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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의 여름 10 : 민족의 불행 한국전쟁,호국보훈을 생각하며...6 본문
우면산의 여름 10 : 민족의 불행 한국전쟁,호국보훈을 생각하며...6
군인이 전쟁에서 종합적인 판단력이 필요한 것은 한 분야만 보는 좁은 안목은 전체를 그르치기 쉽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전쟁에서 패배를 초래한다.
한국전쟁시 맥아더 장군은 낙동강 방어선에서 유엔군이 마지막 사투를 벌이는 순간에 이미 전쟁 초기부터 구상하였던 인천 상륙 작전을 미 합참의 극렬한 반대에고 불구하고 그들을 설득하여 실시한 결과 작전은 성공하여 한국 전쟁의 전환점을 만든 사람이다. 미 합참은 최대 9미터가 넘는 인천의 조수 간만의 차, 좁은 수로, 수많은 수중 장애물, 상륙지역의 협소, 적의 저항 등으로 인해 상륙이 불가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맥아더는 참모들로 하여금 사전 충분한 정보를 판단케 하였는데, 조류와 지형, 날씨, 시기를 고려하여 가능성을 판단토록 했다. 그리고 인천상륙의 가장 결정적인 점은 수도 서울을 점령함으로써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낙동강 전선에 주력하고 있는 대부분의 인민군의 주력을 한꺼번에 섬멸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그의 결단은 정확했고 미래를 보는 예측력이 매우 뛰어났던 장군이었다. 남들은 물론 참모들 중에서도 불가능하다고 극구 반대하는 상황에서 그는 가능성을 찿았던 것이다. 태평양 전쟁의 영웅! 그의 인기는 트루만을 능가하는 상태였고 트루만은 그것이 매우 불편편하였던 것이다. 웨이크 섬에서 만난 맥아더는 먼저 자신이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트루만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그는 최종적인 한국 전쟁의 목표는 적의 격멸은 북한의 지휘부를 소멸시키는 것이며 한반도 통일이라고 했다. 공산군이 더 힘이 커지기 전에 중공을 견제하기 위해서 만주 폭격을 주장했고 필요시 핵폭탄까지 고려했다. 그러나 트루만은 3차 세계대전을 염려하여 맥아더의 건의를 거부했다. 그리고 트루만은 두 사람의 견해차가 큰 것을 알고 돌아와서 고심끝에 그를 유엔군 사령관직에서 해임했다. 우둔한 정치 지도자와 가장 군인다운 군인이었던 전쟁 영웅과의 차이점이다. 그것은 고대 사치와 항략에 빠져 무능하던 지중해 강대국 카르타고 조정과 포에니 전쟁의 영웅 한니발 장군과 같은 경우일 것이다.
조선의 눈물은 계속된다.
15. 맥아더와 트루만 갈등
당시 서울을 수복하고 38선 돌파하여 북진하는 문제를 맥아더 장군은 고민하고 있었다. 중공군의 개입문제였다. 그러나 맥아더는 중공군이 그리 쉽게 미군을 상대로 전쟁에 개입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일본의 패전을 두 눈으로 똑떡히 본 모택동이 일본 제국주의를 괴멸시킨 미국을 상대로 감히 전쟁을 벌일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에게 강력하게 북진을 주장했다. 맥아더 장군의 생각은 만일에는 중국과 전쟁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같은 공산국가인 소련과도 동시전쟁을 감수해야 한다. 핵무기 사용 문제도 생각하고 있었다. 이 문제는 자신이 결정할 수는 없는 문제로 생각하고 트루만 대통령과 태평양상의 한 섬에서 만나 상의하게 된다.
트루만 대통령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중국과 전쟁을 두려워 했다. 그리고 소련과 동시전쟁은 더더욱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세계 3차대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소련.중국 등 전 공산권이 대동단결하고 미국을 위시한 전 민주주의 국가들이 또다시 세계 3차대전의 불구덩이에 뛰어 들어야 한다? 아니지... 미국과도 멀리 떨어진 아시아의 조그만한 반도 한국, 그기에다 미개한 반쪽나라 신생국 한국을 위해서 미국이 중국과 전쟁을 치루기에는 명분이 약했고 실익도 별로 였다. 그리고 세계 3차대전을 치루게 될 지 모르는 대 재앙을 초래할 빌미를 미국이 제공한다는 자체가 현재의 미국 대통령인 자신이 책임지기에는 역사의 지탄을 받기는 싫었다. 그리고 맥아더 장군이 원하는대로 만주를 폭격하고 중공군의 전쟁개입을 차단하고 중국이 별다른 항의나 반격없이 그리고 소련의 전쟁개입도, 공산권의 대동단결과 대미국 전쟁불사도 없이 한반도를 미군과 연합군이 무력으로 통일시킨다면 맥아더의 인기와 갈채는 대통령인 자신과 비교가 되지 않게 될 것이다. 본래대로 한반도는 북한의 침략만 물리치고 38도선에서 현상유지가 더이상 아무런 손실없이 일본을 지키는 완충지대로 한국의 역활만 생각하면 되며 그것이 정치적으로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도 바람직 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전쟁영웅의 칭호를 받고 있던 맥아더 장군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인천상륙작전의 성과를 최대한 확대하고 싶었고 내친김에 완전한 승리를 원했다. 군인은 군사적인 안목으로 전략을 구상한다.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사용하거나 공군으로 하여금 만주지역을 폭격할 수 있도록 승인을 요구했다. 그래서 한국민에게 강대국에 의해서 반쪽이 된 반쪽나라가 아닌 북쪽의 공산세력을 완전히 제거시키고 완전한 한나라로 만들어 주고 싶었을 것이다. 한국민을 위해서도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며 공산진영의 교두보를 허용할 수는 없었다. 중국이나 소련이 함부로 쉽게 미국과 대항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위력을 알고 있을 것이며 유사시에는 원폭사용도 불사한다. 완전한 승리! 그것만이 전쟁을 지휘하는 군사지도자가 바라는 최종목표이다. 어정쩡한 휴전이란 있을 수 없다. 자신은 휴전을 생각하지도 않고 있으며 한번 시작한 전쟁은 적 군사력의 완벽한 괴멸과 지휘부의 완전한 소탕이다. 그래야만 두번 다시 이민족에 불행을 막을 수 있으며 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트루만 대통령은 태평양 외딴섬에서 맥아더 장군과 만나 서로의 생각과 견해를 나눈 결과 엄청난 차이가 있슴을 확인하게 되고 그를 결국 극동군 사령관직에서 해임시켜야 하겠다는 결심하게 된다.
맥아더와 한국 전쟁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인민군은 서옹진반도에서 동주문진에 이르는 38선 전역에 걸쳐 남침을 개시했다. 트루먼대통령의 긴급명령을 받은 일본점령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대만·필리핀·인도차이나 등의 방위에 대비하는 조치를 취했다. 27일에는 유엔총회에서 북한을 침략군으로 규정하고 유엔군 파견과 42개국의 지원을 결정했다. 때마침 소련대표는 유엔 상임이사국으로 중공이 들어와야 한다고 총회에 계속 불참하고 있었다. 그래서 거부권은 행사되지 못했다. 29일 맥아더 장군은 수원비행장에 내렸다. 60년 전의 일이다. 맥아더도 수원시민도 잊지 못할 날일지 모른다. 맥아더는 군용 지프차를 타고 선글라스와 파이프를 물고 한강으로 향했다.
패잔병과 피난민이 남하하는 모습을 보며 한강전선을 시찰했다. 맥아더 장군은 그해 1월 26일 70회 생일을 맞이한 노병이었다. 애치슨 미국무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아시아의 방위선에 38선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발표를 한 것은 그보다 2주 전이었다. 이 발언으로 한국전쟁은 미국의 유도전이라는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그 뒤의 자료에서 미국은 49년 중국을 통일한 모택동 정부와의 외교관계를 위해 방위선을 남하시켰다는 점이 해명되기도 한 것이다.
어쨌든 이 발언으로 오판한 스탈린과 김일성의 합작품이 6·25침략이었다. 이 논쟁은 스탈린이 몸통이고 김일성이 깃털이라는 것이 필자의 평가다. 맥아더는 7월 31일 대만을 방문한다. 그리고 트루먼 대통령의 대만중립화정책을 변경시켜 장개석 군대의 유엔군 합류와 본토공격 등을 구상한다. 그러나 트루먼은 특사로 해리먼을 보내 맥아더의 구상을 중지시킨다. 맥아더는 이를 개탄한다.
그는 9월 12일 사세보 기지에서 맥킨리호를 타고 인천으로 와 상륙작전을 지휘했다. 9월 29일 맥아더는 탈환한 서울에서 이승만 대통령에게 남한의 행정권을 이양한다. 10월 2일 한국군과 유엔군은 드디어 38선을 돌파하고 북진을 개시했다. 우리 국민은 궐기대회를 열어 북진을 결의한다. 맥아더는 이에 힘을 얻었다. 10월 15일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은 웨이크섬에서 회담을 갖는다. 대통령과 군 사령관이 첫 대면 하는 자리라 더욱이 대통령이 비행기로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다. 맥아더는 해외파견 14년간의 군 생활이었기 때문에 1945년 4월에 취임한 대통령과 상면하지 못했던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의 모습이다.
이 회담에서 맥아더는 차기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젠하워는 바보라고 말했다. 맥아더는 다시 만주폭격을 요구했다. 그러나 트루먼은 3차대전의 위험성을 들며 반대한다. 맥아더는 공산권의 타파는 아직 군사력이 약한 현시점이 적격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뜻은 관철되지 않았다. 미국 내에서도 맥아더를 전쟁광으로 비판하는 소리도 나왔다. 마침내 12월 중공군은 인해전술로 유엔군을 후퇴시켰다.
모택동은 스탈린이나 김일성의 간청도 있었겠지만 맥아더의 주장으로 위협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1951년 서울을 재탈환했으나 4월 12일 맥아더는 트루먼에 의해 사령관직에서 해임됐다. 맥아더의 만주폭격에 대해 불안했을 것이다. 그가 떠나는 날 새벽 200만 일본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환송했다. 일본의 오늘은 실로 맥아더의 도움이고 6·25전쟁 덕분이었다.
그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 미국인들의 환영 또한 대단한 것이었다. 4월 19일 맥아더는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했다. 대통령에 의해 해임된 군 사령관이 미국 국회에서 퇴임연설을 한 것이다. 이것이 미국의 참모습인 모양이다. 그는 외쳤다. “공산주의 위협은 세계적인 것, 아시아 유화정책으로는 유럽에서도 반공이 안된다. 대만도 다시 중국 본토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고 연설을 마쳤다. 그는 실로 52년간의 군인생활을 마친 것이다.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은 그의 말이 아니고 미국 군가의 후렴이다. 우리 군가 ‘전우의 시체를 넘어…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와 엄청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1962년 맥아더는 미육군사관학교를 방문, 사열을 받고 연설하고 훈장을 받았다. 그의 생애는 이렇게 마쳤다. 그는 이승에서 6·25 60주년을 기념하며 미의회가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해 북한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의결한 것을 하늘에서 지켜보았을 것이고, 우리 국회의 천안함 대북결의안 채택은 불투명한 채 참전국과 참천용사들에 대한 감사결의안만을 의결하는 모습에 그의 심경도 불편하리라.
얼마전 조갑제씨가 쓴 글에서 맥아더와 트루만에 대해서 밝힌 내용이 있었다. 그의 글에 의하면 실제로 한국을 구한 사람은 맥아더가 아니라 트루만이었다고 했다. 우리는 맥아더에 대해서 영웅적인 면모만 일고 있으나 실제는 트루만이 한국 전쟁에 빠른 결심으로 미군 투입을 승인했고 유엔의 참전 결의를 얻어냇다. 그러나 당시 맥아더는 도쿄의 안락한 시무실에서 한반도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 군정장관 하지 중장이 보고하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모든 것을 일임하고 북한군의 침략 보고를 접하고도 별로 위급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또 한참 후배인 미군의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도 맥아더의 요구나 요청에는 항변 한 번 못하고 상급 지시를 내릴 때도 결례가 되지 않도록 무척 신경 썼다고 한다. 맥아더는 트루만의 귀국 지시에 불응하고 합참의 지시도 묵살하기도 하였다. 인천상륙작전도 그의 고집으로 결정되었고 당시 대부분의 군수뇌부에서는 반대하였다고 한다. 다행히 상륙작전이 성공하였고 전세를 뒤집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자 그의 영웅적인 면모는 더욱 미 국민들에게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트루만이 맥아더는 극동지역 황제로 군림하려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맥아더는 언론을 잘 이용하였고 홍보나 선전에 뛰어났다고 한다.
그는 중공군의 개입 정보를 수없이 보고받았지만 개의치 않고 북진을 명령했다. 그러다가 중공군의 공격이 시작되자 실제보다 10분지 1 수준 정도로 예상했다고 하며 그 규모가 엄청난 것을 알고사는 유엔군을 전선에서 이탈하여 한강 이남까지 지리한 철수를 명령했다. 맥아더는 유엔군이 계속 밀린다면 유사시 한반도에서 유엔군을 철수할 생각을 했고 트루만은 싸움에서 질 때까지는 철수는 안된다고 했다. 그는 유명한 미 의회 연설이 끝나고 청문회에서 그의 그동안의 거짓말과 오류가 낱낱이 밝혀지자 미국 민들은 그를 떠났다고 했다.
맥아더 장군의 마지막 의회 연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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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Douglas MacArthur's
"Old soldiers never die" Speech
(April 19,1951)
국회에서의 마지막 연설
대통령 각하, 의장님, 그리고 고명하신 의원 여러분
저는 깊은 겸양과 자부심을 가지고-즉 저보다 먼저
이 자리에 섰던 위대한 미국 역사의 건설자들의 궤적을
따르고자 하는 겸양과,
이 입법부의 토론장(국회의사당)이 지금까지 고안된
가장 순순한 형태로 인간의 자유를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자부심을 가지고 이 연단에 섰습니다.
여기에 전 인류의 희망과 열망과 신념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저는 어떤 당파적인 명붑을 옹호하고자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중략)
저는 저물어 가는 인생의 황혼기에 어떤 적의나 비통함에서가 아니라
단지 마음에 품은 한 가지 목적 곧 내 조국을 섬기고자 하는 의도에서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대통령께서 대한민국에 대한 지원에 개입하려는 결정을 하기에 앞서
저와 상의하지는 않으셨지만, 그 결정은 군사적인 관점에서 보건대
올바른 것으로 입증되었습니다.
말씀드리는 바와 같이 그 결정은 우리가 침략자를 격퇴시키고
그들의 군사력을 격감시킴으로써 올바른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우리의 승리는 완벽했으며 우리의 목적은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습니다.
그때 중공군이 수적으로 우세한 지상군을 동원하여
개입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전쟁과 전혀 새로운 상황을 야기시켰습니다.
이 상황은 우리 군이 북한 침략자들에 맞서 배치되었을 당시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상황은 외교 분야에서 군사 전략의 현실적 조정을 허용하도록
새로운 결정을 요구했습니다.
이 결정들은 조속히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누구도 제 정신으로는 우리 지상군을 중국 대륙에 보내는 것을
찬성하지 않을 것이고, 이런 일은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지만,
만약 우리의 정치적 목적이 처음의 적을 물리쳤듯이
이 새로운 적도 물리치는 것이었다면 이 새로운 상황은
전략을 과감하게 수정할 것을 긴급하게 요구했습니다.
한국의 비극은 군사적인 행동이 그 영토 한계 안으로만 제한되어 있어
우리가 구해 내려는 그 나라가 전면적인 해상 폭격과
공습의 파괴적인 영향으로 고통을 받게 되어 있고
반면에 적의 은신처는 그런 공격과 참화로부터 전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더욱 고조되고 있습니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 중 한국만이 지금까지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모든 것을 건 유일한 나라였습니다.
한국인의 훌륭한 용기와 불굴의 정신은 필설로는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들은 노예가 되는니 차라리 죽음을 무릅쓰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했던 마지막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Don't scuttle the Pacific." "태평양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저는 한국에서 싸우고 있는 여러분의 아들들을 막 떠나 왔습니다.
그들은 그 곳에서 온갖 시련을 감당했으며
저는 그들이 모든 면에서 참 훌륭하다고
기탄 없이 여러분께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그들을 보호하고 이 야만적인 전쟁을 최소한의 시간 손실과
인명피해만으로 명예롭게 끝내고자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늘어가는 유혈사태는 저에게 더없이 깊은 고통과
불안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 용맹스런 병사들은 제 생각과 기도 속에
항상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저는 52년간의 군복무를 끝마치려 하고 있습니다.
세기가 바뀌기 직전에 제가 군에 입대했을 때,
그것은 소년시절의 제 모든 희망과 꿈의 실현이었습니다.
제가 웨스트포인트의 평원에서 선서한 이래 세상은 여러번 바뀌었고,
희망과 꿈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만 저는 아직도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 갈 뿐이다'라고
자신 있게 선포했던
그 당시 병영 최고의 애창곡들 가운데 한 곡의 후렴구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노래의 노병처럼,
저는 이제 군인으로서의 이력을 마감하고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자 했던 한사람의 노병으로서
다만 사라져 갑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사라져가는 노병 맥아더장군
(연설 후 국회를 떠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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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군사적 안목과 정치적 안목을 이야기한 것이다.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맥아더 장군의 판단을 당연시 생각할 수 있으나 트루만 대통령의 정치적 안목과 판단은 인류의 또다른 큰 불행을 자초하지는 말자는 안목이다. 물론 트루만의 안목과 생각대로 결과적으로는 한반도가 원래대로 반쪽씩 현상유지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한반도는 반쪽씩 나누어지게 되었고 남과 북은 반세기 넘게 서로 사상과 체제를 달리하면서 아귀다툼하며 죽고 죽이는 살륙을 진행해 오고 있다. 조상을 잘못 만나 탓으로 오늘의 불행을 당하고 있는 이러한 민족의 불행은 우리들의 몫이 되었다.
이 대목에서 고대 로마시대 '포에니 전쟁'을 떠 올리게 한다.
이탈리아 반도 끝 메시나 해협 건너 시칠리아섬에 그리스 도시국가 '메시나'가 이웃도시인 '시라쿠사'가 당시 해양 강대국인 '카르타고'를 등에 업고 '메시나'를 공격하게 된다. 이에 '메시나'는 로마에 구원을 요청하게 되는데 로마 원로원은 갑론을박 끝에 이탈리아 반도의 위협을 방치할 수 없는 관계로 당시 신생국이던 로마는 힘은 부족하지만 '메시나'를 지원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포에니 전쟁'은 제1차 시칠리아 쟁탈전, 제2차 한니발 전쟁, 제3차 카르타고 멸망까지 장장 150여년 동안 로마제국이 풍전등화의 위기를 겪는 등 엄청난 희생을 치루면서도 마지막 최후의 승리를 쟁취하게 되었고 그후 약 2000년 동안 지중해 일대와 에스파냐, 프랑스.독일.영국, 동유럽, 그리스 및 소아시아, 이집트,북아프리카 일대를 지배하는 강대국으로 자리메김하는 결과가 되었다.
16. 미국의 대 한반도관
한반도의 반쪽 한국은 미국이 그들의 국익과 관련하여 필요성이 없으지면 언제라도 포기할 수 있는 나라이며 미국과 수 만 키로 떨어진 태평양 서쪽 끝 아시아 대륙의 조그만 나라이다. 미국은 한국전쟁을 의회의 승인과 대통령의 선전포고가 아닌 유엔을 통한 경찰군으로 연합군을 구성하여 참전하였다. 이스라엘 6일전쟁은 미국에서 매년 대대적인 행사를 하면서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미국의 공식문서에도 한국전쟁이 아닌 한국분쟁으로 표기하고 있다.
최근 주한 미대사가 한국계 사람이 부임한 모양이다. 그가 한국 정세에 대해 전문가이고 역대 정권에서 계속 한국 관련 일을 전문적으로 해온 베테랑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별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는 미국 사회에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규정과 법규를 준수하며 대한반도 정책에서 누구보다도 유능한 인재로 인정받았고 대한국 정책과 대북 정책에 적임자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주한 대사로 부임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미국의 국익을 위해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한국 정부를 상대로 외교전을 펼칠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미국은 대아시아 정책에서 계속적으로 실패하여 왔다. 조선 말엽 '제네럴 셔먼' 호가 대동강으로 진입하여 올라가다가 좌초되어 조선군에 의해 불탔고, 중일 전쟁기간 중국을 지원하다가, 나중에는 국공내전이 발발하자 장개석의 국민당을 지원하다가, 국민당이 중공군에게 밀려 대만으로 쫓겨가자 대만을 지원하면서 중공과 냉전시대로 접어들었으며, 거대 시장인 중국 본토를 잃게 되었다. 미국은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하자 점령군으로 일본군을 무장해제 시키는 가운데 한반도에 진주하면서 일본군 편제에 따라 관동군은 소련, 대본영 직속부대는 미국이 담당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는데, 북한 지역의 일본군 제17사단이 항복 직전 대본영 직속에서 관동군으로 편제를 변경하였던 것이다. 한반도가 분단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소련군과 미군은 대략 38도 선을 긋고 남북으로 미국과 소련군이 진주하는 바람에 한반도는 두 개의 강대국 꼭두각시 정권이 태어났고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해 통일을 부르짓으며 서로 전쟁준비에 광분했으나 북한은 소련과 중국의 적극적인 공산권 확장 정책의 일환으로 지원을 받아 짧은 기간 동안 자주적인 무장력을 갖춘 반면 남한은 미군의 제동으로 빈약한 상태의 국방군이 양성되었다. 그래서 한국군은 일본군이 사용하던 구식 무기로 인원수만 채운 사단을 편성하는 등 무장이나 전술. 전략면서 자주적인 전투력을 갖춘 군대로는 수준미달이었으며 남한 지역내 반란이나 무장폭동을 진압할 정도의 능력만 갖춘 상태였다.
김일성에 의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순식간에 서울을 빼앗기고 낙동강까지 후퇴한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인민군의 전전선이 붕괴되면서 북진, 통일을 목전에 둔 상태에서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전선에서 후퇴하였으며 유엔군은 많은 병력과 장비 손실을 감수하고 초인적인 방어로 휴전선 일대에서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그런 가운데 미국의 트루만 대통령은 맥아더의 만주폭격, 핵무기 사용 등의 건의를 무시하고 3차 세계대전을 우려하여 맥아더를 유엔군 사령관 직에서 해임하는 조치를 내렸다. 중공군의 개입은 없을 것으로 판단한 미국은 대규모 중공군의 포위 전술에 휘말리면서 대부분의 장비와 무기를 버린채 철수하였으며 수많은 희생도 치렀다. 휴전선일대에서 중공군과 밀고 밀리면서 3년간이나 전쟁상태를 지속했으나 승패를 결정짓지 못하고 결국은 휴전을 성사시켰으나 승자도 패자도 없는 미완의 전쟁을 남겼다.
그래서 한반도는 두 동강나서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지금까지 서로 죽고 죽이는 갈등과 반목의 고통스런 세월을 보내고 있다. 미국은 냉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프랑스와 밀약에 의해 부패한 월남 정부를 지원하다가 월남전에 빠져 들었고 전략과 전술에서 실패를 초래하여 결국은 월남 정권이 패망하여 엄청난 전비와 목숨을 잃고 수많은 보트피플을 양산했으며 인도지나 반도에서 철수했다.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서 완벽한 패배였다. 또 아프칸 전쟁은 탈레반의 대소항전을 지원하다가 탈레반이 승리하여 소련군이 철수하고 카스피해 유전에서 인도양으로 연결할 송유관 설치 등 미국의 협조 요구를 무시하자 9.11 테러에 대한 대테러 전쟁을 빙자하여 빈 라덴의 은신처를 공격한다는 명목으로 아프칸을 침공하였으며 지금까지 발목이 잡혀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최근 대북정책도 북한의 능멸 전술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핵문제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중국이라는 강대국이 지원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이라크나 아프칸의 경우와는 다른 경우이기도 하다. 미국이 쉽게 북한을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북의 지형이나 무장력, 그리고 대부분의 지하 갱도 진지, 대규모 저강도 세력인 비정규전 부대, 항전 의식 등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석유 같은 천년 지하자원이 거의 없는 북한 을 공격하기에는 실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결국은 중국의 참전을 초래할 것이며 그러면 더 큰 희생을 과거 한국 전쟁 재판처럼 강요받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클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것은 핵추정 시설에 대한 일시적인 대량 폭격이나 전술 핵무기을 사용하는 방법 이외에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크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태평양 방어선인 일본 열도를 방위하기 위한 전초기지에 불과하다. 전술 교범에 나오는 전초기지의 설정 개념은 아군 방어진지 최전방에 아군의 눈과 귀의 역활을 하는 것으로 최초 적의 강력한 공격이 개시되면 전술적으로 적의 공격을 후방 본대에 경고하고 주방어지대의 전투준비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일정 시간 버티기 작전의 역활만 할 뿐이며 전초기지 장병은 모두는 철수하는 것으로 비록 죽음을 당해도 방어 교리상 희생으로 간주하는 게 전초기지 개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미국의 적과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에 전초기지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며 유사시 우리들이 모두 희생되어도, 다시말해 나라가 망하고 모두가 보트피플이 되어도 과거 월남처럼 그들에게는 무의미한 것인지도 모른다.
17. 중.러의 대 한반도관
반면 중국이나 러시아는 한반도 전체가 강대국인 미국의 지배를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일 것이다. 중국은 북한을 자신의 전초기지로 이용하여 종주국 행세를 하면서 군사협력인 상호지원 맹약을 맺고 해양세력의 대륙상륙을 거부하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북한에 투자를 증가하고 있으며 한만국경에는 중국군이 이미 대거 전진 배치된 상태이다. 그들은 동북공정을 추진하면서 주변국을 자신들의 지방 정권으로 역사까지 조작하고 있는 실정이며 해양세력의 점거를 절대로 양보하지는 않을 것이다. 조선 시대 임진왜란시 명의 지원이나 조선말기 청일전쟁, 러일전쟁은 조선을 지배하기 위한 강대국끼리의 패권다툼 전쟁이었다는 점에서도 한반도의 지배야욕은 변함이 없다는 이야기다.
러시아도 만주와 한반도의 지배야욕을 감추고 있지만 그들의 남진정책은 역사적으로 지속적으로 추구하여 왔고, 최근 발해 역사까지 자국의 지방 정권으로 왜곡하려는 논쟁을 불러오고 있다. 북쪽의 시베리아는 남쪽의 풍부한 물산을 필요로하고 있으며 부동항을 얻는 것이 그들의 살아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반도는 러시아가 태평양으로 무한 진출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기지가 될 수 있으며 중국을 견제하고 일본을 삼키는데는 한반도 만큼 분쟁지역이면서도 강대국들의 국익이 교차하고 있는 곳으로 전략. 전술적으로 지정학적인 잇점을 가진 곳은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과거 전한 시대 한무제가 흉노족과 재위 50년이 넘도록 재위 기간 내내 대흉노토벌전쟁을 벌인 것에서도 살펴볼 수가 있는데, 북방의 흉노족이 끓임없이 변경 침입과 약탈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북방에 혹한이 몰아치면 유목민족은 가축이 대부분 동사하고 먹을 것이 없어 남방의 농경국가인 한나라 변경을 침범하여 약탈하지 않으면 살아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러시아를 포함하여 과거 중앙 앙시아 일대의 러시아 연방이었던 국가들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찿아오는 것은 그만큼 그런 곳은 살기가 힘든 곳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다. 고구려 등 삼국 시대는 당나라, 고려 시대는 몽골의 원나라, 조선 시대는 임진왜란에서 일본이 패하자 명나라가 조선을 지배하였고 중기 이후와 조선 말기에는 청나라가 조선을 지배하면서 세계의 강대국으로 자리메김하고 있었다. 청일전쟁, 노일전쟁의 결과 청국과 러시아가 패전하면서 조선 반도에서 물러나고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지배하였으며 대동아 전쟁을 일으켜 만주.중국. 동남아. 태평양 등지로 영토를 화장하려 하였으나 미국의 반격으로 결국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패전하게 되었으며, 해방 후 미국과 소련이 일본군 무장해제 명목으로 한반도 남북에 진주하면서 각각 지배하다가 한국 전쟁 이후에는 중국과 미국이 한반도 북과 남을 지배하고 있다. 이처럼 한반도를 지배하던 나라들이 한결같이 세계의 강대국이었고, 한반도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이론이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중국은 해양세력 방어라는 전초기의 입장에서 설치관계, 동북공정을 진행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남방진출의 역사적인 국가 목표를 당성하기 위해서 따뜻한 기후의 살기 좋은 한반도를 탐내고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한반도를 탐내는 이유는 이러한 지정학적인 전략.전술적인 가치와 국가 이익이라는 첨예한 탐욕들이 서로 교차하는 곳이 한반도라는 점이다.
중국은 조선 시대 임진왜란이나 해방 후 한국 전쟁을 통해서 한반도에서 북한이 구원을 요청하면 '설치관계'(입술과 잇발관계),'항미원조'(抗美援朝) 를 외치면서 한반도에 대한 역사적인 종주국을 자부하며 지원하였으며 외세의 한반도 진입을 절대로 무시하지 않을 입장이며 역사적으로도 그랬다.
이는 고대 로마의 입장과 똑 같다.
고대 포에니 전쟁시 지중해 해양 최강국이던 카르타고가 시칠리아섬의 이탈리아 반도 장화 부리와 마주한 메시나를 공격하자 구원을 요청하였다. 당시 로마는 신생국으로 메시나의 지원 요청에 원로원에서 난상토론을 벌이며 고민하엿는데, 결국은 메시나를 카르타고에 허용하면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 땅이 위협받는 다는 시실을 이유로 지원을 결정하게 된다. 최강국 카르타고와 맞붙은 로마는 해전에서 고전하면서 로마연맹이 단결하여 급격하게 해군력을 증강하였고 군선 한 척 없던 신생 로마 해군을 증강하여 1차 포에니 전쟁 동안 카르타고는 해전에서 연전연패한 사실은 '도깨비'라는 창의적인 장치를 장착하여 전투를 벌인 로마 해군에 비해 전통적인 해전만 고집하던 카르타고 해군에게 백전백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즉 설치관계의 입장에서 로마는 메시나를 지원하였고 그 결과 100년이 넘는 기간동안 3차에 걸친 포에니 전쟁을 전개하게 된 것이다. 로마는 창의적인 신기술로 월등한 적을 해전에서 물리쳤으며 3차례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함으로써 2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계최강대국으로 자리메김하였다는 점이다.
러시아도 남진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북방 4개 도서는 물론 북한에 기득권을 행사하려 할 것이며 만주를 자신들의 영역으로 차지하려는 음흉한 흉계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떠오르는 태양이다. 개혁과 개방으로 초고속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은 아시아의 패자는 물론, 세계 초강대국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도 그 점을 우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협력과 상생을 추구하면서도 한쪽으로는 견제를 계속하고 있다. 이 거대한 인구와 넓은 땅은 앞으로 아시아 맹주로 자리메김 할 것이며 기술전쟁, 무역전쟁으로 언젠가는 미국과 중국은 혈전을 치를지도 모른다. 우리가 고래싸움에 등터지는 새우가 될 것인지 아니면 고래싸움을 말리는 중재자가 될 것인가는 우리들의 미래에 달렸다.
18. 약소국의 운명
이미 고인이된 사람들이지만 강대국의 몇 몇 인물들에 의해서 한나라의 운명이 좌지우지 되었다는 것은 강대국이 아닌 약소국이기 때문이며 힘이 없슴이며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긋는 한 줄의 선이 남북분단의 38선이 되었고 휴전선이 되었다. 우리는 그런 장소에 참석도 못했고 모든 권한을 위임하였던 불행한 지도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토는 만신창이가 되었고, 수백만의 전사상자에, 수만의 포로에다 이산 가족에, 수천명의 납북자에, 수십만의 탈북자에, 수백만의 주민이 가난, 궁핍, 무의탁 독거노인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기아선상에 허덕이고 있다. 지금도 이 강산 곳곳에, 먼 월남땅에 고 민태식 일병처럼 한시대를 잘 못 만나서 전장터의 이슬로 사라져간 수 많은 젊은 영혼들이 흩어져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잘못하면 후손들이 저처럼 젊음을 꽃피워 보지도 못하고 서로 총으로 칼로 죽이고 죽으며 피를 흘리고 고통으로 신음하고 가난과 멸시를 받으며 사람대접도 못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후진국 국민들이 될 것이다. 강대국인 선진국을 보라! 그들은 놀면서도 돈을 벌고 시간적 경제적 자유를 구가하고 있으며 연일 파티며 연회를 즐기며 먹고 마시는 즐거움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지 않는가? 해변가에 넓고 좋은 저택에서 자가용 747 비행기가 집 앞에 주기하며 보란듯이 세계를 날아 다니면서 대접받고 존경받으며 많은 사람들이 흠모하고 존경하지 않는가! 그들의 말 한마디에 한나라가 벌벌떨고 정권이 휘청거리며 경제가 마비되지 않는가!
함석헌 옹은 한국의 역사를 가리켜 '갈보같은 역사'라 했다. 강대국 이눔 저눔에게 가랑이를 벌리고 주는 돈푼께로 근근히 살아가는 불행의 주인공 같은 역사라 했다. 그것도 모자라 반토막 난 반도에서 서로 죽고 죽이며 갈등과 반목을 되씹어 온지 어언 66년! 아직도 6자회담의 주인공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회담을 한다지만 이룬 게 아무것도 없다. 모두가 생각이 콩밭에 가 있으니 합의점을 찿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시간 끌기로 북은 김일성 세습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핵무기를 포함하여 무력증강에 온 힘을 쏟고 있으며 능멸전술로 남한을 우롱하면서 툭하면 무력도발로 긴장감을 조성하고 단맛을 본 그들이 바라는 것은 닽콤한 사탕이거늘, 이제 그것조차도 얻지 못하니 주민들은 탈북은 하던, 만주 땅에서 창녀가 되건, 또는 굶어 죽더라도 체제는 유지해야겠다는 계산이다.
19. 우리들의 각오와 다짐
우리들의 모습은 어떤가? 한국이 싫어서 떠난 사람들,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갖가지 방법을 구사하는 지도층 부모들, 권력에 눈이 멀어 국방을 도외시 하는 정치인, 군부대가 들어오지 못하게 연일 데모하는 지역주민, 부정.부패한 공무원, 현실에만 안주하면서 세월을 노래하고 추억에 빠져 옛 사랑만 그리워 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직장과 알바와 결혼에 연연하지 말라! 당장의 혀끝에 스치며 지나가는 단맛을 즐기려 하지 말라는 말이다. 게임이나 경륜,경전,경마에 또는 빠찡고에 빠져 인생을 망치지 말라. 물뽕을 구해서 동물처럼 다른 여자 혼절시키 놓고 강간할 생각 말라는 것이다. 주말이나 공휴일에 강남의 록카페에 가서 밤새 술마시고 여자나 탐하지 말고 비싼 외제차를 타고 거드럼 피우며 여자나 유혹하고 오토바이 폭주족이 되어 도심을 달리는 등 인생 망가지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은 가정교육 불모지대에서 자랐기 때문에 언젠가는 부가 고갈되고 부모가 망가지면 노숙자가 되거나 감옥행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무슨 애국심이 있을 것이며 위기와 고난이 있을 것인가? 부모 잘 둔 덕에 짧은 순간 자본주의 단맛을 즐기고 있을 뿐이며 바람처럼 지나가는 일장춘몽이며 항략에 불과하다. 아홉 여인을 거느리고 대궐같은 집에서 많은 노비를 거느리고 천국에서 황제처럼 지내다가 꿈을 깨니 한여름 더운날 나무 밑이라, 바로 구운몽의 줄거리다. 이슬람의 극단주의가 보여주려는 것도 거짓천국이요 천주교나 개신교가 유혹하는 곳도 거짓천국이다. 불교의 극락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런 거짓천국은 없다. 바로 당신의 마음속이 천국일 것이다. 이 말은 영국의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 호킹 박사가 한 말이다.
좁은 국토에서 취업에 목메지 말고, 결혼에 목숨걸지 말고, 그렇다고 스스로 좌절하지 말고 무언가 새로운 시도로 돌파구를 만들어 보라는 이야기다. 구청이나 종교단체 자원봉사를 하던지, 아프리카 오지 등 해외로 진출하여 자원봉사를 하던지 아니면 전세계를 무전 베낭 여행을 다니면서 세상을 배우고 인생을 배우며 유람하고 그래서 생각이 있다면 아마 언젠가는 자신이 가야 할 인생의 방향이 보이고 깨우침이 생길 것이다. 그때 다시 돌아와서 원대한 꿈을 키우던가! 정부와 재벌, 정치인, 그리고 가진자만 욕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는 말이다. 욕한다고 그 사람들이 당신의 말을 한마디라도 들을 것인줄 아는가?
고구려 미천왕은 삼촌인 왕에게 전장터에서 누구보다도 출충하던 아버지 돌고가 폭군 봉상왕의 미움을 사서 모함으로 죽자, 도망하여 소금장수로, 머슴으로 살았다. 봉상왕의 폭정이 계속되자 나중에는 반정이 일어나 고구려 왕으로 추대되어 미천하게 자랐지만 누구보다도 고구려의 영역확장과 부국강병에 역사에 이름을 남긴 왕이되었다. 집이 가난하다고? 서울대를 졸업 못했다고? 핑계없는 무덤이 없듯이 모두가 핑계이다. 혈연, 학연, 지연을 중시하는 이 사회가 병들었지 당신이 병든 게 아니다.
손발이 없이 발가락 하나로 누구보나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전신장애인 호주사람인 '닉 부이치치'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반드시 한 번 찿아 보시라! 혼자서 이리저리 딩굴면서 겨우 일어나고 발가락 하나로 현란하게 피아노 건반이나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리는 모습에 감동 받을 것이다. 장애인이라고 실망하고 댓글에 욕한다고 목메 죽고, 칭피하다고 자살하고, 파산당했다고, 회사가 도산되고 부도 났다고, 그래서 알거지가 되었다고 죽었다? 죽고 10년만 지나봐라 부모나 자식이라도 기억에서 아물거릴 것이다. 고통이나 상처는 세월이 지나면 모두 자연치유된다. 별다른 약도 없고 특효 처방전도 없다. 그러나 사지는 멀쩡하지만 사이비 종교나 죽은 사상인 공산주의.사회주의 사상 등 그릇된 생각이나 편협한 사상에 한 번 빠지면 도박에 빠진 것처럼 구제불능이다.
인생은 어쩌면 개미만도 못한 삶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꾸려나가는 것이다. 조상 탓 남 탓만 하고 스스로를 비하시키는 바보가 되지 말라! 근본이 중요하고 생각이 건전하고 창의적이며 도전적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껍데기나 외모에 신경쓰지 말고 내실을 다지는 데 온 힘을 기울어야 할 것이다. 통상 보면 못난 것들이 욕심만 많고 이해심도 없고 메너도 없고 기본도 없고 생각도 없고 창의적이지도 못하다면 평생 사회나 가정으로부터 선택받지 못하고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동물과 달리 건전한 사고를 가진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지혜로운 사람이란 다양한 경험과 많은 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위인이나 영웅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위선자들은 죽은 지도자를 위인이나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책을 펴내고 재단을 만들어 업적을 기리며위인만들기에 안감힘을 쏟지만 근본적으로 본성이 잘못되었고 비도덕.비윤리적인 면에서 자유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역사적인 평가는 그런 사람은 위인이나 영웅이 될 수 없다.
긍정적인 사고를 가져라. 역사적으로 수많은 반정이 있었지만, 반정하다가 죽은 인물들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모두가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반정을 일으켰고 대부분 그 반정이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려 시대 강조의 반정, 무신 정변, 조선시대 중종, 인조반정이 성공은 하였지만 실권은 반정공신에게 있었고 대부분 옹립한 지도자가 모두 꼭두각시였고 그래서 무능할 수밖에 없었고 또 왕만 교체하였을 뿐 개혁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오 결국은 반정공신들의 권력탐욕과 부패만 증가했을 뿐, 성공한 반정이라고 볼 수 없다. 성공한 반정은 반정의 성공과 개혁이다. 성공한 반정은 새로운 왕조를 열고 개혁을 시도한 고려 태조 왕건과 이조 태조 이성계, 그리고 조국 근대화를 이루어 국민들의 가난을 해소하고 오늘날의 경제대국을 이루게 만든 박정희 뿐이다.
당신의 후손들이 정말 행복하게 잘 살기를 원한다면 지금부터 생각을 바꾸라! 가난을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은가? 당신의 후손이 전장터로 끌려가서 이름모를 산하에서 뼈쪼각이 썩도록 방치할 것인가? 시대의 흐름과 미래를 보고 앞으로 다가올 세상을 예견하고 지금 자신이 먹고 살기에만 급급하여 비도덕/비윤리적인 유혹과 욕심에 빠져 재물에 탐닉하고 원칙과 법을 무시했던 자신을 돌아보고 선진국 국민다운 국민이 되도록 원칙과 법규를 준수하고 진취적이고 창의적이며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며 윤리/도덕적으로 존경받는 민주시민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나라를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 부국강병으로 가는 길이 무엇이며 자신이 할 일은 무엇인지를 살피고 생각을 바꾸고 바른 나라가 되도록 생각을 바꾸고 언행을 바로하고 법과 원칙을 지키고 국가의 위기시에는 가진자와 지도자가 앞장서는 나라가 되도록 스스로를 다져 나가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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