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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좋은 책, 요약,그리고 비평

석유 전쟁

두바퀴인생 2008. 1. 26. 22:33

 

美ㆍ英 패권주의가 괴물을 키웠다
세상을 움직이는 검은 손 석유

검고 끈적끈적한 침전물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석유라고 불리는 이 침전물은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등불을 밝히기 위한 연료 이상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미국의 재벌 존 록펠러가 1870년에 세운 스탠더드석유회사도 처음에는 석유에서 의학 치료제를 찾아내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100여 년 만에 석유는 세상을 움직이는 `검은 손`으로 거듭났다.

20세기 이후에 일어난 모든 전쟁과 분쟁, 경제의 흥망에는 석유라는 `검은 손`의 역할이 숨겨져 있다. 에너지 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엥달이 쓴 `석유 지정학이 파헤친 20세기 세계사의 진실`(서미석 옮김)은 석유를 통해 20세기 역사를 투영하고 있는 책이다.

석유가 처음 에너지원으로 관심을 끌기 시작한 건 1880년대 영국 해군이 차세대 연료로 석탄 대신 석유를 지목하면서부터였다. 당시 군함들은 대부분 석탄을 원료로 사용하던 증기선이었다. 석유를 사용하는 군함은 엔진 무게가 석탄 군함의 3분의 1, 작업 인원은 10분의 1이면 충분했다. 게다가 검은 연기가 나지 않아 적에게 들킬 가능성도 낮았다. 영국은 석유의 이점을 절실하게 깨닫고 제국 유지를 위해 석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다. 영국 정부는 정보부를 동원해 석유가 다량으로 매장되어 있는 중동지역에 하나 둘씩 식민지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촉발의 숨겨진 원인도 석유였다. 보통 세계사에서는 오스트리아ㆍ헝가리 제국의 황태자가 암살당한 것이 1차 대전의 원인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황태자가 암살되기 6개월 전 영국은 이미 독일에 물리력을 행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로 석유 때문이었다.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던 독일이 석유 확보를 위해 베를린에서 바그다드에 이르는 석유 수송라인을 건설하려고 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

1차 대전 이후 석유를 놓고 경쟁하던 미국과 영국은 동반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세븐 시스터스`(세계 7대 메이저 석유회사)에 속하는 엑손, 모빌, 걸프, 텍사코, 셰브런, 로열더치셸, 브리티시석유 등은 이때 두 나라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 회사들은 이때부터 전 세계 석유의 채굴과 정유, 판매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행사하기 시작했다.

석유 지정학이 파헤친 20세기 세계사의 진실 / 윌리엄 엥달 지음 / 도서출판 길 펴냄
석유거래가 어두운 곳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마파아처럼 변질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7대 메이저는 영국과 미국을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1962년에 일어난 `마테이사건`은 석유재벌들의 장악력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국영 석유회사의 사장이었던 마테이는 석유회사 카르텔을 통하지 않고 러시아와 이란에서 석유를 직접 수입하고 개발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그러나 1962년 그를 태운 비행기가 시칠리아 상공에서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비슷한 시기 로마 주재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책임자 토머스 카라메신스가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고 당시 CIA 국장이었던 존 매콘이 석유회사 셰브런의 주식 100만달러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미국 정부는 `국가안보에 관련된 사안`이라는 이유로 진실을 끝내 밝히지 않았다.

몇 차례의 오일쇼크를 겪으며 거대 석유회사들은 더욱 큰 이익을 얻으며 강해진다.

미국이 이스라엘과 중동 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온 것도 석유 때문이었다. 이라크전 역시 무관하지 않다. 정유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는 미국은 다른 나라가 석유를 대신할 핵에너지를 개발하는 것에도 개입한다. 핵에너지 개발을 반대하는 환경운동단체에 미국의 금융기업과 석유재벌들이 거액의 기부금을 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 석유전쟁은 중국 일본 러시아까지 뛰어들어 점입가경으로 흘러가고 있다. 수단 군부에 의한 양민 대량학살 사태가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종식되지 않고 있는 건 수단을 석유 확보의 중심에 두고 있는 중국이 직ㆍ간접적으로 무기를 공급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석유는 전 세계인들의 희로애락을 좌우하는 `끈적한 침전물`이 되어가고 있다.



[허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