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대의 흐름과 변화/좋은 책, 요약,그리고 비평

'뜻으로 본 한국역사 4'

 

'뜻으로 본 한국역사 4'

 

 

올라가는 역사 내려가는 역사

 

글워리 없는 역사

우리나라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누구나 다 같이 하는 탄식의 이야기는 글워리(사료 史料)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5천년 역사라면서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고려시대 와서 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몇 권이 있을 뿐이다. 그 밖에 글워리라고는 중국 문헌에 조각 조각으로 끼어 있는 것과, 이따금 가다 나타나는 유물들이 전부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본래 기록이 없지는 않았다. 단군이 신지(神誌)로 서계(書契)를 차지하게 했다 하였으니, 그때 이미 글자를 써서 기록을 했던 것은 사실이요, 삼국시대 와서도 고구려,벽제,신라가 제각기 모두 옛 기록이 있었다고 적혀 있으니 역사 자료가 없지 않았던 모양인데, 중간에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 이것이 다 고난의 역사의 한 단면이다. 기록이 없는 5천 년 문화, 이것이 바로 한국의 역사다.

 

우리 민족이 문화를 파괴하는 버릇이 많았다는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우연히 부득이 없어지는 것도 있겠지만 한번 판국이 바뀌면 전엣것은 싹 없애버리려는 나쁜 버릇이 있다. 경주의 태종무열왕비도 고려조에 와서 없어지고,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쓴 다음 그 참고로 했던 옛 기록을 싹 없앴다는 이야기도 전한다.그는 중국 숭배주의자이므로 그의 눈에는 예로부터 오는 말이나 생각이 모두 야(野)한 것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부끄럽다 하여 모두 한문식으로 고쳐버리고 그 남은 모습은 없애버렸다.그래서 옛일을 알려주는 것보다는 모르게 가려버린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니 이것도 역시 고난자의 비뚤어진 심리에서 나온 것이리니 한탄스럽다.

 

신화.전설의 시대

한민족이 처음으로 역사의 무대에 나타나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4, 5천 년전이다. 불완전한 기록과 전설과 유물의 사다리를 더듬어 역사의 망대를 추어 올라가면 기원전 2천 년을 훨씬 넘은 때에 가서 비로소 지평선 저쪽 아득한 가운데 희미하게 시작되는 한국 역사의 흐름을 본다.주위의 남들은 아직 원시 야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그들은 벌써 상당히 발달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단군이 나라를 세웠다는 연대는 반드시 그대로 정확한 것은 못 될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미루어 생각하건데 기원전 2300년쯤이라면 애급의 제4왕조 시대다. 단군이 태백산에 나라를 세우느라 바쁘던 때에 쿠프 왕은 저 유명한 대피라미트를 짓느라고 바빴는지도 모른다. 동양에서는 '요' 임금과 '한' 때라 한다.

 

근래 연구에 의하면 인류의 기원은 하나로 그 보금자리는 대략 중앙아시아 부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니, 이들은 아득한 옛날 거기를 떠나 천천히 동북으로 이동한 갈래일 것이다. 아마 파미르 고원을 넘어 동북으로 달리는 산줄기를 타고 나와 흥안령을 넘어 만주 평원에 들어온 다음 거기부터 차차 남으로 내려와 발전하였을 것이다.

 

한민족은 인종학에서 보면 몽고 인종의 한 갈래인데, 몽고 인종의 근거지는 파미르 고원이다. 몇만 년 전 여기서 인류의 분산이 생길 때 그 마루턱 동쪽으로 나온 것이 몽고 인종이요, 그 몽고 인종이 또 여러 갈래로 갈려서 아시아의 여러민족이 되었다. 만주까지 오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반도까지 여러 차례, 여러 갈래의 인종들이 내려오면서 군데군데 자리를 잡았는데, 부여.숙신.고구려.마한.진한.변한.예.맥 하는 것은 다 이것이다.

 

사냥에서 짐승치기로, 농사짓기로

그들의 생활은 곳곳에 나타나는 석기 유물과 고인돌로 확인이 가능하다. 중국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이(夷)라고 했는데,이는 대궁(大弓)인즉 큰 활을 쏘는 사람이라는 말이니 그것은 사냥질하는 살림에서 나온 것이리라! 정착 생활이 이루어지면서 가축치기와 농사짓기가 생활의 주를 이루면서 한 곳에 정착하게 되는 것은 큰 변동이다. 그래서 마을, 골이 생기고 골짜기에서 점차 발전하여 버렁. 벌로 나간다. 서러벌, 신라, 밀불, 달구벌, 서울 등은 이렇게 하여 생긴 이름이다. 인촌이 차차 배지면 저자가 생기고, 물질의 교통이 생기고, 사고 팔고가 시작되고, 연모를 만드는 바치가 생기고, 법이 생기고, 제도가 생기고,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가 생기고, 싸움을 하고 죄인이 생기고, 형과 옥이 생기고, 전에 없던 사람 사이에 계급이 생기고 종이 생겼다.

 

하나님 섬기기

종교는 다신교였다. 그 중에서도 주의할 만한 것은'하나님'이 독특하게 두드러진 지위를 가지는 일이다. 그 하나님은 기독교에서 보는 듯한 완전한 유일신은 아니나, 상당히 도덕적 성격이 높은 존재였다. 그는 천지의 주인인 동시에 민족의 조상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자손이라 믿었고 정치는 곧 그를 섬기는 일이었다.

 

하나님은 하늘과 관계가 있는 말이다.  하늘은 한울인지, 하날인지 그 분명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우리 나라 이름, 사람 이름의 '한'과 하나인 것이다. '한'은 '칸'인데, 수의 하나를 표하는 동시에 크다는 뜻이다. 그래서 '한'과 '칸'은 한 말일 것이다. 한자로는 한(韓), 한(汗), 환(桓)으로 썼으나 음으로 표했을 뿐이다. 이 '한'은 우리 정신생활의 등뼈다.

 

우리는 한 사람이요, 우리는 한 나라요,우리 문화는 한 문화다. 그리고 그것을 인격화해서 대표하는 것이 한님 곧 하나님, 환인(桓因)이다. 태백. 불칸은 산으로 이것을 표시한 것이다. 옛날의 종교는 산과 깊은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단군이 백두산에 내렸다는 것은 이것이요, 우리나라 곳곡에 백산, 태백산이 있는 것은 다 이 신앙의 중심이 되었던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 '한'을 하늘에서 표시하면 해다. 그러므로 태양신을 섬김과도 하나다. '밝' 혹은 '박' 사상은 그리하여 나온 것이리라. 후대의 유교,불교,도교가 들어오면서 이 하나님은 제(帝), 상제(上帝), 제석(帝釋)으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고, 기독교가 들어올 때는 그 유일신을 번역하는데 이것을 그대로 써서 하나님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님은 '홍익인간'하기 위하여 아들을 세상에 내려보내는 상당히 도덕적인 주재이기는 하나, 기독교의 하나님 처럼 양심의 깨끗함만을 위하여 엄격히 회개를 요구하는 하나님은 아니었다. 한반도를 하나로 하는 터전에 백두산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앉아, 인후군자의 기상을 가지고 홍익인간의 건국이상을 내세우는 데 아무도 나무랄 자가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잘 한다면 동양의 로마가 못 되었을까? 어떤 지혜로운 판단자라도 그들은 아시아 동부에 큰 나라를 세우고 거기의 주인이 되리라는 단정을 하기를 서섬지 않았을 것이다.(계속)

                                                                -서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