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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338 : 고려의 역사 106 (제12대 순종실록 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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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338 : 고려의 역사 106 (제12대 순종실록 1)

두바퀴인생 2011. 8. 23. 02:44

 

 

 

한국의 역사 338 : 고려의 역사 106 (제12대 순종실록)

 

 

제12대 순종

 

순종(順宗, 1047년~1083년)은 고려 제12대 국왕(재위: 1083년)이다. 는 훈(勳), 는 의공(義恭), 시호순종영명정헌선혜대왕(順宗英明靖憲宣惠大王). 문종과 인예태후(仁睿太后) 이씨(李氏)의 아들이다.

 

생애

1047년 12월에 태어났으며 초명은 휴(烋),이름은 훈(勳). 자는 의공(義恭)이다. 8세 때인 1053년 2월에 태자에 책봉되었다가 1083년 7월 문종이 죽자 37세의 나이로 고려 제12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어려서부터 질환이 있었던데다가 아버지 문종의 승하를 너무나도 슬퍼한 나머지 심신이 쇠약해져 재위 3개월 만에 승하하였다. 시호는 선혜(宣惠)이며, 능은 개성에 위치한 성릉(成陵)이다.

 

가계

  • 정의왕후 왕씨(貞懿王后) - 현종과 원혜왕후 소생인 평양공의 딸.
  • 선희왕후 김씨(宣禧王后) - 김양검의 딸이며 문종에 의해 쫓겨났다.
  • 장경궁주 이씨(長慶宮主) - 이자연의 손녀이자 이자겸의 누이. 순종의 사후 궁노와 간통하여 쫓겨났다.

 

 

 

 

 

 

 

제12대 순종실록

(1047~1083, 재위 1083년 7월~1083년 10월, 3개월)

 

1. 순종의 병상 3개월 치세

순종은 문종의 장남이자 인예왕후 이씨 소생으로 1047년 12월에 태어났으며, 이 름은 훈, 자는 의공이다. 8세 때인 1053년 2월에 태자에 책봉되었다가 1083년 7월 문종이 죽자 37세의 나이로 고려 제 12대 왕에 올랐다.

 

그는 원래 병약한 몸이었다. 그런데 문종이 죽자 그 슬픔과 상중의 피로함을 이기지 못하고 육신이 더욱 약해졌다. 그 바람에 즉위 3개월 만에 임종을 앞두는 신세가 됨으로써 그려 34왕 중 재위기간이 가장 짧은 왕이 되었다.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안 그는 즉위년 10월 동복아우인 국원공 운에게 나랏일을 맡기고 다음과 같은 최후 조서를 내렸다.

 

"근자에 내개 부왕의 유언을 받들어 국가의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 하지만 매양 보잘것없는 역량으로 선대 임금의 유훈을 받은 것이 외람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대들과 더불어 혼연일체가 되어 장구한 계책을 강구함으로써 조상의 유업을 보전하고 그분들의 공적을 영구히 빛내려 하였더니 뜻밖에도 거상 중에 과도한 애통을 쌓이고 쌓인 근심으로 병이 생기게 되어 시일이 지날수록 점점 심해지는구나. 그리고 이제 겨울이 되면서 더욱 위중하게 되었도다. 풍전등화처럼 이몽가몽한 몸으로 어찌 죽기를 면하여 사직을 계속 받들 수 있겠는가. 그러니 미리 대책을 세워 뒷일을 위촉하지 않을 수 없구나.

 

나의 동복아우 수태사 중서령 운은 원래 재능이 많고 덕행도 나날이 발전할뿐만 아니라 민간 실정에 밝고 자기 사업에 정통하며 정치의 잘잘못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왕위에 오르면 백성들의 기대에 보답할 것이니 내가 죽거든 즉시 정권을 잡게 하라.

 

일체 상벌에 관한 중대사는 모두 새 임금에게 문의한 후 처리할 것이며 멀리 떨어진 주, 진의 관원들은 다만 본 군에서 애도의 뜻을 표할 것이요, 함부로 자기 임소를 떠나지 말게 하라. 상복 입는 기간은 하루를 한 달로 하고, 능묘제도는 극히 검박하게 하라.

 

아! 슬프다. 사람의 수명이란 한이 있으며 났다가 죽은 것이 한스럽다. 오직 바라는 것은 중대신들과 안팎의 문무백관이 한마음 한뜻으로 충성을 다하여 새 왕을 도와주기를 부탁하노라.

 

이렇게 함으로써 국가 운명을 길이 유지하여 이 강토를 영구히 맡길 수 있다면 내가 당장 죽은들 무슨 여한이 있으리오."

 

순종은 이 같은 마지막 조서를 남기고 그날 3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제현은 <고려사>에서 순종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부모가 죽어 3년간 상주 노릇을 하는 것은 임금으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매일반이다. 그러나 이른바 어머니의 상복을 입고 싸락죽을 먹으며 수척한 얼굴로 슬프게 우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탄복했다는 일은 옛날 중국 등문공 이후로는 듣지 못했다. 그런데 순종은 아버지 문종의 상사를 당하여 과도하게 슬퍼한 나머지 병이 되어 4개월 만에 죽었으니 이를 옛날 제도에 비추어 보면 너무 지나친 바가 있기는 하나 부모를 사랑하는 정신만은 지극하도다."

순종의 능은 개경 남쪽에 마련되었으며, 능호는 성릉이다.

 

순종은 3명의 부인을 두었으나 자식은 얻지 못했다.

 

제1비 정의 왕후 왕씨는 종실 평양공 기의 딸이며 생몰년과 능에 관한 기록은 없다.

 

제2비 선희왕후 김씨는 경주 사람으로 대경 김양검의 딸이다. 순종이 태자로 있을 때에 간택되어 입궁하여 순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문종이 심하게 그녀를 미워한 까닭에 다시 친정으로 쫓겨가야 했다. 그 때문에 끝내 아이를 얻지 못했다. 칭호는 연복궁주였으며 1126년에 죽으니 선의 왕후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1130년 4월 인종의 명에 의해 순종의 사당에 합사되었다.

 

제3비 장경궁주 이씨는 인주 사람으로 호부낭중 이호의 달이다. 순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에 책봉되어 입궁하였다. 하지만 곧 순종이이 죽자 외궁에서 거처하였고, 자신의 노비와 간통하다가 발각되어 궁주의 자리에서 쫓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