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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교수였던 신정아씨의 가짜 학력 파문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그가 광주 비엔날레 예술총감독까지 맡고 있던 터라 그 파장은 학계뿐 아니라 예술계까지 미쳤다. 이 사건 이후 여러 유명 인사의 고백과 폭로가 잇달았고, 사설 학원 강사들이 100여 명이나 형사 입건됐다고 한다. 참으로 씁쓸한 한국 사회의 단면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개인의 능력보다는 학벌을 더 중시하는 전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로 가짜, 거짓이 판치는 시대다. 거짓으로 위장하지 않은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층 인사가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사실 부작용 때문에 그렇지, 가짜 문제를 건드리다 보면 사회 전체를 수술해도 부족할 판이다.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그동안 별 저항 없이 살아온 우리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세상이 달라졌다. 폭발적으로 넘쳐나는 지식·기술·통신 등의 발달로 최첨단 정보화 시대에 이르렀다. 거짓이나 가짜가 적당히 넘어가는 어설픈 시대가 아니다. 그것들을 알고서도 모른 체한다면 범죄를 눈감아주는 것과 다름없다.
거짓은 전염병처럼 번져나가는 성향이 있다. 시대의 마지막 보루인 종교인들도 전염병을 비껴가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얼마 전, 종교 단체에서 가짜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해 주어 세금을 포탈한 사람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물론 세금 포탈자가 먼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들에게 휘말린 종교인들도 엄중히 책임을 져야 한다.
모두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든다. 더군다나 수단과 방법을 거짓으로 포장한 채, 그것이 그릇된 길이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중간에 무슨 문제가 불거지면 자기만 운이 나쁘고 정치적 파워가 없어서 지탄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도덕성의 문제다. 개인이 확고한 자기 도덕성을 지니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계속 거짓으로 출렁일 것이다.
근래에 굳어진 신종 어휘 중에 ‘짝퉁’이라는 말이 있다. ‘짝퉁문화’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짝퉁이 범람하고 있다. 짝퉁도 가짜 학위처럼 위조다. 명품 열풍에 휘말린, 명품을 향한 욕망이 낳은 시대의 부산물이다. 빈 명품 자리를 짝퉁이 메워 주면서 걷잡을 수 없는 짝퉁 세계가 형성됐다. 진짜와 똑같은 가짜, 진짜보다 더 진짜로 보이는 짝퉁. 통계에 따르면 아시아가 명품에 제일 열광한다고 한다. 일본이 선두 주자고, 우리나라가 그 뒤를 쫓고 있다.
제아무리 중국이 위조의 천지라 해도 완벽에 가까운 우리의 짝퉁을 따라오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웃지 못할 희극이 있다. 우리의 이중성이다. 서양인들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우리의 그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바라볼 수 있다. 수입 명품을 추종하는 이들이 신용카드를 남발하는 한편에선 명품에 대한 지나친 소비를 비판하는 독특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에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던 된장녀 이야기, 명품을 사려고 수십억원대의 공금을 횡령한 여직원과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어찌 보면 이들은 모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다. 자신 있게 자기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샤넬 토트백을 들었네, 돌체엔가바나 셔츠를 입었네 하고 봐주는 상대방을 통해서만 자기를 볼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혼자서 독창적인 어떤 일을 하기보다는 집단으로 어울려서 같이 행동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제 더는 이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인성교육을 바탕으로 확고한 도덕관을 길러줘야만 한다. 그리고 아울러 지도 단속도 해야 한다. 건강식품 과대 포장에 과태료를 물리며 단속하듯, 인간에 대한 과대 포장도 마찬가지다. 물론 단시일에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느긋하게 기다려야 한다. 거짓이나 가짜가 사라진, 그것들이 통용되지 않는 밝고 투명한 사회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