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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새벽길을 달리며...3 본문
자전거를 타고 새벽길을 달리며...3
지난 수요일 새벽에는 갑작스럽게 폭우가 내렸다.
자전거를 타고가다 폭우가 내리면 가까운 건물 밑이나 빌딩 현관앞에 대피하기도 한다. 그날은 반퐈파트 근방 어느 교회 앞이었는데 자판기에서 코코아 한 잔을 뽑아 마시면서 쏟아지는 폭우의 모습을 찍었다. 새벽교회로 나오는 사람들이 분주하다. 대부분 나이 지긋한 사람들을 포함하여 주부, 청소년들도 보인다. 새벽 교회에 나가는 정성으로 남편과 가족들에게 정성을 바치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이 우선이리라!
소원을 기도한다고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진데, 병약한 몸을 치유하기를 빌고, 자식이 시험에 합격하고 취직되기를 빌고, 남편이 승진하기를 빌고, 가정이 화목하기를 빌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남의 것을 빼앗기 바쁘고, 양보할 줄 모르며, 양심도 부족하고, 돈 못 번다고 남편을 무시하고, 공부 못한다고 자식을 구박하고, 이웃에게는 냉정하고 비협조적이며,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나쁜 짓은 골라서 하는 부류들이 대부분이다.
인간이고, 그러기에 원죄가 있어 죄를 짓기 때문에 잘못을 회개하고, 반성하지만 반성하고 다시 죄를 짓는 악순환을 계속하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최근 방송에서 <의단원의 실체>라는 내용을 방송하였다. 한의사들과 짜고 병자들에게 '정신치료'라는 무형 상품으로 사기치는 사이비 도사 이야기를 다뤘다. 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전재산을 헌납하고 자신의 병을 치유하려 하다가 많은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한의사들은 같은 단체 소속으로 환자들에게 은근히 의단원을 소개하면서 안내하고 그곳을 방문한 환자들은 그곳 분위기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뛰어드는 바보같은 행동을 저지르고 있다.
우리 사회는 별의 별 사람들이 병을 치유한다는 소문을 내고 환자들을 불러모아 쇼를 벌이고 있다. 팔공산 갓바위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안수기도를 받다가 죽는 일이 허다하고, 지저분한 물을 생명수라고 속여 거액을 받고 팔며, 손으로 만저주면 영력이 통하여 낳는 다는 등 파렴치한 사기꾼들이 한 둘이 아니다. 또 신의 영력을 몸에 받아야 한다며 조직적으로 여성 신도에게 성폭행을 저지르는 못된 교주들이 어디 한 둘인가? 중국의 홍수전은 '그리스도교가 지배하는 천국같은 세상을 건설하자'며 우매한 민중을 선동하여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켜 중국 대륙을 혼란의 도가니로 만들었던 인물이며, 그는 자체 내부분열로 지리멸렬되어 마지막 연합군과 청군에 멸망시 남경의 그의 궁전에는 그의 수많은 처첩들이 연못에 투신하였다고 한다.
종교와 사상, 이성과 맹종
어떠한 종교나 어떤 사상이나 서로 유사점이 너무나 많다. 결론은 인간들을 현혹시키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정반합의 원리에 의해 인류의 역사는 발전하여 왔으며, 문명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정의도 변하고 진리도 변하여 왔다. 시대의 흐름을 막론하고 유일한 참진리나 참종교는 어디에도 없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던 한 학자가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정권에 그리고 잘못된 문제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문제점을 지적하며 무능한 정권과 지도층을 비판하여 왔고 그의 제자들은 그분의 참된 독설에 많은 감화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좌익편향의 학자로 지난 정권들에게서 고초도 많이 겪었지만 그래도 그는 정갈하고 화려한 문체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었던 것도 사실이며, 그래서 한 시대를 화려하게 비추던 사상가가 세상을 떠나자 모두들 아쉬워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러한 그분의 사상이나 생각은 학자로서는 무엇이던지 말할 수는 있으나, 막상 한 나라의 지도자나 통치자가 되었을 때는 그러한 자신의 사상과 생각이 현실과의 괴리로 인해 변화할 수 밖에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신문의 사설이나 토론에서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이 내뱉는 독설들이 남들이 보기에 매우 타당하고 정당해 보이며 정의로워 보이지만 실제 현실에 자신이 책임지고 결단해야 할 시점에서는 아니라는 점이다. 안창호, 함석헌, 신채호 등 수많은 달변가와 사상가, 역사학자들이 한국 사회의 변혁과 진보를 위해 열변을 토했으나 한국 사회는 크게 변화하지 못했고, 위정자들의 무능한 정치로 백성들은 고통받아 왔으며, 무리를 지어 정치 권력 쟁탈에 저질 정치문화를 양산하면서 한국의 정치는 뒷걸음만 쳤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선구자이며 논리적인 언변으로 현실 정치를 비판했던 많은 유능한 사람들이 종북.친북 사상가로 변질되어 북한을 방문하거나 이롭게 하는 좌편향 사상가로 전락하여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수 밖에 없는 것 또한 한국의 현실일 것이다.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은 한반도의 상황에서 호시탐탐 적화야욕에 눈이 멀어 북한 주민들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전쟁준비에 광분하고 핵무기까지 개발하는 무력집단으로 성장한 그들이다. 그러면서 주민들은 굶어죽어가고 있지만 그들은 호의호식하며 잘 살고 잇지 않는가! 그들은 휴전 후 수없이 많은 무력도발을 저질러 왔고 지금도 포격으로 무력도발을 감행하고 있는 김정일 세습체제를 눈앞에 두고 배수진을 친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그들의 사상과 생각은 뜻은 올바르지만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상주의적 사상과 생각을 쉽사리 수용할 수도 없는 밤하늘에 울려퍼지는 메아리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부의 평준화를 부르짓으며 공산주의 사상을 창설했던 맑스.레닌주의도 결국은 가난의 평준화를 이루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소련을 포함한 공산주의 나라들은 그들의 공산당 일당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민중을 혹사시키고 유배보내고 처형시키는 등 수없이 희생시키면서도 그들 집권 공산당 간부들은 호의호식하면서 잘 살고 있지 않는가!
지금 북한의 김정일 집단도 마찬가지이다. 600만 집권 공산당 간부들과 당원들은 북한 주민들의 피를 빨며 호의호식하고 있으며, 군비를 증강하고 연일 전쟁을 부추기며 주민을 통제하고 이제는 핵무기까지 만들어 미국과 줄다기기를 하며 시간을 벌고 있다. 한편 그들은 남한에 대해 무수한 악행과 도발을 자행하여 왔다. 그러나 남한은 한 번도 대북보복을 제대로 시행한 적이 없다. 남한의 수도권이 지척이라 그들의 수천문 방사포와 장거리포가 남한 국력의 거의 70%가 몰려 있는 서울과 수도권을 겨냥하고 있으며, 여차하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공갈과 협박을 서슴치 않고 있다. 그들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때 우리는 평양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준비와 각오는 없는가? 그들에게 상호공멸의 인식을 심어주지 못하는 한 우리는 그들의 볼모가 되어 앞으로도 지속적인 그들의 협박과 공갈, 그리고 포격 위협속에 확전을 걱정하며 우유부단한 상태로 지도부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북한 김정일 정권은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무장된 광신도 집단이며 분단 후 지금까지 주민들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으로 주민들은 이성이 마비되고 오로지 맹종으로 북한 정권을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은 어떠한 비이성적인 지시도 맹종하게 되어 있다. 사이비 종교 집단이 사회 여론과 눈치를 보며 도덕적인 면을 부끄러워하던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학살이나 불법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집단이 되고 말았다. 스탈린이 그랬고 모택동이 그랬다.
북한은 수도권이 휴전선에 근접하다는 이유로 남한의 아킬레스 건을 이용하여 그들은 번번히 도발을 자행해 오고 있지만 남한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해왔다. 결단력과 소신도 없는 무능한 정부와 그동안 메너리즘에 빠져 정치화되고 비리와 부패로 썩어버린 군은 46명의 해군 장병을 서해 바다에 수장하였고, 이번 연평도 포격에 민간인 2명을 포함하여 4명의 사망자와 여러 명의 부상자를 내는 포격 도발을 당하고서도 80발의 자주포로 응사했지만 45발을 제한 35발은 행방이 모연하다. 45발도 피탄 흔적을 보면 엉뚱한곳에 대부분 떨어졌고, 적의 전자파 작전 때문이 아니라지만 대포병 레이다는 기능을 발휘못하고 무용지물이 되었고, 적에게 피해를 입힌 내용은 거의 전무하다. 얼마나 기가찬 일인가? 그렇게 당하고서도 단호한 결단을 못하는 지도부의 무능은 극을 달리고 있으며, 최근 외교문서 공개 내용을 보더라도 군미필자들로 구성된 우리나라 외교.안보 라인의 무책임과 무능력을 여실히 증명해준 셈이 되었다.
만약 유사시 우리는 개성공단을 어찌할 것인가? 상시 체류인원 400여 명이 남아 있고 엄청난 설비 자금을 투입한 개성공단이다. 정부와 군은 과연 개성공단을 어떻게 할 것인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정부 관련 부처와 군은 과연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전략을 구상해 놓았는지 궁금하다. 만약 우리가 갑작스런 전면 철수를 시도시 그들은 감돋관의 권한으로 제지할 것이며 그에 따른 불상사가 발생될 수도 있기에 전면 철수는 어려울 지도 모른다. 또 점진적인 인원과 장비 철수로 고사작전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방법이던지도 개성공단에서 우리가 전면 철수시 북은 중국 기업인을 개성공단에 대신 입주시키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완충지역이 생기므로 더욱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다. 문제는 개성공단의 전략적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 하고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개성공단의 입주기업에 대한 보상 문제와 개성공단이 북한에 기여하는 이익에 대하여 면밀히 분석하여 철수여부를 놓고 그들과 협상을 전개하여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과 방안일 뿐 개성공단은 남북의 물꼬를 터는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다양한 전략적 가치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북한 집단은 사상적으로 김일성 교조주의로 김일성을 우상화하여 북한 주민을 광신적인 집단으로 만들어 왔다. 광신도들은 생명을 무시하고 자신들 교주의 지시를 맹종하게 되어 있다. 그들은 교주의 말이라면 바이블처럼 받들고 자신의 목숨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사이비 종교집단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과거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기습한 사건이나,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동해안 잠수함 침투 사건을 보더라도 스스로 투항한 사람은 청와대를 기습하던 김신조 한 사람 뿐이다. 나머지 대대분의 공비들은 사살되거나 대부분 스스로 자폭하였다. 이것이 바로 교조주의에 빠져 김일성 우상화를 그토록 지속적으로 추진한 이유이다. 지속적인 쇄뇌와 사상 교육으로 이성을 마비시켜 인간로봇화를 추진하였던 것이다. 인간은 영악하지만 한편 반복된 교육을 통해 이성이 마비된 무지한 인간으로 전락하였고 가족도 친구도 오로지 김일성 우상숭배에 따라 영위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점이며, 그래서 북한은 김일성 광신도 집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김일성 주체사상에 대하여...
주체사상(主體思想, 영어: Juche Idea) 혹은 김일성주의(金日成主義)는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스탈린주의를 유교사상과 섞어 김일성이 내놓은 정치철학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식 이념이다.
김일성은 본래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정통해 있었으나 조선혁명의 진행과정에서 그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현실에 맞게 수정 적용, 토착화한 것이 주체사상의 사회역사적 배경이라고 설명한다. 주체사상의 중심 주제는 '인간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과 '인간 중심의 새로운 철학사상 창조'를 기본이념으로 한다.
주체사상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논설문인 "로작"은 특별한 권위를 지닌다. 지금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다.
주체사상의 기본 개념
주체사상은 '인간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과 '인간 중심의 새로운 철학사상 창조'를 기본으로 한다. 즉 이론적으로는 '인본주의'가 기본 원리이다. 주체사상은 사회적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을 자주성·창조성·의식성의 세 가지로 본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람은 김일성과 김정일, 두 사람 뿐이라는 것이 주체사상의 핵심주장이며, 이는 "진보적인 혁명리론은 탁월한 수령에 의해서만 창시됩니다" 라는 김정일의 말을 근거로 한다.
결국 이는 수령이라는 하나의 개인을 우상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론이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타파하고 당에 의한 인간 지배를 강조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변종임이 명확하다. 다시 말해 주체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후계임을 주장하지만, 이는 관념론, 우상 숭배로 빠져 스탈린보다 더한 개인 숭배의 이데올로기 체제이다.
또한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선군정치라 하여, 노동자가 아니라 군인이 국가의 기반이며 자주성을 수호하는 주체임을 선포,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완전히 결별했다.
주체 사상의 역사적 발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학계에서는 주체사상이 타도제국주의동맹(打倒帝國主義同盟)의 회의에서 처음 주창되었으며, 김일성이 1930년 지린성 창춘 카륜회의에서 발표한 <조선혁명의 진로>라는 연설문에서 최초로 천명되었다고 주장하나, 실제로 주체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55년 이후이다.
이후 주체 사상이라는 지배이데올로기를 보다 공고히 굳히는 사상개조 작업은 김정일의 <주체사상에 대하여>를 비롯한 많은 '로작'들에 의해 다져졌다.
사상사업에서의 주체
주체사상이 최초로 천명된 것은 당원의 교양 및 인민대중을 상대로 하는 사상사업에서 소련의 영향을 줄이고 《볼셰비키당사》 대신 조선로동당의 당사를 교재로 교양사업을 하기로 하는 등의 움직임이었다. 이러한 움직임의 배경은 국내파와 소련파의 숙청, 그리고 스탈린의 사망이다.
- 김일성, 1955년 12월 28일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
- 김일성, 1960년 2월 18일 <새 환경에 맞게 군당단체의 사업방법을 개선할데 대하여>
정치의 자주, 경제의 자립, 군사의 자위
60년대 초에 들어 중소분쟁이 심해지고 흐루시쵸프의 김일성 비판이 강도를 더해감에 따라 조선로동당 내의 반김일성세력이 갑산파를 중심으로 표면화되자 김일성은 소련의 영향으로부터 사상적인 면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면에서도 '주체'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 김일성, 1963년 2월 8일 <우리의 인민군대는 로동계급의 군대, 혁명의 군대이다. 계급적정치교양사업을 계속 강화하여야 한다>
- 김일성, 1963년 10월 5일 <우리 인민군대를 혁명군대로 만들며 국방에서 자위의 방침을 관철하자>
주체/자주/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갑산파와 남로당파를 비롯한 모든 반김세력이 숙청되고 김일성의 1당독재가 구축되고, 깊어지는 중소분쟁 사이에서 중립노선을 걸으며 "사상의 주체, 정치의 자주, 경제의 자립, 군사의 자위, 학문의 주체"와 같은 슬로건을 내세운 독자적 정치이론 구축에 돌입하였다.
- 김일성, 1965년 4월 14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의 사회주의건설과 남조선혁명에 대하여>
- 김일성, 1965년 7월 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11차전원회의에서 얻은 결론>
- 김일성, 1965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창건 스무돐에 즈음하여>
- 김일성, 1965년 10월 5일 <현정세와 우리 당의 과업>
주체의 10대정강수립
주체의 10대정강의 수립은 조선로동당의 사상적 통일을 일단락짓는 것으로, 주체사상은 이 시기 이후 황장엽의 인간중심철학이 나타나기까지 현재의 안정화된 형태를 갖추었다.
- 1967년 12월 16일 <국가활동의 모든 분야에서 자주, 자립, 자위의 혁명정신을 더욱 철저히 구현하자>
- 1970년 11월 2일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 개회사>
이 때 이후 김일성의 우상화가 시작되었으며 1972년 12월 2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에 주체사상을 명문화하며 김정일의 후계체계가 준비되기 시작하였다.
주체 사상에 의거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기년법
주체사상과는 관계가 없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김일성의 탄생년도인 1912년을 1년으로 하는 "주체" 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있다. 많은 경우 주체 연도는 "주체 94, 2005년"이나 "2005, 주체 94년"와 같이 서력과 병용한다.
연구 활동
199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는 동유럽 공산권의 민주화․개방화와 소연방의 해체, 중국의 개혁정책에 대해 우리식 사회주의 로선과 자주성 유지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1978년 4월 9일 '주체사상국제연구소'가 창설되었으며 주체사상의 연구,교육,적용,수정 및 국제적 보급 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주체사상이 사상을 무장시키고, 정치적 총합에 효과적인 단결력을 제공한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고 있다.
비판
대외적으로 비동맹권 국가에게는 공산주의 세계혁명론이라는 비판이 있다. 주체사상의 '인간중심 세계관'은 인간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며 개척자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카를 마르크스가 객관적인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는 전제하에서 이론을 전개한 것과 차이가 있다. 또한 이 '인간중심' 의 세계관은 노동대중 중심주의로, 레닌주의적인 노동계급의 선도자로서의 당의 역할로, 그리고 당의 유일한 리더로서 김일성, 김정일의 개인 독재를 합리화시키기에 이르며, 1967년 조선로동당 당중앙위원회 4기 16차 전원회의 이후 개인숭배 운동으로 이어지는 사상적 근거가 되었다.
또한 주체사상은 주한미군이 아직까지 주둔하고 있다는 이유로 휴전선 남부가 미국의 점령하에 있는, 미수복지역으로 남았기에 조선 혁명은 아직 진행중이라 주장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김정일의 독재를 확고히 하는 도구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서방권 국가에는 반미반제라는 지엽적 주제에 의거, 민족공산주의(民族共産主義)로 오인, 비판하기도 한다.
세계 10대 종교로 선정
미국에서 종교 관련 통계를 조사해 공개하는 ‘어드히런츠 닷컴’(adherents.com)은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주체’는 분명히 종교이며 많은 측면에서 옛 소련의 공산주의나 중국의 마오이즘보다 훨씬 더 종교적"이라면서 주체사상을 종교로 분류했다.
김일성 추체사상을 이론적으로 완성시킨 사람은 바로 황장엽 노동당 전 비서에 의해서다. 모택동의 마오이즘이나 김일성 주체사상이나 모두가 하나의 사이비 사상이며 이론에 불과하다.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였고 자신들 정권유지에 필요한 논리적인 이론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사이비 종교가 새로운 교리로 이단이 되어 나타나듯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변조시킨 사이비 사상은 결국은 백성들을 우롱하고 신도들을 맹종하게 만드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탈북 기자 강철환이 본 황장엽씨의 마지막 나날에 대한 기사를 소개한다.
脫北기자 강철환이 본 황장엽의 '마지막 나날'
"김정일 망하는 것 그것만은 보고 가야지…" 평소 잠꼬대처럼 되새겨
“김정일보다 한심한 놈 대한민국에 많아… 햇볕정책은 反逆정책”
"김정일이 망하는 것이 눈앞에 보인다. 그것만은 보고 가야지."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사람들이 건강이 어떤지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그러나 그 희망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황 전 비서가 오래 소망했으나 하지 못한 일은 또 있다. 중국의 옛 친구들을 찾아가 "중국은 북한과 잡은 손을 놓아야 한다"고 설득하는 일이다. 그는 "아직 때가 아니지만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다"고 했었다.
- ▲ 北에서… 1987년 소련을 방문하기 위해 평양역을 출발하는 김일성을 환송하기 위해 나온 김정일과 황장엽(빨간 점선 안) 전 북한 노동당 비서. /천리마 87년 1월호
지난 2007년 탈북자 중심단체인 북한민주화위원회가 설립돼 황 전 비서가 위원장을 맡은 후 그를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건 지난 9월 말이다. 그때만 해도 건강한 모습이었다. 지난주 황 전 비서가 이끄는 철학 모임에 참석했던 학자와 탈북자들도 그가 평소보다 밝은 모습이라 더 건강해 보였다고 했다. 황 전 비서는 서울 논현동의 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실에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철학을 강의하고 토론했다. 강의와 토론은 그의 유일한 취미였다. 그는 철학에 관심 있는 사람을 특히 좋아했다.
- ▲ 1991년 중국을 방문한 김일성이 덩샤오핑 당시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과 만날 때 뒤에 서 있는 황장엽(빨간 점선 안) 전 비서. /연합뉴스
황 전 비서는 하루 두 번 반신욕을 하고 식사는 하루 한끼만 했다. 오리백숙 등 오리요리를 좋아했다. 그는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김정일 이야기만 나오면 분노했다. 삼남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 등장했다는 소식에, "그놈(김정일)이 얼마나 후안무치한 도적놈인가. 세상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그깟 놈(김정은)이 올라간다고 뭐가 제대로 되겠소? 이제 망할 날이 다가오는 것이지"라고 했다. 황 전 비서는 김정일에 대해선 늘 '그깟 놈' '도적놈' '세상에 몹쓸 패륜아'라고 했다.
- ▲ 황장엽(맨 앞줄 가운데) 전 비서가 1994년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9기 7차 회의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탈북자들이 북한 후계구도가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그는 "세 아들놈 중 큰아들 김정남이 제일 낫고 그놈이 되면 북한은 조금 오래가겠지만 다른 것들은 별것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상이 그깟 놈들에게 관심을 갖더라도 우리는 무시하자"고 했다. 지난 9월 28일 북한 당대표자회에 김정은이 등장한 걸 보고 전화를 걸었을 때도 "그깟 놈(김정은) 나타난 게 뭐 별거요? 우린 우리대로 북한 민주화를 위해 할 일을 하면 돼요"라고 했다.
그는 북한보다 남한을 더 걱정했다. "남한이 정신 못 차려서 큰일 났다"며 한탄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망하는 북한을 보며 대한민국과 통일을 논하러 왔는데 대한민국이 더 걱정된다"고 했다. "김정일보다 더 한심하고 못된 놈들이 대한민국에 많아 김정일에게 남한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걱정도 많이 했다.
- ▲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한국으로 망명하기 전 북한에 체류할 당시에 찍은 가족사진. /연합뉴스
그를 분노하게 만드는 또 다른 주제는 햇볕정책과 김대중·노무현 정권이었다. 그는 "김정일 체제가 지금껏 유지된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문"이라면서, "햇볕정책은 북한 인민들을 더 큰 고통 속에 몰아넣고 김정일만 살린 반역정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그는 "이제 탈북자들이 대한민국 정부와 함께 북한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는 시기가 왔다"고 의욕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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