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마을
천국과 지옥이 병존하는 도시, 서울 탈출기 5 본문
천국과 지옥이 병존하는 도시, 서울 탈출기 5
자본 권력을 상징하는 바벨탑, 잠실 롯데 신축 최고층 빌딩 모습
28년간의 서울 생활은 내 삶의 황금기를 거의 다 보낸 기간이기도 하다. 자녀들이 성장하여 시집, 장가를 갔고 강남의 요지 서초동에서 한국 최고의 문화혜택을 누리며 살았다. 새벽 우면산을 오르게 된 것은 퇴직 후 건강을 되찿기 위해 약수터 물을 떠오려고 오르면서부터다. 등산로에 외등이 켜져 있었고 새벽 산행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방배역 방향에서 바로 올라가면 능선 상단부까지 대략 500개나 되는 돌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이 500계단을 처음 오르면서 다리가 휘청거리고 숨을 헐떡거리며 몇 번이나 쉬면서 올랐다. 이를 악물고 오르다보면 중간에 약수터가 나오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상단부에도 약수터가 있었다. 그곳에서 약수를 통 네개에 담아 베낭에 넣고 상단부로 올라가 횡단 등산로를 통해 예술의 전당쪽으로 내려오곤 했다.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세월의 스트레스가 온 몸에 잔뜩 누적되어 심신은 이미 깊은 병세를 나타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매일 쉬지 않고 새벽 우면산을 올랐다. 베낭에 약수를 담아 넣은 4개의 물통이 묵직했지만 그 짐을 지고 계단을 올라 정상 부근에서 처음에는 예술의 전당 쪽으로 내려왔지만 나중에는 방향을 달리하여 사당역 방향으로 내려오기도 했고 정상을 오른 다음 서초 IC 방향으로 내려가기도 하고 보광사 사찰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계절에 따라 꽃이 피고 수목이 우거지고 낙엽이 휘날리는 변화무쌍한 우면산과 예술의 전당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동이 튼 후에야 집에 도착했다. 겨울철 눈내리는 새벽 우면산도 올랐고 얼어붙은 약수터에 졸졸 흘러내리는 약수를 한사발 떠서 마시면서 강남의 새벽밤 풍경을 감상하기를 3년, 어느 여름날 폭우로 인해 우면산에 대규모의 산사태가 났고 아파트를 덮쳐 여러명의 사람이 죽었다. 남부순환도로는 마비되었고 진흙탕물이 방배역을 지나 내방역까지 쏟아져 흘러내렸다. 낮은 지역의 주차장, 지하층은 대부분 물난리를 겼었고 진흙탕이 가득차 차량이 물에 잠기고 전자제품, 각종 가구와 옷가지를 모두 버려야 했다.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에 있는 예술의 전당 공연도 한번 가지 못했고 여의도 벚꽃 축제, 불꽃놀이 등 그 흔한 행사도 가보지 못했다. 한강고수부지에서 한다는 열린음악회를 어느날 갔다가 사람들이 너무 많아 포기하고 되돌아온 적도 있었다. 어디를 가던지 소문난 곳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발길을 옮기기도 힘들 정도였으니 아예 포기하고 텔레비젼으로 보는 편이 편했기 때문이다. 클라식 음악을 듣고, 뮤지컬 공연도 보고, 열린음악회에 참석하고, 관람자 판정단이 되어 복면가왕에 참가 한다고 사람이 고매한 인격이 형성되고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최고의 지성인척 과시하고 싶고 자신을 뽐내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면에 감추어진 탐욕은 잠재되어 있을 뿐, 갖가지 가면을 쓰고 상대를 대할 뿐이다.
인간은 영특하다지만 머리속에는 태평양 바다에 떠 있는 나무잎 조각에 불과한 지식으로 잘난채 하는 것이고 남의 말에 쉽게 현혹되는 것도 무지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유행에 민감하고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말초적인 관능에 열중하는 것은 억압받고 굶주리며 살아온 5천년 역사에서 이기적인 유전자가 몸에 배인 탓이기도 하다. 촌놈이 벼락출세하듯이, 머슴이 로또 1등에 당첨된 것처럼 거드럼을 피우며 살고 있는 모습이 바로 오늘날 우리들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서울을 사랑한다. 그러나 더이상의 사랑은 나에게는 너무 큰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나는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고 그래서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패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래서 자본이 넘쳐나고 탐욕이 사람을 집어삼키는 이곳 서울을 떠나고 싶을 뿐이다.
출세와 성공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고관대작이 되고 많은 재물을 얻는 것이 출세인가? 아홉 선녀를 거느리고 살면서 행복을 느끼던 구운몽의 주인공처럼 과연 그렇게 살면 행복할까? 이슬람 극단주의를 창시한 한 노인이 천국같은 곳을 만들어 놓고 마취된 젊은이를 데려다가 아름다운 정원에 젖과 꿀이 흐르고 많은 미녀들과 꿈깥은 며칠을 보낸 후 다시 마취시켜 속세로 데려오면서 암살을 사주하고 성공하면 다시 천국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런 유혹에 빠져 수많은 이슬람 젊은이들이 목숨을 버리면서 이슬람 반대파를 숙청하는 암살자가 되었다. 오늘날 자살폭탄테러가 자행되는 것도 천국을 갈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진 어리썩은 인간들이 벌이는 종교적인 탐욕일 뿐이다.
이처럼 종교나 사상이나 이념은 무지한 인간을 편향적인 이론과 논리, 현실의 문제점을 쇠뇌시켜 광신도로 만들고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여 세계화를 꿈꾸는 환상에 젖어 있는 선전.선동에 불과하다. 역사이래 인류 사회는 어떠한 종교나 사상이나 이념도 더불어 다같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지 못했다. 그 근저에는 인간의 가슴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가면을 쓴 탐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반문해보라. 그대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양심적이고 도덕적이며 민주시민으로 사익보다 공익을 위해 노력해 왔는지......
5. 드디어 집이 팔리다......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2월 어느날 부동산에서 우리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다면서 연락이 왔다. 나는 좋아라 하고 급히 부동산으로 뛰어가서 그 사람을 만났는데, 같은 동네 근처에 사는 중년 아줌마였다. 난 급한 마음에 매입을 거절할까봐서 가격도 천만 원이나 낮추어서 제시하자, 그녀는 예상외로 선뜻 매입에 동의했다. 중도금은 3월 4일, 잔금은 이주비가 나오면 바로 치루기로 했다. 상대 아주머니는 보기에 매우 착하게 보였고 전문 투기꾼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부동산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금을 받아 부동산을 나서면서 매입자 아주머니에게 '구세주'시라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주비가 나오면 잔금을 치른다'는 계약서상 내용이 앞으로 나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 그때까지는 전혀 몰랐다.
아들집에 손주를 돌보고 있는 마누라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렸다. 그동안 노심초사 집이 팔리지 않아 무척 걱정하던 마누라였기 때문이다. 나는 인터넷으로 경기도 남양주 아들집이 있는 호평동을 중심으로 평내동, 마석, 구리 일대의 빌라와 아파트를 집중 검색하기 시작했다. 아들집 가까이에 집을 얻어야 한다고 마누라가 말했기 때문에 아들집 가까운 지역부터 우선적으로 살펴보았다. 어차피 아들집을 들락거릴 처지라 멀리 가면 이동도 어렵고 교통비, 시간도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난 사실은 모든 것을 훌훌털고 바닷가나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거나 강이나 호수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텃밭이나 일구면서 살고 싶지만 당장은 그럴 형편이 못되었다. 아들집에서 떨어져 우리 부부 둘이서만 산다고해봐야 아무런 낙도 없고 마누라는 자식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고 농촌이나 오지의 외딴 생활에 마누라가 쉽게 적응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쉽사리 그렇게 결정을 하기도 힘들다. 자식집 가까이에서 자식을 위해 조금이나마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사는 것이 차라리 건강에도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계약 후 그 다음 주에 아들집이 있는 호평동을 방문하여 처음에는 신축 분양 중인 초석빌라를 둘러보았다. 다른 곳도 몇 군데 둘러 보았지만 빌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인해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다. 내가 서울에서 빌라에 28년을 살아왔기에 빌라는 오래 살려면 지분이 적으면 가치가 없다. 집값은 매년 급속히 떨어지고 재건축시에는 지분이 적어 남는 것이 없으며 당장은 좋을 지 몰라도 오래 살기에는 빌라는 재산가치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빌라는 관리원을 고용하여 건물 관리가 가능한 고급빌라가 아닌한 저가의 좁은 평수의 빌라는 여러 세대가 모여 살기 때문에 관리원을 둘 형편도 못되어 관리가 어렵고 공동생활을 하는 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골목길 청소, 입구 청소, 계단 청소는 물론 쓰레기 버리는 문제를 포함 내외부 건물 관리, 정화조 청소, 빈번한 입주자 전입/전출, 입주자 소음/고성방가, 층간 소음/누수 문제 등 통제력도 없고 공공질서도 없다. 직접 상대하기에는 안하무인이고 잘못하면 이웃간에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기도 쉽다. 아들집 가까운 곳에 신축하여 분양하고 있는 초석 빌라는 좀 답답한 느낌이 들어 그냥 구경만했다.
그래서 고민끝에 결국 아파트를 구입하기로 결심하고 마누라에게 의견을 구했더니 그렇게 하자고 했다. 우리가 죽더라도 조금이라도 재산가치가 있는 아파트가 자식 빚 갚는데 다소 도움이 될 것이고 유리할 것 같아서다. 구입할 아파트는 서울 집이 팔린 금액에서 대략 2천만 원 정도 아래도 잡았다. 이사 비용, 취득세 포함 각종 수수료, 도배, 청소 등이 대략 천 만원, 가구 등 가전제품이 천 만원 정도 예상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용하던 가구와 가전제품은 오래되고 노후한 상태라 모두 버려야했고 딸이 미국 들어가면서 주고 간 장농과 냉장고, 책상, 책장 등을 제외한 대부분 새로 장만해야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더니 호평동 집값이 만만치 않았다. 교통이 편리하고 주거 환경이 다른 지역에 비해 좀 좋은 편이라 그런 모양이다. 저층에 작은 규모의 아파트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가격도 그렇지만 32평은 우리 부부에게 너무 과분한 크기다. 여름철 냉방비와 겨울철 난방비도 무시못할 것이다.
호평동, 평내동, 마석 세 군데를 중점적으로 검토한 결과 내가 생각하는 장단점은 아래와 같다.
우선 호평동은 지형이 비교적 평탄하여 대부분 평지에 아파트가 지어졌고 이마트 등 생활편의 시설이 근처에 잘 발달되어 있다. 평내,호평역을 이용하여 지하철이나 열차를 이용하기에 좋고 천마산 스키장을 비롯하여 등산로가 잘 발달되어 있다. 최근에 준공한 파라곤은 너무 외진 곳이고 거리도 멀다. 2008년도 준공한 임광 아파트는 전망은 좋으나 각동이 일렬로 능선을 따라 십자형으로 올라가서 내부 구조와 방향이 좀 애매하다. 그리고 언덕위에 지은 집이라 바람이 세고 비탈이 좀 있다. 나머지는 대부분 비슷한 아파트 군이다. 대주 아파트는 준공 당시 문제가 좀 있었고 중흥 아파트는 현재 하자보수 문제로 법정 다툼 중이라 한다. 2015년에 준공한 대명루첸 아파트가 파라곤 아파트 바로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마트 바로 옆 KCC아파트가 준공 단계에 있다. 호평동은 아파트마다 32평이면 평균 2억 7천에서 3억 이상 호가한다. 최근에 지은 아파트는 매물도 없고 나와도 엄청 비싸다. 나머지는 대부분 2004~2006년도에 준공한 아파트라 평수에 따라 차이도 나고 층수에 따라 차이도 난다. 전망이 좋은 층은 가격이 비싸다. 아파트에 입주하면 위층과 아래층에 어떤 사람이 살지 걱정도 된다. 빌라에 살면서 고통을 받아보았기 때문이다.
평내동은 호평동과 같은 시기에 개발된 계획도시인데 구릉지형으로 오르내리막이 많고 도로 경사가 급하다. 평소 다닐 때도 물론이거니와 겨울철 폭설이 내릴 경우 도로 제설작업이 제대로 잘 시행되지 않으면 걸어다니기에도 위험해 보일 정도다. 또 매일 새벽마다 내가 자전거를 타는 것이 유일한 낙인데, 자전거를 타기에도 불편한 곳이다. 오르내리기에도 불편할 뿐만 아니라, 도로 경사가 급하여 브레이크가 잘 작동되지 않으면 사고날 위험이 많아 보인다. 집값은 호평동 보다 조금 싼 편이나 이름있는 아파트는 호평동 버금간다. 아파트에 따라 생활편의 시설이 멀고 분산되어 있다. 호평동 아들집까지 도보로 이동하기에 좀 먼 거리다. 또 서울 잠실을 왕복하는 버스의 종점이 호평동에 있는데, 호평동에서 출발하는 M2323 버스를 타려면 출근시에는 대부분 서서 출근해야 한다. 평내.호평역을 이용하여 지하철이나 열차를 이용하기 좋으며 구리시와 가깝다.
마석은 집값은 제일 싸지만 주거환경이 좀 불편해 보였다. 넓은 지역에 아파트군이 분산 분포되어 서로 떨어져 있고 각종 생활편의 시설이 멀다. 차량이 아니면 이동하기가 여간 불편해보이지 않는다. 천마산역, 마석역이 가깝고 지하철이나 열차를 이용하기에 좋다. 경춘 국도를 건너야 하는 아파트는 행락철에 경춘가도의 많은 차량으로 인해 아파트 진출입이 힘들다. 생활편의 시설도 멀고 외진 곳이 많다. 그러나 노년을 맞이한 부부나 조용히 혼자 살기에는 마석이 좋을 것 같다. 주변 천마산 등산로가 발달되어 있고 북한강이 가까우며 스키장 등이 근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청평, 가평, 춘천, 양평, 광주로 이동이 용이한 장점이 있다.
난 고민끝에 빌라보다 재산 가치가 있는 아파트를 선택하기로 했고 그래서 아파트 구입 조건을 인터넷을 통해 살펴보고 나 나름대로 구상해 보았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지은지 10년 전후 아파트로 남향이며 5층 이내로 앞에 다른 동이나 아파트가 가리지 않는 집
2. 거실에서 공원, 산이나 숲, 들판, 강, 호수를 바라 볼 수 있는 집
3. 큰 나무가 가린 곳, 큰 도로 인접, 진입로 불빛, 산비탈, 옹벽, 주변 개발 예정지가 아닌 곳,
4. 각종 혐오시설(화장터, 쓰레기 적치장, 축사, 공장, 고물/재활용 집하장 등)이 없는 곳.
5. 마트, 병원, 은행, 시장, 공원, 야산, 산책로, 자전거 도로, 교회가 가까운 곳.
6. 서울 직행버스, 지방버스, 마을버스 정류장, 지하철역과 가까운 곳.
7. 가급적 주인이 거주하고 은행 대출이 없는 집.
7. 과거 화재, 침수, 사망 사고가 없었던 집.
8. 수압 상태, 침전물, 녹물 여부, 보일러 상태, 온수, 변기, 확장 부분 습기/결로/곰팡이 여부.
9. 지하주차장, 출입문/현관문 번호키
이상 대략적인 희망사항을 나열해 보았으나, 넉넉한 금액으로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원하는 집을 골라서 매입할 수 있다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실제로 결국 나도 빈약한 금액 때문에 대부분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매입하게 되었다. 사람이란 어디서 살건 형편에 따라 살 수밖에 없기에 이런저런 조건은 호사스런 생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시대의 흐름과 변화 > 생각의 쉼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국과 지옥이 병존하는 도시, 서울 탈출기 7 (마지막) (0) | 2016.05.27 |
---|---|
천국과 지옥이 병존하는 도시, 서울 탈출기 6 (0) | 2016.05.25 |
천국과 지옥이 병존하는 도시, 서울 탈출기 4 (0) | 2016.05.22 |
천국과 지옥이 병존하는 도시, 서울 탈출기 3 (0) | 2016.05.20 |
천국과 지옥이 병존하는 도시, 서울 탈출기 2 (0) | 2016.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