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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좋은 책, 요약,그리고 비평

'뜻으로 본 한국역사 3

 

 

'뜻으로 본 한국역사 3'

 

 

 

한국 사람

 

지리와 민족성

역사는 결국 사람의 역사다. 지리가 역상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을 말하기는 하였으나 아무래도 그것은 주어진 터전이 될 뿐이다. 그 나라의 흥망 성쇠는 그 역사를 책임질 수 있는 인간들이며 바로 인격이다. 개인이나 국민들이 그 역사의 주인공들로 그들의 개성과 인격이 역사를 이루었 왔다는 것이다. 바로 그들이 그들의 역사를 책임지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역사는 오직 한국 사람, 한국 '씨알'의 역사다.

 

따라서 한국역사가 고난의 역사라면 우리는 우리를 지리에만 아니라 그보다도 더 깊이 한국사람에게서 �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을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아야 한다. 하늘과 땅은 가슴의 껍질일 뿐이요, 거기 가는 길일 뿐이다. 고난의 역사의 주인으로서의 한국 사람의 성격을 �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 한국 민족의 성격은 어떤 것인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두 가지 일이 필요하다. 하나는 스스로 자기를 돌이켜 봄이요, 또 하나는 남이 평한 것을 듣는 일이다. 돌이켜 자기를 비판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가장 잘 아는 자기다.

 

 

▲ 우리 민족의 성지 백두산 천지. 세상 어느 곳보다 아름답고 보는 이를 흥분케 했다.

 

사람 속에는 얼핏 보아 두 가지 마음이 있는 것을 누구나 알 것이다. 하나는 자기 주장을 하는 구심적인 것이요, 하나는 나를 떠나 전체의 자리에 서려고 하는 원심적인 것이다. 이 둘이 늘 싸운다. 이는 작용과 반작용이며 나이자 곧 전체, 전체이자 나다. 아무튼 나를 아는 것은 나다. 그러므로 나를 알려거든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은 자기에게도 속지만 단체에게도 잘 속는다. 단체는 전체인듯 가장하기 때문이다. 단체와 전체는 다르다. 전체는 우주 근본에 일치되는 것이나 단체는 이기적인 나의 모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의 이기심은 뿌리깊은 것이다. 그래서 단체 뒤에 숨어서 그것을 전체라 하고 자기 주장을 내세우려 한다. 단체 중에서 가장 크고 강한 것이 민족이요, 나라다. 그러므로 민족감정이야말로 치우친 생각이 가장 많이 들어 있을 수 있고, 민족적 반성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민족적 반성을 하기위해서는 다른 민족의 평을 듣는 것이 필요하다. 나를 아는 것은 남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나 그것을 알아야 참으로 나를 안 것이다.

 

착함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기질,성격을 평한 사람은 많다. 그러나 대개 단편적이다. 근래 오다가 가장 체계 있게 우리 민족성을 돌이켜 본 것은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일 것이다.

 

" 조선 민족은 군자의 나라이다. 공자도 군자거지(君子居之)라 하였으며, '기인호양부쟁(基人好讓不爭)'이라 하여 고나대..박애.에의.청렴.지존 등이다. 다시 이 네 가지를 합하면 바로 '인(仁)'이 될 것이다. '인'은 조선 민족의 근본 성격인 듯하다...조선사람은 관대하며.....조선사람은 사람을 사랑하는 성질이 많다....또 예의를 숭상하는 본성이 있으며  그래서 '예의지방(禮儀之邦)이라 하였다. 예의란 규율에 복종하여 질서를 지키는 것이며 규율에 순종한다는 것이다. 예의란 곧 의(義)다."

 

다음으로 국민적인 이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름은 대부분 '인,의,예,지,신,순(順),순(淳),화(和),덕(德), 명(明), 량(良),숙(淑) 등의 이름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소중한 이름을 각자의 이상을 포함한 것이리라! 일본은 준(俊),웅(雄),수(秀),영(英),무(武)이런 것들이다.이것은 그들이 이상하는 바가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착한 사람, 다른 말로 평화의 민족이며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다. 평화를 사랑한다, 착하다, 인하다 하는 것은 그 도덕성이 매우 높은 것을 말하는 것으로 바로 고난의 역사가 되는 까닭이 거기에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날쌤

다음으로 한국사람들의 특성으로 용(勇)을 들 수 있다. <신이경> 구절속에 '동방기인', '군자국', '예의지방'이라 하였다. <동방삭 산이경>에는 "서로 칭찬을 해주지 남을 흘뜯어 말하지 않는다는 말이며, 남의 어려운 일이 있는 것을 보면 몸소 죽을 데라도 뛰어드는 용기가 있다는 것"이다. 또 <후한서>에는 "사람들이 체격이 크고 강하면서도 용감하지만 신중하고 소박하여 남의 나라를 침범하여 약탈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사람의 성품이 순하고 정직하며 강하고 용감하다"고 했다. 우리 역사에서 전형적인 인물로 고구려의 바보온달 장군,신라의 처용,백제의 검도령이다.그 밖에도 박제상,김유신,밀우,유유,계백,화랑,선비의 이야기는 너무도 잘 아는 이야기며 지금의 한국 사람으로는 꿈도 못 꿀 듯한 의용의 사실이 수두룩하다. 

 

 

착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너그럽고, 날쎄고, 조심성 있고, 예의 높고, 얼핏 보기에 바보라 하리만큼 무게가 있은 다음에는 대민족의 기상이다. 큰 나라를 세우고 고상한 문화를 낳을 수 있는 자격이다. 이 점에서 나무랄 데가 없다.

 

우리 민족의 결점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옛 한국을 두고 하는 말이요, 눈을 현실로 돌려서 살펴보면, 도무지 딴 민족을 보는 것 같다. 한국사람이 착하다고 했는데, 지금 착함이 어디 있으며, 평화를 사랑한다 했는데, 어디에 평화가 있나? 음해,날치기,소매치기로 가득하고, 비리와 부정이 난무하고, 인륜과 도덕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국민들 세금낭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권력을 등에 업고 각종 비리에 혈안이 된 듯하다. 우리에게야말로 세계평화는 긴급한 문제건만 평화운동 소리는 한마디도 없다.

 

이조 일대가 당파 싸움으로 그친 것은 그만두고 그 때문에 나라를 몽땅 도둑맞고 종살이 하기를 몇 십 년을 하다가 그래도 하늘이 무심치 않아 해방이라고 왔는데, 건국운동이랍시고 3파 4파로 갈리어 싸우다가 종내 통일정부를 세우지 못하고, 남의 나라 세력 싸움 때문에 한때 우연히 일어난 물결인듯 하더니 38선은 점점 마음의 38선으로 굳어져만 가고 있다.

 

한국 사람이 의용이 있다 했지만, 이제 어디 의용이 있나? 공산주의 때문이라지만 독일은 아니 그렇고, 전쟁 때문이라 하지만 같은 전쟁의 화를 입고도 일본 민족은 아니 그렇다. 같은 공산주의에도 우리는 우리식대로 더럽고, 같은 전쟁이라도 우리는 우리 버릇대로 못났다.

 

우리는 이제 신화도 없어지고 민족의 영웅도 없어졌다. 감격도 없고 흥분도 모르는 민족이다 약아빠진 것은 국민적 이상이 없기 때문이다.이러고도  나라를 할 수 있을까? 당초에는 큰 국민으로 성격을 가졌던 민족이 중간에 달라져 버렸다. 이 변동은 삼국시대를 경계선으로 하여 일어났다. 그리하여 고구려의 핏줄속에 뛰고, 신라 사람의 머리속에 솟고, 벽제 사람의 가슴속에 울리던 착하고 너그럽고 곧고 굳고 날쎄고 의젓하던 정신은 그만 사막으로 흘러드는 냇물 모양으로 어느듯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심각성이 부족하고 파고들지 못한다. 생각하는 힘이 모자라며 깊은 사색이 없다. 현상뒤에 실재를 붙잡으려고, 무상밑에 영원을 �으려고, 잡다사이에 하나인 뜻을 얻으려고 들이파는, 컴컴한 깊음의 혼돈을 타고 앉아 알을 품고 들여다보고 있는, 운동하고 생각하는 얼이 모자란다. 그래서 시가 없는 민족이요, 철학이 없는 국민이요, 종교 없는 민중이다. 그래서 역사의 각본이 중간에 변하고 이 때문에 그만 크지지 못하고 말았다.

 

종교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은 다 남에게서 빌려온 종교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유교가 그렇고, 불교가 그렇고, 기독교도 그렇다. 그래에 오다가 동학이요 천도교요 하나, 요컨대 밖에서 들어온 남의 사상을 이리따고 저리따서 섞어놓은 비빔밥이지 정말 우리의 고유한 것이 아니다. 대종교까지도 이러한 잘못에 눈이 팔려 이미 다 식은 화로에서 불꽃을 �자는 그러한 마음은 갸륵하지만, 과연 어느만큼 줄거리가 있는 것인지가 의문이다.

 

▲ 영실감응을 하고있는 손유희 만신

 

민족혼에 확 하고 불을 당기지 못하는 데 그 무슨 잘못이 있는 것인가? 

 

고유한 종교가 있다. 길가의 점쟁이요, 명태 대가리 들고 춤을 추는 무당이요, 줄을 넘는 광대요, 활량이다. 이것은 원시종교다. 샤머니즘이다. 고구려에 선인이 있었고 신라에 화랑이 있었고, 고려 때까지만 해도 국선,국사 소리가 있었다. 그것이 정말 우리 나라의 고유한 종교요 사상인데, 내려오다가 그렇듯 타락해버리고 말았다. 종교의 역사를 보면 어느 민족이나 그 원시시대에서는 모두 요술,마법,물령숭배,점치기가 아닌 것이 없다.

 

 

그러다가 그것이 고상한 종교로 발달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철학적으로 깊이 생각하고 수련하여 체험하는 데서 된다. 우리 종교가 타락하고 만 것은 그 힘씀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위에서 말한 파고드는 성질,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종교가 그렇듯 철학이나 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어지간히 문명의 옷을 입고 다이기는 하나, 제 철학, 제 시를 가지지 못한 민족이 되고 말았다. 사람은 좋은데 자기를 깊이 들여다보고 팔 줄 모르고 자기를 파지 않기 때문에 자존심이 없다. 자존하지 못하기에 자유가 없다. 스스로라는 것이 생명의 원리가 아닌가? 자유 없이는 모처럼의 '인(仁)'도 얼빠진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좋은 평화주의도 못난 것밖에 될 것이 없고, 그 장한 용맹도 짐승에 다를 것이 없다. 종은 불행일 뿐 아니라 죄악이다. 남을 업신여기는 것도 죄지만 자기를 업신여기면 더 큰 죄다. 그 죄에서 모든 죄가 나오기 때문이다. 자유정신이 부족한 우리 민족은 두 가지 무거운 짐을 겹쳐 지고 있는데, 하나가 남이 주는 압박이요, 또 하나는 저를 버린 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심판이다.

 

우리 나라 사람의 성질에 그러한 큰 결함이 있기 때문에 그 결과가 역사 위에 드러나 있다. 정치라면 구차한 외교로 나라의 명맥을 유지하는 일로 알았고, 살림이라면 목숨이 끓어지지 않는 것으로 알았다. 계획이 넓지 못하고, 규모가 크지 못하다. 집 중에서 제일 큰 것이 경북궁이요, 돌로 만든 것에 가장 큰 것이 은진미륵이다. 남의 나라는 몇 백년을 두고 하는 건축이 있건만, 이 나라는 그런 것은 생각도 못한다. 직업을 하면 입에 풀칠이 목적이요, 사업을 하면 당장 내일로 보수가 들어오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모든 문제는 결국 정신 문제다. 건축의 크고 작음이 지하공사의 깊고 얕음에 비례하듯 사람의 생활도 개인 또는 사회를 말할 것이 없이 그 정신적 공작에 비례하여 결정된다. 한민족의 본바탕인 '인.용.지'를 정말 바로키워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면 반드시 이 큰 잘못을 고치지 않고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내 종교를 가지고 민족의 혼을 불러 다같이 묶어내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도록 다져야 한다.

 

고난은 인생을 심화한다. 고난은 역사를 정화한다.이러한 고난을 지나고 나면 입체적인 신앙을 가지게 되고, 더럽던 압박과 싸움의 역사도 눈물을 통하여 볼 때에는 선으로 가는 힘씀아닌 것이 없다. 중국의 교만, 만주의 사나움, 일본의 영악, 러시아의 음흉이 다 견디기 어려웠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면 언제 망했을지 모른다. 우리가 고난의 길을 걷는 것은 살고자 하기 때문이요, 살고자 함은 살아 있기 때문이요, 살아 있음은 살려주시기 때문이다. 살려주시는 것은 아직 할 일이 있는 증거다. 우리의 맡은 역사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고난의 초달(楚撻)을 견뎌야 한다. (계속)

                                                     - 서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