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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의 진실

 

 

'언론탄압’으로 알려진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의 진실

[칼럼] 생산자와 유통자가 하나인 언론의 이기성
입력 :2007-06-04 21:07:00   이철 동양대 행정경찰복지학부 교수
모든 상품은 ‘생산자→유통자→소비자’의 경로를 거친다. 이때 세 사람은 각자의 입장에서 자기 이익을 극대화할 것을 도모한다. 소비자인 보통 시민들은 어떤 물건을 구매하기 전에 판매자 정보의 진위를 가려내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운다. 꼼꼼한 가정주부들은 판매자들의 가격을 면밀하게 검토하며, 여러 할인마트를 번갈아 방문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일반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영역이 하나 있다. 그것은 ‘언론’이 생산자와 유통자 역할을 맡고 있는 정보전달 영역이다. 여기서 소비자는 정보전달자인 언론을 쉽게, 천진난만할 정도로 쉽게 믿어버린다. 또한 최종소비자인 독자들은 언론의 말의 진위를 밝혀내는 것도 쉽지 않다. 더 나아가서 소비자들은 ‘언론’이 ‘자기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이기적 존재임은 아예 믿으려 하지도 않으며 관심조차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 시민들과 서민들이 겪고 있는 왜곡이 비롯되고 유지된다. 일반상품들은 우리의 육체적 욕구를 충족시키지만, 대중매체가 생산․유포하는 ‘제품’은 우리의 정신과 판단을 지배해 버리기 때문이다.

언론시장의 ‘정보유통자’와 소비자

언론이 ‘이기적’ 존재라는 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기적’이라는 말을 언론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라는 대명제를 언론에 적용시켰을 뿐이다.

그렇다면, 독자들이 ‘이기적’ 정보유통자들이 어떤 환경에서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자기이익을 추구․실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정보의 최종소비자인 독자의 이익극대화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신문사들은 수입구조가 거의 9 대1의 비율로 광고수입에 편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수입의 10% 정도만을 담당하고 있는 독자들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언론사가 신문내용과 광고를, 독자와 광고주에게 동시에 판매한다는 전통적 도식은 더 이상 적용되기 힘들다. 약간 과장한다면, 신문사는 (경품제공 등으로 유지되는) 독자와 신문의 광고지면을 송두리째 광고주에게 팔아넘기고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나는 이 인식에 기초한 관찰에 근거하여, 지난 10년 간 우리 국민들이 중요한 사안에 관해 왜곡된 정보를 접한 결과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평가한다.

언론의 말대로라면 2년 전 ‘파탄’이 났던 우리나라 경제의 현재 종합주가지수가 어떻게 1700을 상회할 수 있을까? 불과 6개월 전 주택구입을 독려했던 언론의 말은 지금 허위였음이 분명하게 밝혀졌다. 당시 언론은 아직 시행되지도 않은 8.31 부동산 정책이 ‘이미’ 실패한 정책이라 못박아버리는 ‘신공(神功)’을 발휘하기도 했다. 언론이 퍼트려 왔던 거짓분석과 소문의 예는 그밖에도 수없이 많다.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과 “언론탄압”

서론이 길었다. 사안의 복잡성 때문이다. 현재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과 “언론탄압”으로 요약되는 두 입장이 열흘 넘게 격돌하고 있다. 전자는 청와대가, 후자는 대부분의 언론이 주장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후자가 ‘친노세력 결집용’이라는 일종의 ‘음모론’과 결합하여, 전자보다 더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대결 중인 두 의제 중 어느 것이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는,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해본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달 22일 발표된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의 골격은 1) 합동브리핑 센터 설치와 2) 전자브리핑 도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브리핑실의 효율화”와 “정보화 환경에 맞는 실질적 취재지원 서비스 강화”를 목적으로 삼고 있다.

“합동브리핑 센터 설치”의 구체적인 내용은, 현행 21개의 브리핑실을 15개로 통폐합하는 것과, 현행 20개의 송고실을 9개로 통폐합하면서 언론사당 4개씩 총 600여 개의 송고석을 제공한다는 데에 있다. 두 번째 “전자브리핑실의 도입” 정책은, 합동브리핑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브리핑을 언론에 실시간 중계해주며, 언론사의 개별적 취재를 위한 질의와 응답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라고 한다.

이 정책은 1) 언론사들이 보다 빨리 정보에 접근하도록 도와주는 동시에 2) 모든 언론사들이 동일한 시점에 1차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정부의 핵심적 발표내용의 거의 전부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 발표내용을 현재 많은 국민들은 정부의 언론탄압 시도로 이해하고 있다. 위의 내용이 어떻게 언론탄압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 그것은 ‘언론탄압론’에 동조하는 국민들 대부분이, 정부가 “브리핑룸 통폐합”을 수단으로 기자실을 없애려할 뿐만 아니라, 기자들의 일선경찰서 출입마저 통제하려 한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먼저 기자실은 현재 더 이상 공식적으로 존재하고 있지 않으며, 중앙관청이 아닌 일선경찰서에 대한 기자의 출입권한은 중앙정부가 아니라 해당경찰서 권한에 속하므로 위의 정부발표와 전혀 무관한 일이다.

정부의 이번 발표에 대해서는 나라 바깥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했다. 소위 ‘국제언론인협회(International Press Institute)’라는 기관은 지난 30일 “한국정부가 국정관리를 잘 할 것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공개했다.

‘국제언론인협회(IPI)’의 이 무례하고도 생뚱맞은 요구의 근거는 바로 이 보도자료에 나타나있다. IPI는 한국정부가 “8월까지 프레스룸의 수를 37개에서 3개로 줄일 예정”이며, “기자들이 사전 허락 없이 정부건물에 들어가는 것도 막을 예정”이라는 점 때문에, 한국정부가 순수하지 못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여기서 IPI가 독립적인 국제단체라기보다 우리나라 일부 신문사 사주들이 회장이나 이사를 역임하고 있는 단체임은 도외시하더라도, 이들의 주장은 사실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 이들은 정부의 ‘브리핑룸 21→15의 통폐합+전자브리핑시스템’ 정책을 ‘브리핑룸 37→3의 통합’으로 규정한 후 비판하고 있으며, 이것은 거짓이다.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의 효과

우리는 대립하고 있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론’과 ‘언론탄압론’ 가운데 진실을 호도하고 있는 것은 후자이며, 많은 국민을 호도하는 허위정보가 유통된 책임이 바로 언론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밖에도 지금까지 언론이 정부의 공식발표 내용마저도 교묘하게 사실관계를 비틀어서 덧칠하고 왜곡해 버렸던 보도의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이때마다 국민들은 언론이 보도한 정부의 발표나 대통령의 말을 사실로 믿었으며, 이것은 최종적으로 국민들의 복지와 국가 전체의 손실을 결과하였다. 우리나라의 정보유통시장에서 정보생산자인 언론은 거의 ‘제왕적’ 권한을 누리고 있으며, 정보소비자인 국민들은 쉽게, 천진난만할 정도로 쉽게 이들을 믿어버렸기 때문이다.

언론과 국민과의 이런 불평등한 관계는 현재 한국사회의 발전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한다. 바로 이번에 쟁점이 되었던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은, 보도자료 동시제공을 통해 언론이 평등한 조건에서 경쟁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국민의 권익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

정보생산자들에게 약간의 불편을 야기하며 소비자들이 보다 나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기안된 정책을, 소비자가 생산자의 말만 믿고 반대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