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마을
우면산의 겨울 26 (한무제, 그느 누구인가? 마지막회) 본문
우면산의 겨울 26 (한무제, 그는 누구인가?, 마지막회 )
우면산의 눈
한무제, 그는 과연 위대한 군주인가?
중국인들은 그들 역사 속에서 한무제를 가장 위대한 군주로 평가하고 있다. 한무제는 중원을 통일한 진시황제 이후 오늘날 중국 영토의 초석을 다진 강력한 전제군주였으며 그 시대 세계사에서 로마와 쌍벽을 이루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제국 이름이 중국 민족의 이름이 되었고 중국 민족의 영원한 자존심이기도 하다.
그는 반세기에 가까운 54년 재위 기간의 대부분을 북방의 흉노족 토벌에 소비하였으며 영토는 만리를 확장하였으나 호구는 반으로 줄 정도로 한민족의 땀과 피를 흘렸다. 그는 내부적으로 경제,문화의 부흥을 이루었고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신료들과 백성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어떠한 고난과 실패도 굴하지 않는 집념의 군주였다.
말년의 무제
그는 54년 재위 동안 수많은 인재들을 등용하였는데, 귀천을 가리지 않고 등용하였는데, 노예였던 대장군 위청,곽거병을 포함하여 이광,소무,장건,사마천 같은 많은 충신 열사를 배출하였다. 그는 한나라를 영원한 강대국으로 존립시키기 위해 국가 발전에 저해되는 요소는 과감하게 제거하였고 자신의 혈족은 물론 공이 많고 유능하나 자신이 지향하는 정책에 비우호적이거나 반대하는 사람은 가차없이 처단하는 매정함도 보였다. 물론 사실에 대한 검증도 없이 혹형을 가하여 죽음에 이른 경우도 많았으나 누구에게나 멸사봉공의 정신만을 원하였던 단호한 인물이었다.
반대파를 제거하는 방법도 반드시 대타를 기용하여 문제를 밝혀내고 법에 따라 처리토록 한 다음 나중에는 그도 문제가 될 경우에는 가차없이 제거하기도 하였다. 또 그는 규정과 법도를 어긴 경우에는 절대로 용서치 않았으며 장수는 항복보다는 자결을, 승리 아니면 죽음을 선택하도록 강조했다.
무제는 자신과 같이 무를 숭상하고 기백이 넘치는 유능한 후계자가 한조를 다스리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유약한 황태자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외척의 발호도 우려하여 자신이 죽기전, 그토록 사랑하던 구익부인도 처형하여 버렸다. 대장군 위청과 마지막 대화에서 "우리 둘은 한 시대를 책임진 사람들이다. 당대에 욕을 먹더라도 대 흉노 전쟁은 반드시 마무리지어 북방의 위협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고 하였다.
서역 관문 관저우
무제는 그의 치적 평가에 매우 과민한 반응을 보였는데, 후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궁금해 하였다. 당시대 직접 무제를 가까이서 보며 기록을 남긴 사마천의 눈에는 그는 한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 놓앗을 뿐만 아니라 대흉노전쟁을 벌여 영역을 만리나 넓혔고 실크로드를 개척하는 등 공도 많았지만 결국에는 폭군에 불과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무제가 저지른 오류도 많고,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사람도 많을 것이며 분노의 삶을 평생 살아간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 한다. 누구나 완벽할 수 없듯이 그도 흉허물이 없겠느냐 마는 거시안적으로 평가를 해 보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의 국가 지도자가 무제와 같은 인물이라면 문제가 될 것이며 반대로 오늘날과 같은 사고로 무제를 함부로 농단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이 결과적으로 한나라의 융성에 기여하였기 때문에 그를 위대한 군주로 평가하고 있다. 그의 부국강병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 최대의 영역 확장, 주변국 복속, 어떠한 어려움도 굴하지 않고 대 흉노 전쟁을 끝까지 수행한 집념, 귀천을 가리지 않고 능력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였고 강력하고 철저한 정책을 집행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사후 강한 나라를 유지시키기 위한 후계자에 대한 고민, 구익부인을 처단하여 외척 세력의 준동을 미리 차단하는 그의 단호함, 상과 벌을 집행함에 철저한 결과 위주를 적용하였고 혈육도 가리지 않는 단호한 처벌을 하였던 결과 말년에는 그의 주변에는 진심으로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고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만리장성 서쪽 끝
이러한 무제의 인물 됨됨이를 간접적으로 살펴보면서 오늘날 우리나라 지도자를 포함한 정치권을 생각해 본다.
여론에 휘둘리고 갈등에 발목 잡혀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다면 역사에 기록될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인기에 영합한 임시방편적인 졸속정책, 미래가 없는 비젼, 썩고 병든 관료체제, 국가 정체성의 상실, 허약한 군비, 편향적인 인재등용, 불평등한 상과 벌, 비능률의 정치권, 비젼없는 교육 정책, 양극화/저출산/노인복지 정책의 부실, 비리와 부패의 먹이사슬 등을 제거하지 못하면 그것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감사합니다!
-서초동-
한 해를 마무리 하며......
이제 다사다난 했던 한 해도 저물었고 새해가 밝았다!
그동안 우면산을 오르면서 보고 들은 세속 이야기를 포함하여 칼럼과 시론을 읽으면서 우리들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었다.
다단계 실태와 문제점, 부정과 부패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 같이 고민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2012년 지구의 종말론'과 관련된 이야기에 대해서도 관련된 글을 모아 시리즈로 올렸다.
또 유태인에 대해서 심층깊게 분석한 내용을 이야기 했으며,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 대해서 살펴 보기도 했다. 한국사는 백지원씨의 '왕을 참하라!' 저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신라시대 '선덕여왕' 드라마에 대해서도 실록을 보면서 드라마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살펴 보았고, 채널 'ching'에서 방영한 청나라 이야기인 '대청풍운'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도 올렸다. 마지막으로 중국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한나라 제7대 황제 '한무제'에 대해서 살펴 보았다.
난 역사에 대해서 깊이는 모른다. 그리도 전문가도 아니다. 또 어떤 종교에 심취한 사람도 아니다. 다만 역사를 좋아하기에 또 역사를 살펴보면 오늘의 현실이 너무도 답답하기도 하고 암담하여 역사 속의 위대한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을 뿐인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이런 역사를 통해서 우리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묻고 찿아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라가 창업에서 흥망성쇠를 이루며 역사를 이어나갔고, 멸망의 역사가 역사가 반복되는 것은 인간의 탐욕과 욕망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한무제를 통해서 그의 삶을 살펴보고 오늘의 우리를 돌이켜 보았으면 한다. 우리 민족 모두가 한반도에서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어떤 길인지 곰곰히 각자 생각해 볼 일이다. 역사는 우리들이 가야할 길을 이미 알려주고 있지만 우리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블로그를 자주 방문해 주시고 저의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께 깊이 감사드리고 싶다. 새해에는 더 좋은 이야기로 블로그를 꾸미고 싶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초동 올림-
'시대의 흐름과 변화 > 생각의 쉼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면산의 겨울 27 (서울 폭설, 재앙인가, 축복인가? ) (0) | 2010.01.05 |
---|---|
2010년 새해에 바라는 마음... (0) | 2010.01.02 |
우면산의 겨울 25 (한무제, 그는누구인가? 12 ) (0) | 2009.12.31 |
우면산의 겨울 24 (한무제, 그는 누구인가? 11 ) (0) | 2009.12.30 |
우면산의 겨울 23 (한무제, 그는 누구인가? 10 ) (0) | 2009.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