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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한국의 역사 957 : 일제강점기 2 (조선은 범죄적인 시대의 희생양)

 

 

 

한국의 역사 957 : 일제강점기 2 (조선은 범죄적인 시대의 희생양)

 

                            

                                                          일제식민지 통감부 건물(철거전 모습)

 

 

 

 

 

“조선은 범죄적인 시대의 희생양”

병합조약을 지칭하는 여러 가지 용어들
“일단 합방이라는 말은 절대 쓰면 안 된다. 합방이란 일본이 침략의 명분으로 삼았던 대동합방론에서 나온 말로, 두 나라가 대등하게 통합했다는 의미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됐는데 합방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역사적인 사실을 고려하면 병합조약이 체결됐기 때문에 병합이라고 할 수도 있다. 병합이라고 쓰는 경우에도 문제는 있다. 어떤 이들은 병합조약 자체가 무효이기 때문에 병합도 없었다고 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강제로 병합됨으로써 식민지가 되었다는 의미로 ‘병탄’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일제강점’이라고 해도 된다. 강점이라고 하면 병합조약이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므로, 배상을 요구할 근거가 된다. 학계에서 정리된 용어는 없다.”

병합조약 체결 100년, 현재적 관점에서의 역사적 의의
“100년 전 우리의 근대는 식민지로부터 시작했다. 자주적 근대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식민지라는 고통의 체험을 하면서 근대를 경험했다. 먼저 조선이 왜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내적인 반성이 필요하다. 소수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 데만 골몰했다는 내적 반성과 동시에 시대적인 상황 또한 고려해야 한다. 당시 세계는 제국주의 시대였다. 조선은 힘이 곧 정의가 되는 범죄적인 시대에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강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약자를 희생시킨다.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가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와 민족 내부의 반성을 바탕으로 화해와 미래를 이야기해야 한다. 국치일은 치욕을 기억하는 날이 아니라 씻는 날이 돼야 한다.”

 

박한용 민족문제 연구소 소장, 2010년 한일시민대회를 추진했다.

 

‘한일병합 100년 한·일 지식인 공동성명’은 병합조약의 불법성을 강조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 총리의 반성이 담긴 담화문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반성보다는 행동이 중요하다. 이미 일본은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침략전쟁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그 뒤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나? 한국인 군인·군속 피해자들이 재판에서 이겼나? 선언이 아니라 책임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일본이 식민지배의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놔야 한다.”

한·일시민대회의 대원칙으로 ‘식민주의 종식을 통한 동아시아 평화실현’
“병합조약은 목적 자체는 물론이고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조약이다. 문제는 그때 식민지가 된 나라가 조선만이 아니었다는 거다. 조선은 절차상 문제가 있으니 무효라 치자. 그렇다면 절차상 문제가 없는 식민지면 괜찮은 건가. 근본적으로 식민지를 만드는 것 자체를 범죄로 봐야 한다. 노예 소유가 합법적이었다고 정당한 것은 아니지 않나. 식민지는 사라졌더라도 식민주의 자체는 아직 남아 있다. 식민주의 자체를 청산해야 한다.”

 

동아시아 평화 실현

“동아시아는 지리적·문화적으로 인접해 있다. 그런데도 왜 지역협력체가 없나.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는 20세기 초 역사적 갈등을 겪으면서 파인 골이 그대로 남아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에 20세기는 기억을 둘러싼 역사전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식민주의 청산이야말로 동아시아 평화 협력의 출발점이다. 한·일시민공동선언은 이러한 맥락에서 일제 식민주의의 범죄성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청산되지 않은 현안들의 해결방안과 정부의 행동계획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이 선언을 200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서구 제국이 자행한 노예제와 식민지배를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한 ‘더반 선언’과 같은 국제적 선언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한·일시민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일단 일본과 공동협력기구를 만들어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일본 시민사회단체는 개별적으로 분산되어 있다. 이들을 하나의 행동기구로 묶어내는 데만 6개월 이상 걸렸다. 다른 하나는 한국 정부다. 국치 100년을 맞아 시민사회가 이렇게 움직이고 있지만 정부는 정작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정부는 화해를 통해 미래로 가자고 하는데, 피해자가 먼저 화해를 얘기한다는 것은 무리다. 한·일시민대회에는 정부 공식예산이 거의 없다. 정부가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쓰는 예산과는 비교가 안 된다. 일제강점 문제에 대해 정부가 너무 무관심한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