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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미래사회

고급두뇌 절반이 돌아오지 않는다

 

 

 

 

 

<포럼>고급두뇌 절반이 돌아오지 않는다

문화일보 | 기사입력 2007-10-06 08:02 기사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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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이곳 미국에 와서 만난 대학원생 대부분이 한국으로 돌아가기보다는 미국에서 일자리를 잡아서 남아 있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 첫 번째 이유가 아이들 교육 때문이었고, 귀국해서 받는 연봉에 비해 들어가는 주거비와 생활비 그리고 열악한 연구 환경 등 때문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미국에서 사는 것보다 한국에서 사는 것이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러한 현상은 실제로 데이터에서도 나타났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간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이공계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미국에서 정착하는 비율이 1990년대 초반 20%, 중반에 30%, 2000년에서 2003년까지 46%로 갈수록 늘고 있다.

 

사실 ‘고급 두뇌 유출’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독일을 비롯한 많은 유럽 국가도 겪고 있다. 지난해 15만명 이상의 독일인이 외국으로 떠났고, 독일 학생의 52%가 외국에 나가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고, 2003년 이후 외국으로 이민 나가는 사람이 국내로 들어와 사는 사람보다 많아졌다. 해마다 20만명 정도의 영국인이 외국으로 떠나고, 네덜란드·벨기에·스웨덴에서 외국으로의 이민자 수가 매년 급증하고 있다. 가장 선호하는 국가가 미국이었으며, 떠나는 가장 주된 이유는 과다한 복지제도에 따른 과중한 세금 부담이었다.

 

사람이 자신이 사는 곳을 정할 때는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한다. 실질소득, 생활비, 교육환경, 주거환경 등을 고려하여 자신의 능력을 펼 수 있고 자신의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을 선택한다.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많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생각할 때 가장 살기 좋은 나라를 선택하여 살 수 있다. 능력 있는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나라일수록 생산이 늘어 잘 살게 된다.

 

돈만이 자본이 아니다. 사람도 자본이다. 고급 두뇌는 특히 그러하다. 지금 세계 각국은 자본, 즉 돈뿐만 아니라 우수한 인재들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고급두뇌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소득세를 내리고 교육제도를 개선하며, 내외국인이 생활하는 데 따른 불편을 해소하는 등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각국의 사람들이 살고 싶어 속속 몰려들고 있는 미국조차도 외국인 고급두뇌의 모국행이 늘어나면서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9·11 이후 까다로워진 이민제도 때문에 많은 중국, 인도 등의 외국인 고급두뇌가 모국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이민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경제에서 자본이 국경을 넘나드는 것은 이제 아주 쉬운 일이 됐다. 자본은 세금이 적고 규제가 적은 국가로 이동하면서 세금을 과다하게 부과하고 규제가 심한 국가에 대해서 심각한 경제적 손해를 보인다. 뿐만 아니라 능력 있는 사람, 우수한 두뇌가 경쟁력이 없는 국가에서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국가로 이동하는 일이 점점 쉬워지고 있다.

 

외국인에게까지 호적등본을 요구하는 나라, 교육의 평준화를 교리처럼 믿고 우수한 두뇌들을 외국으로 내모는 나라, 열심히 일하여 성공한 사람들과 기업들에 과다하게 세금을 부과하는 나라, 국민의 생활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나라, 그런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어떤 나라가 좋은 나라이고 살기 좋은 나라이며 희망이 있는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으로, 국민소득·물가·실업률 등의 데이터보다도 더 정확한 것은 사람들이 몸으로 하는 ‘투표’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면 살기 좋고 좋은 나라이며 희망이 있는 나라다. 사람들이 떠나가지 않고, 떠나간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고, 새로운 사람들이 몰려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은 정부의 몫이다. 세금을 내리고, 규제를 혁파하고, 교육제도를 개선하는 등 삶의 환경을 개선하는 데 정부는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가 보인다.

 

[[안재욱/경희대 교수·경제학,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방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