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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갈등의 핵,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9

'갈등의 핵,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9

 

☞ 오늘날 마사다 유적지는 이스라엘의 정체성 확인의 장소이다. 임관하는 이스라엘군은 모두 이 마사다언덕 역사의 아픔을되새기면서 임관식을 갖는다고 한다. 다시는 망국의 설움을 겪지 않기 위해서 마사다 언덕과 통곡의 벽은 오늘날 이스라엘 정체성의 확인의 핵심적 장소이다.

 

 

3. 객관적으로 기록된 민족국가의 흥망사

 

역사적 사실의 기록, 구약성경

가나안 땅에 돌아온 유태민족은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나라를 건설하고 싸우고 망하는 역사를 되풀이한다. 그 시점부터 구약성경은 신화의 세계가 아니라 유태민족의 정사로서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이 시대부터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로 이어진다. 기원전 천 년 전후부터다.

 

유태인들의 경전인 히브리 성경은 기독교의 구약이나 약간 다르게 편찬되어 있다. 창세기를 비롯한 모세 5경은 똑 같이 앞에 있지만 그 이후 편집은 다르게 되어 있다. 즉 모세 5경 뒤에 '여호수아기, 판관기'까지는 같지만 '롯기'는 뒤로 미루고 '사뮤엘 상.하, 열왕기 상.하'로 역사서를 끝내고 있다. 그리고 후기 예언자들편과 마지막편을 '시서'와 '지혜서'로 끝맺는다. '시서'와 '지혜서 '맨 끝에 '연대기'를 넣었다.

 

역사서의 기록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라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밝히면 창피할 것 같은 기록도 숨김없이 담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민족적인 위인이나 영웅이라도 행한 일을 그대로 가감없이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절의 구약은 미화시킨 역사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객관적인 눈으로 본 지도자들과 민족 성원의 흥망성쇠사다. 성인 군자도 없고, 권력자나 예언자라고 쓸쩍 봐주는 기록이 아니다. 수많은 등장 인물들이 펼치는 드라마는 믿음과 배신, 미움과 사랑, 전쟁과 평화, 음모와 갈등, 영광과 좌절 등 어느 나라 민족사와도 다름없는 굴곡에 찬 이야기다. 그래서 구약은 자세히 기록되어 재미있다.

 

이민족과 생존을 건 싸움

40년 방황을 끝낸 이후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유태인들은 이미 죽은 모세가 아니라 '여호수아'란 탁월한 지도자 밑에서 싸우면서 정착하는 과정을 걷는다. 4백 년 뒤에 가나안 땅에 나타난 그들을 옛날부터 그곳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이 반길리가 없었다. 그래서 싸움과 싸움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그곳에서 살고 있던 유태인들은 주변 종족들에게 수탈과 핍박을 당하면서 생명을 연명하느라 어지간히 고생들도 했을 것이다. 이집트에서 다시 고토를 찿아간 이들을 반겨준 것은 바로 남아 있던 유태민족들이었으며 어렵게나마 정착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여호수아, 판관기, 사뮤엘기와 열왕기는 가나안 땅 정착 과정에서 주변 종족들과의 싸움이 주요 이야기다. 유태인들과 싸움을 벌인 종족들로는 '가나안', '힛타이트', '예브시트', '필리스틴' 등의 종족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작은 목초지를 얻기 위해서, 우물이나 저수지를 차지하기 위해서, 또 먹을 곡식을 약탈하기 위해서 피를 나눈 종족이 아닌 타종족은 모두가 크고 작은 싸움의 대상이었다.

 

유태민족이 싸움의 한복판에 있었으며 유태인들은 일종의 성전이라는 신념으로 타종족에 비해 강렬하게 싸움이 임했다. 여호수아는 점령지를 12부족의 자치 지역으로 나누어 정착하였는데, 각부족에는 판관을 두어 이를 연방 형식으로 통괄하였다. 이들 판관들은 족장과 같은 위치에서 상황에 따라 예언자가 되기도 하고 군사령관이 되기도 하였다. 이들 판관들 가운데 드보라, 삼손, 사뮤엘 같은 탁월한 지도자로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온 지휘능력이 뛰어난 지도자들이었다.

 

 

드보라, 삼손, 사뮤엘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성 '드보라'의 행적은 마치 우리 나라 역사에서 백제 침략군을 맞아 지혜롭게 대처한 옛 신라의 '선덕여왕'과 흡사한 면이 있다. '드보라'는 강력한 '가나안' 군사들이 쳐들어 왔을 때 그녀는 '바락'이라는 장수를 시켜 고지를 점령했다가 가나안군을 계곡으로 몰아내는 전술을 편다. 그 전날 비가 많이 와서 그 계곡이 진흙탕으로 변해 가나안군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음을 예상했던 것이다. 이 작전에서 적장 '시스라'가 전사하고 가나안군은 결국 대패하고 만다.

 

'드보라'는 몰라도 '삼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삼손은 엄청난 괴력의 힘을 가진 장사로 '필리스틴'군이 쳐들어 왔을 때 당나귀의 머리뼈로 적군 만 명을 죽였다고 한다. 그런 그가 데릴라라는 적군의 여자에게 폭 빠져서 그만 힘의 원천인 머리를 깍이고 이로 인해 몰락하고 만다. 영화로도 나왔지만 황당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다.

 

사뮤엘은 장군이라기보다 예언자였다. 그는 마지막 판관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그의 요청으로 유태인을 보호하고 강력한 통치력을 행사할 수 있는 왕을 세우게 되는데 그가 '사울'이다. 사울은 농부였으며 농부가 왕으로 발탁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것으로 혈통과 출신을 중요시하던 당시의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않는 유태인만의 율법이었다. 유태인 사회는 능력이 있다면 누구라도 왕이 될 수가 있는 평등사상이 근간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평등 사상은 구약시대 이후 오늘날까지 유태인 사회의 인재 양성에 결정적인 원천으로 작용하게 된다.

 

유태인은 탁월한 군사 지휘 능력, 뛰어난 인덕이나 경영 능력, 예언자적인 능력 등 그때그때 처한 상황에 맞추어 필요한 능력자를 왕으로 모셨던 것이다.

 

사울왕의 치세도 싸움의 연속이었다. 정신차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전투를 벌였는데 그는 유능한 장수인 다윗을 수하에 두었다. 그러나 다윗의 능력을 시기하여 그를 해하려는 등 어지러운 상황이 벌어진다. 사울왕은 주변 이민족들과의 싸움에서 처음에는 성공하였으나 나중에는 싸움에 지고 자살하고 만다. 적은 그의 시신을 성벽에 걸어놓고 사기를 높이는 등 어려움 끝에 유태인들은 시신을 되찿고 장례를 치른다. 이러한 이민족과의 싸움은 2백 년 가량 지속되면서 유태인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시대를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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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이러한 유태인 역사를 보면, 왜 하필이면 이민족이 우글거리는 황무지에 가까운 불모지 땅인 가나안 땅을 하느님이 약속하셨느냐는 것이다. 그런곳에 타민족이 들어가면 당연히 기존에 정착하여 살던 민족이 가만이 있을리가 없는게 아닌가? 남의 땅을 주인에게는 사전 한마디 말도없이 유태민족에게만 그 땅을 임의대로 약속한 이유는 무었일까? 그런 곳에 떠돌이 민족이 정착하려면 당연히 서로 싸우고 피를 흘리는게 당연하다. 이런 경우에 맞지않는 행위를 유태인들에게 약속한 것과 그들에게만 임의대로 편애하여 약속한 하느님은 유태인들만의 하느님인가? 하느님은 무슨 마음으로 그런 약속을 했을까? 오늘날까지 인류 분쟁의 불씨는 여기서 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서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