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천국과 지옥이 병존하는 도시, 서울 탈출기 4

 

 

천국과 지옥이 병존하는 도시, 서울 탈출기 4



                                                             자본 권력을 상징하는 바벨탑, 잠실 롯데 신축 최고층 빌딩 모습

 

지금까지 서울이라는 비대 도시가 어떤 도시인지를 살펴보았고 우리들의 삶에 어떤 위치인지도 살펴보았다. 천민자본주의가 성숙한 지금 서울은 천국과 지옥이 병존하는 도시며 기회와 위기가 상존하는 도시라 했다. 이런 천국과 지옥을 마다하고 서울을 떠나는 사람 중 서울이 좋지만 떠나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떠나고 싶어도 살기 위해서는 떠나지 못하는 많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서울은 우리 나라의 국부의 대부분이 몰려 있는 곳이기에 매우 중요한 곳이며 어떠한 위협도 견디어내야 하고 우리들이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고대 로마시대나 지금이나 노예가 상존하는 것은 이름만 다르지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들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도시, 우리들의 희망이지만 한편으로 미래가 보이지 않는 무법천지나 다름 없는 도시다. 가진자들만이 천국이요 가지지 못한자들에게는 지옥인 도시, 그 도시에 대하여 나름대로 생각나는대로 쓴 글이니 만큼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란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우리집 재건축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들은 누구나 말로는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사회를 희망한다. 왕조시대는 물론 공산주의도 실패했고 자본주의도 실패하고 있다.

역사는 힘이 있는 자만이 부귀영화를 만대에 누리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로 변함없이 영속되어 왔을 뿐 모두가 더불어 잘 살아가는 사회는 앞으로도 결코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치 못한 이유가 아래 재건축 사연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다. 가진자는 약자를 등쳐서라도 더 갖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인간 사회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나 참고하시길...... 

 

4. 재건축 논의되다.

 

1988년도에 학군이 좋다고 하여 서초동에 어렵게 마련한 조그만한 빌라지만, 네 가족이 살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부동산에 대해서 나도, 아내도 식견이 없어서 재테크에 무지했고 치맛바람이 무언지도 몰랐다. 아파트 주택 조합이 무언지도 몰랐고 빚을 내서라도 좀 더 넓은 집으로 몇 번 굴려야 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그래서 이곳에서 남매가 초등, 중등, 고교, 대학까지 다니면서 성장했다. 집이 좁아 친구를 데려오지도 못하는 자식의 심정을 모를리가 없다. 28년째 살면서 자식들이 좁은 집에 대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 지 나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두 자녀가 결혼하여 이 집을 떠나면 우리 두 부부가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세대는 내부 수리와 확장 공사를 했지만 우리집은 그마져도 여유가 없어서 못했다. 퇴직금은 대부분 자녀 결혼에 사용되었고 지금은 쥐꼬리만한 연금으로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태라 친구도 친척도 찿아오지 않는다. 사실 전화번호를 바꾸어 모두 연락을 끊었다. 만날 일도 없고 만나지도 않는다. 전역 후 멋모르고 고향 친구의 권유로 처음 나갔던 향우회, 동창회, 각종 동기회, 카페 모임, 가족 모임 등을 나갔지만 돈 자랑, 권력 자랑 등 속이 뒤집혀지는 모습을 보자니 나가는 것이 헛수고였고 그래서 모두 연락을 끊었다. 가까운 친척 길흉사만 찿아가고 평소에는 만나지도 않는다. 가진 것도 없고 권력도 없으니 찿아올 일도 찿아갈 일도 없다. 현직에 있을 때는 어떻게 연락처를 알았는지 졸업 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동창생들이 전화도 오고 찿아오기도 했고, 그토록 알랑방귀를 끼면서 자주 드나들던 사람들이 이제는 아무런 소식도 없다. 대부분 군대간 아들 보직 부탁이나 물건 팔기가 대부분이었다. 퇴직 후 모든 모임이 현직 권력층이나 재력을 가진 사람들이 목소리가 크고 모든 일을 주도하고 있었다. 지방 향우회 모임에는 그 지방 출신 국회의원 등 권력가들이 년초 모임에는 모두 모여든다. 모두가 재력으로 인간을 평가하고 회장, 총무, 감사를 독식하고 있었다. 은근히 자신의 재력과 과거 영광스런 경력을 내세우며 국회의원이나 장.차관 경력을 자랑했다. 지나고 보니 모두 허망한 짓거리에 불과한데 말이다......

 

그동안 우리집 일대 재건축 논의가 여러차례 있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토지 소유주가 60여 명이나 되어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고, 정부 정책에 의해 용적율이 감소하자 수익성이 없다고 건설사들이 달려들지 않았다. 또 소유주 각자 지분에 대한 평가 금액에 따라 추가 인정 요구, 복층에 대한 인정, 도로변 지가 요구 등으로 인해 대부분 좌절되었다. 우리집 위치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초역과 방배역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도 편리하고 학교도 가깝고 마을 뒷편에는 방배동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으며 몽마르뜨 공원이 서리플 공원과 연결되어 대법원, 서초경찰서, 누에다리, 성모병원까지 산책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더 미켈란, 트라움 하우스, 현대 빌라 등 고급 빌라들이 즐비하게 들어섰고 우리집 주변만 낙후한채로 남아 있는 실정이었다.

 

재건축은 통상 20~30년 이상 지난 낡은 집을 헐고 그곳에 더좋은 집으로 탈바꿈시키는데 재산가치를 높이기 위해 고급화되고 최신 건축물로 다시 태어나면서 용적율에 따라 층수도 올리고 세대별 평수도 늘어나기 마련이며 주차장, 조경, 사용자재, 토지 매입비, 금융 비용, 용역비, 이주비 등으로 인해 분담금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소유 토지가 많거나 여유 자금이 많은 사람은 별로 부담이 없지만, 우리집을 포함 주변 빌라들은 옛날에 지은 빌라라 지분도 적고  전용 면적도 좁은 집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대부분 지분도 적고 여유 자금도 없어서 이주비를 받아야 겨우 이사를 갈 수 있는데, 책정된 이주비가 1억 5천 만원으로 서울에서 집을 구하기는 불가능하다. 이주비도 결국은 갚아야 하는 돈인데, 이자 부담도 같이 동반된다. 그래서 결국 가난한 서민들은 분담금과 이주비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다른 집이 있어 기거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이주비를 받지 않고 분담금을 내더라도 전세를 주어 분담금을 갚거나 준공 때 쯤에 팔면 시세 차익을 만들 수 있으나 이주비로 이사를 간 사람은 분담금과 이주비 중 이주비를 갚고 전세를 주거나 팔거나, 그것이 안되면 결국 은행 경매로 넘어가게 된다.   

 

 

2년 전 아들이 대전에서 본사가 있는 서울로 발령이 나서 서울로 올라오지 못하고 남양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서초동 집을 정리하고 두 손주도 돌볼겸 아들이 사는 남양주로 이사를 가기로 마음 먹고 있던 차에 작년부터 또다시 재건축 논의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우리 동네 전체를 재건축하기 위해 전체 소유주들을 모아놓고 협의하였지만, 60여 명의 토지 소유주들이 동의하였으나, 설계 추진 과정에서 자신들의 욕심만 채우려는 일부 토지 소유주들로 인해 옛날처럼 또다시 좌절되었다.


그래서 작년에 전체 재건축이 좌절되자, 년말부터 우리집을 포함 20여 세대가 같이 재건축을 하기로 합의했다. 설계사무소를 선정하고 지반조사와 기본 설계를 시작했다. 지분이 가장 많은 사람을 회장으로 뽑고 추진에 열의를 보인 사람을 총무를 선임했다. 30세대 이하라 조합을 구성하지 않고 소유주들이 합의하여 개인자격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몇 번의 회의와 설계 검토가 진행되다가 소식이 새해 년초에는 뜸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우리집을 포함한 '가'동 6세대가 제외되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 '나',' 다'동, 회장 건물, 회사 건물 등 총 다섯개 건물인데, '가'동이 지적도를 보면 약간 튀어나온 곳에 위치하고 있어 토지 모양이 잘 나오지 않아 '가'동을 제외하면 직사각형의 토지가 나오고 본건물이 한 동 들어서기가 좋다는 것이다. '가'동을 제외하면 '나'동 6세대, '다'동 6세대와 회장 등 13세대가 입주가 가능하고 용적율을 적용하면 7층 높이로 올라갈 수 있고, 지하 1층과 지상 1층 주차장을 빼고 6개 층에 각층 25평~32평 규모로 4세대씩 24세대가 입주가 가능하며 토지 소유주 13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11세대는 지분이 많은 회장의 몫이 된다. 그런데 '가'동 6세대가 참여하면 회장의 몫이 11세대에서 5세대로 줄어든다. 그래서 토지 모양새를 핑계로 '가'동을 제외한 것이 분명했다.

 

이 소식을 들은 '가'동 소유주들이 분개했다. 같이 모여서 상의한 결과 그대로 방치하면 '가'동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노후 건물을 자체적으로 리모델링을 하거나 '가'동 홀로 재건축을 해야 한다. '가'동 전체 지분 50평 규모에 용적율을 적용하고 공용면적을 포함한 분양 평수가 18평~22평 규모의 넓이로 4층밖에 올라갈 수가 없다. 4세대만 입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어차피 2세대 소유주는 떠나야 하고, 리모델링이나 재건축을 별도로 추진하는 데에는 설계부터 지반조사, 측량, 도로매입, 승인 및 허가 신청 등 행정 절차, 시공 등 여러가지 어려움이 무척 많을 것을 생각하니 난감했다.

 

'가'동 소유주들은 상의 결과 그대로 방치할 수가 없어서 회장과 총무를 찿아가 항의했다. 우리는 처음에는 같이 하기로 했고 건물도 1988년도에 모두 같이 지었고 정화조도 같이 사용하고 있는데, 아무런 사전 상의도 없이 몰래 일방적으로 '가'동을 제외시키는 법이 어디 있느냐 하면서 만약 포함시키지 않으면 농성은 물론 법적인 투쟁도 불사하겠다고 어름장을 놓았다. 우리들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자, 회장과 총무가 '나', '다'동 주민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다시 논의하자면서 며칠간 시간을 주라고 했다. 회의장을 나온 우리는 모여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만약 재건축에 제외된다면 지분을 팔아도 제값을 받지도 못할 것이라면서 걱정했다. 그렇다고 4세대만 남아 '가'동만 별도로 재건축을 추진하기에도 난감했다. 그래서 며칠 후에 다시 만나서 협의를 하는데, 회장단에서 몇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그 조건은 '가'동 6세대 중 2세대는 팔고 나가고 4세대만 수용하겠다는 것이다. 설계를 검토한 결과 '가'동 자리에 규모가 적은 별관을 4층으로 올려 4세대를 수용하겠다는 것이다. 단 '가'동 소유주는 '가'동 자리에 짖는 별관에만 입주 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면 '나', '다'동 소유주들이 '가'동 소유주들의 본관에 입주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 조건을 수용하지 않으면 재건축에 같이 포함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동 소유주들끼리 협의하여 빨리 답변을 주라고 했다. 기가찼다. 평수도 적은 4층 별관에 '가'동 소유주만 입주 가능하다는 점에 분개했다. 그러나 같이 재건축에 포함시켜주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하니 우리는 갑자기 약자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2세대가 떠나기로 하고 일단은 수용했다. 

 

'가'동 소유주들은 며칠 후  다시 모여 떠날 2세대를 상의했는데, 나는 떠난다고 했고 우리 앞집도 떠난다고 했다. 갑론을박 끝에 매입 가격도 절충하고 이주비가 나오면 매입하는 것으로 했다. 한편 나는 우리집을 부동산 10여 곳에 내놓고 절충된 가격보다 높게 책정하여 빨리 팔리기는 기대했다. 그러나 몇 사람이 찿아오기는 했지만 그냥 보고 가거나 가격이 비싸다며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기에 거절했다. 절충된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결국에 부동산을 통해서도 팔리지 않으면 그 가격으로 4명의 소유주들에게 팔면 그만이다. 그래서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통 소식이 없었다.

 

다시 회의가 소집되어 설계 검토와 논의하는 과정에서 설계가 다소 변경했다. ㅗ자 형태로 뒷편에 25평 규모로 남향이 막힌 동서향 세대를 올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뒷편 세대에 '가'동 2 세대를 우선권을 주어 수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나', '다'동 소유주들이 우선권을 왜 '가'동 소유주들에게 주느냐며 반발이 있었다. 그러나 회장단에서 이제는 '가'동 6세대를 전부 수용하기로 했다면서 설계 변경 이유를 설명했다. 평수와 규모를 고려하여 더 좋게 짖기 위해서였다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그래서 설계도를 그리다보니 남향이 아닌 본관 뒷편에 25평 규모의 넓이로 세대를 배치해야 하는 설계도를 그린 것이다. 회장은 선심을 쓰는 것처럼 '가'동 2세대를 뒷편 25평에 우선적으로 입주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나', '다'동 주민이 회장단에서 임의대로 결정하지 말라면서 우선권을 자기들한테 주어야지 왜 '가'동 주민들에게 주느냐며 두 명의 못된 여자가 나서서 따지는 바람에 옥신각신했다. '가'동에 대한 무시가 극에 달하고 있었고 이웃에 대한 배려가 전혀 보이지 않는 그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약자인 우리는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 문제는 나중에 조정하기로 했다. 동서향인 뒷편은 잘 팔리지 않을 것이고 가격도 적게 받을 수밖에 없기에 '가'동 2세대를 수용하겠다는 회장의 꼼수였다.

 

나는 골치가 아팠다. 저런 인간들을 믿고 재건축에 약자가 되어 참여한다는 것이 여간 마음이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설계내역을 살펴보니 공사비가 각 세대당 2억 가까이나 되었다. 조경, 엘리베이트, 주차장 등이 공용으로 적용하여 공동 부담하는 것인데, 분양 평수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평균 부담하는 금액이 그 정도였다. 그리고 추가로 이자 등 금융비용, 설계 등 각종 용역비, 각자 지분 부족 토지 매입비, 이주비 등을 포함하면, 적게는 3~4억, 많게는 4~5억을 부담해야 할 처지였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이주비 1억 5천을 받아 이사를 해야 한다. 그래서 총 부담금액은 공사비+금융비용+용역비+토지매입비+이주비 등을 포함하면 5억 가까이 부담해야 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입주가 불가능하다. 전세를 주더라도 5억 이상 받아야 하고, 판다면 8억 이상 받아야 한다. 지분이 적어서 넓은 평수를 분양받아도 토지 매입비 등 분담금이 많아 남는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한시라도 빨리 집을 팔고 떠나고 싶어 다음날 아침 부동산에 연락하여 금액을 낮추어 제시하면서 빨리 팔리도록 부탁했다. 

 

물론 가진 것이 나보다 못한 사람도 부지기 수일 것이다. 인간 이하의 삶을 살면서 생명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이 서울 바닥에 얼마나 많은가. 일부는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삶을 포기하고 서울을 떠나는 사람도 많고 귀농이나 귀촌을 실행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최근에는 서울 인구가 천 만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한다. 이번 이사로 서울 인구가 줄어드는 데 나도 일조를 하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