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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778 : 조선의 역사 320 (제20대 경종실록 3) 본문
한국의 역사 778 : 조선의 역사 320 (제20대 경종실록 3)
경종의 의릉 |
제20대 경종실록(1688~1724년, 재위 : 1720년 6월~1724년 8월, 4년 2개월)
2. 경종의 부인들
단의왕후 심씨(1686~1718년)
청은부원군 심호의 딸이다. 1696년 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나 경종이 즉위하기 2년 전에 병으로 죽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덕을 갖추어 어린 나이에도 대전, 중전 그리고 병약한 세자를 섬기는 데 손색이 없었다.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왕후에 추봉되었으며 능은 혜릉으로 경기도 양주에 있다.
선의 왕후 어씨(1705~1730년)
영돈녕부사 어유구의 딸이다. 1718년 세자빈에 책봉되어 가례를 올렸으며,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다. 이후 1724년 경종이 죽자 2년 뒤에 경순왕대비에 올랐다가 1730년 26세를 일기로 죽었다.
그녀는 매사에 조심스럽고 온유하였으며, 경종이 병약한 탓에 소생이 없었다. 죽은 후 경종이 묻혀 있는 의릉에 함께 묻혔다.
3. <경종실록> 편찬 경위
<경종실록>은 총 15권 7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720년 6월부터 1724년 8월까지 경종 재위 4년 2개월 동안의 역사적 사실을 편년체로 기록하고 있다.
편찬 작업은 1726년 8월에 시작되어 1732년 2월에 완성되었다. 하지만 실록청 의궤가 남아 있지 않은 관계로 편찬 작업 과정을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다만 영조실록에 의하면 좌의정 이집과 우의정 조문명을 총재관으로 하고, 대제학 이덕수, 부제학 서명균, 판중추부사 이의현, 지춘추관사 김재로, 승지 윤봉조 등 소론측 인사들이 도청당상이 되어 편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록의 내용은 노.소론의 대립과 신임사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기사 가운데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서는 "사신 왈" 또는 "근안"이라는 논평을 달았다. 그 논평에서 신임사회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이고, 노론 대신들에 대해서는 혹평하였다. 그 때문에 <경종실록> 찬수에는 처음부터 논란이 많았다.
실록의 교정을 맡은 주서 이혜수는 1729년 3월 사국의 뒷면에 농간이 있다고 상소하였다가 당습을 버리지 않는다고 유배당하였다. 그리고 1729년 12월에는 도청당상 이덕수를 불러 '신사의 처분(장희빈의 죽음)'에 대한 범례를 정했으며, 1731년 5월에 실록이 완성되어 시정기 세초가 논의 되었고, 1732년 3월 춘추관의 요청에 따라 네 곳에 사고에 봉안하도록 하고 시정기와 증초를 세초하였다.
하지만 1732년 4월에 헌납 민정과 사간 한덕후 등이 실록에 '이진검 옥사'가 실려 있지 않다고 문제를 제기하며, 마땅히 내용을 더하여 다시 봉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741년 헌납 이천보도 소를 올려 <경종실록>의 잘못된 점을 바로 잡고, 빠진 것을 보충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론의 정치적 기반이 탄탄해져 '신임사화'가 '무옥'으로 규정됨에 따라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하지만 '수정실록'의 편찬 작업은 영조 대에 이루어지지 못하고 정조 시대에 가서야 시작될 수 있었다.
1777년 <영조실록>을 편찬하게 되자 노론인 이사렴, 유당 등이 상소하여 <선조수정실록>과 <헌종개수실록>의 예에 따라 <경종실록>도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자, 정조는 이를 받아들여 1778년 2월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수정실록'은 즉위년과 재위 4년간을 각각 1권씩으로 편찬하여 총 5권 3책으로 구성하였다.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즉위년부터 '신임사화'에 대한 부당성을 의식하고 기록한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즉 <경종실록>은 노론측에 대해 악평을 한 것에 비해, '수정실록'에서는 이러한 악평을 삭제하고 신임사화를 일으킨 소론측 인사들을 일방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모두 개수하였다.
'수정실록'의 편찬 목적은 '신임사화'를 '무옥'으로 단정하고 수정, 삭제하였으므로 시정기의 기사 내용이 대폭 축소되었다. 1779년 경연관 송덕상은 <경종실록>의 수정본이 마련되면 구본은 없애버리자고 하였으나 정조는 고례에 의하여 양본을 함께 보존하도록 하였다.
이 '수정실록' 편찬 작업에 참여한 인원은 총재관 정존겸을 비롯 도청당상 6명, 도청낭청 4명, 분판낭청 12명 등 도합 23명이었다. 이들은 모두 노론측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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