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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새벽의 우면산 등산길 4

두바퀴인생 2009. 2. 15. 21:57

 

 

 

새벽의 우면산 등산길 4

 

 

 

외등켜진 계단식 등산로

 

남부순환도로 건널목을 지나면 바로 올라가는 계단길, 우측편에 약간 경사진 길, 방배역 방향에서 올라가는 등산로 세 방향중에서 방배역 방향의 길에만 등산로에 가로등이 켜져 있다. 중간의 편탄한 등산로에 들어서면 어둠에 싸인  오솔길은 두려움이 몰려온다. 가믐이 계속되던 날씨가 어저께는 간만에 단비가 내려 온 산이 숨쉬기에 바쁜 모습이다. 나무들이 물을 빨아올리는 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지난 가을 알밤을 나에게 주던 밤나무도 새벽 어둠 속에서 열심히 수분을 습취하고 있을 것이다. 산새들도 잠들어 있고 조용하다. 남부순환도로 차량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어둠속에 시커먼 무언가 날 기다리는 듯 하여 흠짓 놀라기도 한다. 잘라 낸 나무 그루터기가 그리고 바위가 마치 멧돼지나 야생 살쾡이 같은 느낌이 들어 자주 놀라곤 한다. 굵은 나무 뒤에 무언가 숨어 있는 듯 하다. 혼백들이 밤새 놀다가 새벽이 밝아오자 놀던 자리에서 떠나는 듯 하다. 수 천 년 동안 이곳 우면산에서 목숨을 파묻은 혼백들이 무수히 많으리라고 생각되며 그들 중에는 억울한 죽음도 많았을 것이다. 그들의 육신은 흩어져 우면산의 나무가 되고 풀이되고 산새가 되어 곧 봄을 맞아히게 될 것이다. 

 

후라쉬 대신 아크폰2 대기화면을 켜고 어둠을 밝히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그러나 후라쉬 대용으로 사용하고 DMB기능이 있어  YTN뉴스와 아리랑 방송을 들으며 산행을 한다.반복된 뉴스가 거의 끝나면 아리랑 방송으로 바꿔 아침 뉴스를 들으면 귀가 좀 뚤리는듯 하다. 또 신.구약 성경칩이 내장되어 있어 가끔 성경도 듣는다. 

 

우리나라 휴대폰 시장의 요금매출은 약 22조, 가입자 4500만의 포화시장이다. 그동안 돈 많이 벌었던 대리점들이 요즘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다.신규가입이 줄면서 수입이 극감하고 있으며 판매점,써브점들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별의별 수단을 다 사용하고 있으며 폰 가격도 천차만별이며 약정방식도 다르다.인터넷을 포함한 중소형 대리점들 일부가 사기판매를 자행하고 있으며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짜,1원,1000원짜리가 절대로 그 가격에 판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세상에는 절대로 공짜가 없다. 공짜로 판매하지만 나중에는 기기값을 포함한 엄청난 요금을 부과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중고재생폰,재고폰을 처리하는 경우도 많으며 고장도 잦고 반품도 어렵고 해지도 어렵다. 나중에 따지지만  이미 계약서에는 싸인이 되어 있고 판매자는 말을 바꾼다. 증거도 없다. 새폰을 장만하다는 마음에 설명도 제대로 듣지 않고 설령 잘 들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수년만에 새로 폰을 사는 고객이 새로나온 폰에 대한 기능과 특성을 제대로 잘 알 수가 없을 뿐만아니라 수시로 달라지는 이통사 정책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휴대폰에 최신개역개정성경66권이 전부 내장된 휴대폰이 출시되어 새로 장만했다. 수십 명의 남여성우들이 각자 역활을 맡아 녹음한 것으로 영어성경,신.구 찬송가가 내장되어 있으며 장절찿기/보내기 기능,통독프로그램 기능,책갈피 기능,한영 전환기능,글자크기 조절기능 등의 다양한 기능이 있어 언제어디서나 읽고 듣기가 가능한 '모바이블'폰이며 '디지털바이블' 폰이다. 성장위주의 교회가 이제는 말씀위주의 교회로 거듭나기 위해서도 1200만 크리스천들에게 알맞는 디지털 환경 변화에 따른 시대의 흐름에 맞는 성경폰이다. 

 

오솔길 중간에 지름 20센티 정도의 잘 생긴 나무가 있어 그 나무에 등어리 부딪치기를 200번 하고 다시 오른다.

 

외등이 켜진 계단식 등산로에 들어섰다. 약 500계단이라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땀을 흘리면서 꾸준하게 오른다. 300계단 쯤 오르면 우측에 중간 약수터가 있다.가끔 새벽 등산을 온 사람을 만난다. 대부분 50~60대 이상으로 건강을 위해서 다니시는 분 들이리라 생각된다.그러나 산에 와서도 시끄럽게 세상 일을 토의하는 것은 아침 산행을 적막을 깨는 듯 하여 듣기에 불편하다. 대부분 친구들과 주말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산행 후에 등산로 입구 토속음식점에 들어가서 술에 취해 지하철을 타는 경우가 많다. 친구,카페모임,동창회,향우회,동기회,직장 등지에서 산행모임을 많이하는 요즘 추세이다. 직장도 없고 시간은 많으니 산행을 즐겨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점사 눈길 등산로 

 

약수터의 외등이 외로이 서있다.

 

어둠을 밝혀주는 빛처럼 고마울 수가 없다. 이 세상의 어두운 삶 속에서도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더불어 같이 살아가야 한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마찬가지로 힘이 강한 눔이 약한 눔을 지배하면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자손만대에 걸쳐 자신의 자손들이 번창하기를 원한다. 자신과 가족들의 호의호식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심지어 그들이 가진 재물까지도 빼앗아 간다. 그들의 말에 절대복종하고 노예처럼 군말없이 자기를 위해 충성을 다하도록 강요한다. 그래서 정복전쟁은 인류역사를 수놓았고 노예제도는 번창하였으며 흑인들은 검다는 이유로 동물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살아왔다.그러나 고대 로마나 고구려는 관용과 포용심을 보여주는 아량이 있던 나라들이다. 그러나 배신과 반역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응징하는 면모를 보여주었던 것도 그들 국가들이었다.

 

고대 로마는 기원전 400년 경부터 국가의 체제를 갖추면서 알렉산더 대왕 이래 세계 최강국이 된 그리스는 지중해 일대에 많은 식민도시국가를 건설하여 융성하고 있었으며 북아프리카 해안에는 무역국가로 카르타고가 강국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로마는 그러한 두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성장하고 있었는데, 결국 신생국가인 로마와 카르타고가 먼저 부딪치게 된다. 결국 기원전 약 200년 경부터 150년 동안 3차에 걸친 '포에니 전쟁'이 발발하고 '1차 포에니 전쟁'은 시칠리아 쟁탈전으로 로마가 승리하였고, '2차 포에니 전쟁'은 한니발에 의한 이탈리아 반도 기습전이었으며 '3차 포에니 전쟁'은 카르타고의 완전 멸망전이었다.

 

2차 포에니 전쟁 발발전, 당시 한니발은 이베리아 반도의 카르타고 식민지 총독이었다. 어린시절 총독으로 부임하는 아버지 를 따라 이곳으로 온 한니발은 해안가 전망좋은 총독관저에서 알렉산더 대왕의 전략.전술에 심취하면서 성장하였다. 이베리아 반도는 지하자원과 생산물이 넘쳐나면서 카르타고 본국에 막대한 부를 보태주고 있었다. 어느날 총독인 아버지가 식민지역을 평정하는 가운데 원주민과의 싸움에서 어이없이 전사하고 매형이 총독자리를 이어받았으나 얼마가지 못하여 집안 노예에게 살해되는 사고로 죽게되자 20대의 한니발이 카르타고 본국의 승인하에 젊은 나이에 총독자리에 오르게 된다. 한니발의 마음속에는 로마타도의 불같은 의지가 항상 꿈틀대고 있었으며 그는 식민지역을 평정하면서 군사력을 강화하여 로마 침공을 준비한다. 로마침공의 길은 로마의 동.서.남쪽은 지중해로 둘러싸여 로마 해군력이 지배하는 지역이며 접근이 용이하지도 못하고 해군력으로 먼저 제압해야 하나 한니발 입장에서는 해군력이 대안이 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오로지 알프스를 넘는 길 외에는 다른 방안이 없다는 결론이었다.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기로 하고 가장 적정한 군사력은 5만 명 정도로 예상하고 있었다. 카르타고로부터후방지원도 기대할 수가 없었다. 모든 보급과 용병들의 급료는 현지조달로 하는 방법뿐이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먼저 로마에게 시비를 걸게 된다. 한니발은 로마와의 평화조약을 어기고 '론' 강 근방 지중해 연안의 로마의 식민도시 '사간토'를 공격했다. 한니발이 사간토를 공격하자, 로마는 카르타고에게 사간토에 대한 침공을 중지할 것과 한니발군의 철수, 그리고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으나 카르타고는 차일피일 미루면서 응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천혜의 요새였던 사간토가 한니발군에게 수 개월간 저항하다가 결국 함락되고 말았다. 사간토 점령소식이 로마에 전해지자 로마 원로원에서는 카르타고와 결전을 결의하게 되고 군대를 징집하여 2개군으로 편성하여 1개군은 카르타고 본국을 치기 위해 시칠리아로 보내고 다른 1개 군은 한니발을 치기 위해 한니발의 본거지인 이베리아 반도로 출병시킨다. 한니발은 자신의 정예병과 북아프리카 기마민족,지역 원주민 등을 포함하여 이미 9만여 명의 병력을 국경선을 넘어 '론 '강을 향해 내륙 깊숙히 이동하고 있었다. 로마군 정찰대는 한니발군의 위치를 추적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으나 위치를 알 수가 없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로마는 한니발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 올 것으로는 판단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양군의 기병정찰대가 론 강 근방에서 우연히 조우하여 교전하게 된다. 이에 한니발군의 위치가 확인되었으나 이미 한니발은 론 강을 건너 알프스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로마 집정관은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을 것으로 판단하고 한니발을 추격할 것인지, 아니면 이탈리아 반도 북단으로 이동할 것인지를 고민하다가 본대는 이베리아 반도의 한니발 본거지인 식민지를 공격하도록 하고 자신은 일부 간부 병력만 대동하고 배를 타고 북 이탈리아로 신속하게 이동하여 남부 로마군이 신속하게 올라 오도록 원로원에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전문을 보냈다. 전문을 받은 로마 원로원에서도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 대군을 대리고 온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면서 한니발의 의도가 분명하지 않아 갑론을박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한니발은 론 강을 건너면서 수많은 병력과 코끼리가 물에 빠지고 강속으로 사라졌다. 또 그 지역 갈리아족의 거센 저항도 물리치고 알프스산록에 다다르면서 산악민족의 저항도 물리친다. 혹한의 알프스는 한니발에게 엄청난 고통과 시련을 주었으나 결국 고개정상에 도달하게 된다. 한니발은 고개정상에서 일장연설을 하는데, " 장병들이여! 저 남쪽을 보라! 저 곳이 바로 로마이다! ..." 라며 전병사들에게 로마 침공의 당위성과 결과에 대한 보상을 언급하면서 엄청난 금은보화와 노예, 식민지를 나누어 줄 것을 확신하는 연설을 하게 된다. 장병들은 함성을 지르며 사기가 충천되었다. 승리만이 그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고개길을 내려가면서 더 어려움을 겪는다. 이동간 결빙된 도로에서 미끄러져 계곡으로 수많은 코끼리와 병사들이 추락하는 소리가 들리고 그러면서도 강추위를 이겨내며 빙판길을 지나 드디어 로마 북쪽 평원에 도달하게 된다. 그동안 병력은 동사,추락,귀향,도망 등 거의 반 가까이 사라지고 4만여 명만 남았다. 한니발은 병사들에게 충분한 휴식시간을 주면서 그 지방의 갈리아족을 압박하고 회유하여 자체 병력도 보충하고 자치독립도 약속했다.

 

로마는 한니발군의 위치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로마 집정관이 직접 기병정찰대를 데리고 북쪽 평원지역을 정찰 중 우연히 한니발의 기병정찰대와 조우하게 된다. 갑작스런 조우전에서 로마 기병대는 단숨에 괴멸되면서 집정관이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되기 직전 어린 19살의 조가 스키피오에 의해 구조되어 도망을 쳤다. 어린 스키피오는 나중에 한니발과 마지막 자마전투에서 로마 집정관으로 승리를 장식한 장군이 된다. 보고를 받은 원로원과 전방에 투입된 다른 로마군 지휘관이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이미 로마는 카르타고 본국의 침공계획을 취소하고 신속히 병력을 북쪽으로 이동시키고 있었으며 예비병력을 먼저 투입하였던 것이다. 한니발이 로마군을 찿아 이동을 시작하자 로마군은 '포' 강 부근에서 한니발군을 맞아 1회전을 펼친다. 그러나 새벽기습전과 매복전에 의해 로마군은 여지없이 괴멸되고 만다. 그후 한니발은 가는 곳마다 로마군과 접전을 벌이며 남쪽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한니발은 로마군이 상상하기 힘든 방식으로 전술을 구사했으며, 5만여 병력으로 때로는 기습으로,때로는 매복으로,때로는 기만으로 로마군을 가는 곳 마다 전멸시켰다. 당시 로마군은 겨울에는 전투를 하지 않았고 봄이되면 다시 전투를 하는 신사적인 풍습이 있었으나 한니발은 겨울은 몰론 항시 로마군의 동태를 파악하여 움직임을 알고 있었으며 지휘관인 집정관의 성격까지도 면밀히 분석하고 있었다.

 

한니발이 이탈리아 반도 중부를 지나 내려오면서 민가를 불태우고 살육전을 전개하였다. 한니발은 자신을 뒤쫒는 로마군을 '트리메시아' 호수 근방 안개속 호수가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아침 안개속을 아무것도 모른체 뒤따르던 로마군 3만 명을 매복으로 전멸시키는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로마 원로원과 시민들은 경악하였다.수도 로마에서는 한니발이 곧 그곳을 침공할 것으로 생각하고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로마의 예상과는 달리 한니발은 수도 로마로 바로 진군하지 않고 다시 산맥을 넘어 동부 해안쪽으로 이동하여 남쪽으로 이동, 여러도시를 차례차례로 점령하면서 로마연합에서 이탈하도록 회유했다. 도시는 불바다로 변하고 물자는 탈취 당했다. 한니발 군사들은 금은보화를 너무나 많이 빼았은지라 지니기에도 양이 넘쳐나는 판국이 되었다. 한니발은 장병들의 금료를 대신하여 마음껏 탈취하도록 하였다. 로마는 점점 공포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었고 자존심이 상한 로마는 한니발과 결전을 준비한다. 한니발은 이탈리아 반도 남동부 로마군 군량미 집적소가 있던 칸내를 공략하였다. 한니발이 칸내지역에 있음을 탐지한 7만의 로마군은 한니발군과 상대적인 병력 우위를 내세우고 접전을 벌인다. 이 전투에서 한니발은 특유의 변형된 전술대형으로 전투를 벌여 로마군 7만여 명이 한니발 5만군에게 전멸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로마는 다시한번 경악하였다. 그후부터 로마군은 정면대결을 피하고 한니발군의 꼬리를 물고 따라 다니면서 견제와 저지,그리고 지연전술을 펴면서 한니발군을 반도 아랫쪽으로 몰아내려고 하고 있었다.

 

로마는 '로마연합'이라는 동맹체제를 이미 구축하고 정복지역의 자치권을 인정해주면서 문화와 전통도 인정해 주었다. 다만 생산물의 10% 세금과 병력동원만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추가적인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다. 정복지 족장,지배자,귀족들의 자녀를 로마로 보내 로마 귀족 집안에서 자신들의 자녀와 똑같이 양육하면서 로마인으로 키웠다. 정복지 출신들은 로마군에 입대하고 군대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면 발탁되었고 행정관,법무관,집정관 등으로 능력만 있다면 진출이 가능하였고 병력충원도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차출되었다. 당시 로마연합 전국가에서 최대 동원가능한 병력이 70만 명 정도 되었다. 한니발은 5만의 병력으로 가는 곳마다 승리하면서 로마군을 전멸시키거나 포로로 잡은 로마병사 중 로마인이 아닌 병사는 귀향시키고 로마인은 모두 땅속에 파묻거나 다른 나라에 노예로 팔았다. 그러나 로마군은 계속 충원되었다. 최고지도자인 집정관을 수십 명을 전사시켜도 새로운 집정관이 다시 나타났다. 당시에는 원로원 의원들도 전투에 참여하여 많은 전사자를 냈다. 가진자들의 솔선수범이며 국가의 위기에는 앞장섰다. 한니발은 로마연합을 깨뜨리기 위해 안감힘을 쏟지만 일부 도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한니발에게 순응하지 않았다. 수도 로마 남쪽 카푸아 근방에서 로마군이 배신도시 카푸아를 공격하고 있었고 한니발이 구원하기 위해 본대를 이끌고 로마군을 뒤에서 공격하였으나 견고한 축성진지에서 방어전을 전개하는 로마군을 격멸하지 못하고 대치하고 있던 중 본대로 하여금 로마군을 견제하고 있는 사이에 일부 병력만 대리고 북쪽에 있는 수도 로마로 향했다. 로마 성벽앞에까지 진출한 한니발은 성벽 주위를 천천히 돌면서 생각에 잠겼다. '공성전을 펼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점령은 가능하다. 그러나 로마연합의 병력이 퇴로를 차단한다면 로마성내에서 고립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로마를 점령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로마연합을 붕괴시키는 것'이 한니발의 목적이었다. 한니발의 아버지 '하스두루발'은 시칠리아 섬에서 로마군과 전투를 벌이다가 로마군에 밀려 카르타고 본국으로 철수를 하였던 것이며 카르타고에서 9살 먹은 어린 한니발을 신전에 데리고 가서 명세를 하게 했던 것이다. '반드시 로마를 패망시키고 승리하겠다는 것'을 신 앞에서 다짐했던 것이다.

 

공포의 대상인 적장 한니발이 성문 앞에 나타났다는 소식에 로마 시민들은 깜짝 놀랐다. 원로원은 긴급하게 예비병력을 동원하고 시민들과 같이 성벽으로 몰려갔다. 공포의 대상자가 바로 눈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화살 사거리 밖에서 백마를 타고 천천히 성벽 주위를 돌아보고 있는 한니발을 로마인들은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성벽을 한참 돌아 본 한니발은 다시 본대로 돌아가 군대를 이끌고 반도 남쪽으로 내려갔다. 한니발은 수도 로마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이다.

 

로마 원로원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승승장구하여 개선한 젊은 장군이며 집정관인 스키피오 장군의 강력한 건의에 의해 한니발을 이탈이아 반도에서 쫓아내는 방법은 카르타고 본국을 치는 방법을 검토하였다. 결국 원로원은 한니발이 건재하고 있는 본토문제가 더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스키피오 장군에게 시칠리아 섬에서 알아서 군대를 모집,편성하고 준비토록 하고 카르타고 본국을 치는 것도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승인하고 성패에 대한 책임도 지도록 하였다. 시칠리아 섬으로 간 스키피오 장군은 카르타고 본국의 정보를 입수하는 한편 선단을 준비시키고 병사들을 모집하고 철저하게 훈련시킨다. 한니발의 전략.전술을 연구하고 대비책도 강구하고 반복훈련을 시켰다.  한니발이 이탈리아 본토 남부에서 지내면서 별다른 위협이 없자, 결국 스키피오는 카르타고 본국을 공략하기 위해 로마군을 이끌고 북아프리카 해안에 상륙하게 된다.

 

카르타고는 로마군이 자신들의 본토에 상륙하자 무척 당황하게 되는데,자체 병력을 동원하여 대적하는 한편 긴급 전령을 보내 본토의 긴급상황을 알리면서 한니발 장군과 병력은 이탈리아 반도에서 신속하게 철수하여 본토의 로마군에 대응토록 하였다. 한니발은 카르타고 본국의 지시에 의해 이탈리아 반도에서 긴급하게 철수하면서 정예 1만 명을 제외한 나머지 병사들이 같이 대려가 달라고 애원하지만 활로 쏘며 배에 오르지 못하게 하면서 병사들은 모두 내버려두고 항구를 떠난다. 한니발은 그동안의 전과를 항구의 신전 기둥에 새기도록 하였다.

 

한니발은 카르타고에 도착 후 가능한 모든 병력을 차출하여 부대를 편성하고 로마군을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양군은 동맹국의 지원부대를 서로 빨리 연결하기 위해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북아프리카 중동부 지역 '자마평원'에서 로마군과 한니발군이 대치하면서 마지막 결전이 시작된다. 양쪽 장군은 양군이  약 5만 명이 서로 포진한 사이 중앙부 언덕에서 전투전 날 한니발의 제의로 같이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한니발은 이 전투의 성퍠를 이미 예견하였는지 모른다. 두 장군은 서로에게 자신의 국가의 당위성, 상대국가의 비도덕성, 불법성,잔인성,전투의 결과에 대한 판단에 대해 이야기 해 보지만 서로의 주장은 달랐다. 스키피오는 한니발의 잔인성을, 한니발은 어차피 질 자신의 군대와 전투는 무의미하다는 점을 강조하였으나 서로의 의지만 전달했을 뿐 면담으로 끝나고 다음날 운명의 자마전투는 시작되었다.

 

한니발군은 중앙전열의 80여 마리의 코끼리 부대와 양쪽 기병에 의한 양익포위 전술이었다.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은 한니발 장군의 전술을 익히 접해 온 자로 대부분의 로마 집정관과는 달리 한니발 장군의 예측을 빗나가게 하는 전술을 고안하여 코끼리 부대를 괴멸시키고 양익 기병을 제압하는 방안을 구상하여 부대를 훈련시켰으며 준비된 상태에서 결전에 돌입하였다.

 

전투가 시작되자 코기리 부대가 로마군을 향해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무서운 속도로 로마군을 향해 달려왔다. 로마군 보병부대는 기존대형을 신속하게 변형하여 코끼리 부대를 통과시키고 후방의 경보병에 의해 코끼리를 하나 둘 괴멸시켰다. 이어서 보병끼리 접전이 벌어지면서 한니발의 중앙부가 먼저 로마군 중앙보병과 접전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로마군은 한니발군에게 밀리면서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로마군은 교대로 병력투입을 하고 부상자를 후방으로 후송하는 등 전열을 재정비하면서 양익 기병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로마 양익 기병들이 한니발의 기병과 접전이 시작되었다. 로마 기병대가 한니발 기병대를 공격하자 급조된 한니발의 기병대는 시간이 지나면서 전의를 잃고 점점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지나자 한니발의 기병을 괴멸시킨 로마군 기병은 한니발군의 중보병 후미를 공격하게 되고 한니발은 사태가 불리해지자 이탈리아 반도에서 16년 동안 생사고락을 같이해 오던 자신의 정예병인 1만명의 중보병을 최종 투입하게 되지만 이미 기울기 시작한 한니발군은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었다. 자신의 정예병들이 무참하게 쓰러져 가는 모습을 물끄럼히 쳐다보던 한니발은 그들을 내버린체 수 명의 근위기병대만 대동하고 카르타고로 도주하게 된다. 

 

자마전투에서 한니발군이 패배를 하게 되면서 카르타고는 로마에 항복 하고 강화조약을 맺게 된다. 과거부터 로마는 조약을 위반하거나 약속을 져버리거나 적에게 동조하여 배신한 국가나 도시에 대해서는 반드시 응징하였는데,시칠리아나 이집트 같은 반역국가는 정복 후 속지로 만들고 크랜턴,카푸아,카르타고 같은 반역도시에 대해서는 살아 남은 자는 모두 노예로, 도시전체는 모든 건물과 구조물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땅을 갈아엎고 소금을 뿌려 황무지로 만들었던 것이다.

 

강화 후 로마는 한니발 장군을 처형하지도 않았다. 카르타고는 배상금을 내야했으며 조약에 따라 행동만 하도록 관망하였다. 한니발은 로마와 강화 후 6년동안 카르타고 재상으로 카르타고의 부활을 꿈꾸며 복구에 노력하였으나 정치에는 문외한이었던 한니발의 독단적인 통치에 반대파들이 대항하는 등 그에게는 고통이었다. 항상 로마에 대한 복수를 항상 마음속에 두고 있던 그는 소아시아 왕에게 로마에 대항하는 방안을 제안하게 된다. 한니발의 이런 기미를 알아챈 반대파들이 한니발을 제거할 목적으로 로마 원로원에 고발하게 되고 이 소식을 들은 로마 원로원에서는 사실여부를 가리기 위해 조사관들을 파견하게 된다. 조사관들이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니발은 야밤에 조국 카르타고를 탈출하여 소아시아로 도주하게 된다.

 

그후 로마 집정관으로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아프리카 누스'스키피오는 소아시아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파견되는데, 그곳 진중에서 스키피오는 그 나라에 망명하고 있던 한니발과 재회를 하게 되나 어떤말을 주고 받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떤 면에서 스키피오는 위대한 정복자이며 군인중에 군이이었던 한니발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후 한니발은 지중해 '크래타'섬에서 숨어지내다가 여의치 않자 다시 카스피해 근방의 로마 동맹국인 '비타비아'라는 나라로 망명하게 된다. 그곳에서 숨어서 지내던 그에게 공명심에 사로잡힌 일단의 로마군 장교가 그를 잡으려고 비타비아 왕에게 요청하고  한니발을 잡으려 갔다. 로마군이 온다는 소식에 위대한 정복자 한니발은 평소 반지속에 숨겨온 독을 마시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 해 병마에 시달리던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도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그들은 12살 차이였다.

 

로마는 법치국가였으며 관용과 포용성, 명예심,신사도,아량,진취성,평등성 합리성이 절정을 이룬 나라였다. 그리고 로마는 패배한 장군은 절대로 처벌은 하지 않았으며 다음 전투에 다시 나가 명예를 회복하도록 조처하였다. 로마가 2천년 이상 지속되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유점사 약수터 쉼터 

 

밝아오는 새벽하늘이 참으로 파르스럼하다.

푸르다는 것은 깨끗함을 의미한다. 새벽의 깨끗함은 오염된 자신의 가슴과 머리를 씻어주는 것 처럼 상쾌함을 주기 때문에 영혼과 육신에 신선함을 줄 수가 있다. 찌든 환경에서 육욕과 물욕이 생기듯이 새벽의  맑은 공기와 신선함은 암도,질병도 물리칠 수가 있는 보약이다. 산삼 한 뿌리식 돈 주고 사 먹는 바보들은 오래 살지 못한다.스트래스를 맏으며 아무리 영약을 먹어본들 소용이 없다.

 

강원도 철정에서 아홉사리고개를 넘어 가다보면 오미재 고개 못미쳐 상남면에 상남이라는 조그만 도로변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에서 오대산 쪽으로 찝차로 1시간 정도 산중 비탈길을 따라 들어가면 평편한 분지에 독립가옥 한 채가 나온다.

 

약 15년 전 이야기다.

중년부부가 그 집에 살고 있는데, 부인은 서울의 한 유명 대학을 다니던 사람으로 유신정권 때 운동권 골수분자로 활동하다가 수배를 받고 강원도로 이곳으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산속에서 같이 살게 되었는데, 어린 자녀들은 학업 때문에 춘천 친척집으로 보내고 그들 부부만이 깊은 산중에서 살고 있다 한다. 작전지역이라 부대간부들과 같이 5월 중순경 어느 일요일날 산나물도 채취할 겸 지역정찰 겸 방문했다.주인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산나물이 많은 곳을 소개 받고 닭백숙을 준비하도록 하였다. 산나물이 많은 곳으로 찿아들어가서 더덕도 캐고 곰취,참나물 등이 널린 평지에서 박과 삽겹살,된장으로 점심을 먹었는데 그 맛이 일품이라! 점심을 먹은 후 각자 한 베낭씩 나물을 채취하여 내려왔는데, 닭 백숙이 준비되어 있었다. 닭장은 없는데 닭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닭은 야산에 그냥 풀어서 키우고 있으며 공기총으로 잡는다고 하였다. 황기등 약초를 넣은 백숙은 맛이 일품이었다. 예쁜 부인도 세월의 풍상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인지 곱게 세월의 힘겨움이 보였다. 집 뒤편에는 방이 10개가 있는데 가족도 포기한 말기암 환자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부부는 그들을 돌보며 살고 있었다. 말기암 환자들의 가족들이 입소문을 듣고 연락이 온다고 한다. 이곳에 들어온 후에는 나갈 수가 없다. 전화도 승용차는 들어올 수가 없다. 공기는 맑고 나오거나 흐르는 계곡물은 모두 약수며 산행도 하고 같이 터밭도 일구고 나무도 하고 채집도 하며 근심걱정없이 주는 밥 먹으며 살다보면 몇 년 후에는 암덩어리가 언제 없어졌는지 완쾌되어 나간다고 하였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이라 자연과 더불어 마음편히 살아만 간다면 그것이 최고의 보약이거늘.... 

 

 

유점사 약수터 안내문 

 

이쯤 오르면 땀이 뽀송뽀송 흐른다. 삶의 독기들이 빠져나오면 상쾌한 하루를 맞이할 수가 있다. 아직도 이불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늦잠을 자면서 허둥지둥 출근하던 자신의 옛날 생각에 웃음이 나온다. 인간은 습관을 바꾸면 인생을 두 배로 살아갈 수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만약 1원= 1초 라면 이 중에서 당신은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아마 대부분 1초라는 시간을 선택할 것이다. 돈보다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초를 1원으로 가정할 때 하루는 24시간이며 돈으로 환산한다면 24시간*60분*60초=86,400원이 된다. 80세 동안 살아간다면 약 25억원이 된다. 그래서 인간은 태어날 때 하나님으로부터 약 25억원의 인생시간통장을 받는 다고 한다. 80평생을 기준으로 주어진 금액이다. 앞으로 평균수명이 더 늘어난다면 금액도 더 늘어날 것이다.

 

자신이 하루를 살아가는 가치가 86,400원이라고 생각할 때 1분 1초도 소홀하게 보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시간은 돈이다'라고 하지 않는가! 하루를 PC방이나 방구석에서 담배 피우며 게임에 몰두하여 시간을 보낸다면, 밤새 고스톱을 치면서 밤을 지샌다면, 저녖 늦게까지 음주오락으로 시간을 보낸디면 2배로 손해를 보게 될 것이며, 하루를 쉬면 직장 수입과 자신의 인생시간이 같이 없어진다.그래서 시간을 금쪽같이 사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침형 인간은 하루의 시간이 넉넉하다. 새벽등산은 건강도 유지하며 뉴스를 들으며 세상의 돌아감을 파악하고, 아리랑방송으로 외국어 실력을 높이고, 성경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영혼을 치유하고, 하루 스케줄을 생각하며 미리준비한다면 분명 남보다 한발 빠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누구나 하루 인생시간은 86,400원이 인출되어 하나님의 통장으로 자동이체 되기 때문이다.

 

유점사 약수터에 설치된 운동기구 

 

아마 수방사 어느부대가 관리하는 전투방카일 것이다. 출입문도 달아 놓는 등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는 방카이다.

 

90년대 초 육군참모총장 L씨가 취임하였다. 취임 후 지휘관 회의시 전군에 방카공사를 독려하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 전투력 준비는 전투진지를 실제 전쟁시 효율적인 방어가 가능하도록 구축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전투진지가 개념도 없이 구축되어 있어 전투력 발휘가 의심스럽다. 금년중에 전 부대는 각자 거점의 전투진지를 완벽하게 구축하라. 구체적인 지침은 별도  하달할 것이며 육본 검열결과 가장 불량한 사단의 사단장 1명은 반드시 보직을 해임시키겠다!"

 

" 모든 진지는 원거리 사격부터 사거리에 맞추어 사격구간을 정하고 진지전방에는 사각지역이 없도록 지면을 깍고 메우라.적이 은폐.언폐 가능한 곳은 모조리 없애라. 날개진지와 교통호는 물이 잘 빠지도록 구배를 주며 어디서던지 사격이 가능하도록 사대를 구축하고 수류탄 처지공을 만들어라. 적의 집중포화에도 보호가 가능하도록 교통호는 깊게 파라. 사격구역은 교차사격이 가능토록하고 야간사격에 대비하여 지가를 설치하고 탄창,탄약 등을 보관할 수 있도록 진지 좌우측에 벽면에 공간을 만들어라. 진지 후방 치중시설에 대해서 완벽하게 엄폐 및 경계진지를 구축하고 노출을 방지하고 위장을 철저히 할 수 있도록 하며 충분한 공간이 가능토록 하라. OP직 후방 7~8부 능선에는 산을 절취하여 긴급 후송용 헬기가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공간을 확보하라...."

 

이 지시가 하달되자, 전군은 비상이 걸렸다. 전부대가 진지에 투입되고 공사가 시작되었다. 장병들은 휴가도 자진반납하고 6개월, 1년을 산에서 기거하면서 피눈물나는 진지공사가 진행되었다. 지휘관을 포함하여 전부대원이 수염이 자라 산적같은 모습으로 총장의 현지방문을 안내했다. 육군에서는 실무점검팀을 전 사단에 내보내면서 각 사단은 전방진지,종심진지,축차진지 등 진지공사가 주요 관심사업이 되었다. 문제는 동원사단의 진지와 종심지역 축차진지, 그리고 2군지역 내륙진지,해안진지였다. 진지는 많고 인력은 부족했다. 암반 투성이인 고대산 담당 사단은 헬기로 폐타이어 수 십 만개를 공수해서 진지를 구축했다. 군부대들이 폐차장과 정비공장으로 달려가서 폐타이어 수집 전쟁이 벌어졌다. 2군지역은 관할지역 업체로부터 현금과 물자를 지원받아 교통호와 진지를 블럭,시멘트로 영구화 했다. 영구성은 있으나 충격흡수,파편 피해 문제로 실무자들 간에 갑론을박 했다. 그러나 병력이 없는 담당부대로서는 어쩔 수가 없는 대안이었다. 모래마대가 동이나고 공병부대 전장비는 공사보다 진지공사에 도쟈,포크랜이 투입되고 폭파작업도 병행되었다. 전후방 온 산천에서 엄청난 공사가 진행되었다. 년말이 되어서 각부대는 평가 결과에 따라 표창도 주어지고 포상휴가도 주어졌다. 그 해는 전부대가 진지공사에 전념하느라 군내 안전사고도 대폭 줄었다. 점검결과 사단장은 아무도 보직해임되지 않았으며 각 부대별로 총장 개인 및 부대표창이 무수히 내려갔으며 노고를 치하했다. 참모총장을 보고 하사같은 총장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나중에는 환경단체로부터 진지공사에 사용된 페타이어로 인한 환경오염문제로 지금까지 군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러나 현대전은 진지전이 아니다. 수시간만에 전쟁의 승퍠가 결정나는 현대전에서 지금 진지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고대 앗시리라 민족이 전차를 개발하여 지중해 강자로, 알랙산더대왕이 양익포위전술로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대로마제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한니발 장군, 수.당과 대적하며 승리로 역사를 기록하게 된 고구려의 철기군, 유럽제국을 휩쓴 나폴래옹의 속도와 집중,중앙돌파 전술, 몽고군이 마상 발걸이 개발,속도와 집중,마상궁수전술로 세계를 정복하였고, 1차대전의 가스전,전차등장, 2차대전의  비행기,대형 포술전,원자무기의 등장, 사막의 폭풍작전에서 미사일전,항공전으로 이라크군을 무력화 시킨 미군 등으로 발전을 해 왔다.

 

북이 도발을 한다면 녹쓸어가는 수많은 재래식 무기인 방사포,장사정포,항공기,스커드미사일,대포동 등으로 수도권을 무차별 타격한 후에 100만 대군을 밀고 내려올 것이다. 그러나 한.미군이 그들을 단숨에 무력화시킬 다양한 무기로 심대한 타격을 가할 것이고, 이 진지에 수방사 부대가 투입도 되기도 전에 서울은 불바다를 이룰 것이고 전쟁은 끝나게 될 것인지도 모른다.

 

 

 

유점사 약수터에서 내려 가는 길 

 

나무 사이로 사당역 방향을 바라 본다. 바쁜 출근시간에 차량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다. 오늘삶의 시작이며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나서는 사람들이다.

 

지금 시대는 정보화 시대,초고령 시대,상대적 빈곤감,평생직장도 평생회사도 없어지는 현실이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타지 못하고, 살아온  지난 시절의 고정관념에 빠져 변화를 두려워하면서 안주하려하시지 말고, 지금 당장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낙오자로 남을 수 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변화는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찿아오는데,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를 잡을 수만 있다면 자신의 미래는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언가 변화를 시도해야 될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본인 스스로 이를 악물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간판이 아무리 좋아도 취업이 되지 않는 시절이며, 노동이 점점 컴퓨터,로봇,인터넷의 확장으로 영역이 좁아지면서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정규직보다 임시직이 확산되고 있으며 그 임시직도 평생보장은 켜녕 언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신이 가장 잘하고 관심이 있는 일, 또 하고픈 일,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그것을 선택해야 한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한다는 주관이 없는 인생길, 그런길은 반드시 언젠가는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예측하고 미래에 도래할 아이템을 선정하여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잘 할 수 있다면 그 아이템이 자신에게 가장 알맞는 아이템일 것이다. 

 

 

 

유점사에서 내려 가는 길

 

 

지금의 시대는 한가지 분야에서 전문가를 원하는 시대이다.

 

대표적인 분야로 환경/재활/미용/보건,로봇 기술,통신기기/휴대폰/게임,컴퓨터 고장수리,프로그램 제작,재난/구조,교통/제어,간호/간병,NGO/선교활동,인재/인력관리,경비/용역,택배/물류 등 전문 분야로 간다면 지금부터라도 바닥부터 출발해서 자신이 가고픈 길을 가면서 최선을 다한다면, 그래서 그 분야에서 최고만 된다면 평생직업으로 당당하게 살아가실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낮추고 남들과 다른 사고로 틈새분야를 잘 살펴 미래를 내다보시고 길을 선택해야 될 것이다.

 

변호사,세무사,회계사,변리사,의사 등 우리나라 직업군에서 전통적인 강세를 보여주었던 전문분야도 이제는 모두 완전개방되면서 외국의 선진용역기술과 경쟁을 하여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앞으로 하나 둘 사라질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경제적인 능력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세상이다. 내가 잘되면 주변의 사람들이 모여들지만 내가 없으면 혈육도 친척도 이웃도 나를 멀리 하게 된다.  사람이 근본적으로 사람이 나쁜 사람은 없으나 모두가 환경에 따라 인간은 변하기 때문이다!

 

천리길을 무거운 짐을 싣고 가는 노새처럼 평생 노에같은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처럼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

   

내려가는 오솔길 옆 숲 속에서 부시럭 거리는 소리가 들여 돌아보았다. 아마 작년에 부화한 장끼 두 마리가 서로 영역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아직 깃털 색상은 붉게 변하지 않았으나 벌써 영역다툼을 벌이는 모양이다. 꿩은 지역이 나누어 한마리가 두 마리의 암꿩을 거느리고 살고 있었다. 능력있는 눔은 두마리, 능력없는 눔은 한 마리의 암꿩과 같이 다닌다. 사람이 지나가도 별로 무서워 하지 않으며 발걸음이 빠르다. 날씨가 풀리고 기온이 올라가니 벌써 나온 모양이다. 겨울내 굶주린 배를 열심히 채우고 있었다. 

 

 

 

고개정상 방카진지, 좌우측 날개진지가 없이 엉터리로 구축되어 있다. 

 

인간의 능력은 힘이 아니라 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은 바로 돈이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가족도 친척도 무시하고 인간대접을 받지 못한다.평생 안정적인 일자리와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직장이나 직업이 최고일 것이다. 알바나 직장은 꿈도 없고 비젼도 없다. 200만 실업젊은이들이 길거리를 방황하고 있다.이 어려운 시대를 슬기롭게 살아갈 방법은 없을까?

                                                                                                   -서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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