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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미래사회

남북 정상에 바란다

 

 

[사설] 남북 정상에 바란다

중앙일보 | 기사입력 2007-10-01 00:03 | 최종수정 2007-10-01 06:32 기사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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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내일부터 2박3일간 평양을 방문한다. 노 대통령은 남한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걸어 넘게 된다. 역사적 의미와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켜보는 우리의 심정이 밝지만은 않을 것 같다. 솔직히 기대와 우려가 반반이다.
 

과거 동·서독이 그랬듯이 남북 정상 간 만남은 많을수록 좋다고 본다. 7년 만에 다시 열리는 이번 정상회담은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새로운 전기가 될 수도 있다. 당연히 기대가 없지 않다. 하지만 이번 회담은 노 대통령의 임기를 넉 달 남짓 앞둔 상태에서 열린다. 더구나 대선이 코앞이다. 시기적 제약과 한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노 대통령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성급하고 섣부른 ‘통 큰 합의’가 국가와 국민에게 뜻밖의 부담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보다 동북아 질서와 한반도 정세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남북 정상에게 당부하고 싶다. 지금 남북한은 공동번영과 평화통일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미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전제로,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경제발전에 여념이 없는 중국은 주변 정세 안정에 외교의 최대 역점을 두고 있다. 일본에서는 주변국과의 우호를 중시하는 후쿠다(福田) 내각이 출범했다. 북한 핵 문제만 풀리면 남북한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체제 정착을 주도하고, 평화통일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보기 드문 호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핵 문제보다 평화체제 문제에 중점을 둔다면 이는 수레 뒤에 말을 매다는 격이다. 핵 문제의 해결 없는 평화체제 논의는 무의미하다. 평화체제는 미국과 중국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며, 핵 문제 해결이 선행되지 않는 한 평화체제에 대한 그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없다. 6자회담에서 핵 시설 연내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 신고에 대한 극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하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노 대통령은 분명하고 구체적인 핵 폐기 선언을 김 위원장으로부터 이끌어 내야 한다.

 

가시적 성과에 연연하지 말라는 주문도 하고 싶다. 정상회담 자체가 어느 정도 이벤트성을 띠지 않을 수 없음은 인정하지만 텔레비전 화면을 의식한 전시성 회담이라면 대선용 정치 쇼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임기 말 업적 쌓기에 급급해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인프라 건설 사업에 덥석 합의하거나, 국민적 컨센서스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서해상 북방한계선(NLL) 같은 민감한 문제를 건드릴 경우 실효성도 문제지만 국민적 반발에 부닥칠 수 있다.

 

그보다는 비록 작더라도 의미 있는 합의에 주력할 것을 촉구한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덜어주고,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는 납북자와 국군 포로 문제, 또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의 고통 해소에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