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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의 겨울 23 (한무제, 그는 누구인가? 10 )

두바퀴인생 2009. 12. 29. 01:00

 

 

우면산의 겨울 23 (한무제, 그는 누구인가? 10 )

 

 

                                                                                                  우면산 새벽 하늘 

 

 

한무제의 여인들

 

당나라 시인 '백락천'은 "후궁에 미녀 삼천, 삼천의 총애 일신에 있었네"라고 노래했는데, 무제 또한 여인들과의 후일담을 많이 남겼다. 삼천명은 지나친 과장이겠지만 후궁만도 수백 명에 달했으며, 황제의 총애를 둘러싸고 불꽃 튀는 싸움이 벌어졌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일은 그 여성뿐만 아니라 일가친척과 나아가서는 이런저런 연고자들의 장래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으므로 자연히 주위 사람들의 암투 역시 뜨겁게 달아 오를 수밖에 없었다.

 

 

 

 

 

무제가 황태자로 올립되기까지 그 수완이 만만치 않은 여인들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무제는 '비'인 '아교(진 황후)'를 그리 오래 사랑하지 못했다.

 

진 황후는 황제의 혈통답게 자존심만 강했고 게다가 후사를 이을 아이도 낳지 못했다. 혹자는 근친혼 때문에 아이가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웠지만, 어쨌던 무제는 금으로 만든 집에 첯사랑을 모셔 놓긴 했지만 가까이 하지는 않았다.

 

이 사이를 파고든 사람이 무제의 친누나인 '평양공주'였다.

 

평양공주는 자기 집에 양갓집 규수 십여 명을 모아 궁중 예절법과 화장법 등을 가르치고 어느 날 무제를 불러 그녀들을 소개했다.

 

평양공주는 자신의 영향권 안에 있는 여성을 황제 곁에 두어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려는데 뜻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황제는 예쁘게 차려 입은 양갓집 딸들에게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평양공주의 시녀 위자부라는 하녀에게 관심을 보였다. 위자부는 평양공주를 모시는 노예 '위온'의 딸로, 공주의 사설 합창단 단원이었다.

 

 

 

 

무제는 옷을 갈아 입을때 시중을 들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위자부가 마음에 들어 사랑을 나눴고, 기분 좋게 공주의 집을 떠났다고 한다. 공주는 재빨리 위자부를 후궁으로 보냈다.

 

공주는 마차에 타는 위자부의 등을 두드리며 "자, 가거라. 부디 몸조심하고, 출세해도 날 잊으면 안 된다"라고 다짐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무제는 위자부와의 사랑을 까맣게 잊어버렸는지 궁에 들어온 그녀를 1년 이상 찿지 않았다. 그래서 자부는 황궁에서 후궁들을 정리하는 날, 황제를 직접 알현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궁에서 내보내 줄 것을 호소했다고 한다. 수많은 여성들이 희망과 기대를 품고 후궁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그야말로 궁은 황제에게 목을 메는 여인들로 가득했다.

 

자부는 희망도 없으면서 후궁으로 있다가 그대로 죽기는 싫다고 말하였고, 그 마음을 딱하게 여긴 무제는 다시 자부를 총애했다. 이렇게 해서 자부는 차례로 세 딸을 낳았고 마침내 바라던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이 아이는 훗날 비극의 죽음을 맞이한다.

 

위자부가 아들을 낳자, 무제는 아이가 없는 진 황후를 폐하고 그 대신 자부를 황후로 올렸다. 곧 자부가 낳은 '거'가 태자가 되었고, 그녀의 추천으로 동생인 위청과 조카인 곽거병이 등장함은 이미 앞에서 말했다.

 

 

 

 

이렇게 황후가 바뀌자 화가 나 참을 수가 없었던 장공주는 평양공주를 찿아가 말했다.

" 황제는 내가 없었다면 그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소. 그런데 일찌감치 내가 정해 줬던 배필을 버렸소. 도데체 어떻게 자기 마음대로 도리를 저버릴 수가 있단 말이오?"

 

무제를 옹립하는 데 공적을 세웠는데 자신의 딸을 저버리는 것은 은혜를 모르는 행동이 아니냐고 책망했던 것이다. 그러자 평양공주는 차갑게 "아기씨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폐했을 뿐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동안 물론 진 황후도 막대한 비용을 들여 사방팔방으로 손을 뻗쳐 임신을 하게 해 준다는 약을 구해 먹었지만 손자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하녀였던 천한 신분의 자부는 일약 중국의 황후가 되었으며 이후 38년 동안 후궁에서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색기가 다하면 애정도 식는다'는 말이 <사기>에도 있듯이, 무제가 총애하는 여자들은 계속해서 바뀌었다. 무제가 쉰 고개를 넘었을 때, 그는 나라를 기울어지게 할 만큼의 미인이라는 이부인을 만나게 된다.

 

무제는 궁중에 악사인 이연년이 데리고 있는 가무단 중 자신의 여동생이 있는데 미색이 뛰어났다고 한다. 자신의 여동생을 빗대어 한 번 보면 성이 기울고, 두 번보면 나라가 기운다는 여인이라고 노래했다. 그 노래를 들은 무제가 "어디 그런 여자가 어디있냐?" 고 하자 옆에 있던 평양공주가 이 애가 '이연년'의 여동생이라고 말하며 소개하자 마침 궁에 애정을 쏟을만한 여인이 없던터라, 무제는 당장 '이부인'을 불러들이게 하였다. 무제는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와 춤 쏨씨에 매료되어 늘 곁에 두고 총애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부인이 아들을 낳게 되었고 병이 들어 임종을 앞두고 무제가 찿았다. 그녀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흉한 얼굴을 보여줄 수 없다며 자신의 아들과 형제들을 잘 돌보아 주라고 간곡하게 부탁한 뒤 숨을 거뒀다.

 

 

이부인과 이토록 애틋한 사별을 했던 무제는 그것으로 그의 여인들과의 사랑이 끝난 것은 아니다. 만년에 그가 마지막으로 총애했던 여인인 '구익부인'이 있었는데, 그녀가 낳은 아들 '불릉(후일 소제)'이 자신과 닮았다고 하여 매우 예뻐했다고 한다. 

 

나중에 불릉은 이미 황태자로 옹립된 위자부의 아들 '거'가 <무고의 난>으로 죽자 이부인에게서 낳은 아들인 창읍왕을 제치고 결국 8세의 나이로 태자에 오르게 되고, 무제가 죽은 후 제8대 황제(소제)가 되었다. 그러나 구익부인은 불릉이 황제가 되기 전에 무제에 의해 살해된다. 어린 아들이 황제가 되었을 때 젊은 생모인 그녀의 권세가 하늘을 찌를 것이며 국정을 농단할 것을 염려한 무제가 그가 죽은 뒤를 염려하여 구익부인을 죽였다고 한다. 그러나 무제가 죽고 난 뒤 한나라는 권력쟁탈전이 계속되고 내분이 일어나는 등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무제가 기대했던 그런 나라는 되지 못했다.

 

제국의 황제라 해도 경국지색에 당할 자는 없는 법. 수많은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었던 황제의 말년은 행복했기 보다는 오히려 불행과 쓸쓸함이 느껴지는 마지막 삶을 살았다.

                                                                                           -서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