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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좋은 책, 요약,그리고 비평

'뜻으로 본 한국역사 2'

 

'뜻으로 본 한국역사 2'

 

 

 

지리적으로 결정된 한국역사의 성질

 

위치

한국은 북온대 중에서 아시아의 동쪽 바닷가에 있다.문명의 발달에도 좋고 생활하기도 좋은 북온대지역이 인류문명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아시아 전체중에도 동쪽 바닷가 교통이 편리하여 인문발달에 좋다는데, 우리는 그 복판에 자리잡고 있다. 이 점에서 보면 남이 부러워할 지경이요, 각별히 고난을 당할 이유가 없다. 위치는 그러한 위치만을 말함이요, 이웃한 다른 나와와 정치적인 관계를 가지는 관계적 위치가 있다. 이 고나계적 위치에서 볼 때에는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대륙 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이른바 중간적 위치에 있다. 이러한 위치로 5천 년 역사가 그저 억눌림과 빼앗김의 계속인데 그 원인이 적어도 절반은 이 관계적 위치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한반도 세 면에서 다가드는 세 세력에 두루 싸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서쪽의 중국과 북쪽의 만주와 동쪽의 일본이다. 이 위치는 다이나마이트와 같이 능동적인 힘을 가진자가 서면 뒤흔드는 중심이요, 호령하는 사령탑이요, 다스리는 서울 일 수 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가 일찌기 보여 주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억세지 못한자가 그 자리에 선다면 그때는 수난의 골목이요, 압박의 틈바구니이다. 우리는 불행히 그 뒤의 것이 되었다.

 

중국 본토는 하나의 거대한 풋볼로 생각하면 힘이 강대해져 바람이 잔뜩 들어가면 약한 부분으로 터지는바, 그 터지는 부분이 북으로는 내몽고요, 서로는 천산이요,남으로는 월남이요,동으로는 산해관을 거쳐 만주로 나가는 길과 산동반도에서 바다를 건너 조선이다. 그래서 중국의 힘이 강대해지면 우리는  그들의 쳐들어옴을 면치 못했다. 부여시대로부터 이조에 이르기까지 그랬다.

 

다음에는 만주에서 예로부터 사나운 여러 민족이 드나들었다. 그리고 그기서 일어난 자는 반드시 조선반도로 남하를 하였다. 만주에서 일어난 자가 남쪽으로 내려오는 것은 자연의 형세다. 우리 단군조선이 남으로 옮긴 것이 그때문이요,거란,금,청,몽고가 그랬다. 그들이 조그만 반도를 먹자는 것이 아니라 욕심은 어느 눔이나 중국 평원이나 정략상,군사상 한반도를 놓아두고 중국 본토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번번이 그렇게 화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일본 열도를 살펴보면 동북에서 서남으로 뻗었는데, 그 중심은 중부에 있다. 중부에 압력을 가하면 자연 두 끝으로 나가는 수 밖에 없는데, 그 위 끝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요, 아래 끝은 이른바 일위대수를 건너 한국에 대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선 자리다. 이러한 자리에서 고난을 아니당하려면 억센 민족이 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섭리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역사는 고난의 역사가 되었다.

 


중국에선 천자()만 독점했던 ‘하늘의 후손’이라는 제왕관과 중화질서와 차별되는 독자적 천하관을 보여 주는 고구려의 역사 기록이 적힌 동양 최대의 비석 광개토대왕비.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세

 섭리가 반도에 강한 민족을 두지 않았다 했지만, 반도의 지세를 보면 큰 민족을 길러낼 수가 없다. 넓은 들과 큰 강이 없슴이다. 우리나라는 삼천리가 다 들판이라고 하더라도 크다할 것이 못되는데, 그 중에도 8할은 산이요, 들이라고는 김제평야가 기껏이다. 들도 없지만 큰 강도 없다. 예로부터 큰 강 언저리에 발달하는 것은 역사상 환하다. 냇물이 없는 평원은 죽은 평원이다. 우리나라의 큰 강이라는 것이 압록강,대동강,한강,낙동강이 있으나 중국의 양자강이나 미국의 미시시피 강 등 그들의 큰 강에 비하면 조그만 지류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큰 민족을 길러내기에 조건이 맞지 않는 땅인데, 반면에 항구가 많다. 항구라는 것은 세력이 드나드는 문이다. 반도의 북쪽 민주 땅은 막막한 평원에 도무지 문이 없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만주와 한반도는 서로 돕는 관계에 있다는 결론을 내릴수가 있다. 만주 대륙은 밥먹는 곳, 힘 기르는 곳이요, 바다는 힘내 쓰는 곳,재주부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만주 평원은 한반도라는 출입구를 얻어서만이 발달 할 수 있는 것이요, 한반도는 만주라는 배경을 얻어서만 뿌리를 박고 안정할 수 있다.

 

기후

기후가 문화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우선 의식주 생활지표를 마련해주는 데서 그러하다. 다음은 건강에 주는 영향이다. 열대지방이나 추운지방의 민족이 힘을 쓰지 못함은 바로 기후 때문이며 문명한 나라는 따뜻한 온대지방의 민족이다.문명을 낳은 것은 37도 체온이다. 다음은 정신에 주는 영향이다. 따뜻한 기후는 경쾌한 사람을 내고 북쪽의 기후는 무겁고 뚝뚝한 성질을 길러준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온순하고 인후한 성질은 이 기후의 영향이 많을 것이다. 고구려 사람에게 있던 그 씩씩한 기상은 그만 다 없어지고 �을 수 없게 된 것은 만주,시베리아의 바람을 못 쐬고 반도의 잔잔한 날씨에만 살게 된 데서 왔을 것이다. 겨울의 삼한사온 날씨는 따뜻한 온돌에 잔등을 땅에 대고 일어나기를 싫어하게 되었음에서일까? 당장의 고난을 떨치지 못하고 내일이나 내일이나 하고 기다리는 사람에 들어맞는 기후라 할 것이다.

 


무주 적상산 가을 풍경
무주 적상산 가을 풍경

 

경개

경개란 산천의 자연미를 말하는 것이다. 반도의 산수풍경은 고함치고 속삭이며 노래하는 시냇물 소리 그대로가 하나님의 음성이요, 바위 빼어나고 숲 우거진 봉우리 그대로가 하나님의 몸이다. 그 나라의 산수풍경이 그 민족의 정신생활에 주는 영향은 한없이 큰 것이다. 인물이 산천에서 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풍수설이라 해서 산수를 죽은 사람에 맡길 생각을 말고,산천정기를 죽어서 받을 생각을 말고 살아서 살림으로 그것을 받고 그것을 맛볼 생각을 하였더라면 벌써 살았지!

 


                                                          금강산 전경

 

스위스 사람들은 알프스 영봉에서,노르만 민족은 북해의 물결에서,인도교,불교의 인생관도 대설산에서,민주주의,공명정대,호담분방한 것은 그 프레리,나이애가라에서 키웠지 이런 좁은 한반도에서는 키울 수가 없었다. 산이 그렇지 바다가 그렇지, 어디 가도 시냇물의 음악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언제 하늘을 우러러 보아도 늘 파란 하늘을 볼 수 있고, 늘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다. 어느 웅덩이의 물을 떠 마셔도 다 달고 가슴이 시원하고, 어느 잿배기의 바위를 만져도 다 묘하고 혀를 차게 한다. 금강산을 세계의 자랑거리라 하지만 금강산뿐일까? 간데 마다 시요, 그림이다.

 

이렇게 아름다운데 한가지 결점이 있다. 경치가 온하고 화한 경치다.평화의 분위기며 어디를 보아도 살벌한 기상을 머금은 곳은 없다. 온화가 무엇이 나쁘며 평화가 무엇이 잘못이오라만 패기 하나 없는 것이, 씩씩한 기상이 적은 것이 한이다. 날카롭지 못하며 규모가 크지 못하다. 맑은 건 좋은데, 바닥이 너무 들여다보이고, 밝은 건 다행인데 그윽하고 엉큼한데가 너무 없다. 이름도 조선(朝鮮)이다. 조선이란 우리성격을 잘 나타낸다. 영어로 '고요한 아침의 나라'이며 캄이요,조용이요,고요이며, 밝고 맑음이다.

 

 

우리나라는 정온(靜穩)의 나라이다. 초당에 아침 햇볕이 든 것을 드리면 상징이 될 것이다. 장(壯)도 엄(嚴)도없으며 호탕도 분방도 없다. 유현도 부족하고 격렬도 모자란다. 시베리아와 몽고를 휩쓸고 넘어오는 하늬바람도 흥안령 불칸산을 넘어오는 동안에 그만 기운이 꺽였고, 태평양, 동지나해의 사나운 물결도 일본 열도 다도해를 거쳐 동해, 황해로 들어오노라면 벌써 그 이빨이 다 빠졌다. 산은 다 노년기의 산으로 남화산수를 보는 듯한 산세요, 바다는 모두 내해이므로 큰 물결을 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아서 어디까지나 평화의 기분을 자아내는 점잖은 경치지, 진취의 기쁨을 불러일으키는 도발적인 것이 못된다.

 

이것이 우리 역사를 고난의 역사로 마련해놓은 또 하나의 조건이다. 이 점에서 조선은 만주와 떨어져서는 안된다. 둘은 서로 도와주어야 하게끔 서로 모자란 데가 있다. 서로 다르니 서로가 필요한 까닭이요, 하나가 되어서만이 너도 살아나고 나도 살아날 수 있는 점이다.

 

둘을 비교하면, 만주는 어디까지나 호대(浩大)인데 한반도는 어디까지나 가려(佳麗)다. 저것은 통일인데, 이것은 분산이다. 하나는 일망무제의 들에 해가 지평선에서 떠올라 지평선으로 잠기는 곳, 흑룡강 하나가 통틀어 다스리는 곳이요, 하나는 올망졸망한 산 사이에 열리는 손바닥 같은 들에 봉우리가 해를 뱉고 물결이 달을 삼키는 곳, 갈래갈래의 골짜기가 웅크리고 앉은 곳이다. 만주는 이런바 호마(胡馬) 삭풍(朔風)에 장시(長嘶)하는 나라, 무용의 땅이요, 영웅의 터전이다. 한국을 불러 금수강산이라는, 문(文)의 나라, 지(智)의 나라다. 먼저 것은 뒤에 것을 얻어 그 야(野)를 씻고 조(粗)를 닦아야 할 것이요, 뒤엣것은 먼저 것을 두어 그 소(小)를 보태고 그 약(弱)을 길러야 할 것이다. 뿌리를 북원에 박고 꽃을 남에 피우자.  

 


 

보배를 두고도 쓸 줄 모르면 망한다. 우리나라 처럼 아름다운 경치가 세계 어디에 있는가? 금수강산(錦繡江山)이 아닌가?  그러나 이러한 금수강산을 금수강산(禽獸江山)으로 만든 것은 웬일인가? 도둑을 막지 못해 곰 같은 눔, 독수리 같은 눔, 돼지 같은 눔, 승냥이 같은 눔들이 들어와서 마음대로 짓밟게 했으니 금수(禽獸)강산이 아닌가? 이 놀라운 자연을 두고도 이태백 하나 못내고, 워즈워스 하나 못 냈으니 금수(禽獸)강산이 아닌가? 나무도 풀도 뿌리째 뽑아먹어 산하고 갈하고 산에 짐승하나 살 수도 없게 만들었으니 금수강산(禽獸江山)도 못 되는 금수강산(禁囚江山)이냐? 

 

수난의 여왕

이와 같이 한반도의 지리를 여러모로 볼 때, 수난의 집으로 마련되었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다. 그렇게 된 주된 원인은 만주 평원과 한반도가 한데 붙어 있어야 할 것인데, 그것을 떼어놓았다는 데 있다. 물론 우리나라가 유럽 어느 모퉁이에 위치하였다면 능히 한 개의 자유하는 국민으로 볼만한 나라로 발전시켰을 것이다. 그런데 아시아는 유럽의 규모와 방식이 다르다. 유럽은 본래 소구분적이요, 아시아는 대구분적이다. 아시아는 중국,인도,시베리아,만주,터키,아라비아 하는 모양으로 모두 그 단원이 크게 되어 있다. 유럽은 반대로 사분오열하여 제각기 문호를 열고 다툰다. 그런데 한국은 그 아시아에서도 오직 하나 소단원이다. 더구나 위치가 말한 대로 세 면에서 죄어드는 틈바구니에 끼어 있으므로 아무래도 그대로는 견뎌나가기가 어렵다.

 

본래 조상의 땅이었던 만주를 내놓고 이 틈바구니에서만 나라를 벌여보려 하였으니 고난의 역사가 안 될 수가 없다. 이 민족이야말로 큰길가에 앉은 거지 처녀다. 수난의 여왕이며 선물의 꽃바구니는 다 빼았겨버리고 분수 없는 황후를 꿈꾼다고 비웃음을 당하고, 쓸데없는 고대에 애끓어 지친 역사다. 그래도 신랑 임금은 오고야 말 것이다.        (계속)

                                                            -서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