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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의 여름 19 : 누구에게나 불행은 어느날 갑자기 찿아온다. 본문
우면산 여름 19 : 누구에게나 불행은 어느날 갑자기 찿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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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뉴스1) 김한식 기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전남지원(지원장 장맹수) 직원 90여명은 31일
태풍의 영향으로 피해를 입은 전남 곡성군 옥과면 소룡리 과수원 등 9개소를 찾아 쓰러진 비닐하우스를
철거하고 떨어진 사과와 배를 줍는 등의 복구 지원활동을 벌이고 있다.
태풍 볼라벤의 강풍 위력은 홰안과 내륙 지역에 많은 피해를 유발하고 지나갔다. 선박이 침몰하고, 양식장이 강풍과 파도에 밀려 수년간 땀흘려 키워오던 전복 등 수산물이 참담할 정도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또 내륙에는 비닐 하우스들이 찢기고 날아가고 내부에 땀흘려 키우던 농작물이 모두 폐허로 변해버렸다. 또 추석을 맞아 출하를 앞둔 각종 과실나무의 과일 중 잘 생기고 잘 익은 것만 골라 대부분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농민들의 시름이 이토록 깊어가는데 정부에서는 그 시름을 달래줄 대책은 얼마나 마련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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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볼라벤'>내 새끼같은 전복들 (완도=연합뉴스) 장덕종 기자 = 태풍 '볼라벤'이 휠쓸고 지나간 29일 오전 전남 완도 보길도 예송리에는 파도에 떠밀려온 전복 양식장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한 어민이 폐허에서 살아남은 전복을 찾고 있다. 2012.8.29. |
지난주 한 라디오 방송에서는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한 젊은 귀농한 양식업자가 올린 사연을 들어보면 눈물겹다. 그는 4년전에 대출과 정부 지원 등을 받아 야심차게 전복 양식을 시작하였는데, 작년에 태풍으로 전부 피해를 받아 실의에 빠져 있다가 다시 희망을 갖고 시작하여 이제는 태풍에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도록 양식장을 보강 하는 등 전복 양식을 다시 시작하여 땀을 흘리면서 키워왔으나 이번 볼라벤 태풍에 또다시 전부 파도에 밀려 피해를 보았다면서 진행하시는 분들에게 용기를 부탁한다는 내용이 방송되는것을 잠깐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사실 여부를 떠나 그러한 처지에 빠진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피해를 받은 그 분들이 빠른 재기를 기원드린다.
여름의 마지막 절정
피해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파악은 물론 쥐꼬리만한 보상금으로 사탕발림이나 할 생각은 말았으면 좋겠다. 이런 자연 재해가 발생되면 공무원이나 공사/납품업자, 지방 각 농협, 각 대출 은행, 사채업자들이 농민을 상대로 고혈을 빨안먹을 궁리를 하기 때문이다. 다급하고 앞으로의 생계가 막막한 이런 사람을 상대로 사기내지 고리 이자를 받거나 자금을 빼돌리거나, 업자와 결탁하여 비리와 부정을 저지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공무원들과 군인들이 동원되어 피해복구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 나라에서 지금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상위 계층 사람들은 이런 때에 남에게 드러나지 않는 기부나 지원을 한다면 더불어 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첩경이 될 것이다.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이라면, 대선을 앞 둔 후보라면,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가진자라면, 땀 흘리지 않고 목돈을 좀 번 사람이라면, 남에게 상처를 주고 재물을 빼앗은 인간이라면 이런 때에 조금이라도 보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좀 가졌다고 명품을로 처두르고 거드럼 피우며 외제차 타고 대궐같은 넓은 집에 양귀비 같은 애첩을 여럿 데리고 살아도 그 낙원같은 삶은 수십 년에 불과하다. 인간이 존경받는 것은 자신이 가진 것을 골고루 주변에 뿌리는 것이다. 경주 최부자 가문이 300년 동안 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조상들의 유훈으로 사방 백 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가훈이 대대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늦여름의 절정
재물은 오물과 같다고 했다. 몸에 지니고 오래 지나면 썩는 냄새가 진동하지만 주변에 뿌리면 칭송과 존경을 환 몸에 받을 수 있다. 인간은 원래 똥파리처럼 부자에게 공손하고 달라붙어 조금이라도 얻어먹으려고 안달을 부리고 공자로 나누어주면 감지덕지하는 게 원래 인간들인지라 속마음은 몰라도 일단 겉으로는 존경과 칭송을 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집은 별로 썩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집 강아지 민지부부와 그들의 자식들인 남매가 사방에 흩어려놓는 오줌과 대변 냄새가 날 뿐이다. 마누라는 냄새가 난다고 진저리를 친다. 좁은 집안에서 닦고 닦아도 나는 냄새가 나지 않는데 마누라는 코가 개코다. 마누라 등쌀에 분양을 해야 겠는데......마땅한 사람이 없다.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이상사회, 그것은 더불아 모두 잘 살아가는 사회다. 조선 성리학을 배우던 선비들이 꿈꾸던 이상사회도 허균의 홍길동전에서 시사하는 '율돌국'같은 이상사회를 바란 것도 사실이다. 누구나 마음 놓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그리고 걱정 없이 가족들과 이웃들이 행복하게 모두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바로 이상사회일 것이다.
탐욕스런 종교집단과 정치집단이 없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사회는 인류의 영원한 희망 사항에 불과한 것인가? 온다면 언제 올 것인가?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태동한 이래 인류가 추구하여 오던 이상향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으로 항상 그런 이상사회는 추구는 하였지만 나타나듯 하다가 사라지곤 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영원히 도달 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이상향인지도 모르겠다.
저마다 종교집단은 자신들의 신이 재림하면 천국같은 사회가 된다고 감언이설로 선전하지만 다 헛소리다. 노동자농민을 위한 천국을 만들겠다던 공산주의 사회도 결국은 일당독재의 독재정권의 태동을 가져왔고 일부 지배층과 공산당원만이 잘 먹고 잘사는 사회에 불과했고 대부분의 민중은 가난과 굶주림에 고통받으며 살았고 수많은 목숨이 정권유지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유배되고 처형되고 말았다.
중국의 한인들은 청나라 지배기간 동안 고통받았고 청나라가 신해혁명으로 무너지고 이어 집권한 국민당 정권의 부정과 부패에 이골이 난 중국 국민들이 새로운 희망을 갖고 공산당 모택동을 선택하였기에 국민당의 장개석을 밀어내고 중원을 차지하며 집권이 가능하였고, 공산당 치하에서 중국 국민들은 청조 지배나 중일전쟁에서 죽은 사람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권력유지를 위해 이념투쟁, 대약진, 홍위병 난동 등으로 희생되었다. 이는 북한의 김일성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통일교 문선명 교주가 죽었다고 한다. 엄청난 재력으로 세계 각지에 이름을 날리던 그는 신화적인 존재였으나 그도 결국 인간에 불과하여 죽음을 면하지 못했고, 그 종교 단체의 내부적인 문제점은 누차에 걸쳐 보도된 적이 있다. 세습 권력이나 마찬가지로 종교집단의 지도자들이 재산을 두고 벌이는 신앙을 빙자한 불법, 탈법, 사기수법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거의 비슷하며 그 눔이 그 눔이다. 다만 그것을 모르고 그들에게 온갖 재물을 갖다바치며 천국갈 것이라고 믿고 있는 신도들만 불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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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저께 토요일 나에게도 갑자기 불행이 찿아왔다. 다리 사타구니에 급성 종양으로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간단한 수술과 입원, 그리고 다음날 일요일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전부터 항문 군처 사타구니가 이상하게 무언가 난 것으로 생각되어 소독도 하고 후시딘도 발랐다. 그러나 자고나면 열이 점차 오르고 엉덩이 부근이 뿌근해지면서 아파오기 시작하였고 무언가 단단하게 잡히기 시작하였다. 목욕탕에 가서 뜨거운 물에 목욕도 하고 사우나도 했지만 집에 와서 통증이 점차 증가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무리하게 탄 것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인지는 알 수 없어 마누라 등쌀에 마을 가정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병원 원장님께서 보더니 놀라면서 빨리 수술을 해야겠다면서 바로 뱅뱅사거리 근방 한 병원을 소개해주어 택시를 타고 그곳으로 갔다. 마을 병원 원정님께 소개받은 담당 의사를 만나 진찰 결과 종양이 좀 깊으니 빨리 수술해야 겠다면서 피, 소변 등 사전 각종 검사를 실시하고 대기하다가 오후에 바로 수술을 했다. 다행히도 종양이 확산 직전에 간단한 수술로 종양을 제거하였다.
병원 입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자신이 환자복을 입으니 기가찼다. 지금까지 건강에 자만심을 갖고 날뛰다가 벌을 받은 것같아 후회가 된다. 환자복을 입으니 영락없이 중환자처럼 보인다. 입원실에서 창 밖을 바라보니 내가 자전거를 타고 새벽길을 달리던 생각이 났다.
내방역 근방에 도로변에 병원이 하나 있는데 환자들이 항상 병원 입구 옆 쉼터에서 답배를 피우고 있는 곳이 있었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리던 지나가면 그들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곤하였던 기억이 난다. 그들이 나를 얼마나 부러워 했을지 짐작이 갔다. 그런데 내가 토요일 저녁 길거리, 일요일 새벽 밖으로 나와서 길거리를 바라보니 다니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는 언제 어떻게 갑자기 불행스런 일이 닥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건강에 장담하던 내가 말이다. 모두가 나 스스로의 자만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되며 나의 자만과 잘못에서 기인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건강은 자만해서도 안되고 항상 관리하고 검사하고 이상이 있다면 바로 병원으로 가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 생각된다.
일요일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오니 강아지들이 그렇게 반겨준다. 그래도 블로그 글을 어떻게 해서라도 올렸다. 미리 작성해 놓은 글이기에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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