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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178 : 신라의 역사 77 (제53대 신덕왕)

두바퀴인생 2011. 3. 9. 07:22

 

 

 

한국의 역사 178 : 신라의 역사 77 (제53대 신덕왕)

 

  

제53대 신덕왕  

신덕왕(神德王, ? ~ 917년, 재위: 912년 ~ 917년)은 신라의 제53대 이다. 성은 박(朴)씨, 이름은 경휘(景暉 또는 景徽)이다. 아버지는 선성대왕 예겸(乂兼 또는 銳謙)이고, 어머니는 정화부인(貞花夫人)이다. 예검은 의부이고 친아버지는 흥렴대왕(興廉大王)으로 추봉된 각간 문원(文元)이라고도 한다.

 

생애

912년, 전왕 효공왕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후고구려의 궁예, 후백제의 견훤등의 세력에 침식 당해 신라는 쇠퇴할 뿐이었다.

 

917년에 죽었다.

 

능은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에 있다.

 

가계

  • 할아버지 : 각간 원홍(元弘) - 아달라 이사금의 후손.
  • 아버지(생부) : 흥렴대왕 문원(文元)
  • 아버지(의부) : 선성대왕 예겸(乂兼 또는 銳謙)
  • 어머니 : 정화부인(貞花夫人) - 각간 순홍(順弘)의 딸.
  • 왕비 : 의성왕후(義成王后) 김씨 : 헌강왕의 딸

 

참고

 

 

 

 

 

제53대 신덕왕 실록  (?~서기 917년, 재위기간 : 서기 912년 4월~917년 7월, 5년 3개월)

 

신덕왕의 즉위와 황혼에 부활한 박씨 왕조

신덕왕은 제8대 아달라왕의 먼 후손이고, 박예겸의 아들이며 정화부인 소생이다. 이름은 경휘이며, 일찍이 사위가 되었다. 타락한 효공왕이 박씨 세력에 의해 제거되자, 912년 4월에 왕위에 올랐다.

 

신덕왕의 아버지 예겸은 헌강왕 원년인 875년에 시중에 임명되어 신라 조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신덕왕이 왕위에 올라 그를 선성대왕에 추존한 것을 볼 때, 912년 당시엔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신덕왕의 즉위는 제8대 아달라왕을 끝으로 제왕의 자리에서 물러났던 박씨 왕조의 부활을 의미한다. 아달라왕이 제9대 벌휴왕 세력에 의해 제거됨으로써 신라는 석씨 왕조 시대를 열었고, 다시 17대 내물왕에 의해 김씨 왕조 시대가 시작되었다. 김씨 왕조는 내물왕 즉위 시점인 352년부터 912년까지 560년간 지속되다가 효공왕에 이르러 박씨에게 왕조를 내주었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김씨이긴 하나 견훤에 의해 옹립된 허수아비 왕에 불과하였고 왕권도 거의 상실한 상태였다. 그래서 효공왕이 김씨 왕조의 마지막 왕인 셈이다.

 

왕위에 오른 신덕왕은 즉위년 5월에 선친 예겸을 선성대왕으로 추존하고, 어머니를 정화태후로, 왕비를 의성왕후로, 아들 승엽을 태자로 책봉했다. 그리고 이찬 계강을 상대등으로 삼아 조정을 수습했다. 그러나 선덕왕의 치세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이미 연로한 몸인데다가 건강도 좋지 않아 5년밖에 유지하지 못했다.

 

그의 치세 중에 중요한 사건이 있다면, 914년 궁예가 연호를 '수덕만세'에서 '정개'로 고친 것과 916년 8월에 견훤이 또다시 대야성을 공격해 온 일이다. 그러나 견훤은 대야성 함락에 실패했다.

 

신덕왕은 917년 7월에 죽었으며, 육신은 화장되었고, 능은 죽성에 마련되었다.

 

신덕왕은 한 명의 부인에게서 아들 둘을 얻었다. 왕비는 의성왕후 김씨인데, 그녀는 헌강왕의 딸이다. 의성왕후는 승영(경명왕)와 위응(경애왕)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