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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노블레스 오블리주...6.25 단상...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화일보 | 기사입력 2007-06-19 14:02 | 최종수정 2007-06-19 14:32 기사원문보기

사회 지도층의 책무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로마시대 초기 귀족계급의 솔선수범 정신에서 비롯된 관용구다. 당시 로마 사회에서는 지도층의 봉사와 기부 등이 의무이자 명예로 인식돼 자발적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특히 전쟁 등 국가 위기사태 발생시 지도층의 희생정신 발휘 전통은 더욱 확고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전쟁 관련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의 표본으로는 영국이 꼽힌다. 영국은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귀족학교인 이튼칼리지 출신 전사자만 2000여명에 달하는 희생을 감수했다. 1982년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전쟁 때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차남 앤드루가 해군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최근에는 찰스 왕세자의 차남 해리 왕자가 이라크전에 참전할 계획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왕위 계승서열 3위인 해리는 왕실의 전통에 따라 군에 자원 입대했고, 전쟁터 복무도 자원했다. 비록 이라크 저항세력을 자극할 우려 때문에 해리 육군 소위의 이라크행(行)은 불발됐지만 대안으로 아프가니스탄 파병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에피소드가 연상시킨 6·25전쟁 관련 사실(史實) 몇 가지. 유엔군의 주력이었던 미군의 경우 현역 장성 아들만 140여명이 참전해 35명이 사상했다. 공군 중위로 1952년 4월 야간폭격 임무수행중 전사한 제임스 밴 플리트 미8군사령관의 외아들은 그 중 하나다.

 

당시 중국의 권력자 마오쩌둥(毛澤東)도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을 6·25 전장에 보냈다. 그러나 마오안잉은 1950년 11월 미군 폭격으로 전사했다. 한동안 실종됐던 아들의 수색작업을 중단시키고 추후 시신을 찾았을 때에도 자기 아들만 송환할 수 없다며 “조선에 묻으라”고 지시한 마오쩌둥의 일화는 유명하다. 사상과 이념을 떠나 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남달랐던 것 같다.

 

그런데 외국군에서도 발견되는 이런 사례를 전쟁 당사자인 대한민국의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지만 ‘누구도 충격으로 여기지 않는 충격적인 일화’다. 오히려 군에 있는 아들을 전선에서 후방으로 빼돌린 국군 고위 관계자 등의 ‘넘치는 자식 사랑 얘기’만 전해져 온다.

 

6·25전쟁과 호국보훈의 달 6월. 그러나 ‘6·25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한국과 한국인은 왜 그리 아스라한가.

 

[[박광주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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