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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의 새벽 28 (우리가 일본인에게 배워야 할 것들...)

두바퀴인생 2011. 3. 15. 04:41

 

 

우면산의 새벽 28 (우리가 일본인에게 배워야 할 것들...)

 

 

날씨가 많아 풀렸다. 따스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신라의 역사를 마무리 했다.

 

두 달 가까이 매일 블로그에 올리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새롭게 배우게 되었고 알게 되었다. 신라의 6촌이 고조선의 유민과 연나라 망명객들을 받아들이면서 박혁거세가 나타나 토착세력이 굴복하여 왕으로 받아들였고, 흉노족 출신인 김일제의 후손들인 김수로와 같은 혈족인 김알지가 나타나 정계에 등용되었고, 멀리 캄차카 반도에서 석탈해 집단이 이주해 와서 정계에 등용되면서 왕위를 물려받는 기이한 사회였다는 점이다. 모두가 외래세력이 신라 왕조를 구성하면서 천년의 역사를 이어갔다는 흥미로운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신라의 박.김.석씨가 신라 왕조를 구성하는 중추 세력이 되었고 혈통을 중시하는 골품제 사회였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다부다처의 성적으로 매우 자유스럽던 사회였다. 또 신라의 천년 역사에서 왜구가 그렇게 수도 없이 신라를 괴롭혔던 사실도 알게 되었고 해안 마을뿐만 아니라 내륙 깊숙히까지 침략하여 약탈하고 방화하였으며 수많은 신라인들이 그들에게 잡혀 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또 신라 도성이 여러번 왜구들에 의해 공격당했던 유린될 위기도 맞았던 것이나 문무왕의 능을 동해 바닷가에 만든 것도 죽어서도 왜구를 물리치겠다는 유언에 따라 조성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신라 사회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사회였으며 베일에 싸인 미지의 나라였다.

 

천년사직을 마감하는 경순왕의 비통한 심정을 오늘날 우리들이 어찌 이해를 하겠는가? 그리고 개골산으로 향하는  마의태자의 참담한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라 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를 살피고 오늘을 돌아보며 미래를 설계하는 혜안을 키우고자 함이다. 그들이 그렇게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살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선택이 가져온 결과에 대해서 우리는 깊고 심오한 생각과 판단도 해봐야 할 것이다. 당신이라면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결정했을 것인가? 한반도 산과 골짜기, 그리고 벌판을 달리면서 그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엉어리진 심정도 같이 이야기 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가야의 근거지였던 김해와 고령, 함안, 하동을 거쳐 섬진강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 철기병들이 말 달리던 요하, 요동성, 안시성, 신성을 거쳐 숲을 헤치고 발해의 근거지였던 천불령을 넘어 동모산을 달려가 처절한 눈물과 고통을 인내하며 발해를 건국하고 영광을 이룬 잊혀진 역사의 나라 시조인 고왕 대조영, 지속적인 영토 확장과 그로인한 당과의 전쟁도 불사한 무왕, 최대 영화를 이룬 문왕, 성왕을 만나려 갈 것이다. 현재 서로가 자기들 역사라며 동아시아 중,러,한국간에 쟁점이 되어 있는 발해가 고구려 후예들이 세운 나라인지, 아니면 말갈족이 세운 나라인지를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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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재앙이 눈덩이처럼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들의 불행이 우리들의 불행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침착하고 질서정연하다. 그들의 선진국다운 모습을 우리는 배워야 할 것이다. 부끄러운 우리 현실과 비교할 때 저절로 고개가 숙연해진다.  

 

 

 

 

일본 동북방은 현재 지진과 해일로 엄청난 고통을 받도 있다. 주가가 폭락하고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일본은 동북아 지역에서  가장 먼저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군사강국으로 성장하였고 무능했던 조선을 무너뜨리고 한반도를 식민지화 했으며 대동아공영권이라는 구호아래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라다.

 

패전 후 미군 점령하에서 재기를 도모하였고 한국전쟁을 통해 경제발전을 호기를 잡아 경제성장을 발빠르게 이룬 나라다. 어쩌면 그들은 한반도 없이는 존재가 불가능했던 민족이다. 그들은 고대부터 식량과 생필품이 부족하여 왜구로 변했고 고대 이래로 끓임없이 한반도 해안과 중국, 동남아 일대를 약탈하였던 민족이다. 가야가 멸망하고 백제가 멸망하자 수많은 백제와 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문물을 전해 주었고 토착화했다. 어쩌면 일본인들은 백제와 가야, 신라인들의 후손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서양 문물을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받아들였고 조총을 만들어 임진왜란을 일으켰으며 군사강국으로 성장하여 동아시아를 재패했다. 그리고 미국과 전쟁을 벌여 초반의 승세를 굳히지 못하고 물자와 자원 부족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본토 결사항전을 준비하고 있던 중 원자탄 두 방을 맞고 무조건 항복하여 결국 패전국이 되었으나, 종전 후 멕아더 사령부의 군정통치 아래 불굴의 투지로 재기하여 오늘날 경제대국이 되었으며 세계경제의 기둥이 되었다.

 

우리는 그들이 전해준 자본과 기술로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오늘에 이르렀다. 중화학 공업의 원천재료와 기술은 모두 일본의 기술과 원자재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매년 300억~400억 달러에 해당하는 대일무역 역조현상은 앞으로도 역전시키기는 힘들 것이다. 그들은 이미 2차 세계대전시 항공모함을 건조하였고 미군보다 우수한 전투기를 생산하였던 기술강국이었다. 일본 경제가 무너지면 한국의 경제도 무너진다. 그들의 원천재료와 기술 공급이 중단되면 우리경제에 막대한 타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불행이 우리들의 행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세계 각지의 구조팀이 도착하여 구조활동을 펼치고 있으나 이미 실종되거나 사망한  사람이 4만명을 넘는다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아닐 수가 없다.

 

그들은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하여 지진이라는 재앙에 이미 숙달되어 있는 국민들이며 수많은 지진을 통해 침착성이 몸에 베여 있는 사람들이다. 이번 재앙에 그들이 보여준 침착성과 질서의식, 그리고 시민의식은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것이다. 약탈과 방화, 사재기도 없었고 안내에 따라 질서정연한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와 비교해 우리들이 배워야 할 점도 많다. 우리는 지난 성수대교 붕고시나 삼풍백화점 붕괴시를 상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재난방재 시스템은 수준이 아직도 미흡하다.

 

또 '열도침몰' 등 한국 언론들의 자극적인 표현을 일본인들이나 교포들이 심적인 고통을 더한다고 한다. 자극적인 장면은 멀리서 촬영하고 과장되거나 추측성 보도는 일본 언론들이 자제하는 모습도 우리 언론들의 까발리기식의 보도와 비교하면 배워야 할 사안일 것이다. 지난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 사건에서 우리 언론들이 보여준 작태는 한심한 수준이었다. 군을 매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가 기밀이 송두리채 노출되었고 정권의 무능을 낱낱이 공개하였다. 직접 현장을 찿아가서 카메라를 구석구석에 들이대고 정밀보도하는 게 언론의 임무로 생각하는 사고자체도 문제일 것이다. 우리의 인식과 문화, 그리고 사회 시스템이 아직 선진국이 되기에는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점들일 것이다.

 

한편 조용기 목사의 발언이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그들의 상투적인 수법이 재앙을 항상 하느님을 믿지 않아 내린 천벌로 비유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존경하는 성서에는 잔학하기 그지없는 타종교.타민족에 대한 말살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선택받은 민족은 유대민족이지 한민족이 아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전통적으로 전통 종교가 강하고 타 종교가 쉽게 자리를 잡지 못한 나라이다. 기독교나 천주교가 일본에 들어갔지만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자신들의 민족혼이 깃든 전통 종교에 강한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줏대없는 한반도 남쪽에서는 죽기 살기로 남의 종교에 미쳐 날뛰지만 말이다......

 

신도가 늘어나고 재산이 불어나자 세계 각지에 분점을 세우고 세계적인 종교로 군림하니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그들이 아닌가? 통일교나 기독교나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은 중국의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홍수전처럼 신앙을 앞세워 백성들을 선동하고 정권을 무너뜨려 그리스도교가 지배하는 황제국을 세우고 싶을 것이다. 하느님을 앞세워 신도들을 혹세무민하여 종속시키고 그들의 재물을 헌납받아 재력을 쌓고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땅밟기와 저주기도를 자행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비호하고 변호하기 위해 신문사를 만들어 그들을 변호하고 정권을 비난하며 자신들 무리의 권력을 행사하려는 태도는 국가를 넘보려는 무리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들 자식들이 재산문제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것도 왕위를 놓고 권력다툼을 벌이는 꼴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그들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추악한 악행은 은폐되고 숨겨져 공산독재보다도 더한 세습권력집단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종교집단의 권력화에 따른 무자비한 폭거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일본인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 사설을 인용한다.

 

 

 

하늘에서 본 쓰나미 전과 후

 

전 세계가 일본의 대지진에 두 번의 충격을 받고 있다. 우선 진도 9.0의 초강력 지진이 가져온 참혹한 피해다. 거대한 쓰나미로 2000여 명이 숨지고, 1만 명 이상이 행방불명이다. 미야기(宮城)현의 한 마을은 주민 절반이 소식이 끊겼다. 원자력발전소의 비상도 걱정스럽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福島) 원전 주변의 주민 21만 명을 소개하고, 바닷물로 원자로를 식히는 비상조치에 들어갔다. 불순물 혼입으로 사실상 원자로를 폐기하는 극약처방이나 다름없다. 일본 열도가 연일 ‘지진-쓰나미-원전 비상(非常)’의 삼각파도에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신기할 정도로 침착한 일본인들이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 대피요원을 따라 차례차례 피해 현장을 빠져나오고, 초등학생들마저 교사의 인솔로 줄을 맞춰 안전한 장소로 이동했다. 지하철·버스가 끊기자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지급한 긴급 구호물품을 짊어진 채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모두 뛰지도 않고 3~4시간씩 걸어서 갔다. 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회사로 출근했다. 상상을 초월한 대재앙과, 상상을 뛰어넘는 일본인들의 침착한 대응에 전 세계가 충격을 받고 있다.

우리는 대규모 자연재해가 지나간 뒤 일어난 숱한 무질서와 혼란상을 목격해 왔다. 지난해 22만 명이 희생된 아이티 지진이 대표적이다. 오죽하면 “지진보다 무법천지(無法天地)의 약탈과 폭력이 더 무섭다”고 했을까. 아이티가 개발도상국이라서 유별난 게 아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할퀸 미국의 뉴올리언스도 폭력과 부패가 휩쓸었다. 이런 기억들로 인해 일본인들의 차분함이 한층 돋보이는지 모른다. 끔찍한 참상 앞에 울부짖거나 눈물을 쏟는 일본인들은 찾기 어렵다. 지진을 틈타 강도나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TV 화면에는 모두 차례차례 줄을 서 구호식품을 받아가거나, 매점 앞에서 차분히 기다린 뒤 필요한 만큼만 돈을 주고 사가는 장면들로 채워지고 있다.

단지 지진이 잦다는 일본의 지리적 특수성만으로 이런 현상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철저한 내진 설계와 발 빠른 경보 시스템이 피해를 줄인 것은 사실이다. 단단한 사전교육과 대피훈련도 한몫한 게 분명하다. 한 나라의 진면목(眞面目)도 대사건이 닥쳐야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게 바로 국민성이다. 온몸이 얼어붙는 공포 앞에서 일본인들은 침착한 국민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1995년 한신(阪神) 대지진 때 일본 엔화는 뜻밖으로 20%가량 평가절상됐다. 일본의 국민성을 오판한 해외 투자자들은 혼이 났다. 최근 엔화 강세도 국제금융시장이 재앙 앞에서 단결하는 독특한 국민성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침착한 대처로 한신 대지진을 딛고 스스로 일어섰다. 이번 대지진의 상처도 언젠가 치유될 것으로 믿는다. 오히려 우리는 일본을 보며 우리 사회 일각의 뒤틀린 자화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재난 현장에서 TV카메라가 돌아가면 표정을 바꿔 대성통곡한 적은 없는가. 천재지변으로 비행기가 조금만 연착해도 우르르 몰려가 아우성치진 않았는가. 모든 책임을 무턱대고 정부에 돌리며 난리를 피운 적은 없었는가. 이웃 나라의 아픔을 외면한 채 한국이 챙길 반사이익을 먼저 따진 경우는 없었는가…. 우리는 스스로 치열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재난과 위기 때 우리 사회의 절제되지 못한 사고와 대응방식을 되짚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여전히 일본에서 본받아야 할 것은 많고, 선진국으로 나아가야 할 길도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