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대의 흐름과 변화/좋은 책, 요약,그리고 비평

백지원씨의 '조일전쟁'

 

 

백지원씨 '조일전쟁'

 

작가 백지원씨는 한국외국어대학 스페인어과를 졸업한 후 남미로 이민을 갔다가 현재는 미국 LA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강단에 서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그래서 그의 연구 영역에는 경계가 없다. 첯 저서 <백성 편에서 쓴 조선왕조실록, 왕을 참하라>에서 보여준 파격과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폭넓은 지식은 경계없는 연구활동과 동호인들과 격식없는 토론, 그리고 외국에서의 다양한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학창시절에 바둑,당구,노름의 세게에 빠지는 등 자유분망한 생활을 하면서도 역사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 수많은 역사서를 섭렵했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역사 공부는 평생 이어졌고, 결국에는 역사에 대한 객관적인 시야를 갖게 되었다는 확신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그는 LA에 역사클럽인 '그라나다' 클럽을 결성해서 5년째 강의와 토론을 하고 있다. 이런 고상한 클럽은 LA에서 유일무일하다.

 

그는 그동안 역사학자들이 들추어내기를 꺼려했던 역사의 치부를 낱낱이 들추어내고, 이를 유머러스하면서도 냉소적인 필체로 표현함으로써 역사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저자서문 -

저자는 기록되어 전해오는 모든 역사는 진실이 아닌 외곡과 윤색,조작으로 쓰여졌다고 하였다.

 

"역사만큼 재미있는 학문은 없다.우리는 지혜의 보고인 역사를 통하여 과거에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들과 인물들을 접하게 되고, 그 사건의 처리 과정과 결말을 보면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지혜를 얻고, 또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나라 역사건 왜곡과 윤색, 심지어 조작이 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부끄러운 부분은 감추고, 작은 자랑은 크게 부풀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역사는 정의,불의와 상관없이 승자에 의해 쓰여지며 패자의 항변은 어디에도 없다. 승자는 자신이 저지른 모든 잘못을 합리화시키고 정당화하려 시도하기 때문에 역사는 쓰여지는 순간부터 왜곡되기 마련이다. "

 

또 저자는 역사를 읽는 독자들과 왜곡,윤색,조작된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학자들과 같이 역사의 치부를 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굴절된 역사에서는 아무런 교훈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첯 번째 저작서 <백성 편에서 쓴 조선왕조실록, 왕을 참하라>에서 역사의 치부를 까발렸다는 점으로 많은 독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은듯 하다. 자신의 역사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에 격려는 못할 지언정 딴지를 거는 것은 무식의 소치로 이야기 하고 잇다.

 

저자는 "두번째 저서인 <조일전쟁>을 출간하면서 더 많은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의 연승 신화의 거품을 모조리 제거하고 성웅 이순신의 포장을 벗겨내어 인간 이순신으로 복원시켜 놓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물론 저자는 이 부분은 매우 예민한 부분이기 때문에 고민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론은 자신이 참고한 여러 저서를 통해 사실 그대로를 밝히고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였다고 한다.

 

 

 

우리역사 진실추적 시리즈 2탄 ‘조일전쟁’

한 마디로 이 책은 ‘발칙한’ 역사서다.

저자는 감히 ‘조선시대에 임진왜란이란 없었다’라고 선언한다. 이 전쟁은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근대 수백 년 사이에 동양에서 일어난 최대규모이자 가장 격렬했던 전쟁으로, 조선과 일본의 국제전이었으므로 응당 ‘조일전쟁’이라 칭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자칭 조일전쟁을 다루며 우리들이 알고 있는 역사 상식을 거침없이 비웃는다. 신랄하면서도 섬뜩하지만 때때로 저자의 위트에 웃음이 터진다.

‘조일전쟁’은 저자 백지원이 쓴 <백성 편에서 쓴 조선왕조실록, 왕을 참하라>에 이은 우리 역사 진실 추적 시리즈 2탄이다. 저자에 따르면 조선은 세계 최강의 해군국이었고, 일본은 세계 최강의 육군국이었다. 지금까지 ‘조선=육군, 일본=해군’의 상식이 거꾸로 됐다는 것이다.

당시 조선에 대한 비판은 날카롭기 짝이 없다. 전쟁이 터진 지 불과 20일 만에 조선은 한양을 일본군에 내주게 된다. 그런데 이는 일반 여행자가 부산부터 한양까지 슬슬 걸어서 주파하는 시간과 비슷하다. 한 마디로 침공군이 올라오는 동안 걸리적거리는 것이 거의 없었다는 얘기이다.

저자는 ‘금기’와도 같은 이순신에 대해서도 ‘할 말’을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23전 또는 24전 전승기록에 대해 ‘실제로는 16전 13승 3패’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이 16전 중 실제로 해전다운 해전은 단지 세 차례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거북선 역시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란 기록은 어디에도 없으며 개량된 판옥선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저자는 ‘성웅 이순신’을 ‘인간 이순신’으로 복원하는 작업이라고 말하고 있다.

‘진실은 불편하다’라고 말하는 듯한 이 책이 과연 얼마나 ‘진실’을 언급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때때로 저자의 외침은 과격하고 공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일독의 가치가 충분하다.

500쪽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의 책장이 만화책처럼 넘어가는 역사서를 만나기란 광화문 뒷골목에서 김태희와 마주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니까.

"조선시대에 임진왜란의란 없었다."

 

"조선 개국 200년째, 동아시아에서 3개국이 사상 최초로 50만이라는 대규모 병력이 투입되어 조선반도에서 벌어진 국제전쟁이 바로 "조일전쟁'이라고 하였다.이 전쟁이서는현대전에 사용되는 모든 무기의 원조인 신형첨단무기가 거의 대부분 투입되었으며, 조선인 20만 전사에 200만이 넘는사람이 희생된 참혹하기 짝이없었던 대전쟁이었다"고 하였다. 

 

저자는 조일전쟁을 임진왜란으로 폄하한 것은 조선의 선조 이후 임금들과 권신들이 자신들 조상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하나의 왜란으로 역사서에 표기하였다는 점이며 전쟁의 참혹한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자들과그 계승자들에 의해 모조리 왜곡되었다.

 

역사왜곡의 실태를 아래와 같이 예시하였다.

 

"우리들이 학교에 다닐 때 배운 역사, 임진왜란은 산무기인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이 조선을 침공하여 조선군이 활과 창으로 무장하여 그들과 대적이 불가하여 파죽지세로 점령당하였으며, 임금이 의주까지 피란가고 나라가 풍전등화일 때 이순신이라는 한 수군장수가 거북선을 앞세워 일본 수군을 남해안에서 23전 23승하여 나라를 구하였다....  그래서 임진왜란하면 이순신 장군, 이순신 장군하면 거북선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사실의 절반은 사실이 아니라고 하였다.

 

 

 

조선이 조일전쟁에서 나라가 망하지 않고 되살아 날 수 있었는 것은 아래 세 가지 원인이라고 하였다.

 

"조선이 초장에 박살난 원인은 전쟁이 일어날 것을 뻔하게 알면사도 애써 골치아픈 현실을 외면하고 아무런 대비도 하지않은 무능한 임금 선조와 당파 싸움에 코를 쳐박은 한심한 신료들 때문이었다. 조일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비겁하기 짝이 없었던 선조는 두 달 만에 의주까지 도망쳐 명에 망명을 빌었다.냉엄하게 이야기해서 그렇게 아사리판이었던 조선을 살린것은 명의 원군과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의 기의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해전 승리 등 세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러한 사실을 도외시하고 사실이 아닌 사실을 역사로 우리들이 배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선조의 후손들과 썩어빠진 유신관료들이 자신들 조상들의 치부를 감추고 면죄부를 받기 위해서는  역사를 왜곡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작가는 "현재 우리들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역사 교과서에는 조일전쟁에 관한 내용은 반쪽 내지는 한 두쪽 밖에 되지 않는다. 전쟁의 원인,경과,결과에 대해서 제대로 기술되어 있지도 않으며 지금까지 배운대로 약간의 내용만 수록되어 있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전승신화는 사실이 아니다."

 

작가는 "이순신 장군의 해전을 하나씩 추적하여 그 거품을 제거했고, 성웅 이순신을인간 이순신으로 복원해 놓았다"고 했다.

 

"영웅이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여야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며 결정적인 한번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을 경우에 대부분 영웅으로 평가받았다고 하였다. 중국 한나라 유방도 매번 깨지다가 '회하전투'에서 한 번 이김으로써 나라를 세웠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뻑하면 깨지다가 '세키카와라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265년의 도쿠카와 막부를 열었다. 19세기 초 영.프 해전이인 '트라팔카해전'에서 단 한 번 크게 이긴 영국의 '넬슨제독'은 그 전투의 승리로 영국민의 영원한 영웅이 되었다. 20세기 초 러.일전쟁의 '쓰시마해전'에서 승리한 '도고 헤이하찌로제독'도 역시 단 한번의 큰 해전에서 승리하여 일본의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순신 장군도 절대우위의 전력에서 승리한 한산대첩이나 노량대첩이 아닌 가장 악조건의 불리한 조건에서 12척의 전함으로 300여척의 일본전함을 맞아 싸운 명량해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우리들의 영원한 영웅이 되었던 것이다."고 하였다.

 

저자는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역사인식도 바꾸기를 바라면서 왜곡된 우리역사에 대해서 깊이있는 성찰과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가르치기를 강조하고 있다. 특정 역사 인물에 대해서 비판을 가하는 것은 바른 역사를 사실대로 재인식하기 위한 시도이므로 그들 후손들이나 문중의 오해가 없기를 당부하고 있다.

 

아마 일부 네티즌들이 무지하게 반발 하였던 모양이다. 배운 것이 그렇게만 배웠고 그것밖에 모르니 어쩔 수 없는게 아닌가!  교육의 무서움이란 바로 이런 것처럼 잘못된 사실이라도 그렇게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점이다. 저자의 생각이라면 이씨조선의 모든 임금들과 후손들은 친일파 이상으로 처단받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하였고 이 나라 백성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원흉들이 아닌가? 그러나 이씨조선왕조의 후손들에게 누구도 비난의 화살을 보내는 사람들은 없다.

 

조일전쟁은 당시 일본 육군의 세계 최강이었으며, 조선 해군 역시 세계 최강이었다.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3개의 나라가 50만이 넘는 병력이 참가한 엄청난 국제전이었다. 그러나 그 전쟁으로 초토화 된 곳은 조선 뿐이었다. 우리민족은 무능한 왕족과 권신들에 의해 나라가 무참하게 전쟁터로 변하기를 수 십 차례, 왜눔, 한족, 글안족,몽고족의 피가 골고루 썩인대도 불구하고 단일민족(?) 이란다. 

 

이 책에는 조일전쟁의 진상뿐만 아니라 일본의 세 영웅 오다 노부가나,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 그리고 미야모토 무사시의 약식 평전도 실었다. 

 

이 책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깨우쳐 주었으며  읽는 동안 저절로 웃음이 나게 만들었고 새로운 내용에 대해서 관심있게 읽었다. 그러나 왜곡된 역사에 대한 사실을 보여주려는 의도는 충분히 인정하나 경박하지 않는 깊이있는 용어선택이 아쉬웠고(물론 작가의 인성인지도 모른다),  해전,탐색전,조우전,해상전 전술 등 해상전에 대한 개념설정이 필요할 것이다. 한산도 해전은 고대이후 해전사에서 '학익진'이라는 새로운 해상전술로 승리를 거둔 해전이다. 그래서 세계의 해상전쟁 전문가들이 세계 4대해전으로 한산도 해전을 꼽고 있는 것이다. 아테네의 페르시아와의 마라톤 전투, 알렉산드대왕의 페르시아와의 전투에서 양익포위전술, 로마와 한니발의 포에니 전쟁에서 칸내전투 등이 전쟁사에서 유명한 전투로  자리메김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새로운 전술로 상방을 결멸시킨 전투이기 때문이다.  해상전에서 당시까지 접근전이 대부분이었으며 조선수군의 포술전은 고려시대 최무선에 의해 화약을 발명한 이래 꾸준하게 신무기를 개발하여 왔던 결과이며 양국의 전술차이는 각국의 무기와 해군전력에 따라 선택될 수 밖에 없는 사항이며 그러한 전력의 차이를 모르고 맞붙은 것은 문제가 될 수가 없을 것이다. 

 

작가는 처음부터 역사를 공부해온 전문 사학자도 아니며 사정은 알수 없으나 이 나라를 떠나 남미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사람이다. 해외에서 어떤 계기로 역사서를 쓰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기존의 식민사관에 얽메어 있는 역사학계로부터는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일 것이다.

 

저자가 느끼는 우리역사에 대한 안타까움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한 역사를 과감하게 바른 역사로 수정하려는 용기를 가진 역사학도가 많지 않은 현실에 비해 우리 역사의 문제점을 실랄하게 비판할 수 있었던 작가의 용기는 칭찬할만 한 가치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책이 요즘처럼 TV역사드라마가 나오면 재빨리 관련 역사서를 출판하는 찌질이 저자나 단순히 비판하는 것으로 인기리에 판매고를 올리려는 작가처럼 자신의 생계와 치부를 위해 쓰여졌다면 특이한 모습으로 주목받고 인기를 얻으려고 무대에 서는 연예인과 같을 것이다. 

 

모든 역사서들이 완벽하게 진실된 역사서라고는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참고한 다른 역사서도 진실이라고 보면 안된다. 모든 역사서가 승자에 의해 쓰여진 부풀려진 역사서라면 이 세상의 어디에도 진실된 역사서는 없다. 모든 역사는 고증이 반드시 따라야 하며 단순히 다른 역사서를 참고만 한다면 오류를 범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임진왜란 아닌 조일전쟁 입니다."[LA중앙일보]

백지원씨 2번째 역사서 출간
 
 
 
 
기사입력: 08.31.09 21:31

역사는 항상 승자의 기록이기 쉽다. 그래서 승자가 아닌 제3의 객관적인 눈으로 본 역사서가 많지 않다.

'고리타분한' 학자들이 아직도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 역사계에 반성의 조류가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지난 봄 '왕을 참하라' 상ㆍ하권을 내놓아 한국 출판시장에 역사서 바람을 일으켰던 한인 백지원(사진)씨가 그의 2번째 역사서 '조일전쟁'을 8월초에 발간 역시 한국 출판시장에서 4쇄 이상을 인쇄하는 등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역사 교과서에는 '임진왜란'이라고 알려진 조선과 일본의 전쟁 '조일전쟁'은 사실 국제정세를 방관하고 사리사욕에만 급급했던 조선의 양반들이 일본의 일방적인 침략을 받은 것인양 '왜란'이라 칭한 것을 '조선과 일본의 전쟁'이었다는 것으로 재해석 좀 더 객관적인 눈으로 기술했다.

"이 (조일)전쟁의 모든 정확한 정황은 참혹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자들에 의해서 모조리 왜곡되었습니다."

백씨는 사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학자는 아니지만 왜곡된 역사서에 발목잡혀서 이도저도 아닌 역사서를 쓰지 않고 이를 탈피한 많지 않은 용기있는 전문가중 한사람이다.

백씨는 "함포를 전함에 탑재한 당시 최강의 해군 국가인 조선이 사무라이들의 수송선에 불과한 일본 해선을 격파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며 "또한 실제 성과도 없었던 거북선을 내세운 것도 왜곡"이라고 말했다.

한국외국어대 서반아어학과를 졸업하고 남미에 이민갔다가 LA에 정착한 백씨는 본업인 스패니시 선생님 말고도 문화모임 '그라나다 클럽'을 통해서 5년째 각종 역사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10년간 1년에 상하반기 한권씩 쉬지않고 역사서를 낼 계획이다. 내년엔 고려사와 열국사가 세상에 나온다.

장병희 기자 chang@koreadaily.com

 

 

조일전쟁 대첩도

 

 

재미 사학자 백지원씨 ‘조일전쟁’ 발간

입력일자: 2009-09-22 (화)  

 

백성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면서 지도자들의 무능을 질타한 ‘왕을 참하라’로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켰던 재미 사학자 백지원씨가 이번엔 임진왜란의 실상을 파헤친 ‘조일전쟁’(사진)을 펴냈다.

조선이 개국한 지 200년이 되는 해인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은 섬나라 일본인들이 한반도에 건너와 난동을 부린 ‘왜란’ 수준이 아니라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조선의 해군과 일본 육군이 격돌을 벌인 ‘조일전쟁’으로 명명해야 정확한 이해와 역사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 전쟁에 3개국에서 50만명의 대병력이 투입됐고 현대전에서 쓰이는 무기가 거의 모두 동원됐으며 수십 만명의 전사자가 발생한 전쟁이 어찌 왜란 수준이냐는 얘기다. 저자의 논지는 당시 사용됐던 배나 함포의 규모, 전쟁 방법 등을 자세히 연구하고 소개하는 방법을 탄탄하게 입증된다. 조선 수군은 척당 20문 안팎의 강력한 함포를 장착한 판옥선이었는데 이것은 세계 최대 규모인 200톤급 전함이었고 일본 배 5-10척을 쉽게 상쇄할 수 있었다.

반면 일본은 120년의 내전을 치르면서 칼과 창의 달인들이 돼버린 육군 정예부대를 소유하고 있었다. 또 일본의 조총 생산량은 전 유럽의 조총 생산량과 같을 만큼 많았고 사용에도 능해 초반 조선군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원인이 됐다.

사실을 사실 대로, 공정하고 냉정하게 보려는 저자의 근성은 독자들이 아쉬워할지 모르지만 ‘이순신 신화’도 발가벗긴다. 이순신이 23전 23승을 했다는 설명은 거품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영웅 되는데 수많은 전투를 치루면서 모조리 이길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승자의 역사가 아니라 패자의 변들을 찾아내고, 진실의 편린을 모아 역사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는 백씨는 역사학자들이 들춰내기를 꺼려했던 치부를 드러내고 이를 유머러스하고도 냉소적인 필체로 계속 써내려가고 있다. 한국 외국어대 스페인어과 출신으로 현재 역사 클럽 ‘그라나다’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이병한 기자>
                                                                        -서초동  퍼옴-
 
 
 백지원씨 책에 대한 비평에 대하여......
 

난 이 책을 그냥 재미있게 읽었는데 역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잇도록 해 준 책이라 생각했다. 물론 책 내용에 대하여 육두문자가 많고 내용의 근거가 미약하고 이순신을 폄하하고 거북선에 대한 평가, 선조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백성의 편에서 쓴 글이라면서 백성에 대한 부족한 내용, 조선 유학에 대합 비난,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 박대통령에 대한 호평, 자신만을 내세우는 나쁜 자만심 등등사에 조금 조예가 깊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이 쇄도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래 덧글에 달린 백지원씨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도 수용하는 의미에서 그에 대한 비난의 글을 싣고 무엇이 비난의 대상인지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비난이라는 것이 자신의 생각과 사고, 지식의 범주내에서 상대의 주장에 반하여 주장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 독자들에 따라 이 책에 대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역사 지식에서 부분적인 깊이는 더 할지 몰라도 전체적인  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을 일인들이 잘 이해하지 못 하듯이 인간들은 어떤 사실에 대해서 자신의 작은 머리속에 들어 있는 지식에 근거하여 자신의 주관대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보릿고개, 춘궁기를 모르는 젊은 사람들은 박정희의 제3공화 경제발전이 가져온 풍요의 혜택만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ㅈ부정적인 면만 보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역사의 흐름과 명분을 살필 필요가 있다. 위화도회군으로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운 이성계는 정당성이 있는가? 그런 조선의 역사를 자신들의 조상의 역사로 인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역사에는 윤리와 도덕성은 허울에 불과하고 힘의 역사가 지배하여 왔다는 사실이다. 역사를 보면 백성들의 가난과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해준 군주보다 영역을 넓히고 강력한 군대를 유지하면서 주변국을 호령하고 문화통치를 이룬 군주가 성군으로 평가받고 잇다. 그러나 풍요를 일군 군주는 별로 성군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한민족의 가난과 굶주림을 벗어나게 해주고 오늘날의 풍요를 이룬 정권이 역사적으로 높게 평가될 것임은 자명하다.  그래서 역사를 보는 시각을 보편적으로 넓게 살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비난을 할 줄 알면서도 자신은 허역한 역사적 지식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역사기록은 승자의 기록이라 했다. 조선왕조실록이라고 100% 진실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가 알고 있는 편협한 역사 울타리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비평 1

 

이 책에 대한 평을 말하자면, 평점을 마이너스 별 다섯 개 정도로 주고 싶은 책이다.

 저자는 역사학자들이 드러내기 싫어한 진실을 밝힌다며 혼자 잘난 거 처럼 현대의 사학자들이나 과거의 조선의 왕과 신하들을 사정없이 깐다.

 물론 까일 짓일 한 부분은 까야겠지. 하지만 이 책은 알지도 못하면서 때로는 사료를 엉뚱하게 인용하거나 이미 논파된 헛소리를 실어가며 깐다. 그래서 문제다.

 이 책에서도 옳은 부분이 있긴 있다. 명량대첩에서 철쇄가 사용되지 않았다, 행주대첩은 아녀나들이 나른 돌 던져 이긴 게 아니다  같은 부분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는 다른 책이나 인터넷으로도 알 수 있고, 다른 수많은 병폐가 있기 때문에 이 책은 가치를 두기 어렵다.

 몇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이 책에는 북관대첩비에 대해 언급하는데, 1쇄를 보면 야스쿠니 신사에 있으며 머저리 같은 정치인들을 여기에 신경 안 쓰고 쌈박질만 한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북관대첩비는 이미 2005년에 서울로 들어오고, 복제비를 만든 후 2006년 삼일절에 본래 있던 장소인 북한으로 돌아갔다.반환이 끝난지 한참됐는데, 아무리 저자가 미국에 있다지만 이 문제로 책을 쓰면서 이 정도 사실도 확인하지 않았다는 건 기본자세를의심케 한다. 이런 어이없는 짓을 하고는 뻘줌했는지 2쇄에서는 은근슬쩍 '북한으로 돌아갔다'라고 수정하였지만, 여전히 이 부분의 시작은 일본 야스쿠니 신사의 유슈칸 앞에 '북관대첩비'라고 새겨진 돌비석이 서 있다. 라는 현재형으로 쓰고 있다. 고치려면 철저히 고치지.

 어디 그 뿐인가? 이순신에 대해서 그 유명한 요시라의 반간계 당시, 이순신이 부산포로 출진했다는얘기에 대해 저자는 그러지 않앗을 거라고 부정한다. 그러나 선조실록에 실린 경상우병사 김응서의 보고를 인용한 권율의 장계와,원균이 통제사가 된 직후 올린 장계를 보면 내용은 엇갈리는 면이 있지만 적어도 이순신이 부산포로 진격했다는 사실은 공통적으로 일치하여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원균의 장계를 엉뚱한데다가 인용하고 있다. 저자는 이순신이웅포해전에서 패전했다고 주장하는데, 승패여부의 확인은 둘째치고 이 책에서는 웅포해전을 설명하는 가 싶더니 어느 틈엔가 원균이통제사가 된 직후 올린 이순신의 부산포 진격에 대한 장계를 바탕으로 내용을 적고 있다. 도대체 어느 전투에 대한 기록인지도모르고 뒤죽박죽으로 사료를 인용하는 거다.

 또한 이 책은 이순신이 파직당하고 하옥된 이유를 네 가지 죄를지었다고 하는데, 실은 세 가지 죄인 것을 한문해석을 잘못하여 네 가지 죄라 한 것인 사실이 이미 이순신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사이에는 익히 알려져 있다. 저자는 그것도 확인 안 한 것이다. 더욱 웃긴 것은 같은 책에서 앞부분에는 세 가지 죄로 나온제대로 된 번역문을 실어놓고는 뒤에서 다시 네 가지 죄라고 하고 있으니 자료정리도 제대로 안 하고 책을 썼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이미 논파된지 오래된 원균은 간신이 아는 용장이었다는 주장을 말하면서,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한 게 아닐 이순심이 오히려 모함을 했다며 이런 이덕형의 발언을 증거로 든다.


“이순신(李舜臣)이 당초 원균을 모함하면서 말하기를‘원균은 조정을 속였다. 열두 살짜리 아이를 멋대로 군공(軍功)에올렸다.’라고 했는데, 원균은 말하기를 ‘나의 자식은 나이가이미 18세로 활쏘고 말타는 재주가 있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서로 대질했는데, 원균은 바르고 이순신의 이야기는군색하였습니다.”


 허나 이덕형의 이 발언은 이덕형 스스로 이듬해에 부정한다.

이순신(李舜臣)의 사람됨을 신이 직접 확인해 본 적이 없었고 한 차례 서신을 통한 적 밖에 없었으므로 그가 어떠한 인물인지알지 못했습니다. 전일에 원균(元均)이 그의 처사가 옳지 못하다고 한 말만 듣고, 그는 재간(才幹)은 있어도 진실성과 용감성은남보다 못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그런데 신이 본도에 들어가 해변 주민들의 말을 들어보니, 모두가 그를 칭찬하며 한없이 아끼고추대하였습니다. 또 듣건대 그가 금년4월에 고금도(古今島)로 들어갔는데, 모든 조치를 매우 잘하였으므로 겨우 3∼4개월이지나자 민가와 군량의 수효가 지난해한산도(閑山島)에 있을 때보다 더 많았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그의 재능이 남보다 뛰어난 줄을알았습니다." 

 이렇게 이순신이 원균을 모함했다는 말은 이덕형이 직접 확인해본 적 없고 원균의 말만 믿었던 결과이고, 이순신을 제대로 믿지 못하다가 나중에야 그가 남보다 뛰어난 걸 알았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즉, 이는 오히려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했다는 증거이니, 선조실록만 검색해도 알 수 있는 사실을 저자는 하지 않고 어설픈 책만 믿고 그대로 인용했다.

 이거 말고도 이 책은 잘못된 점이 허다하다. 일일이 다 지적하면 이게 너무 길어져서 못 쓸 정도다. 다른 시각에서 역사를 보는 건 좋은데, 그건 일단 사실은 제대로 정리해야 가능하다.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정리하지 못하면서 무슨 다른 시각을 가지며, 기존 역사학자들을 비판한단 말인가?

 이런 게 새로운 사실을 밝히는 역사책으로 인기를 얻는다니, 참담한 노릇이다. 저자는 국사교과서를 사정없이 까지만, 이 책을 읽고 역사공부를 할 바에는 그냥 국사교과서만 보고 끝내라. 그게 훨씬 바람직하다.

 

 

 

비평 2

 

▲ 백지원의 <조일전쟁: 세계 최강 해군국 조선과 세계 최강 육군국 일본의 격돌>(진명출판사, 2009)의 표지
백씨의 책들은 이처럼 교과서들을 상대로 하여 기성관념을 깨는데 주력했으므로 뒤집는 재미가 강하다. 문장도 쉬워서 술술 읽히는데, 다 본 뒤의 느낌은 찜찜하다. 본질적으로는 나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그런가? 생각나는대로 꼽아본다.
 
성리학에 대한 폄하와 증오로 일관되었는데, 조선에서 성리학이 왜 성행했는가는 밝히지 않았다. 고려 후기의 무신통치 폐단을 절감한 사람들이 그 해결법으로 인입한 것이 성리학이었고, 오랜 세월 상대적인 안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였는데, 그 역사적인 이유를 몰랐는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외면했는지 모르겠다.
또한 조선왕조가 망했어야 한다고 거듭 역설하지만 대안은 전혀 없다.
 
《임진왜란》이 아니라 《조일전쟁》이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으나 충분하지 못하다. 명나라는 참전하지 않았는가? 책에서는 명과 명의 장수들이 이순신을 찬양한 것 내놓고는 나쁜 짓만 일삼았다. 명 덕분에 살아났다고 떠들던 선조와 그 신하들과 정반대되는 방식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셈이다.
 
《최고》, 《최강》을 남용하는 한국식 풍토대로 조선 수군과 일본 육군이 《세계 최강》라고 단언했다. 싸움은 붙어봐야 아니까 비교와 논거가 부족한 주장은 인기나 좀 끌 따름이다.
 
또한 《조일전쟁》이라고 거창한 제목을 붙여놓았으나, 싸움의 상당한 부분은 다루지조차 않았다. 예를 들어 의병투쟁만 보더라도 남부의 의병들은 잠깐 거들었으나, 북부의 의병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북부에서의 의병싸움이 치열했는데도 말이다. 이런 식으로 역사를 다루면 위험하다.
 
백성 편에서 보노라고 썼노라고 거듭 선언했으나, 정작 백성들의 삶은 별로 없다. 결국에는 엘리트의식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1882년의 임오군란을 다룬 대목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폭동을 일으킨 군인들은 점점 숫자가 불어나 1만 명에 이르렀다. 물론 다 군인은 아니었고, 그런 판에 끼어서 밥 먹는 애들도 제법 섞여 있었다.
요새도 촛불집회다 뭐다 하면 데모를 업으로 하는 양아치들이 때를 만나는 것 아시지? 스타킹 뒤집어쓰고 각목 들고 나오는 인간들. 걔네들은 미국 와서 그런 걸 한 번 해봐야 한다. 여기 미국에서는 데모꾼이 각목 드는 순간 그대로 사망이다. 온몸이 경찰이 쏜 총에 벌집이 되기 때문이다. 죄명은 흉기에 의한 살상 기도로. 당연히 정당방위다. 아, 불쌍한 한국 경찰들.
》(《왕을 참하라》 하, 334페이지)
 
2008년의 미국산 쇠고기수입 때문에 일어난 촛불집회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인데, 이쯤하면 입으로만 백성의 편에 섰음을 잘 알 수 있다. 도무지 민심이 무언지 모른다. 또 자신이 미국에 있으니까 한국인들보다 많이 깨었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저자의 입장과 생각에 허점이 수두룩하다.
 
사실 저자의 눈에는 조선의 모든 것이 문제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상모델로 일본이 나타난다. 일본의 모든 것은 조선에 대한 침략을 내놓고는 다 아름답다. 조선도자기공들을 끌어다가 부려먹은 것도, 사무라이들의 싸움법도, 심지어 밥을 적게 먹었다는 것까지 찬미의 대상이다. 반대로 조선사람들은 손재간이 좋다고 인정했을 정도였지 옷차림부터 시작해 뭐나 비난의 대상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조선 사람이 가장 밥을 많이 먹었다. 정조 때(조선 22대) 중국에 갔다 온 홍대용은 “그쪽 밥그릇이 꼭 찻잔만 하더라”고 했고, 인조(조선 16대) 때 일본에 다녀온 김세렴은 “왜인들은 한 끼에 쌀을 두어 줌밖에 먹지 않더이다”라고 했다. 조선 사람들의 식사량이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여 엄청났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동아시아에서는 조선을 ‘대식국’이라 불렀다. 이런 식습관이 박통 때까지 가난을 면하지 못했던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였다.》(《조일전쟁》, 89페이지)
 
홍대용이 사신행차에서 만난 청나라 귀족들은 기름진 음식을 먹었으니까 식사량이 적었을 수 있다. 허나 보통 중국사람들의 식사량은 엄청 컸다. “찻잔만 하더라”가 근거로 되기는 너무 빈약하다. 또 밖에서 조선을 《대식국》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정말 있는지는 필자가 보지 못해 단언하지 못한다만, 중국 역사책들에 나오는 《대식국(大食国)》은 당나라 때부터 아랍제국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식사량과 상관없이 음역이라고 한다. 또한 밥을 많이 먹었기에 가난을 면하지 못했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저자가 그처럼 찬미한 일본은 사람들이 조금씩 먹었다면서도 오랜 세월 대부분 사람들이 가난하지 않았던가.
저자의 비하는 민족허무주의에 가까운데, 워낙 단일민족주장을 신화로 매도하였으니 그 논리자체는 이해된다. 하지만 급작스런 비약들은 참 황당하다.
 
우리 민족의 피는 크게 셋으로 나누어 한족(한반도인)과 예맥족 그리고 여진족이다. 그러나 그 외 에도 수많은 전쟁을 치루면서 중국인과 일본인의 피가 섞여 완전 짬뽕이 되었다. 그런데도 우리가 주변국에 비해서 전혀 떨어지지 않는 것은 혼혈의 우성이 유전되어 내려왔기 때문이다.》(《왕을 참하라》 하, 478페이지)
 
우리 민족 깊숙이 내재되어 있던 잠재력을 일깨운 인물이 바로 박통이었다. 그는 한국인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었고, 스스로의 능력을 시험해 본 한국인들은 그 뒤 무섭게 성장했다.》(《왕을 참하라》 하, 487페이지)
 
어떻게 혼혈의 우성만 유전되어 내려왔는지 설명도 없고, 또 그 우성이 있어도 이조시기에는 개판을 쳤으나, 박정희 덕분에 비약, 발전했다는 식이다.
《조일전쟁》에서는 박정희에 대한 찬미가 더 극열하다.
 
현대 인물 중 10대 위인에 들 수 있는 인물은 아마 박정희뿐일 것이다. 박통의 공과는 좀 더 후대에 평가되겠으나, 어쨌든 박통은 우리 민족의 정신을 일깨워 나태와 안일, 무기력에서 건져낸 다음 잠재력을 발휘케 하여 우리는 무섭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가난과 기근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지금 세계 10여 위의 경제 부국이 되어 있는 것이다. 역사상 쿠테타를 일으켜 가장 성공한 인물이 바로 박통이다.
근데 필자가 박통을 이렇게 평가하자 인터넷 상에서 여러 네티즌들이 반론을 제기했다. 독재자의 표상인 박정희를 어떻게 그렇게 높이 평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필자도 박통이 독재자인 것을 잘 안다. 그런데 반론을 제기한 독자들은 아마 배고픈 것이 무엇인자 잘 모르는 세대라 그러는 것 같아 충분히 이해는 한다.
》(《조일전쟁》, 268~269페이지)
 
박정희 덕분에 반도의 남반부에서 1970년대에 《보릿고개》가 없어졌으니 위인이라는 논리다. 그런 말은 한국인들에게서 꽤나 많이 들었다. 헌데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반도의 북반부에서는 1950년대 말이나 1960년대초에 벌써 《보리고개》라는 말이 사라졌는데, 김일성 수상이야말로 위인이고 영웅이라고 인정해야 되지 않는가? 단 북반부에서 석유에 기초하여 이룩한 화학비료화, 기계화가 국제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1990년대 중반부터 큰 차질이 빚어지면서 북반부의 농업이 한동안 고통을 겪었던 것이다. 지금은 국내자원이 풍부한 석탄에 의거해 재상승단계에 들어섰다고 보인다. 반도 남반부라는 제한된 범위만 보면서 나는 배를 곯아봤으니 아무개를 평할 자격이 있다는 논리는 너무나도 유치하다. 또 아무개가 사람들이 배불리 먹도록 했으니 어쩌고어쩌고 하는 논리는 인간을 물질만족에나 그치는 존재로 비하하고, 정신적인 수요를 너무 무시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리고 책들에 주해라고는 없기 때문에 견해들이 저자 자신의 연구결과인지 아니면 베낀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베낀 내용들을 소화하지도 않고 그대로 적었다고 보이는 부분들이 꽤나 된다. 학술에서는 제일 위험한 방식이다.
저자는 자기가 한자를 모르는 걸 아주 자랑거리로 내세우던데, 물론 한자, 한어를 몰라도 민족역사를 연구하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 헌데 원전을 해독할 줄 몰라 남의 책이나 뒤적거리며 베끼노라면 남이 틀리면 따라서 틀릴 수밖에 없다.
 
명나라 장수 진린(陳璘)이 이순신을 찬양한 말이 《조일전쟁》 363페이지에서는 《통제사는 경천위지지재(經天緯地之才)와 보천욕일지공(補天浴日之功)이 있습니다.》로 나왔는데, 371페이지에서는 《천하를 다스릴 만한 재주를 지녔고, 하늘의 해만큼이나 큰 공이 있다》로 나온다. 앞에서는 한자어를 그대로 적었고 뒤에서는 한글로 옮겼으나, 뜻이 완전히 틀렸다. 상세한 설명을 하자면 너무 길어지므로 문제가 있다는 점만 지적하는데, 하기야 이 정도 오류는 지금 한국의 역사학계에서 늘 범하는 상황이니 재미학자에게 너무 높은 요구를 제기하기 어렵다. 헌데 역사저서에서는 있지 말아야 할 시시한 오류들이 너무 많은 것은 저자가 학문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심각함을 말해준다.
 
서양이 어떻소, 일본이 어떻소 거들고 평하는 내용들은 필자가 잘 모른다만, 중국의 조선족공민으로서 중국과 관계되는 부분들에 나타나는 저질 오류들은 쉽게 발견했다.
《왕을 참하라》 하권에는 어떤 사람이 박제가와 친구들의 시문을 묶어 1776년 연경에서 《건연집》을 간행했더니, 그 책이 히트를 쳤다는 내용이 있다.
 
<건연집>을 본 청나라 문인 기전, 이조원 등이 감탄해마지 않으면서 물었다.》(《왕을 참하라》 하, 194페이지)
 
1776년이라면 청나라 건륭황제 시절이요, 그 시기 활약한 문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기윤(紀昀, 1724~ 1805)이다. 자인 효람(曉嵐)으로 더 잘 알려져서 근년에 소설도 나오고 드라마도 찍었는데 기효람(紀曉嵐) 하면 기지와 재치가 번뜩이는 인물로 알려졌다.
 
다른 문인 이조원(李调元, 1734~1803)은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으나 역시 꽤나 중요한 인물이었다. 원래 중국 옛사람의 이름을 거들면 한자를 넣어주는 것이 맞다. 그런데 두 사람의 이름 한자가 빠졌을 뿐더러 한 사람의 이름이 틀렸다. 필자가 아는 범위에서는 건륭시기에 《기전》이라는 문인이 없다. 잘못된 책에 근거했는지 아니면 빗보고 베꼈는지? 참고로 필자는 여태껏 기윤(紀昀)을 기균으로 알았고 또 한어로 《찌쥔》으로 발음했는데, 이번에 《균》자를 입력해 한자로 바꾸려다가 《昀》이 나오지 않으니까 사전을 찾아보고서야 한어발음은 《윈》이고 우리글음이 《윤》임을 알게 되었다. 그 뜻은 《햇빛》이었다.
 
저자의 더 심한 오류는 그럴려니 하며 어림짐작으로 휘갈긴(혹은 키보드를 두드려댄) 대목이다.
 
그의 아들로 역시 명석했던 옹정제도 방대한 <고금도서집성>을 간행했으나, 재위 기간이 13년에 그쳐 그리 큰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부친인 강희제가 61년이나 황제 자리에서 버티다 보니 아들이었던 옹정제는 그 동안 기다리다 지쳐서 거의 늙은이가 되었을 때 황제가 되었기 때문에 재위 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왕을 참하라》 하, 71페이지)
 
이는 지금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즉위 60돐을 앞두고 있는 판이라 왕태자 챨스가 예순이 넘도록 기다리고만 있는 것을 생각하고 쓴 것 같다. 그런데 강희(康熙)황제 현엽(玄烨)(1654~1722)은 7살에 즉위했다가 68살에 죽었고, 그의 넷째 아들인 옹정(雍正)황제 윤진(胤禛)(1678~1735)이 황제로 될 때는 44살이었다. 그가 57살 한창 나이에 급사했으므로 암살당했다는 설이 널리 퍼졌고, 20세기 말에 찍은 드라마에서는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지쳐서 죽었다고 그렸다. 중국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상식적인 내용이다. 사실 이런 경우는 명인사전을 한 권 뒤져보거나 하다못해 인터넷에서 검색을 한 번 해보아도 오류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백씨는 너무 쉽사리 추측했고 자신의 결론에 도취되었다. 그의 저서(?)들에서 중국 관련부분들이 거의 다 틀렸다면 좀 과장일까? 역사를 이렇게 경솔히 대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책을 더 쓰겠다고 선언했는데 정말 겁이 난다. 그 용기는 놀랍지만 아쉽게도 실력이 받쳐주지 못한다. 또 합치자라는 식이 아니라 쪼개자는 식의 주장들을 펴기에 결과적으로는 무익하다. 이런 책은 많을수록 해롭다. 필자야 이미 당했으니까 다시는 그의 책을 볼 리 없지만 그럴듯한 선전과 포장에 속을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마지막으로 19세기 말 일본이 갑오농민전쟁을 이용해 조선의 내정을 무력간섭한 대목을 어떻게 썼나 보자.
 
서울에 진주한 일본군은 조선의 내정개혁에 간섭하면서 새로운 내정개혁안을 강압적으로 제출했으며, 조정이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무력시위에 들어갔다. 일본 애들이 조선의 내정개혁을 요구하면서 내세운 논리가 참으로 웃긴다. 조선 내부의 정치, 사회 제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 언제든 내란이 다시 일어날 소지가 있으며, 이는 동아시아 평화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논리였다. 웃기고 자빠졌는 새끼들.》(《왕을 참하라》 하, 405페이지)
 
확실히 웃긴다. 헌데 주어만 바꾸면 지금 21세기 초반에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이 조선을 비난하는 말과 꼭 같은 논리가 아닌가? 어느 편이 더 웃기는가? 단 군력이 약했던 봉건왕조는 그 강도적인 논리를 배격할 힘이 없었으나, 《선군정치》를 내세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그 어떤 전쟁에서도 이길 힘이 있다고 공언한다. 반도 남쪽의 어떤 사람들은 북이 뻥만 친다고 비웃는다. 아직은 누구도 단언할 자격이 없다. 22세기, 23세기, 24세기, 25세기… 어떤 평가가 나올까? 후대들은 점점 총명해지겠으니까 경박한 결론이 잘 통하지 않으리라고 기대해본다.(2010년 10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