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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한여름밤의 꿈 3

한여름밤의 꿈 3




육사 정문 앞 전경

 

 

나는 퇴계원역에서 중량천 가는 길을 찿아다니다가 화랑로 자전거길을 발견하게 되었고, 또 구 철로길을 따라 가는 지름길도 알게 되었다. 구 철로 길은 지름길이지만 중간에 비포장 도로 구간이 있어 화랑로 자전거길로 주로 다니는데, 고목의 키가 큰 가로수 나무가 많아 여름에는 시원하고 자전거길도 비교적 다니기에도 편하여 자주 다닌다. 

 

육사 정문이나 육사 아파트 입구, 또는 화랑대 입구 역에서 묵동천 자전거길로 들어가서 조금만 가면 바로 중량천 자전거길이 나타난다. 중량천 자전거길을 만나서 상류인 북쪽으로 가면 의정부 방향으로 갈 수 있고, 하류인 남쪽으로 가면 한강 자전거길을 만나게 된다. 합류 지점에서 잠수교 방향으로 가서 잠수교를 건너 한강 남쪽 자전거길을 경유하여 잠실 방향으로 가다가 잠실 철교에서 다리를 건너 구리한강시민공원을 경유하여 호평동으로 돌아오거나, 합수부 지점에서 바로 뚝섬 방향으로 가서 구리 한강시민공원을 경유하여 호평동으로 돌아올 수 있다.

 

 

 

육사 정문 들어오는 길

 

 

화랑로 자전거길은 우측편 태릉 푸른 동산에 삼육대학과 국제스케이트장, 선수촌 정문을 지나게 된다. 좌측에는 육사 골프장과 육군사관학교 후문과 정문을 지나게 되는데, 이 일대는 오렛 동안 자란 수목이 무성하여 공기도 맑고 숲에서 뿜어나오는 신선한 기운이 많이 솟아나는 곳이기도 하다. 푸른 동산 숲에는 잔디밭도 있어 옛날 그곳에서 서울 모 여대생들과 미팅하던 생각도 난다. 

 

육사는 많은 젊은이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군인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지원하는 곳이다. 육사 11기부터 4년제 교육이 실시되었다. 초기에 입교한 11기부터 20기까지는 전국에서 특차로 뽑으면서 우수한 인재가 많이 입교하였다. 21기부터 30기까지 중상층 그룹이 주로 선발되었고, 31기에서 50기까지 20년 동안은 점차 중하위권에서 하위 그룹 학생들까지 입교하였다. 그 이후 상태는 알 수 없으나 제3공화국이 무너지고 군사 정권의 실정을 통해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으면서 군인에 대한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지원자가 대폭 줄어들다가 심지어 미달 사태까지 벌어진 적이 있었다. 그리서 무능하고 품성과 자질이 부족한 부적격자들이 대거 선발되었는데,  대부분 점수 미달로 일반 대학을 갈 수 없는 하층 그룹이 많이 선발되었다.

 

입교 후 생도 4년 동안 명예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며 혹독한 훈련과 학업, 내무생활을 통해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졸업생들이 임관 후 전후방 각지에서 군대 생활을 통해 점차 4년간 형성되었던 가치관을 점차 상실하고 정치적, 출세지향적으로 변하면서 심지어 비리와 부패에 늪에 빠지게 된다. 특히 비리와 부패는 보.포.기갑 병과를 제외한 기타 특수 병과로 간 육사 출신들 중 일부가 비리와 부패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부분 병참 물자, 시설 공사, 공사 감독, 계약 및 예산, 정비 및 보급, 헌병 및 기무 분야가 심하였다. 보.포.기갑 병과로 간 장교들은 대부분 비리와 부패를 거의 모르고 정직하고 원칙대로 군생활을 해온 장교가 많았지만, 일부 정교는 계급이 올라가서 사단장 이상 부대장이 되면 예하 특수 병과 부대장들이 아부하는 차원에서 뇌물을 제공하는데, 그 댓가로 평정을 잘 받거나 국가가 주는 표창, 보직, 진급에 우위를 차지하기 위함이다. 뇌물은 처음에는 거절하기도 하고 화도 내면서 받기를 거부하지만, 뇌물에 넘어가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여 아부하고 시간이 지나면 돈맛을 보게 되면 변질되게 된다. 강직한 지휘관일 경우 가족을 통해 뇌물을 제공하면 가난한 군인의 삶을 살아온 가족은 금방 뇌물에 빠져들게 된다. 명절, 새해, 년말, 자녀 입학 및 졸업, 이사 등 각종 경조사는 물론 상관 부부 생신 때마다 챙기고 심지어 자신의 마누라를 공관이나 서울 본가에 보내 식모.파출부 노릇은 물론 그 집 강아지 생일까지 챙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문 옆 골프 연습장. 육사 교수, 직원, 가족 등 육사인들을 위해 만든 골프 연습장이다. 그러나 아파트는 저층으로 지은 지 오래돤 아파트로 보인다.

 

 

어느 기수든지 소령, 중령, 대령, 장군으로 올라가면서 피라미트 구조로 인해 각 단계에서 진급을 못하는 장교들이 많다. 모두가 별 넷을 달고 총장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장교들은 실제 무능한 장교도 있지만 대부분 아부를 모르고 오로지 원칙대로 근무만 열심히 하는 장교가 많고 상관에 대해서 눈치도 없고 코치도 없는 사람으로 열심히 근무만 잘하면 저절로 진급될 것이라는 헛된 믿음을 갖고 있는 부류다. 그러나 경쟁자는 아부를 열심히 하여 직속 상관의 마음에 들게 되면 평정은 대부분 자연히 그 아부 잘하는 장교에게로 가게 된다. 상관 마누라가 옆에서 지도하여 서열을 고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은 군을 포함 경찰, 검찰 등 조직과 계급 사회에서는 어디든지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어쩌면 이런 현상은 고대에서부터 현대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 사회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인간이 살아가는 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눈치.고치도 없는 장교는 평정을 잘 받지도 못하고 자기가 원하는 부대로 전출가는 것이 아니라 명령나는대로 강원도 오지나 변방 부대 보직으로 떠도는 경우가 많다. 반면 눈치빠른 친구는 육군 본부에 들락거리면서 과거 모시던 상급자의 도움을 받아 진급과 보직을 담당하는 담당자에게 아부하고 부탁해서 평정도 잘 받고 경쟁자도 없으며 수도권에 가까운 자신이 원하는 부대로 보직을 받아 간다. 그래서 근무만 열심히 하는 사람은 진급을 하려면 공정하고 청빈한 상관을 잘 만나야 하지만 꼭 그렇지 못하다. 또 경쟁자를 고려한 부대 배치에도 운이 따른다. 

 

 

 

 

 

 

지금은 진급 제도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잘나가고 뇌물이 통하지 않는 하나회 같은 상관을 잘 만나 도움을 받아, 자신과 경쟁자가 없는 부대나 경쟁자가 있어도 진급할만한 수도권 부대 주요 핵심 보직에 보직받으면 진급에 유리하게 된다. 5공 때는 하나회 천하였기에 사업을 하는 사람도 하나회 장교에게 부탁하기 위해 일반인은 물론 기업들의 찬조나 협찬이 넘쳐나는 시대였다. 그래서 뇌물이 통하지 않던 시대였다. 

 

진급 심사위원들은 각 부대에서 선발되어 오기 때문에 각 부대 지휘관의 밀지를 받고 온다. 그래서 진급 심사시 진급자가 부대별로 균형있게 선발되어야 하기 때문에 부대별로 안배를 하게 된다. 그래서 운이 없으면 경력에 흠이 없어도 부대별 안배로 인해 진급에 밀리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다음 번에는 진급은 한다. 

 

그래서 '어리석게'도 육사를 지원하여 태릉에서 4년간 젊음을 불태우고 임관한 육사 출신 장교들이 지금은 소령, 중령, 대령도 진급 못하고 군을 떠나는 경우도 많다. 빽과 돈이 없는 가난한 장교는 진급이 어려운 것이 언제나 현실이었다. '어리석게'라는 말은 당시에는 군과 육사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지원했고 월남전이 한창 진행되면서 군의 위상이 높아졌고 군의 줏가가 하늘로 치솟던 최고의 시절이 영속될 거라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하극상의 극치를 보여준 10.26 대통령 시해 사건과 12.12 군사반란으로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군은 물론 우리 사회는 하극상이 당연시 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군인의 정신 세계를 송두리채 무너뜨린 계기가 돠었던 것이다. 쿠테타 공신인 하나회들이 돌아가며 별을 멋대로 달고 돌아가면서 육군 총장 등 군 요직은 모조리 차지했고 쿠테타에 협조한 비하나회 장군들에게도 장관, 국가기관 수장  등 다양한 방법으로 보상을 해주었다. 

 

 

 

 가로수가 가득한 화랑로

 

 

육사 출신들은 비육사 출신 선배 장교들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것은 생도 시절 은근히 육사 11기 선배를 정규 육사 1기 선배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군내에 팽배하였고 후배들도 교화되어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 임관시에는 각자 능력이 비슷하지만, 임관 후 수도권 주요 핵심 보직을 찿아다니며 화려한 경력을 쌓고 하나회 상관들을 만나 인연을 맺고 나면 다른 동기생과 차별화가 나타난다. 동기생들도 하나회 동기생에게 빌붙어 덕을 보려는 사람도 많았다. 

 

권모술수도, 눈치도, 빽도 전무한 가난한 집안의 자식은 언제 어디서나 어느 나라 군대든지 절대로 인정받고 진급하거나 출세할 수가 없는 것이 인간 사회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사람은 자라면서 때로는 아부도 할 줄 앍고 권모술수도 배우고, 눈치도 빠른 사람이 되어야 하고 없는 빽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정표

 

 

어린 시절, 우리 마을 앞에는 낙동강 지류인 금호강이 흐르고 강 건너 안동에서 부산으로 연결되는 중앙선이 지나간다. 어느날 그 철로길에 열차를 타고 수많은 월남 파병 병사들이 열차마다 플랭카드를 걸고 소리 높여 군가를 부르며 월남으로 파병가던 장면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나도 월남으로 파병을 가고 싶었는데 나이가 어렸다. 

 

우리 마을에 한 젊은이가 맹호 부대에 파병되어 편지로 소식이 올 때마다 마을의 화제가 되곤했다. 편지가 오지 않으면 부모는 아들이 전사한 게 아닌가 하고 밤잠을 설치곤 했다. 목숨을 담보로 한 파병 병사가 수당을 챙겨 부모님께 보내고 각종 선물도 보내곤 했다. 연장하여 2년 동안 근무하면서 보낸 수당으로 그 사람의 부모님은 나중에 초가 집도 새로 고치고 논도 사는 등 가난했던 가정이 서서히 마을의 부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구 철로길

 

 

 

 

 

또 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노동자로 채용되어 돈을 벌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돈맛을 보게 되자 용기있는 젊은이들이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도시로 도망쳐 갔다. 몇 년 후 명절이면 양복을 입고 손에 각종 선물을 가득들고 고향을 찿아왔다. 부모들은 도망쳤던 자식이 돌아왔으니 반갑고 그동안 번돈으로 손물도 사오고 모든 돈도 내놓으니 더욱 반가웠다. 그날 밤. 밤새 그 젊은이의 집에는 동네 처녀 총각들이 모여 도시 생활의 경험담을 듣게 되고 모인 처녀. 총각들은 물론 그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 모두가 부푼 꿈에 밤잠을 설치게 된다. 

 

명절이 끝나면 마을은 온통 난라기 나는데, 그 사람과 같이 동네 처녀 총각들이 여럿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후 몇 년이 지나면 그때 명절에 도망갔던 처녀 총각들이 멋진 정장을 입고 선물 꾸러미를 양손에 가득 들고 고향을 찿는다. 새마을 운동과 더불어 이렇게 농촌은 5천 년의 가난을 벗어나 하나하나 개화되어 갔고 개선돠어 갔으며 부유해지기 시작했다. 오늘날 농촌과 지방이 황폐해지는 반면에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되어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대도시가 되고 말았다. 이런 이유로 명절이면 고속도로가 고향 가는 차량들로 가득차는 이유다.

 

우리 인간은 어쩌면 허상을 보고 허영심에 젖고 환상을 그리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탐욕이 넘쳐나며 자신의 이득에 민감하고 남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남을 속이고 남을 이용하고 남을 배신하며 윤리와 도덕, 양심을 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권력자와 자산가를 부려워하고 그들에게 아부하여 떡고물이라도 얻을 요량으로 오늘도 불철주야 땀흘리는 모습을 보면  조물주가 인간을 참으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재미있다. 이런 인간들이기에 인류의 역사는 진보하여 왔고 인간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콘크리트가 큰 자갈만 넣어서는 강도가 약하다. 큰 자갈과 작은 자갈, 모래, 시멘트가 적절히 섞어 비벼야 양질의 콘크리트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인간 사회도 다양한 인간이 골고루 섞여 각자 자신의 재능을 최대로 꽃피울 때 많은 갈등과 혼돈을 겪으면서도 진보해 나가는 것이다. 

 

코로나로 사람이 무서운 시대가 되고 말았다. 자연인이 되아 산 속에 혼자 사는 사람이 요즘 가장 행복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자연인 프로를 보고 느낀 점은 인간은 자연에 가까울수록, 자연에 파묻혀 살아갈수록 질병이 치유되고 수명이 늘어난다는 결론이다. 평생 권력과 재물을 얻기 위해 탐욕과 욕심으로 가득찼던 세월을 통해 배 속에 오물을 가득 담고 오늘도 호만천과 자전거길을 산책하는 수많은 전쟁 부상자들이 열심히 걷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다. 어차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흙으로 돌아갈 사람들이지만, 오늘도 밤잠 설치며 권력과 재물을 얻어 부귀영화를 누리기에 골몰하고 있는 인간들이 불쌍해보일 뿐이다. 고대 로마 시대나 오늘날 현대나 인간이 살아가는 것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깊어가는 한여름밤에 별로 쓸데없는 인생론을 주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