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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의 가을 18 : 역사의 여울목에서 분노를 느끼며...... 본문
우면산의 가을 18 : 역사의 여울목에서 분노를 느끼며......
새벽 풍경, 강남 성모병원 전경
날씨가 많이 추워진 느낌이다. 블로그 고려 역사를 올리고 다른 뉴스를 점검하고 커피 한 잔을 끓여 마시면서 새벽 운동을 준비한다. 땅이 얼기전까지는 계속 자전거를 탈 예정이다. 보온통에 뜨거운 커피를 담고 땀복을 입고 조명등을 점검하고 휴대폰 DMB도 확인하고 예비 밧테리도 챙기고 헬멧, 장갑,조명등을 점검한다.
블로그에 올리는 고려의 역사도 이제 중반을 넘어 고종 시대로 접어들었다. 최씨 무신정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몽고의 침공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거란족이 몽고족에게 밀려 동으로 쫓겨오면서 고려를 침공하여 2여 년 동안 전쟁을 벌였다는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당시 고려는 몽고.동진과 연합군을 결성하여 거란족을 물리쳤는데, 이런 사실도 놀라웠다. 몽고군 1만, 동진군 2만이 합세하여 고려군과 같이 거란군을 물리쳤다는 사실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씨 무신정권이 안정기로 접어든 고종 시대는 몽고의 흥기로 고려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 전체가 전쟁에 휘말려 들게 된다. 서쪽으로 밀려났던 거란이 다시 동으로 쫓겨왔으며, 남으로 밀려났던 송이 망국에 직면하고, 북쪽의 맹주로 자리한 금도 몰락한다. 몽고의 이같은 무서운 팽창정책에 맞서 고려는 수십 년 동안 영토수호 전쟁을 수행한다. 그런 가운데 무신정권 내부에서는 권력투쟁이 이어지고, 왕실은 무신들의 암투를 이용하여 왕권 회복을 꿈꾸게 된다.
고종은 강종의 맏아들이자 원덕왕후 유씨 소생으로 1192년 정월에 태어났으며, 초명은 진, 이름은 철, 자는 대명이다. 그는 부왕 강종이 강화도에 유폐되어 있을 때 안악현에 유배되었으며, 강종 즉위 이듬해인 1212년 개경으로 돌아와 그해 7월에 왕태자에 책봉되었다. 그리고 1213년 8월 정축일에 임종에 직면한 강종의 선위와 실권자 최충헌의 지지로 고려 제23대 왕에 즉위하였다. 이 때 그의 나이는 혈기왕성한 22세였다.
고종이 즉위하던 시기에 중국에서는 몽고가 일어나 금에 쫓겨 서쪽으로 도망갔던 거란을 다시 동으로 내몰았다. 이 바람에 금은 변방지역에 밀려든 거란족에 의해 위협받기 시작하였고, 내부적으로 선무포선 만노가 반란을 일으켜 요동을 차지하고 천황을 자처하며 동진을 세웠다. 금은 이 때문에 누차에 걸쳐 고려에 식량 원조를 요청하였지만 고려는 그들의 내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관망 자세로 일관한다. 그때 뜻밖에도 동쪽으로 밀려오던 거란족이 요동을 똟고 압록강을 건너 고려로 침공해왔다.
1216년 8월, 몽고군에 쫓긴 거란족을 통솔하고 있던 금산, 금시 두 왕자는 이열과 걸로를 시켜 군사 수만 명으로 압록강을 건너도록 하였다. 이에 고려는 상장군 노원순을 중군병마사로, 상장군 오응부를 우군병마사로, 대장군 김취려를 후군병마사로 삼아 거란군을 방어하게 하였다.
하지만 고려군은 밀려드는 거란군을 효과적으로 퇴치하지 못한다. 후군병마사 김취려의 눈부신 전공으로 많은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고려의 병력은 결사적으로 남하하는 수만의 거란군을 상대하기에 벅찼다. 그래서 한때 거란군은 개성 근처까지 밀려들어 혜종의 순릉을 도굴하고 원주와 예천을 함락시키기까지 하였다. 이 같은 공방전이 무려 2년 동안 지속되는 가운데 고려는 몽고와 만노의 동진, 금 등과 연합하여 고란군을 격퇴하기로 결정한다.
연합군의 형성에는 몽고, 동진,금 등이 모두 동의 하고 있었음으로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1218년 12월 합진과 찰라가 이끄는 몽고군 1만과 동진의 군사 2만이 연합군을 형성하여 거란군이 점령하고 있던 회주, 맹주, 순주, 덕주 등을 무너뜨리고 거란의 본거지인 강동성으로 향하자, 김취려와 조충이 이끄는 고려군도 이들과 합세하여 강동성을 에워쌌다. 이에 거란군은 한 달간을 버티다가 1219년 정월 성문을 열과 나와 항복하였다.
거란이 항복하자 몽고의 원수 합진은 고려에 강화를 청하였고, 고려 조정이 숙고 끝에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몽고와 고려는 형제지국의 관계를 형성한다. 그 후 합진은 몽고로 돌아가면서 수하 40여 명을 의주에 남겨두고 가게 되는데, 이 때문에 고려 전역엔 "가을에 몽고군이 다시 온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또한 몽고군과 동진군이 변방에서 무력시위를 하면서 고려에 대해 공납을 요청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려 사회는 여전히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미루어 보아, 당시 최씨 무신정권이 지배하던 고려의 외교력이 매우 우수했던 점이다. 몽고군은 한창 영역을 확장 중에 있었고 동진은 금나라에서 반란을 일으켜 세운 나라였다. 그런 미묘한 관계에서도 고려가 이처럼 외교적으로 그들 나라의 군사를 이용하여 거란군을 물리쳤다는 사실이 경이롭다는 점이다.
그 후 고려는 몽고와 동진에 조공을 바치며 관계를 유지하다가 몽고 사신 저여고의 피살 사건으로 말미암아 몽고의 침공이 시작된다. 당시 고려는 금나라의 소행으로 주장하였으나 저여고를 피살한 도적떼가 어느 나라 소속인지는 알 수가 없는 상태였지만, 몽고는 고려의 소행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이는 당시 몽고 사신들이 고려에 오면 무리한 공물을 요구하였고 이로 인한 고려의 반발로 인식하였다는 점이다. 몽고의 1차 침입에서 개경이 몽고군에게 포위되는 사태를 맞았으나 강화를 맺고 몽고군은 물러갔으나 그 이후부터 고려의 최씨 무신정권은 강화도로 천도하여 몽고의 9차에 걸친 침입을 당하면서 끝까지 항전을 계속하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고종은 몽고에 항복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최씨 무신정권은 고종의 의견을 무시하고 끝까지 항전하게 되는데, 만약 당시 고종의 주장대로 몽고에 항복하였더라면 고려는 몽고의 예속 이 이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항복과 강화는 결국 강대국의 예속이 불가피하며 주권을 상실하고 국가는 노예국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사실은 자명했을 것이다.
미국발 금융가의 탐욕에 대한 비난의 함성과 분노가 뉴욕에서 위싱턴으로 확산되는 모양이다.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권력과 야합한 금융계의 파렴치한들이 이제 국민들의 심판을 받을 날이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다.
국내 금융계도 과거 부도위기에 처하자 정부에서 엄청난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살려낸 적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후 각종 돈잔치를 벌이며 치부하였고 그들을 감독하는 감독기관들도 한통속이 되어 이번 저축은행 사태까지 야기하여 국민들의 분노를 싸고 있다. 현재 금융계 임원의 한 달 봉급이 5천~6천만원을 넘어서고 있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그리고 은행들은 예대이자 차이로 번 마진이 20조가 넘는 순이익을 남기고 있다고 한다. 직장인의 년봉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어가고 있는 은행들의 파렴치한 행위는 양심도 없고 먼저 본 눔이 임자인 것처럼 털어가고 있는 모습이 과거에 권력을 이용하여 백성들을 수탈하던 탐관이나 마찬가지일 것이고 그들은 금융권력을 이용하여 서민들의 주머니를 싹쓸이 해 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부채는 물론 개인부채도 상상을 초월하는 현싱이다. 이자 갚기에 정신이 없다. 매일 노예처럼 살아가면서 번 돈으로 은행만 배불리는 꼴이다. 이제 우리도 미국처럼 국민들이 분노를 느끼지 못한다면 미련한 천민의식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런 현상을 제어하지 못하는 정부나 금융감독기관의 권력층들도 모두 한통속이 되어 사욕을 채우고 있으니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가 터저나올 시점이 된 것이다. 이제 권력의 종말을 향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모두들 사욕 채우기에 바쁠 것이다. 그러니 국민들은 더욱 고통받고 설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국민들을 고통스럼게 한다는 것은 애민정신이 없슴이요, 권력층의 탐욕이 도를 넘칠 때 가 그랬다. 고려 이자겸이 권력을 잡고 궁궐같은 집을 짓고 사치방탕한 시기나 무신정권이 권력을 잡고 있을 시기나, 조선의 사대부, 외척들이 권력을 잡고 있을 시기나 마찬가지이다는 점이다. 그 시기 백성들은 거지가 되어 문전걸식하며 떠돌이가 되어 산적이 되고 도적이 되었던 시기다. 망이.망소이의 난. 김사미.효심의 난, 임꺽정, 홍길동, 장길산, 동학난 등 대부분의 농민 봉기들이 그랬다.
방배동 카페골목 근방 롯데 캐슬
서울 시장 선거전이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무속속 시민단체 출신의 박원순 후보와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2파전을 벌이고 있다. 그런가운데 후보를 내지 못한 민주당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고 손 대표가 사퇴를 번복하면서 내분 속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박원순 후보가 만약 당선된다면 그의 성향이 걱정거리다.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당시 그는 입을 다물었다. 친북.종북 세력을 지원하여 왔고 보안법 폐기를 주장하며 포플리즘 성향의 각종 정책을 내걸고 있다. 그의 사상과 사고, 생각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이야기다. 전시 행정을 타파함을 좋다. 실질적인 시민들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서 투자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그러나 서울 시민의 돈은 그 개인의 돈은 아닐진대 앞으로의 서울 시정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의 정책과 시정이 혼란을 초래하고 서울시 부도 사태를 야기할 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고통받은 쪽은 전체 서울 시민이 될 공산이 크다.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묵묵무답하며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던 사람으로 북에 대해서 그토록 존중하고 비위를 건드리기 싫다면 그는 종북이나 친북인사일 가능성이 농후하고 북의 은밀한 선거 자금을 지원받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낳게 만든다. 한 지도자를 잘못 선택하면 그 집단은 발전은 커녕 후퇴를 할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집단 잔체를 나락으로 빠뜨리는 무능한 지도자로 남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인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주는 사상이나 체제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금 지구상에는 공산주의 사상은 무너졌고 그 사상의 문제점으로 인해 대부분의 나라들이 새로운 체제를 선택했지만 아직도 권력의 향기에 취해 몽매한 주민들 혹사시키며 노예처럼 부려먹고 그들만의 천국같은 세상을 향유하고 있는 김씨 세습왕조 인간들이 군림하고 있는 북한이 아직 남아 있다. 물론 자본주의도 이제 문제점이 서서히 부각되기 시작하고 있으며 국민들의 분노가 표출되고 있는 시점이다.
을지로 롯데 백화점 전경
문제는 경제를 부흥시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국방력을 향상시켜 자부국방이 가능한 나라를 만들며 그에 따라 국민들이 열심히 일하며 법이 올바로 서며 사회가 정의롭고 공정하며 마음놓고 가족들과 편안하게 잘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현존하는 적을 눈앞에 두고 한반도 남쪽 반토막에서 불안하게 배수진을 치고 주변 5대 강국에 둘러싸여 언제 한반도가 그들의 아귀다툼의 현장으로 바뀔지 모르는 현실이다. 우리의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내우 높은 무역국이다. 지하자원도 빈약하고 석유도 한 방을 나지 않는 나라다. 한시라도 무역을 하지 못하면 나라 경제는 일순간에 무너진다. 해상로가 막히면 당장 나라 경제는 절단이 난다. 빈약한 해군력으로 해상 무역로를 지키기에는 무리다. 독도와 이어도가 일본과 중국의 시비거리가 되고 있다. 그래서 제주도에 해군 기지를 건설하겠다는 데, 민주와 인권을 빙자한 매국집단들이 떼거리로 몰려들어 군인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돌팔매를 날리고 있는 현실이다. 중국과 일본을 자극하기 때문에 해군 기지 건설은 안된다고? 지극히 사대주의 적인 발상이며 망국의 앞잡이들이다.
역사를 보아도 주변국과 강화를 하고 화의를 맺고 친선 교류를 하지만 국제정세의 미래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오늘의 아군이 적국이 되고 오늘의 적극이 아군이 되었던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었다. 결국에는 그런 친선과 화해를 믿고 방심하여 나라가 사치와 방탕에 빠져 권력 투쟁을 일삼거나 문약에 흘러 국방을 소홀히 하였던 나라들이 대부분 결국에는 당하고 만 경우가 허다하다.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이씨 조선이다. 나라가 망하면 삼성전자의 신화도 아무런 소용이 없으며 대부분 현해탄 앞바다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는 지정학정인 취약점을 우리는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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