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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좋은 책, 요약,그리고 비평

'나쁜 사마리아인들'

 

'나쁜 사마리아인들'

 

 

 

아시아 속의 유럽국가인 호주에게 동아시아는 애증의 대상이다. 사진은 지난 9월 호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존 하워드 호주 총리가 회원국 정상선언을 발표하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성서, ‘누가복음’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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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장준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켐브리지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이래 켐브리지 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2003년에 신 고전학파 경제학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뮈르달 '상 수상, 2005년에 경제학과 지평을 넓힌 경제학자에게 주는 '레온티에프' 상을 최연소 수상하여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주요저서로는 <사다리 걷어차기>, <개혁의 덧>,<쾌도남마 한국 경제>,<국가의 역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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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이란 누구인가?

작가는 성경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좋은 사마리아인들에 비하여 현재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경제 대국과 그들 부자 나라 정부들의 협력체에 의하여 추진되고, 주로 그들에 의해 통제되는 '사악한 삼총사' 즉 'IMF, 세계은행,세계무역기구'를 지칭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다국적 기업과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여 강대국의 정치.경제 폭력을 휘두르는 미국을 비롯한 부자나라들을 총칭하고 있다.

 

부자 나라 정부들은 원조 예산과 자국의 시장 접근권을 내세우며 개발 도상국들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채택하도록 유도하고 있는데, 이는 때로 특정 기업들에게 이익을 주는 목적도 있지만 대개는 관련 개발도상국들 내에 외국 상품과 외국인 투자 일반에 대한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는데 목적이 있다. '사악한 삼총사'는 차관을 얻으려는 개발도상국에게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채택한다는 조건을 부가하는 역활을 수행하고 있고, 농업이나 섬유와 같이 부자 나라들이 취약한 분야가 아니라 부자 나라들이 우위를 점하는 분야에 자유 무역의 원칙을 정립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들 부자 나라 정부들과 '사악한 삼총사'들은 고도로 훈련된 일군의 이론가들? 지지를 받고 있는데, 그 이론가 중 일부는 자유시장 경제학의 한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정책을 권고할 때는 그런 한계를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조직과 개인들은 이런 식으로 돈과 권력의 후원을 받는 막강한 선전 기관, 금융과 지식의 복합체를 조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제 발전의 원동력은?

한국은 1910년부터 시작된 일제 식민 통치 후유증으로 인해 1945년 당시만 해도 78%에 달하던 문맹률이 1961년까지 29%로 끌어 내리는 능력을 과시하였으나 정치.경제적인 실패로 나머지 모든 분야에서 한국은 완전 무능력자로 인식되어 미국의 대외원조기관인 국제개발처는 한국을 '밑빠진 독'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러자 1950년 발생한 한국 전쟁은 3년 사이에 4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제조업 50%, 철도 75% 이상 파괴되었으며 전 국토가 초토화 되다시피 하였다.

 

현재 세계 수위의 휴대폰, 반도체, 컴퓨터 수출 업체인 한국의 기업 삼성은 해방되기 7년 전인 1938년에 어류, 채소, 과일 수출 업체로 출발했다. 1950년대 중반에 뛰어든 제당, 섬유 사업은 1970년대까지 삼성의 주요 사업이었다. 1974년 삼성이 한국 반도체 주식의 50%를 확보하면서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 당시 이를 진지하게 눈여겨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삼성은 1977년 이전까지 컬러 TV조차 생산하지 못하던 회사였으며, 1983년 독자적인 칩을 개발하여 미국과 일본 기업이 지배하는 반도체 산업에 도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을 때, 그 말을 곧이들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1961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82달러로, 당시 가나의 179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였으나 지금은 그당시의 15배 이상 증가하였다. 이와같은 소득을 달성하는 데 영국은 2세기, 미국은 1.5세기가 걸렸다.

 

박정희는 1961년 쿠테타로 권력을 장악하고, 대통령으로 출마하여 세 번 연속 당선되면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한국의 경제를 선도하는데 성공한 것이 그의 연속 당선을 가능하게 하였다. 박정희는 유신헌법과 집권연장이라는 초강수를 두면서 1973년 중화학 공업을 야심차게 강행해 나갔다. 월남전에 참전하고, 광부와 간호사를 서독에 파견하여 외화를 벌어 들이고, 미국의 조종으로 한.일 양국은 대일협상으로 유.무상 차관을 끌여들여 포항제철소를 만들고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등 중화학 공업과 기간 산업 육성에 심혈을 기울여 경제개발을 착실하게 추진한 결과 1972년에서 1978년 사이에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5배가 넘는 놀라운 증가를 기록하였다. 수출도 점차 빠른 속도로 증가하여 수출 총액이 9배로 늘어났다. 모두들 터무니 없다던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목표는 계획보다 4년이나 일찍이 달성되었다. 

 

물론 한국의 경제 기적에는 부정적인 요소도 존재했다. 시골 농촌이 젊은이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도시 공장의 노동자로 도시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가운데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젊음을 송두리체 경제발전에 투자하였다. 도시에는 빈민가가 형성되고 달동네도 조성되었다. 사회의 다변화와 소득의 차이로 양극화 현상도 발생하였으나 부동산,경.중공업,수출 등에서 성장을 거듭하면서 대체적으로 국민들은 개인 소득이 증가하면서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1979년 10월, 박정희의 독재와 2차 오일쇼크에 잇따른 경제 위기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된 가운데 대통령이 암살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 뒤 짧은 '서울의 봄'이 이어지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이 용솟음쳤으나, 이런 희망은 1980년 5월 광주사태로 2주 동안 무장 민중 봉기를 진압한 뒤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의 군사 정권에 의해 한국 경제는 지속되었다.

 

1980년대 초반 한국은 이러한 암울한 정치적 좌절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는 중진국 대열에 들어섰으나 아직 부자 나라는 아니었다. 86 아세안 게임과 88서울 올림픽을 통해서 한국은 국제적인 위상이 격상되고 정치적 혼돈속에 민주화 문민 정권이 들어서면서 탄력을 받아 90년대의 고속경제발전을 이룩하였다.

 

한국은 1996년 부자 나라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하는 등 제법 살게 되었음을 은연중에 과시했지만, 그 행복감은 1997년의 금융 위기로 말미암아 크게 위축되고 말았다. 한국은 이 금융 위기 이후 과거의 성장세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주된 이유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의해 한국이 '자유시장 원칙'이 조건부로 제시되자 당장 국가 부도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그들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으며 그래서 그후 한국은 지나치게 열정적으로 자유사장 경제 원칙을 신봉하게 된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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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록거울> IMF금융위기 10년

연합뉴스|기사입력 2007-10-18 09:00 |최종수정2007-10-18 10:23

IMF 협상타결
IMF 협상타결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편집위원 = 그해 가을은 잔인했다. 애써 일궈놓은 황금들녘을 느닷없이 강탈당한 참담함이랄까. '부자입네' 하고 어쭙잖게 헛배를 내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된통 코가 깨지는 아픔이기도 했다. 성급히 앞문, 뒷문 다 열었다가 닭, 돼지, 소 등 금지옥엽처럼 여겨오던 가축들을 여우와 늑대에게 송두리째 빼앗겨버린 거나 다름없는 그해 늦가을이었다.

IMF(국제통화기금) 금융위기-. 벌써 10년 세월이 흘렀다. 한때 온 나라를 극도의 공포와 불안으로 몰아넣었지만 이제는 과거지사로 까마득히 잊혀진 느낌이다. 대혼란의 '쓰나미'가 밀어닥치기 한 달 전인 그해 10월도 지금처럼 평온했다.

있었다면 뭔가 불길한 전조랄까. 동남아 통화위기가 그것이었다. 1997년 7월에 불어닥친 태국발 통화가치 폭락사태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을 강타했다.

하지만 10월까지만 해도 그건 강 건너 불일 뿐이었다. 이 통화위기 '태풍'은 가을이 깊어가면서 동북아로 방향을 틀었고, 그중 한국이 큰 타격 속에 IMF 관리체제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설마했던 사태의 봇물은 정부가 11월 21일 "외환위기 타개를 위해 IMF에 2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지원을 공식 요청했다"고 발표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터져버렸다. 그리고 이튿날 김영삼 대통령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참으로 송구스러울 뿐"이라며 난국 타개에 힘을 합쳐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사실 당시만 해도 일반인들은 IMF의 정체를 잘 몰랐다. 그저 교과서에서 배운 국제기구 중 하나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달까. 그 IMF는 협상과정에서 혹독한 조건을 제시했고, 코너에 몰린 한국정부는 이를 고분고분 수용했다.

12월 3일, 미셸 캉드쉬 IMF 총재가 방한해 김 대통령을 만난 데 이어 협상파트너인 임창렬 경제부총리와 담판을 벌였다. 그 며칠 전, 미국 재무부 고위관리가 내한해 여러 요구조건을 내민 것도 IMF의 실체와 배후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이후 혼란상은 우리가 아는 바대로다. 1998년 초 몇 달 동안 하루에 100여 개의 회사가 줄도산했다. 부동산 가격 또한 폭락을 거듭했고, 금리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실업률도 급등해 몇 달 사이에 거의 세 배가 올라 IMF는 'I'M Fired(나는 해고됐다)'라는 자조섞인 별명으로 통했다.

정체를 드러낸 IMF는 할리우드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 나오는 무소불위의 정보기관 IMF(Impossible Mission Force)처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구원의 손길' 뒤엔 약육강식의 냉엄한 역학관계가 도사리고 있었고, 그 손에는 현실에 어설프게 대응한 대가를 치르라는 '지불명령서'가 들려 있었다. 궁지에 몰린 자에게 일방적 협약서를 내밀어 백기투항을 요구한 셈이다.

뼈아픈 IMF 관리체제의 위험성은 1993년에 정부가 단행한 금융시장 개방 때부터 내포돼 있었다. 미국 등 강대국은 자본시장을 열라고 압박했고, 정부는 치밀한 계획도 없이 덜렁 시장을 대폭 개방했다. 이어 '부자나라클럽'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해 개방속도를 더욱 높였다.

외적 압력과 내적 자만의 결과는 참담했다. IMF금융위기가 말 그대로 일시적 유동성 부족에 따른 통화위기였으나 IMF는 정부의 재정 및 정책 통제권 등까지 크게 약화시킴으로써 원하는 여건을 총체적으로, 신속하게, 그리고 공세적으로 조성해나갔다. 이른바 '자유 시장' '자유 무역'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권력을 무력화시켜 게임 자체를 강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일순간에 틀어버린 것이다.

무지와 오만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이처럼 가혹하다. 금융시장을 단기간에 대폭 열어제친 한국이 IMF 손아귀에 들어간 반면, 그러지 않은 중국과 대만은 '태풍권'에서 비켜날 수 있었다. IMF위기는 국내적으로 자본이 노동을 제치고 확고한 우위를 차지하는 계기도 제공했다.

장하준 교수(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지난 10년 역사와 현실에 대한 치열한 분석과 반성을 담고 있다. 장 교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주도해온 시장 만능주의가 숨기고 있는 '계산속'을 가차없이 들춰내 통쾌함마저 안겨준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동하는 IMF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자고 그는 주장한다. '부자나라들'은 개발도상국의 거시경제 안정과 성장을 보장하려면 IMF의 단호한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나 불행히도 IMF가 권장하는 거시정책들은 거의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도 나이에 따라 성장단계가 있듯이 국가 역시 저마다 발전단계가 있다. 초등학교 축구팀이 성인프로팀과 맞대결할 순 없다는 얘기다. 이를 간과한 채 강자가 요구하는 게임룰을 그대로 수용하는 건 파멸로 가는 초대장을 받아들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스스로를 과신한 나머지 섣불리 강자 또는 부자 행세를 했다가 회복하기 힘든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도 있다.

정작 자신들은 온갖 보조금정책과 보호관세, 규제강화에 기대어 개발도상국 단계를 졸업했고 지금도 일부 분야에서 그렇게 하면서도, 뒤따라 오는 개발도상국들에겐 그러지 말라며 '사다리 걷어차기'를 시도하는 부자나라들의 이중잣대 또한 주목해야 한다. 개구리가 올챙이에게 같은 조건에서 뜀뛰기해 승자를 가리자고 강요하는 격이랄까.

그리고 국가권력이 가져야 할 규제력과 조절능력의 중요성과 유효성도 다시 상기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시장에 대항하라'는 장 교수의 도발적 주장은 되새길 필요가 있다. 민간권력 주도의 자유시장원칙에 대한 지나친 신봉을 재고하자는 거다.

IMF금융위기 10년은 무슨 교훈을 남겼는가. 그 교훈을 얻기까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했는가. 양극화, 고용불안 등 IMF위기가 낳은 후유증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세계화의 첨병'으로 불리는 IMF가 "세계화가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며 사실상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보고서를 냈다는 최근 보도는 무얼 시사하는가.

한 번의 실수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같거나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는 건 용서할 수 없다. 맞닥뜨리는 현실을 차갑게 보고 내실있는 해결방안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더불어 다자적 기구인 IMF, 세계은행, WTO(세계무역기구)의 기본성격과 그 통제세력에 대한 면밀한 관찰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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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지역간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지역블록을 형성하여 개도국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개도국의 농업은 대규모의 중국 및 미국 평원에서 대량으로 재배되는 대량 곡물에 의해 개도국 농업 시장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한국의 농촌 또한 시장 개방으로 대부분이 쓰러지고 특수작물이나 고부가치 농작물로 전환을 서두르고 있으나 이미 농촌 인구의 격감으로 농촌의 생산력의 저하는 어두운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제12차 한.캐나다 FTA 협상 개최

 

지난 45년간 한국의 경제 성장과 그로 인한 사회의 변화는 실로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면이나, 수출량 규모나, 삶의 질 향상면이나, 영아 사망률 저하면이나, 개인 평균수명면에서 월등하게 성장하였으며, 이제는 정보.통신분야에서도 하이테크 강국으로 자리메김 하고 있다. 한국은 '아이티'가 '스위스'가 된 것만큼이나 진보를 이루어 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가능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단히 간단하다. 한국의 성공은 '자유 시장의 원칙'을 따랐기 때문이다. 한국은 안정된 통화 가치와 작은 정부를 갖추고, 민영 기업과 자유 무역을 토대로 경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외국인 투자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하여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경제학자들의 견해에 대하여 전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자유 주의 경제가 절대로 한국 경제 부흥에 적용된 원칙이 아니라는 견해이다.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의 예측이 빗나가고 적용된 이론과 정책이 다양한 변수에 의해 실패의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을 때를 대비하여 애매모호한 이야기로 '시장경제 원리에 맏겨야 한다'고 한다. 참으로 무책임한 답변이며 전문적인 혜안이 없는 이야기다.

 

작가는 한국이 경제 발전을 이룩한 것은 정부의 강력한 통제에 기인한다고 했다. 은행의 통제 및 은행을 통한 기업의 통제, 차관 도입 등 외화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 수출주도적인 강력한 수출정책 추진 등으로 시장 인텐시브와 국가 관리의 교묘하고도 실용적인 조합이 빚어낸 결과이다. 이러한 경우는 미국이나 영국 등 부자 나라들이 18-19세기에 취해왔던 자국 위주의 강력한 국가 통제 경제를 통해서만 가능하였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그들은 자국의 산업 보호를 위하여 보호 관세와 보조금을 사용하고, 외국인 투자를 철저히 차별했다. 이러한 방법들은 자유 주의 경제학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며, 현재 WTO 협정과 같은 다자간 조약에 의해서 크게 제약을 받고 있으며, 원조 공여자들과 IMF와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 금융에 의해 금지되고 있는 것들이다. 

 

 

부자 나라들의 위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 나라들은 자기들이 초창기 실행하였던 그러한 보호 정책을 지금은 왜 개발도상국들에게 시행하도록 권유하지 않는 것일까? 왜 자본주의 역사에 대해 꾸며 낸 앞뒤조차 맞지 않는 엉뚱한 이야기를 퍼뜨리고 있는 것일까? 

 

1841년 독일의 경제학자 '리스트'는 "영국이 자신들은 높은 관세와 광범위한 보조금을 통해서 경제적인 패권을 장악해 놓고서 정작 다른 나라들에게는 자유 무역을 권장하고 있다." 고 질타했다. 오늘날 부자 나라 사람들 가운데 가난한 나라의 시장을 장악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경쟁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자유 시장과 자유 무역을 설교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했던 대로 하지 말고, 우리가 하라는 대로 하라'며 '나쁜 사마리아인' 처럼 곤경에 처한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고 있다. 또 일부는 그러한 권장 정책이 개도국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은 먼저 자본주의의 세계화에 대한 진정한 역사를 사례별로 제시하고, 정통적인 지혜라고 일컬어지는 이론들을 뒤집기 위해 본격적인 경제 이론 과 역사, 당대의 증거들을 혼합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마지막 장에는 미래의 역사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는데 작가는 무척 암울하다는 비관적인 결론을 내고 있으며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선전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갈 경우 맞이 하게될 어두운 미래를 예견하고 있다. 그래서 세부적인 정책 대안에서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개도국을 도우기 위한 행동 지침을 정할 때 고려해야 할 원칙들이다. 마지막으로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변화시킬 수만 있다면 개도국의 경제 상황을 개선하는 것을 돕도록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낙관적인 기대로 마무리 된다.(끝)

                                                                                  -서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