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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변곡점에 서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소니를 제쳤느니, 아직은 그런 소리를 할 때가 아니라느니 하는 듣기 좋은 말들이 오갔지만 요즘은 다르다. 삼성전자의 간판스타인 황창규 사장이 7년간 겸직했던 메모리사업부장 자리를 내줬고, 적지 않은 규모의 명예퇴직이 진행되고 있다. 계열사별로 책임경영의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다.
물론 실적 부진이 그 원인이다. 삼성전자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9100억원 수준으로 분기 영업이익이 1조원을 밑돌기는 2001년 4분기 이후 5년만에 처음이다. 늘 삼성전자 차지였던 분기 영업이익 1위 자리도 포스코(1조2470억원)에 내주었다.
영원한 1등 기업이란 없다. 기업에는 늘 위기가 있고 부침이 있다. 결국은 시대의 변화를 먼저 읽고 시장의 흐름에 잘 대응한 기업이 오래 살아 남는다. 지난 1993년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고 했던 이건희 회장은 요즘 창조경영을 화두로 삼성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이 회장의 창조경영은 삼성 고유의 차별성과 독자성을 갖춘 제품을 만들고, 모든 것을 원점에서 보고 새로운 것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창조경영을 정착시키려면 무엇보다도 우수 인력 채용과 육성, 과감한 연구ㆍ개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창조경영이 가능할까. 사실은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삼성의 기업문화다. 지금까지 삼성 발전의 원동력은 '관리'였다. 어떻게 보면 군대식 경영과 흡사하다. 조직도 상명하복 식으로 지시하고 이행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능하다. 직원들은 거의 모든 시간과 정력을 회사에 투자하는 대신 높은 봉급과 성과급(PI, PS)으로 보상받는다. 실패는 잘 용인되지 않는다. 신상필벌 원칙은 지나칠 정도로 가혹하다.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삼성전자 내의 검찰이라고 부를 만한 구조조정본부 감사팀이 전면 경질된 사건이 있었다. 삼성전자 임직원과 협력업체들 간 비리를 적발한 감사팀 내부 문건이 언론에 보도된 것이 발단이었는데, 비리와는 전혀 상관 없는 모 협력업체 사장이 갖고 있던 문건을 기자가 입수하게 됨으로써 일어난 일이었다. 유야무야 처리되곤 했던 협력업체 비리를 차제에 근절하는 것이 삼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모 협력업체 사장의 고발정신도 한몫했다.
그러나 결과는 엄청났다. 삼성은 문서유출 과정을 이잡듯이 뒤졌고 감사팀 책임자를 포함해 소속원 수십 명이 옷을 벗거나 경질되고 말았다. 비리가 적발된 협력업체는 물론 비리문건 유출의 책임을 물어 모 협력업체도 삼성과의 거래가 끊기고 말았다. 그 협력업체는 가만히 있으면 반사적 이익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나름의 정의감 때문에 회사에 일대 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삼성의 기업문화가 어떤지를 잘 말해 준다. 본질은 협력업체 비리지만 삼성의 관점은 왜 감사팀 문건이 유출됐느냐 하는 '관리 부실'의 문제로 귀착돼 감사팀에 대대적인 책임을 물었으며, 협력업체 사장의 행위 또한 삼성문화에서는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삼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지만 어느 면에선 아직도 닫혀 있는 조직이다. 그러나 닫힌 곳에는 창조가 없다. 이제는 고(故) 이병철 회장 시절부터 고수해 온 '관리의 삼성' 이미지에서 벗어나 유연하고 열린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위 아랫 사람 간 의사소통이 자유로워야 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협력업체와의 수직적 관계도 재고해야 한다.
벌써 하나의 신화가 되어버린 구글의 발전 원인은 바로 자유롭고 열린 마음이다. 구글에서는 업무시간의 20%는 사원들이 업무 외에 각자 좋아하는 일에 쓰면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도록 '20% 룰'을 운용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 기업의 하나로 꼽히는 3M은 실패를 권장하는 기업이다. 3M의 포스트잇은 접착제가 잘 붙지 않아 실패한 데서 만들어진 히트상품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연구해 아이팟(iPod)이라는 혁신적 상품으로 MP3 시장을 석권했다.
어떤 전문가는 역설적으로 삼성의 창조적 혁신전략이 실패할 수 있으며 삼성을 망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관리지향적 전략에서 다양성과 개방성, 변동성을 핵심으로 하는 창조경영을 추구하는 데 따른 위험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의 관리방식, 즉 '삼성웨이(Way)'도 변해야 할 시기가 왔다. 과거의 삼성을 버리지 않으면 미래의 삼성이 위험하다.
[한명규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