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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지구에서 모든 인류가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봄 직한 상황을 집대성한 미래 예측서가 나왔다. 7월 10일, 미국 애리조나대 언론학 교수인 앨런 와이스먼이 펴낸 ‘우리가 없는 세계’(The World without Us)는 뉴욕을 중심으로 사람이 단 한 명도 살지 않는 지구가 변모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뉴욕의 상업 중심 지구인 맨해튼 땅 밑으로는 엄청난 양의 지하수가 흐르고 있으므로 펌프로 퍼내야 한다. 사람이 사라지면 발생할 첫 번째 사태의 하나가 전력 공급 중단이다. 전력이 끊기면 펌프 시설이 작동을 멈추기 때문에 48시간 만에 뉴욕의 모든 지하철은 물에 잠긴다. 하수오물이 땅 위로 떠오르고 부패하면서 1년 뒤에는 도로 포장이 마멸된다. 4년 지나서 모든 빌딩이 붕괴하기 시작한다. 5년 뒤에는 벼락 맞은 수풀에 불이 붙어 엄청난 화재가 발생해 뉴욕을 불바다로 만든다. 20년 뒤 폐허가 된 맨해튼 거리에는 개울과 늪이 생긴다. 100년 뒤 모든 주택은 지붕이 꺼지면서 쓰레기 더미로 바뀐다. 건물이 서 있던 자리와 도로가 갈라진 틈새에 온갖 초목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뉴욕 특유의 생태계가 형성된다. 땅이 겨울에 얼었다가 봄이 되면 녹는 과정이 해마다 되풀이되면서 건물 부지에 새로운 균열이 생겨나고 그 위로 물이 흘러내리면 새로운 식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500년 뒤 뉴욕의 중심지역에는 거대한 수풀이 우거진다. 1만 5000년쯤 지나면 지구에 새로운 빙하기가 찾아오는데, 맨해튼에 남아 있던 석조 건물의 잔해가 산처럼 거대한 얼음 덩어리와 충돌하여 산산조각이 난다. 10만 년 뒤 뉴욕 하늘에 축적된 이산화탄소의 양은 산업화하기 이전의 수준으로 되돌아간다.
와이스먼 교수는 인류가 사라진 지구 생태계의 모습을 설명하기 위해 홍적세 말기에 발생한 대형 포유류의 절멸을 언급했다. 홍적세는 250만 년 전에 시작되어 1만 년 전의 빙하기 끝 무렵에 마감된 지질시대이다. 마지막 빙하기에 유라시아,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등 세계 곳곳에서 매머드, 마스토돈, 들소, 나무늘보 따위의 대형 초식 동물이 대부분 사라졌다. 이들의 절멸 속도는 아프리카에서는 완만했으나 북아메리카에서는 급박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1만 3000년 전 아시아에서 이주해온 인디언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내디딘 직후 매머드가 대부분 사라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매머드의 멸종을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주장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이 매머드를 살육하여 씨를 말렸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와이스먼은 지구에서 인류가 사라지면 북아메리카 대륙이 나무늘보 등 거대한 초식동물의 낙원으로 복원될 것이라고 상상했다. 오늘날 인적이 끊겨 생태계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한반도의 비무장지대(DMZ)를 꼽았다. 남북한의 군대가 양쪽에서 확성기로 상대방을 비방하고 있는 가운데 두루미가 떼 지어 날아다니는 광경을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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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자취를 감춘 지구에서 사람의 흔적이 깡그리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살충제나 공업용 화학물질과 같은 환경오염 물질의 일부는 지구가 수명을 다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플라스틱 제품은 여러 형태의 물질로 분해하는 능력을 지닌 미생물이 나타날 때까지 오랜 세월 본래대로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와이스먼은 책머리에서 인류의 종말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전제하고,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7월호에 실린 인터뷰 기사에서 “우리가 없을 때 일어날 일들을 예상해보면 우리가 있을 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이 지구환경을 훼손하는 주범임을 고발하기 위해 이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밝힌 것이다. 와이스먼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이 세계는 우리가 없어도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곧이어 “우리가 여기에 없으면 슬프지 않을까?”하는 반응을 나타낸다고 덧붙였다. 책 끄트머리에서 저자는 인류가 지구의 다른 것들과 훨씬 더 많이 균형을 맞춘다면 생태계 일부로서 존속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