시점이 되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군대를 가라는 얘기다. 하지만 작금의 연예계는 이런 기본적인 것이 기본이 아닌 것이 된 느낌이다.

 

 

 

                                                                                                      강북 전경

 

 

 

 

                                                                                               한강 하류 방향 전경

 

 

 

                                                                                           산책로와 잔디밭

 

                                                                                  

 

 

                                                                                                       강북 풍경 

 

요즘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14세대의 유기농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철거 요구에 반발하고 있는 모양이다. 철거 이유는 한강 수중보 설치로 두물머리가 수몰되기 때문에 철거를 강행하려는 모양이지만 주민들과 시민단체의 반대 데모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하고 잇는 모양이다. 대체 농지를 지정해 주었으나 주민들은 유기농은 2-3년간 땅에 시비를 한 후에야 본격적인 유기농 채소 생산이 가능하기에 10년 기한의 대체농지가 불안하다는 것이며 영구적으로 안정적인 농지를 요구하고 있는 모양이다. 처음 설치시에는 정부에서 적극 권장하면서 지원도 해주었으나 이제와서 철거를 요구하니 주민들이 반발을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주민들은 자신의 땅도 아닌 정부의 하천부지에 유기농 농사를 지어왔으며 이제 정부에서 철거를 요구하자 보상을 요구하며 강력 반발을 하는 모양이다. 이러한 모든 사안은 사전 4대강 사업 개발 계획 수립시 충분히 고려해야 할 사안으로 철저하지 못한 사업 준비와 추진이 불러온 결과일 것이다. 비닐하우스 주민들이 서울 곳곳에 개인 시유지나 국유지에 무단으로 점령하여 아직도 자리잡고 있는 곳이 많다. 과거에는 몰래 불을 질러 태우고 주민을 쫒아내는 방법도 강구하였으나 이제는 그것마저도 어렵게 되었다. 지난번 용산 참사가 말해주듯이 우리 정부는 주민들의 생존권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며 개발을 빌미로 강력한 추진만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전재산을 투자하여 수십년간 살아오던 집을 어느날 당장 떠나라고 주민들이 쉽게 떠날 수 없는 상황을 몰라주는 정부와 일부 불순단체들이 참여하여 정부에 강력 대항하는 오늘날의 사태를 누가 어떻게 현명하게 행정적인 대안을 마련하여 서로 공감하는 차원에서 갈등을 풀어나갈 수 있는 인재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 

                                                                                                                               -서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