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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태추적, 판치는 학벌위조
신정아 동국대 조교수의 학력 위조 파문 여파로 가짜 학벌들의 '커밍아웃(Coming-out)'이 잇따르고 있다.
19일 외국학위 접수 신고를 관리하는 한국학술진흥재단에 따르면 지난해까지만 해도 연간 1~2건에 불과하던 자발적인 외국 학위 취소 건수가 올해 들어 7월 현재까지 35건으로 대폭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유명 인사들이 자신의 학력에 관해 양심 선언을 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얼마전 만화가 이현세 씨(51)가 최근 출간한 골프 만화 '버디' 3권에서 자신의 학력이 대학 중퇴가 아닌 고졸이라고 털어놨다. 산문집 '연탄길'로 유명한 입시학원 강사 출신 소설가 이철환 씨도 이 같은 커밍아웃 대열에 합류했다.
가짜 학력 홍수는 '학벌중시' 경향으로 곪을 대로 곪은 대한민국 사회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속이지 않고서는 결코 '간판의 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커다란 좌절감이 사회 전반에 만연하면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숱한 '가짜 인생'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 덜미 잡힐라 자진 학위 취소
= 학술진흥재단의 학위 신고 취소는 이달 초 국내 박사학위 소지자들로 대학교수ㆍ강사 등 직업을 가진 32명이 한꺼번에 몰렸기 때문이다. 이들은 미국 괌 소재 'American International University' 등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02년 8월에서 2005년 10월까지 학위인가를 신고한 41명 중 32명이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학위 취소를 신청한 이유는 해당 대학이 학위 비인가 대학으로 밝혀지고 최근 신정아 씨의 학력 위조 파문과 함께 경찰수사가 시작되지 않을까 염려해서다.
97년 미국 'School of Bible Theology'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던 A씨는 학위취소 과정에서 "정상적인 학위 취득 과정인줄 알고 학위를 취득하고 재단에 신고했다가 자발적으로 취소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A씨는 미국에 유학조차 가지 않고 취득한 학위로 신고필증을 등록했으나 가짜 학위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자 겁이 나 취소한 것으로 보인다.
학술진흥재단 국제교류팀 관계자는 "지금까지 신청한 사람 외에도 지난주부터 하루에 수통씩 자발적인 학위 취소 신청 절차를 묻는 전화가 결려온다"며 "이들 중 대부분은 취소를 했을 경우 현재 직업에 대한 영향과 법적인 처벌 등이 뒤따르지 않을까 걱정해 취소를 주저하는 눈치"라고 말했다.
◆ 가짜가 더 진짜 같은 세상, 왜?
= 만화가로서 대중적인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이현세 씨는 왜 굳이 위조 인생을 걸어야 했을까. 그는 "내게 남은 마지막 컴플렉스가 학력"이라며 "만화가 히트한 다음에 사람들이 '어느 대학 나왔느냐'고 묻고는 했는데 만화가라면 한 수 내려보는 풍토에서 차마 '고졸'이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신정아 씨가 취업과 성공을 위해 의도적으로 가짜 학력을 이용했지만 이씨는 자력으로 성공한 이후에도 자신의 노력을 과소평가받지 않기 위해 거짓말이 필요했던 셈이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학력으로 지어진 울타리가 높다는 얘기다. 산문집 '연탄길'로 유명한 입시학원 강사 출신 소설가 이철환 씨도 이 같은 커밍아웃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최근 발표한 신작 산문집 '반성문'을 통해 집안 형편 때문에 공고를 나온 뒤 공장에서 일하다 뒤늦게 대학을 졸업한 후 입시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을 '서울대 출신'으로 속였던 점을 밝혔다. 그는 " '선생님은 서울대 출신'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차마 '아니다'고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은 지금도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학력은 이처럼 아직 사회에 물들지 않은 아이들에게조차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순묵 성균관대 심리학과(사회심리) 교수는 "한국에서 성공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조건들이 있는데 그 조건들이 굉장히 경직된 측면이 있다"며 "한 사람의 가치를 다양한 측면에서 보지 않고 학벌 잣대로만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자신의 분수를 수용하지 못하는 개인 성향이 겹쳐 가짜 박사라는 '괴물'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준모 기자 / 이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