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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시대의 흐름

프로슈머와 대기업의 미래...

 

 

프로슈머와 대기업의 미래

전자신문 | 기사입력 2007-08-0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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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한 중소기업의 최신 울트라모바일PC(UMPC) 시연회에 다녀왔다. 재미있었던 것은 시연회가 열리는 행사장의 열기도 열기였지만, 시연회를 기다리는 열혈 사용자의 모습이었다.
 

 행사를 며칠 앞두고 게시판에는 “어젯밤 꿈을 꿨어요, 시연회에 이미 제가 가 있더라고요” “시연회까지 이틀이 2년처럼 길게 느껴지네요”란 글들이 계속 올라왔다. 시연회가 경기도 분당에서 열린 탓에 교통편이 마땅치 않은 사용자는 차를 가진 유복한(?) 사용자와 당일 ‘급만남’으로 동승, 시연회 장소로 이동했다. 시연회에는 손바닥만한 PC가 자리마다 놓여 있었고 우리는 작은 부팅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부터 ‘프로슈머’로 변신했다.

 

 짧은 시간 제품설명이 끝나고 이후 긴 시간은 사용자가 제품에 내놓은 기대와 아이디어를 기업에 제시하는 데 할애됐다. “와이브로와 HSDPA 서비스는 꼭 내장돼야 한다”거나 “측면에 부착된 키보드 배열을 좀 바꿨으면 좋겠다” 등의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비슷한 시기, 인터넷 포털의 카페에서는 한 회원이 자신이 만들고 있는 UMPC를 소개하면서 아예 초기 디자인 몇 개를 회원에게 공개해 가장 멋진 모델을 선택하게 했다.

 

 앨빈 토플러가 반복해서 얘기하지 않아도 이제 우리는 누구나 공감한다. 프로슈머가 미래 최고의 경제 권력이 될 것임을. 그렇다면 현재 최고의 경제 권력은 누가 쥐고 있는가? 바로 대기업이다. ‘디지털유목민’과 ‘명품 휴대폰’ 등을 내세우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 대기업은 제품의 내구성, 디자인, 애프터서비스 등으로 소비자가 지갑을 열게 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점점 더 진화할 미래 디지털 세상에서 대기업이 현재의 기업경영 패러다임으로도 승승장구할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예측해 본다. 미래 디지털 세상을 선도하는 것은 제품의 전문가적 지식, 실제 활용에서의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프로슈머다.

 

 그런데 대기업은 프로슈머와 프로슈머의 목소리에 여전히 심드렁하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잘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슈머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만든 대기업의 최신 디지털 제품은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받고 있는 신세가 되고 있다.

 

 최근 한 대기업에서 야심차게 출시한 UMPC 역시 프로슈머 사이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UMPC의 생명은 지하철 전동차 속에 서 있으면서도 사용할 수 있는 무게와 하루 종일 켜놓아도 문제 없는 배터리 수명이다.

 그러나 이 회사의 제품은 작은 아령 무게와 비슷한 1㎏에 가까워 한 손으로 들고 있을 수도 없으며, 대용량 배터리를 사용해도 4∼5시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서도 정작 프로슈머의 욕구를 반영하지 못해 시장에서 뒤처지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미래에 가장 불확실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첫째는 ‘한국의 통일’이라고 답할 것이고 둘째는 ‘한국 IT 대기업의 미래’라고 답할 것이다. 현재 한국 IT 대기업이 잘하고 있는 냉장고·에어컨·TV 등 첨단기술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제품은 10년 안에 중국 기업이 다 빼앗아 갈 것이다. 아직은 내구성이나 AS 등에서 미흡한 점이 많아 국내 기업에 밀리고는 있지만, 그들이 쫓아오는 속도를 감안한다면 중국 기업에 내주는 것은 시간 문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대기업은 현재에 잘 나타나지 않는, 아직은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는 완전히 참신한 제품 컨셉트를 찾아서 그것을 첨단기술로 만들어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프로슈머의 입김을 공기처럼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막상 대기업에서 이를 실현하기란 어렵다. 큰 공룡은 본질적으로 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 작고 영리한 기업이 미래의 대박상품을 독점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

 

 최항섭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