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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좋은 책, 요약,그리고 비평

'뜻으로 본 한국역사' 1

 

'뜻으로 본 한국역사'1

 

 

저자 함석헌.1901년 충북 용천군 부라면 원성동에서 출생. 덕일 소학교-양시 공립 보통학교-3.1운동 참가-오산학교 편입-동경고등사범학교 문과일부 졸업, 1928년 귀국후 오산학교 교편. 동인지 <성서조선>에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 연재. 창씨개면과 수업거부로 오산학교 사임, 전도활동 전념. 평양 송산농사학원을 인수. 동경에서 '계우회' 사건으로 1년간 ?양 대동강 경찰서에 구치. 1942년 서울에서 '성조선 사건' 발생으로 미결수로 1년간 복역 후 출감.1945.8.15. 해방 후 고향  용암포,용암군 자치위원장. 1945. 9. 평안북도 자치위원회 문교부장. 1945.11.23.신의부 학생사건의 책임자로 소련군 사령부에 체포,50일간 구금.1946.1. 석방 후 농사.. 1946.12.24. 다시 피검, 1개월 옥고. 197.2.26. 월남, 서울 YMCA에서 일요종교집회 활동.1950.6.25.한국전쟁 발발로 부산 피난,'수평선 너머' 발간,성경연구종교집회 활동.1956. 서울 용산 원효로에 사택 마련,<시상계 >집필.1958. <사상계>에 투고한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로 20일간 구금.1961.7. 5.16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5.16을 어떻게 볼까?' 발표. 1962. 2.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3개월간 미국 여행 및 10개월간 퀘이커 학교에서 공부, 이어 영국.네들란드.독일 시찰. 1963.6.23. 민정이양 거짖에 분노하여 전국적으로 강연 활동.1970.4.19. <씨알의 소리> 창간호 발간.

 

* 저자 서문 요약

고난의 역사, 역사는 ?머리에서 나중 끝까지 고난인가, 역사가 고난이요,고난이 역사인가? 속만 아니리 겉까지도, 뜻만 아니라 그 나타내는 말까지도 고난이어야 하는 것인가? 이 씨알의 역사를 고난이라고 하였고 그 고난의 모습을 그려보자는 것이 이 조그마한 책인데, 이 책을 내놓는 데도 어찌 그리 어려움이 많은가? 끝에서 끝까지 그 받는 고난을 통한 시련으로 하여금 완전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인가? 나는 이 네번째 세 판을 내면서 속속들이 그것을 느낀다.

 

고난의 역사가 애당초 어째서 나타나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한 소리라면 내가 한 소리지만 나도 어째서 그 말을 하게 되었는지를 모른다. 그저 생각난 것을 말했을 뿐이다. 그것은 전인미답이라 하고 내 입이 했지만 해놓고 보면 감히 내 말이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있는 말이었다...

 

1961년 새째 판을 내려할 때 크게 수정하기로 하였다. 고난의 역사라는 근본 생각은 변할 리가 없지만 내게 이제는 기독교가 유일의 참종교도 아니오, 성경만 완전한 진리도 아니다. 모든 종교는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하나요, 역사철학은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타나는 형식은 그 민족에 따라 그 시대를 따라 가지가지요, 그 밝히는 정도가 차이는 있으나, 그 알짬이 되는 참에서는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곁들여 내 태도를 결정하게 한 것이 세계주의와 과학주의다. 세계는 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국가주의를 내쫓아야 한다는 것이요, 독단적인 태도를 내버리고 어디까지 이성을 존중하는 자리에 서서 과학과 종교가 충돌되는 듯한 때에는 과학의 편을 들어 그것을 살려주고 신앙은 그 과학위에 서서도 성립될 수 있는 보다 높은 것을 ?아야 한다는 것이다.

 

'뜻으로 본'이라는 말은 무교회 친구들을 섭섭하게 하였고 심지어 나를 믿음에서 타락하였다고 하였다. 타락이라면 변명할 여지는 없으나 그 사상을 두고 한다면 나는 자신이 있다. 장차 오는 역사가 옳다 할 것이다. 또 타락이니 올라가니 하는 것이 상대적이 아닌가? 지옥에서 보면 천당이 타락 아니겠나? 그러나 천당도 지옥도 문제가 되지 않는 높은 자리에서 남이 타락하거나 구원이라거나 상관이 없다. 남을 천당에 올리고 지옥에 떨어뜨리는 것이 내 일이 아니라, 나는 믿음을 가지고 생의 대행렬에 참여할 뿐이다. 혼자서 안락하기 보다는 다 같이 고난을 받는것이 좋다. 천국이 만일 있다면 같이 가는 데가 아니겠나!

 

다같이 가는 데가 어디일까? 의인.죄인.문명인.야만인을 다같이 구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유신론자.무신론자가 다 같이 믿으며 살고 있는 종교는 무엇일까? 그래서 한 소리가 '뜻'이다.하나님을 못 믿겠다면 아니 믿어도 좋지만 '뜻'도 아니 믿을 수는 없지 않느냐. 긍정해도 뜻은 살아 있고 부정해도 살아 있다. 져서도 뜻만 있으면 되고, 이겨서도 뜻이 없으면 안된다. 그래서 뜻이라고 한 것이다.

 

이야말로 만인의 종교다. 뜻이라면 뜻이고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이고 생명이라 해도 좋고 역사라 해도 좋고 그저 하나라 해도 좋다. 그 자리에 누운 우리 역사를 보자는 말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이 '뜻으로 본' 역사를 밀물처럼 환영하였다. 그래서 다시 새판을 내기로 하였다.

 

한일회담의 위기감을 느끼고 투쟁의 가운데로 달려 갔으나 매국적인 조약에 도장이 찍히는 아픔도 삼켜야 했다. 2주간의 단식투쟁으로, 지방강연으로, 조국수호국민협의회로,비상국민대회로 점철되었다.

 

고난의 역사는 생명의 역사다. 고를 피하고 낙을 맞으려는 사람은 영원히 고를 면치 못할 것이요, 선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려는 사람은 영원히 선을 보지 못할 것이다. 천국에 가면 눈물도 한숨도 없는 데서 영원한 복락을 누릴 줄만 믿는 사람이 참종교가 무엇임을 모르듯 모든 싸움을 다 싸워내면 무풍지대의 유토피아가 올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역사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누가 과연 고난의 역사의 뜻을 알까?

 

붓을 놓으니 달이 서편에 기울었구나. 테러 사건이 있었다고 문간에 와서 지켜주노라 밤새 떠는 순경을 들어오라 하여 떫은 차 한 잔을 권하니 고맙다 하고 물러간다.아느냐? 너가 나를 지키느냐? 내가 너를 지키느냐? 테러당한 사람이 인권의 짓밟힘을 당하느냐? 남을 테러 한다는 제가 먼저 테러를 당하고 있는 거냐? 끝없는 말에 끝을 맺어, 시작 없는 역사의 시작을 삼자.

 


한라산의 가을 패션
한라산의 가을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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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요약

 

역사에 대하여...

 

역사의 정의

역사란 우리 현재의 삶 속에 살아 있는 말하자면 산 과거다.새 세계관을 지어내는 풀무이며 사실이라기보다는 그 사실이 가지는 뜻이다. 뜻의 문제이며 기록이다. 그 사실을 기록하되 서로서로 사이에 산 관계를 주어가지고 체계가 있게, 통일이 있게 하는 것이라야 한다. 사실과 사실사이에 인과관계의 고리가 맺어져가지고 전체가 한 개 통일체를 이루지 않으면 안된다. 역사는 하나다. 하나밖에 없는 것이 역사다. 5천 년 역사가 제각기 따로 된 것이 아니라 전체가 한 생명이다.

 

보는자리

이성계의 혁명을 이조의 역사가가 보면 나라 세움이지만, 여조의 역사가가 보면 나라 무너뜨림이요, 빼았음이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이 기독교의 자리에서 보면 그리스도의 이김이지만 세속적인 자리에서 보면 33세 청년의 실패의 끝맺음이다. 그러므로 역사가 참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몸을 여산에 두지 말고 한눈 아래 온 산의 꼴을 보아낼 수 있는 자리에 우뚝서듯이 우주, 인생을 굽이보는 자리에 쓴 것이라야 할 것이다.

 

사관이란 이것이다. 인생을 넘어뛴 자리에서 참인생을 볼 수 있듯이 역사를 넘어뛴 자리에서야 참역사를 볼 수 있다. 이런 사관 없이 쓴 역사는 참역사가 아니오, 이런 사관에 이르지 못한 역사 공부 또한 참역사의 읽음이 아니다. 이러한 사관은 그것을 가진 후에야 알 수 있고, 또 역사를 읽어서만 거기에 이를 수 있다.

 

인류의 역사

 

발생기

지구의 역사가 생긴 것이 언제인가 하는 데에는 학자마다 다르나 대략 20억 년은 될 것이라 한다. 산 물건, 죽은 물건에 대한 구별도 자세치 않으나 보통 말하는 생명이란 것이 어느 때, 어디서, 어떻게 시작하였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지질학, 고생물학, 인류학, 고고학의 연구에 따라보면 생명은 매우 단순한 데서부터 차차 진화하여 복잡한 조직을 가지게 되었고, 거기서 인류가 나오게 되었고, 마침내 생각하는 인간이 나왔다고 생각된다.

 

이른바 역사시대란 것은 7천 년 이상을 올라기지 못하나 사람이 사람 노릇을 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일 것이다. 발생기라고 하는 것은 말을 하고, 더구나 종교, 도덕하는 정신적 살림이 시작된 때를 말하는 것이다.

 

성장기

자라는 때다. 옛날의 모든 민족, 나라가 일어난 때다. 사람은 우선 물질적 조건을 요구한다.그러므로 떠돌아다니고 사냥하던 살림에서 한 곳에 붙어사는 정주생활이 시작되었다. 그에 따라 씨족에서 민족으로 갈라져 자랐고, 각 민족의 문화적 개성이 이 시대에 그 터가 잡혔다. 애급, 메소포타미아, 중국, 인도,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하는 인류사회가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완성기

언제 올지 모른다. 이것은 우리 마음에만 있는 환상이다. 의미의 세계에서 하는 말이다.나타나 보이는 현상의 세계에서 하면 끝은 없다. 영원한 변천의 과정이 있을 뿐이며 그것은 '아가페'이다. 역사는 사랑에서 나왔고, 사랑에 이끌려 사랑에 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 아가페를 공자는 '인(仁)'으로 보았고, 노자는 '도(道)'로 보았으며, 석가는 '빔(空)'으로 보았다. 

 

그리고 동서양의 대립이다. 동양은 명상적인데, 서양은 활동적이요, 동양은 종합하길 좋아하는데 서양은 분석하길 좋아한다. 동양의 역사는 복종의 역사, 통일의 역사, 되풀이의 역사, 지킴의 역사인데, 서양의 역사는 반항의 역사,자유의 역사,발전의 역사,진보의 역사이다. 그래서 동.서양은 서로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그것은 우연히 되고 뜻없이 된 것이라 할 수 없다.

 

역사의 시작은 동양에 있고 발달은 서양에 있다. 정신만 높고 물질은 낮다는 말이 아니오, 발달만이 장하고 지킴은 작다는 말이 아니다. 높음 낮음도 없다. 다 제 할 것을 할 뿐이다. 정신문화의 씨앗이 동양의 흙에 떨어지자 역사의 주역은 서양으로 갔다.

 

이제 오늘은 서구 문명의 폐해가 끝에 오르게 된 때이다. 이제 동양은 그 품갚음을 하여 서양을 건질 때가 되었다. 그 교만하던 서양의 입에 동양의 소리가 차차 높아가고, 동양은 힘든 곤학을 거의 마칠 때가 되었다. 이제 당한 문제는 동.서양이 종합하는 한 단 높은 지경에 오르는 일이다.

 

한국 역사의 기조

 

역사의 교향악

세계역사는 한 위대한 교향악이다. 영원에서 나와 영원으로 흘러드는 행진곡이다. 영원의 미완성곡이다.

 


돌궐(튀르크) 민족의 발상지 ‘위투켄’ 산은 고조선말로 ‘우뚝한’ 산이며, 지방민들은 ‘박달’ 산이라고도 부른다. 사진 제공 신용하 교수

 

한국의 개성

한국을 알려면 개성을 알아야 한다.많은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쓰면서 아무 통일없는, 아무 뜻없는, 그저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말을 할 뿐으로 그것은 역사의 구절구절속에 숨어 있는 이 바닥의 가락을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슬픈 곡조속에서는 모든 구절, 모든 낱소리가 다 그 슬픔 속에서 드러나도록 된 것이다. 역사의 모든 일, 그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은 다 서로 떨어진 것이지만, 또 떨어진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르면서 하나를 이루는 무엇이 있다. 그 무엇 때문에 역사를 이룬 것이다. 그 무엇을 붙잡는 것이 역사의 시작이요, 끝이다. 그것이 뜻이다.

 

민족국가도 그렇다. 그리스 역사가 인도주의를 낳기 위한 것이란 점으로 그 기조를 삼고 되씹어보면 모든 시대의 뜻이 환해지고, 로마의 역사가 서양문명에 주기 위한 힘의 단결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모든 일이 다 값진 일이다. 동양 여러 민족에 대한 일상 도덕의 교사라 하고 보면 천편일률적의 되풀이만 같은 중국역사도 그 의미가 한층 더 밝아지고, 짓누르는 환난속에서도 단정히 앉아 사람의 영성이 어떻게 귀한 것인가를 설교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비참과 고난밖에 없는 인도역사도 그 값이 한층 더 높아짐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우리 역사도 좀 재미있게 되었을까 생각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역사에서 그 속에 숨어 있는 명령을 읽어내려 그대로 하려고 애쓰는데 있다.

 

역사의 세 요소

한국이라는 이 거문고가 내는 소리는 어떤 소릴까? 장엄인가? 웅대인가? 기쁨인가, 슬픔인가? 황홀인가, 침통인가? 우리 역사의 바닥소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째는 지리요, 둘째는 우리 민족의 특질이요, 셋째는 그 민족으로 그 땅에서 그 역사를 짓게 하는 하나님의 뜻이다. 이는 연극에서 말하면 무대요,배우요,각본이다.헌팅턴의 말을 빌리면 기후.풍토.토질은 지리요, 민족은 과수의 품종이요, 하나님은 과수를 심는 사람이다.

 

민족의 기질도 반영구적인 성질을 가진다. 그리하여 한 민족의 역사는 그 민족이 아니고는 될 수 없는 식으로 된다. 남미와 북미는 지리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으나 그 둘의 인문의 모양은 서로 다르다. 북은 힘이 강하고 발전적이나 남은 밤낮 내란.혁명이 끓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민족의 기질인바, 북미는 튜튼족이나 남미는 라틴족이다.  

 

개인과 민족

이렇게 역사를 결정하는 힘으로 민족의 특질이 영향이 크다면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로 영웅사관과 계급사관이다. 그러나 영웅시대는 지나갔다. 계급사관은 영웅사관과는 반대로, 사람을 사회생활에서 가지는 경제적 관계에 완전히 종으로 붙여 버리자는 사상이다. 경제관계가 역사변천의 원인이 아니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만이 홀로 하는 것도 아니요, 주로 하는 것도 아니다. 인생의 모든 일을 이해관계의 대립으로부터 오는 계급투쟁으로 다 설명하려는 것은 분명한 독단이다.그리고 계급에는 영속하는 자아의식이 없다. 역사상에 다스리고 다스림을 받는 계급의 대립이 있는 것은 사실이요, 자기네 이익을 보호하자는 의식이 그 계급을 이루고 있는 분자들의 머릿속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계급은 늘 신진대사가 되어왔다. 

 

한국역사는 한국 사람의 역사다. 어쩔 수 없이 한국 민족의 역사다. 한국역사에는 한족의 간섭도 있었고 몽고족의 도둑질도 있었고 일본족의 한때 섞임도 잇었으나, 그렇다고 한국역사가 한족,몽고족,일본족과 공동소유는 아니다. 유교도 받아들였도, 불교도 받아들였고, 기독교도 받아들였으나, 그래도 여전히 한국이 한국인인데는 변함이 없었다.

 

섭리

역사의 시조를 결정하는 데 지리와 민족의 특질이 중요 조건이 된다.그러나 그보다 결정적인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왜냐하면 먼저 둘은 저 저대로 서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뜻 안에 그 존재의 이유를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난의 역사 

한국역사의 밑에 숨어 흐르는 바닥 가락은 고난이다. 이 땅도 이 사람도 큰일도 작은 일도 정치도 종교도 예술도 사상도 무엇도 무엇도 다 고난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 역사 삼천리에 박혀 있는 상처는 너무도 크고 많았다.나는 역사선생으로 '영광스런 조국의 역사'를 가르칠 것이 없었다. 

 

우리는 큰 민족이 아니다.중국이나 로마나 터키나 페르시아가 세웠던 것 같은 그런 큰 나라는 세워본 적이 없다. 또 여태껏 국제무대에서 주역이 되어 본 일도 없다. 애급이나 바빌론이나 인도 그리스 같이 세계문화사에 뛰어난 자랑거리를 가진 것도 없다. 피라미드 같은, 만리장성 같은, 굉장한 유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세계에서 크게 공한을 한 발명도 없다. 인물이 있기는 하나 그 사람으로 인하여 세계역사에 큰 변화가 생겼다고 할 만한 이유도 없고, 사상도 없지 않으나 그것이 세계사조에 한 큰 조류가 도었다고 할 만한 것은 없다.

 

그것보다 있는 것은 압박이요, 부끄럼이요, 찢어지고 갈라짐이요, 잃고 떨어짐의 역사뿐이다. 공정한 눈으로 볼 때 더욱 그렇다. 그것은 참으로 견딜 수 없는 슬픔이다.(계속)

                                                 - 서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