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마을

한국의 역사 631 : 조선의 역사 173 (선조실록 38) 본문

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한국의 역사 631 : 조선의 역사 173 (선조실록 38)

두바퀴인생 2012. 6. 29. 04:26

 

 

 

한국의 역사 631 : 조선의 역사 173 (선조실록 38)

 

  

               

                                                     임진왜란 경과                                                                                                                    

                                                                                                                                                                                   

 

제14대 선조실록(1552~1608년, 재위: 1567년 7월~1608년 2월, 40년 7개월)            

 

 

 

 

 

 

 

                              

 

 

 

 

임진왜란 전투목록

 

아래 임진왜란 전투 목록임진왜란 중 있었던 전투 목록이다.  모두 음력으로 날짜순대로 표시했다. 주요 전투 위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1592년

  • 다대포 전투 : 4월 13일 ~ 4월 15일
  • 부산진 전투 : 4월 14일
  • 동래성 전투 : 4월 15일
  • 경상도 및 충청도 함락 : 4월 17일~4월 28일
  • 상주 전투 : 4월 25일
  • 충주 탄금대 전투 : 4월 28일
  • 한강 전투 : 5월 2일
  • 옥포 해전 : 5월 7일
  • 합포 해전 : 5월 7일
  • 적진포 해전 : 5월 8일
  • 해유령 전투 : 5월 16일
  • 임진강 전투 : 5월 18일
  • 기강 전투 : 5월 18일
  • 사천 해전 : 5월 29일
  • 당포 해전 : 6월 2일
  • 당항포 해전 : 6월 5일
  • 용인 전투 : 6월 5일
  • 무계 전투 : 6월 6일
  • 율포 해전 : 6월 6일
  • 정암진 전투 : 6월 8일
  • 여주 전투 : 6월 10일
  • 제1차 평양 전투 : 6월 15일
  • 웅치 전투 : 7월 7일
  • 이치 전투 : 7월 8일
  • 한산도 대첩 : 7월 8일
  • 제1차 금산 전투 : 7월 9일
  • 안골포 해전 : 7월 10일
  • 우척현 전투 : 7월 10일
  • 제2차 평양 전투 : 7월 17일
  • 영천성 전투 : 7월 24일~7월 27일
  • 지례 전투 : 7월 29일
  • 제3차 평양 전투 : 8월 1일
  • 청주 전투 : 8월 1일
  • 제1차 경주 전투: 8월 2일
  • 제2차 금산 전투 : 8월 18일
  • 영원산성 전투 : 8월 25일
  • 장림포 해전 : 8월 29일
  • 화준구미 해전 : 9월 1일
  • 다대포 해전 : 9월 1일
  • 서평도 해전 : 9월 1일
  • 절영도 해전 : 9월 1일
  • 초량목 해전 : 9월 1일
  • 부산포 해전 : 9월 1일
  • 연안 전투 : 9월 2일
  • 제2차 경주 전투 : 9월 8일
  • 북관대첩 : 1592년 9월 16일~1593년 1월 28일
  • 창원 전투 : 9월 27일
  • 제1차 진주성 전투 : 10월 10일
  • 독성산성 전투 : 12월 11일

 

1593년

  • 제4차 평양 전투 : 1월 9일
  • 성주 전투 : 1월 15일
  • 벽제관 전투 : 1월 27일
  • 웅포 해전 : 2월 10일~3월 6일
  • 행주 대첩 : 2월 12일
  • 제2차 진주성 전투 : 6월 29일

 

1594년

  • 제2차 당항포 해전 : 3월 4일
  • 영등포 해전 : 10월 1일
  • 장문포 해전 : 10월 4일

 

 

1597년

  • 칠천량 해전 : 7월 16일
  • 고령 전투 : 8월 15일
  • 남원 전투 : 8월 16일
  • 황석산성 전투 : 8월 16일
  • 어란포 해전 : 8월 27일
  • 직산 전투 : 9월 7일
  • 벽파진 해전 : 9월 7일
  • 명량 해전 : 9월 16일
  • 제1차 울산성 전투 : 12월 24일

 

1598년

  • 절이도 해전 : 7월 19일
  • 제2차 울산성 전투 : 9월 21일
  • 사천성 전투 : 9월 28일
  • 순천성 전투 : 9월 20일~10월 7일
  • 노량 해전 : 11월 19일

--------------------------------------------------------------------------------------------------------------------------------

 

임진왜란 전투 목록에 따라 날짜별로 주요 전투를 살펴보겠다.

 

1592년 4월 13일 부산에 상륙한 왜군은 4월 13일에서 15일까지 다대포진을 공격하는 한편 주력군은 4월 14일 부산진성을 공격 함락시켜 저항하던 정발 첨사 이하 전 성민을 몰살시켰다. 이어 다음날 4월 15일에는 동래성을 공격 함락시켰으며 일부 항복한 군사를 제외하고 부사 송상현 이하 전원 사살했다. 이어 북진한 왜군은 대구를 무혈 점령하고 4월 25일 상주 북천에서 조선군 장수 이일의 오합지졸 군사 수백 명을 기습 공격으로 전멸시키고 경상도, 충청도 일대를 점령하였다.

 

무인지경의 소백산맥을 넘은 왜군은 충주를 무혈 점령하고 4월 28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기다리던 신립의 조선군 8천과 접전하여 괴멸시켰다. 신립의 패전 소식을 들은 조선 조정은 황급히 피난을 떠났고 백성들은 궁궐에 불을 질렀다. 왜군이 한강 남단에 도착하자 한강을 방어하던 조선군은 왜군을 보자 장수는 도망가고 군사는 흩어져 버렸다. 그러자 왜군은 5월 2일 한강을 아무런 저항없이 도강하여 한성을 무혈점령하였다.

 

5월 7일 이순신의 옥포 해전, 합포 해전에 이어 5월 8일 적진포 해전에서 승리하였다. 5월 16일 임금을 추격하려고 먼저 출발하여 북진하던 왜군 선발대 70명을 괴멸시킨 신각의 해유령 전투가 있었고, 5월 18일에는 임진강 방어선이 붕괴되었다. 

 

신각의 해유령 전투와 사천 해전부터 살펴보겠다.   

 

 

 

해유령 전투

 

해유령 전투임진왜란 초기 조선의 부원수 신각이 경기도 양주에서 조선 육군 최초로 승리를 거둔 전투였으나 작은 전투이고 이치 전투에 밀려 잘 조명되지 않고 있다. 전투가 벌어진 지명의 이름을 따서 양주 전투라고도 불린다.

 

임진왜란 초기 일본군에게 크게 밀린 조선군은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조선의 마지막 정규군이 전멸하자 조선선조도원수 김명원에게 한강 방어를 맡긴다.

 

그러나 김명원음력 5월 2일 전투를 포기하고 후퇴하고 부원수 신각이 이를 말렸으나 도리어 화를 내었다. 결국 신각은 자신의 군사만 이끌고 도성 안으로 들어가 유도 대장 이양원과 합류해 양주로 후퇴했다.

 

양주에 진을 친 신각은 함경남도 병사 이혼과도 합류하여 적의 동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한편 한양을 점령한 일본군 제2진 가토 기요마사개성으로 피란가던 선조의 어가를 쫓기 위해 선발대 70명을 보낸다.

 

음력 5월 16일 선조를 쫓기위한 70명의 일본군 선발대가 해유령에 이르렀는데 그들은 이미 고니시 유키나가가 조선 최강의 부대라 일컬어지는 신립의 부대를 아주 쉽게 전멸시켰기 때문에 이 사실을 의식해서 조선군을 우습게 봐 무장도 제대로 갖추기 않고 술까지 마셨다. 이에 김명원이 제멋대로 도망쳐서 김명원 대신 신각이 이끄는 조선군이 일제히 활을 쏴 70명이 모두 전멸해 목이 베였다. 이는 조선 육군 최초이자 완전한 대승리였다.

 

선조의 어가를 보호한다는 핑계로 개성으로 후퇴한 도원수 김명원한강 방어의 실패로 문책을 받을까봐 선조에게 신각을 모함했다. 그래서 김명원은 신각이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도망쳐서 패했다는 치명적인 거짓 보고를 올린다. 이 말을 그대로 믿은 선조선전관을 보내 신각의 목을 치라고 명령한다. 선조의 어리석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도망치기에 빠빴고 경황이 없었던 선조는 김명원의 말만 듣고 확인도 않은채 장수의 목을 치라는 선전관을 내려 보냈다는 점이다.

 

그러나 며칠 뒤 신각으로부터 가토 기요마사의 선발대와 싸워 승리했다는 장계와 그 증거물품인 그때 신각이 무찌른 일본군 선발대 70명의 수급 70개를 받은 선조는 급히 다른 선전관을 급파해 신각의 목을 베지 말라고 명령했으나 뒤늦게 출발한 선전관이 도착했을 때 신각은 이미 음력 5월 18일 먼저 도착한 선전관에게 목이 베여 처형당한 후였다. 결국 선조는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하며 다시 평양으로 피란을 갔다.

 

 

 

 

사천 해전

 

사천 해전1592년 음력 5월 29일(양력 7월 8일)에 사천에서 왜수군 13척을 전멸시킨 해전으로, 이순신은 여기서 거북선을 처음으로 실전 투입했다.[1]

 

사천 해전
Sachoenseabattle.jpg
한산도 제승당의 사천해전도
날짜 1592년 7월 8일(음력 5월 29일)
장소 경상도, 사천 앞바다
결과 조선군 승리
교전국
조선 일본
지휘관
이순신
원균
권준
무의공 이순신
정운
이영남
송희립
나대용
어영담
김완
한백록
이언량
이기남
기효근
신호
구루시마 미치유키
도도 다카토라
카메이 코레노리
병력
거북선 2척,판옥선 26척 전선 13척, 병력 모름

 

 

 

                             

 

                                    

 

 

1592년 5월 7일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옥포, 합포, 적진포에서 42척의 전선을 격침당한 왜군은 큰 손실에도 불구하고, 서해안으로 북상을 기도하였다.

 

1592년 5월 29일 이순신은 판옥선 40여 척을 거느리고 거제를 출발하여 노량에서 경상우수사 원균과 합류하여 사천 선창에 있는 왜군의 정보를 물어 사천으로 추격하였다.

 

왜군은 사천으로 상륙하여 배는 산 밑에 매어두고 산위에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해안가에 정박하고 있던 이순신은 단병접전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처음으로 유인작전을 사용하게 된다. 육지에 대기 중이던 왜군이 승선하여 조선 수군 함대를 쫓아오자 바다에서 뱃머리를 돌려 반격으로 나섰다.

 

선두는 역시 거북선. 거북선 돌격장인 이언량,이기남이 거북선을 지휘을 하고 돌격하며 왜 수군 사이로 헤집고 다니자 판옥선들이 후미에서 화포 공격을 하며 그 뒤를 따랐다. 결과는 적 함대 13척 모두 격침.

 

이순신은 이 전투에서 왼쪽 어깨에 총을 맞지만, 마친 후 부하를 시켜 칼끝으로 총탄을 파내게 하였다고 한다.

 

이 전투의 결과 왜군은 패하여 부산과 거제도로 도망하여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선조는 이 전투의 승리로 이순신에게는 정2품인 정헌대부(正憲大夫)의 벼슬을 하사하였고, 이억기와 원균은 종2품인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승진하였다.

 

현재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성은 당시 왜군들이 배를 정박하고 산성을 쌓아 조선군에 대항하였던 성으로, 현지의 주민들에게는 왜성으로 알려져 왔다. 또한 이곳은 돌격선인 거북선이 최초로 사용된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