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마을

우면산의 겨울 5 : 그리스도교 탄생 역사 1 (크리스마스 기원, 4천 년 역사의 유대민족) 본문

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우면산의 겨울 5 : 그리스도교 탄생 역사 1 (크리스마스 기원, 4천 년 역사의 유대민족)

두바퀴인생 2011. 12. 24. 05:55

 

 

 

우면산의 겨울 5 : 그리스도교 탄생 역사 1 (크리스마스 기원, 4천 년 역사의 유대민족)

 

 

 

 

 

 

예년과는 다르지만 거리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거리는 현란한 조명과 장식으로 넘쳐나고 사람들도 의미도 모른체 친구,가족들과 어울려 선물을 주고 받으며 축제일을 보내고 있다. 분명 크리스마스는 매년 년말이면 우리들에게 즐거운 축제일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어원과 의미를 알고나면 한 종교 집단에 의한 축제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 우리는 의미도 모른체 그들의 축제일에 덩달아 흥분하며 즐거워해야만 하는가? 왜 우리들의 고유한 민족 종교와 축제는 잊혀져 가고 시들어 가고 있는데 남의 것에 빠져 있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진 강대국의 문화를 약소국이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잊어버리체 살고 있는 것이다. 고려 시대 몽고의 부마국이 되었을 때 고려사람들은 몰고옷을 입고 올고 머리인 변발을 하고 몽고눔을 등에 업고 조정에서 권세를 휘둘렀던 점을 상기할 때 오늘날 우리들이 벌이고 있는 행태나 우리 자신을 잊고 그들의 문화에 빠져 살고 있다는 점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자신을 망각하는 민족은 결국 세계사에서 소리없이 사라져갔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크리스마스를 만들게 된 그리스도교의 탄생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크리스마스 기원

 

크리스마스(Christmas), 대한민국의 법정 명칭으로 기독탄신일(基督誕辰日)이며 기독교가 기념하는 최대 축일로서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날이다. 통칭으로 '성탄절(聖誕節)', 기독교 내에서는 '예수 성탄 대축일', '그리스도 탄신일'이라고도 한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Christ)와 미사(Mass)가 합쳐진 합성어로서, '그리스도의 미사' 즉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미사'를 의미한다. 하지만, 실제 역사적으로는 그 날이 예수의 탄생일이 아니라, 로마에서 태양신을 숭배하던 이교 축제일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지키지 않는 일부 기독교 교단도 있다.

 

현재는 종교적인 의미를 초월하여 문화적인 행사로 발전하였으며 크리스마스는 부활절과 함께 가장 중요한 축제일이자 교회력의 절기인데, 전통적으로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 전 4주일 동안 예수께서 세상에 오실 것을 기다리는 대림절로 지킨다. 대한민국 대통령령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상의 정식 명칭은 '기독탄신일'이다.

 

로마 및 이집트, 이교도 지역에서 행하던 태양 숭배 및 관련 신화에서 12월 25일을 '무적의 태양신'(Sol Invictus) 축일로 기념하고 있었다. 일년 중에 해가 가장 짧아지는 동지(冬至)에 즈음하여, 그 이후부터는 해가 조금씩 길어지기 때문에 어둠이 물러나고 빛이 세력을 얻어 만물이 소생해 나갈 수 있음을 기념하기 위해서 12월 25일이 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이 이교 축제들은 교황 율리오 1세가 12월 25일을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선포한 기원 350년부터  '그리스도교' 축제로 인정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전통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처럼 크리스마스의 기원은 기독교에서의 역사보다 훨씬 더 오래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며,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뮨화에 맞게 토착화된 증거로 볼 수 있다.

 

Χmas 또는 Χ-mas는 영어의 X가 아닌 '그리스도'의 그리스어 첫글자 X(키)에 mas를 붙여서 쓴 것이다. 따라서 Χmas는 '엑스마스'로 읽지 않고 '크리스마스'로 읽어야 한다. 크리스마스 축제는 기원후 336년경 로마에서 시작되었으며, 로마제국의 동방교회에서는 동방박사 세 사람이 아기 예수를 참배하러 왔다는 마태복음서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공현일(公現日, 1월 6일)과 동시에 행해졌다.

 

또한 크리스마스 트리는 1605년 스트라스부르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선물 교환은 고대 로마의 풍습에서 비롯되었다. 산타클로스가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나누어 준다는 것은 미국에서 일반화되었다.

 

크리스마스의 본래 의미는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것이지만, 불교에서 석가모니의 태어남을 기념하는 석가탄신일의 풍경과는 달리 현재는 축전의 성향이 더 강하다.

 

서방교회(성공회, 개신교, 로마 카톨릭)에서는 매년 12월 25일이다. 동방정교회, 특히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율리우스력의 12월 25일에 해당하는, 12월 25일보다 13일 늦은 1월 7일이 크리스마스이다. 일반적으로 12월 24일을 전야제로서 '크리스마스 이브'라 하며 일부 나라에서는 다음날을 박싱 데이(Boxing Day)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독교와 서구 문명이 퍼지면서 크리스마스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기리는 명절이 되었으며, 대한민국에서도 1950년부터 법정 공휴일로 정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한민국이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정할 당시 이름은 기독탄신일이었고 현재도 법령 및 관공서 공휴일 규정상으로는 기독탄신일로 정해져 있으나 일상 생활에서는 성탄절이라는 관용적 표현이 더 많이 쓰인다. 대한민국의 많은 초등학교들이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겨울방학식을 가진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이슬람국가들에서는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은 아니지만, 기독교를 신앙하는 직장인들이 예배를 드리고 출근할 수 있도록 종교적인 면에서 배려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일요일이어도 공휴일이 연장되지 않는다.

 

공산국가인 중국을 제외한 타이완, 홍콩, 마카오만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쉬고 있고, 기독교 인구가 매우 적은 일본에서는 공휴일은 아니며, 헤이세이 천황의 탄생일(12월 23일)과 근접해 있어 연계론이 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탄생 역사를 살펴보자

 

 

4천 년 역사의 유태민족

 

'셈족'에 속하는 유태민족

흔히 세계의 인종을 피부 색깔에 따라 백인.흑인.황인.홍인종으로 구분한다. 백인종은 각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크게 두 어족으로 나뉜다. 인도.유러피안족과(혹은 아리안족)과 셈어족이다. 인도.유러피언족에는 희랍어.라틴어.프랑스어.스페인어.독일어.영어.러시아어 등 동서유럽 언어들이 모두 포함된다. 셈어를 사용하는 인종은 주로 오늘날의 중근동 지역에 분포하는 민족이다. 이라크의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변에서 서쪽으로 팔레스타인을 지나 지중해를 끼고 북부 나일강까지 그리고 동쪽으로 아라비아 반도와 페르시아에 이르는 지역 일대까지 분포된 인종들이다.

 

셈어족에는 아랍어.히브리아어.바빌로니아어.가나안어.페니키아어.앗시리아어.아카드어 등 중근동의 고전어가 모두 포함된다. 그래서 오늘날 셈어를 사용하는 민족을 말할 때에는 크게 아랍권 민족들과 히브리어를 말하는 유태인으로 나눈다.

 

발견된 유적들을 근거로 유추판단해보면 고대 이집트 문명이 나일강 일대에 자리잡고 인접한 팔레스타인,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별개의 독립 문명권으로 있다가 기원전 3천 년 전부터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존재하였던 것으로 고고학자들은 보고 있다.

 

유태민족은 유태교와 그 뿌리를 함께 한다. 거의 모든 인류 문명의 역사와 종교는 함께 출발하였던 것이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유태민족이 남다르게 보이는 것은 그런 토착 민족종교를 오늘날까지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런 민족은 지구상에서 유태민족이 유일할 것이다.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

유태민족의 기원이 시작될 무렵인 2천 년 전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수메르'의 문화권에 속해 있었다. 이 문화권 내에 속한 사람으로 '데라'라는 노인과 그 가족이 살았는데 당시 문화적 수준도 높고 정치체제도 안정된 지역의 문명사회에 적응하면서 지금의 이라크 지역의 '우르'라는 소도시에서 그런대로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데라 노인은 더 살기 좋는 곳을 찿아 아들 아브라함을 비롯한 가족과 많은 수의 부족들을 대리고 서북쪽으로 길을 떠나 오늘날 터키 땅인 '하란'에 도착한다.

 

당시 이 지역을 포함한 중근동 전역에서는 우상을 만들어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가령 이집트는 거대한 우상신, 바빌로니아는 '마르둑', 가나안과 페니키아 지역 일대는 '바알' 신을 섬기고 있었다.

 

'하란'에서 살다가 아버지 데라가 죽고 아브라함이 가장을 겸한 부족장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매하기 짝이 없는 당시의 우상숭배를 무척이나 배척하던 아브라함이 새로운 이상 세계를 동경하면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어떤 환상이 보였을 것이다. 심리학자들이 말하기를 무언가에 집착하여 집중하다 보면  꿈에는 물론 멀쩡한 대낮에도 자신이 찿는 환영이 보인다고 한다. 아브라함도 일종의 환영을 보았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무수히 많다. 일일이 실증할 수는 없지만 어찌했던 그들의 기록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바로 하느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북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의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창세기 12:1-2),

 

구약성경(히브리어 경전)에는 하느님과의 만남이 어쩌면 신화같은 이야기로 이렇게 씌어 있다. 그에게는 아주 뜻밖의 일이었을 것이며 낯설었을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남쪽으로 길을 떠나 하느님이 말씀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한다.

 

이 야회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역사적인 첯 만남은 유태인과 유태민족의 첯 탄생이 된다. 당시 유일신 신앙이라는 아주 획기적인 새 아이디어가 세상에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이다. 구약은 아브라함 이전에 아담과 이브,노아의 방주도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그런 선조들을 모두 제쳐놓고 아브라함을 첯 번째 유태인으로 본다.

 

어쨌던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행동으로 옮겼다. 구약을 보면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오늘날 팔레스타인)에 이르렀을 때에 야훼 하느님이 "내가 너의 자손들에게 이 땅을 주겠다"(창세기 12:7)라고 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다시 길을 떠나 이집트로 갔다가 가나안으로 되돌아온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아이러니가 있는데, 풍요로운 땅도 아닌 가나안 땅을 하는님께서 유태민족에게 주겠다고 약속했으며, 이미 그곳에는 가나안 민족이 살고 있던 남의 땅이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도착후 다시 이집트로 갔다가 되돌아 온 것으로 되어 있다. 당시 가나안 땅이 흉년이 들었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느님이 주신 땅보다 나일강 유역은 이미 강력한 왕조가 자리잡고 있어 되돌아 왔지만 더 살기 좋다고 나일강 유역에 정착하려 했다는 것이 의문이다. 이는 비록 흉년이 들었지만 하느님이 주신 가나안 땅을 버리고 더 살기 좋은 곳을 찿아 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라는 점이며 불모의 황무지지만 이미 가나안이라는 다른 민족이 살고 있던 땅이었으며 살기 좋은 땅도 아닌 척박한 땅이었다. 하물며 이미 다른 민족이 살고 있던 땅을 약속하셨다니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다. 더좋은 땅도 얼마나 많은가?

 

구약의 이야기를 믿든 믿지 않든 중요한 사실은 아브라함이 야훼 하느님과 맺었다는 이 '계약'이 오늘날까지 전세계 유태인들의 기도 속에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전세계 기독교도들도 이것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예수를 포함하여 수많은 제자와 신도들의 희생으로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다.그리고 위대한 종교임에는 틀림없다. 하느님과의 계약에서 그 계약서 원본이 있는지 없는지 아니면 구두계약인지는 몰라도 그것은 단지 우리들 한민족이 아닌 유태민족의 신화같은 역사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들의 단군신화를 남들이 보면 우습게 생각하듯, 그 민족이 만든 민족역사의 진위를 왈가왈부하자는게 아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종교적인 면에서 남의 민족 역사와 신앙이 문제가 아니라가 우리들 자신들의 문제이다. 그들을 이해하는 선이 아닌 자아를 망각한체 남의 역사와 종교에 너무 심취하면 결국 주체성을 상실하고 그들을 동경하고 결국에는 동화되기 쉽다는 점이다. 그래서 주체성이 없는 민족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이 지구상에서 사라질수 밖에 없기 때문에 민족 역사와 신앙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거짖이든 진실이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한 민족역사와 종교를 꾸준히 간직함은 그 민족을 단결시키고 민족적인 자부심을 일깨우는 역활을 한다. 2천 년을 나라없이 떠돌이 생활을 했지만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역사와 신앙을 지켜왔기에 오늘날 다시 민족국가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모두 할례를 받아라

아브라함이 애훼 하느님과 가진 이 계약은 구약성경 전편을 통해 흐르고 있다. 이른바 모세 5경으로 알려진, '토라'라고 하는 창세기를 비롯한 출애급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에는 물론 그 이후의 여호수아기,판관기,사무엘 상.하,열왕기 상.하에도 간간이 흐른다.물론 모세 5경인 토라에서처럼 야훼 하느님과 직접적인 접촉에 이어 게속 등장하는 많은 예언자들을 통해서 유태인들에게 끓임없이 전해진다. 이것이 유태인 역사의 전편에 흐르는 핵심 사상이다.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계약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할례'가 있다.

" 너희 가운데 남자는 모두 할례를 받아야 한다..... 뒤에 오는 너의 자손과 세우는 나의 언약.... 남자는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포경을 베지 않은 남자는 나의 언약을 깨뜨린 자이니, 그는 나의 백성에게서 끓어진다."(창세기 17:10-14)

 

이 할례는 구약성경이 문자로 씌어지기 시작한 천여 년 이전부터 지켜져 왔다. 물론 오늘날에도 지켜지고 있으며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아주 확실한 증표다. 당시 이러한 할례는 주변 다른 민족으로부터 멸시를 받아왔으며 나치스 치하에서는 유태인 식별 방법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할례는 오늘날에도 건강과 건전한 발육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다른 민족들 보다 무언가 남다른 진취적인 사고로 가득찬 민족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이 특이한 할례 이외에 유태인들은 모세가 나타나 십계명을 주기전까지 지켜온 계율이 또 두가지가 있다. 하느님 외에 어떠한 우상숭배도 금지한 것과 제사에 인간을 희생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타당성 있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엄청난 이단이며 반사회적인 생각이었다. 보편화되어 있던 우상숭배와 인간제물을 금지한다는 것은 그 당시 사회를 부정하는 것이며 보이지도 않는 하느님을 믿는 다는 그 자체도 용납할 수 없는 이단, 즉 사이비 집단이라고 간주되었을 것이다. 당시의 상식을 벗어난 극단적인 탈선, 인정할 수 없는 사고, 변화를 추구하는 혁신주의, 그들은 이처럼 그 시대부터 혁신적인 생각으로 현실을 타파하고 미래를 창조하는 자세로 살아가기를 습관처럼 했던 민족이었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엄청난 이단적인 생각 자체가 썩어가던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을 것이며 기존 사회로부터 비난과 멸시를 받지 않을 수 없는 탁월한 민족임에는 틀림이 없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