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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33 : 고구려 역사 16 (제13대 서천왕 ) 본문
한국의 역사 33 : 고구려 역사 16 (제13대 서천왕 )
제13대 서천왕(서양왕)
서천왕(西川王, ?~292년, 재위 270년~292년)은 고구려의 제13대 군주이다. 이름은 약로(藥盧) 또는 약우(若友)이고 중천왕의 둘째 아들이다. 서양왕(西壤王)이라고도 한다.
기원전 37년 ~ 668년 | |
---|---|
476년 고구려 전성기 때의 지도 | |
공용어 | 고대 한국어 |
수도 | 졸본 (기원전 37년 ~ 3년) 국내성 (3년 ~ 427년) 평양성 (427년 ~ 668년) |
정치체제 | 군주제 |
인구 최대치 668년 |
69만호 (약 3,500,000명) |
성립 | 기원전 37년 |
멸망 | 668년 |
초대 군주 | 동명성왕 기원전 37년 ~ 기원전 18년 |
최후 군주 | 보장왕 642년 ~ 668년 |
성립 이전 | 부여 |
해체 이후 | 발해, 신라 |
생애
255년에 태자가 되었고, 270년에 중천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271년 정월에 서부(西部) 대사자(大使者) 우수(于漱)의 딸을 왕후로 삼았으며, 7월에 국상 음우(陰友) 가 죽자 음우의 아들 상루(尙婁)를 국상으로 삼았다.
280년 숙신(肅愼)이 쳐들어오자 동생 달가(達賈)를 보내 이를 격퇴하게 했다. 달가는 단로성(檀盧城)을 빼앗아 추장을 죽이고, 6백여 가구를 부여 남쪽의 오천(烏川)으로 이주시켰으며 부락 예닐곱 곳을 복속시켰다. 서천왕은 달가를 안국군(安國君)으로 삼아 군대를 지휘하게 하였고, 양맥과 숙신의 여러 부락을 통솔하게 하였다.
286년에는 동생 일우(逸友)와 소발(素勃)이 반란을 획책하여 거짓으로 병을 칭하고 입조하지 않았다. 이에 서천왕은 이들을 재상으로 삼는다고 속여 입조한 두 사람을 체포·처형하였다.
서천왕은 276년과 288년, 두 차례에 걸쳐 신성(新城)으로 순행하였다. 이는 신성이 서쪽 변경의 중요한 거점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288년의 순행은 3월에서 11월에 걸친 장기간의 순행이었다.
292년에 왕이 죽자 서천(西川)에 장사지냈다. 서천왕릉은 296년에 모용외(慕容廆)가 쳐들어왔을 때 도굴당했는데, 이때 도굴하던 자들이 갑자기 죽고 무덤 안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와 이를 두려워한 적군이 퇴각하였다고 한다.
가족 관계
- 왕후 우씨(于氏) : 연나부의 대사자 우수(于漱)의 딸이다. 271년에 왕후에 간택되었다.
동시대 백제, 신라
만주, 길림성 집안, 고구려 환도산성(丸都山城) 아래 피라밋군락,
고구려 왕 계보도 (삼국사기에 의거)
해모수═╤═유화부인(하백의 딸)
│
소서노═╤═ 1.추모(bc37~19)═╤═예씨부인
│ │
┌┴┐ 2.유리명왕(bc19~ad18)═╤═송양왕의 딸
비류 온조 │
┌─┬─────┬────---┬────-┼─────------┐
도절 해명 3.대무신왕(무휼) 여진 4.민중왕(해색주) 재사═╤═부여태후
(ad 19~ 44) (44~48) │
갈사국왕녀═╣ ╠═ 원비 ┌──────┼─────---┐
호동 5.모본왕(? ? ? ). 6.태조왕(궁) 7.차대왕(수성) 8.신대왕(백고)
(49~53) (54~146) (146~165) (165 ~ 179)
┌┴┐ │ │
막덕 막근 추안 ㅣ
┌────────---┬───────────┬────────────── ┴─--┐
9.고국천왕(이이모) 발기 ╔═10.산상왕(연우)═╤═후녀(주통부인) 계수
(179~197)║ ║ (197~227) │
╚ 우씨왕후(우소의 딸)═══=====╝ 11.동천왕(교체)(227~248)
┌────────────────────--┼──┐
관나부인(장발미녀)══12.중천왕(연불)(248~270) ═╤═연씨왕후 예물 사구
│
┌───────┬───────────────------┴───┬──┬──l
(??) 13.서천왕(약로)(270~292) ═╤═우씨왕후(우수의 딸) 달가 일우 소발 공주(?)══명림홀도
┌──────────--┴───-─┐ (부마도위)
14.봉상왕(상부)(292~300) 돌고
┌┴┐ │
(?) (?) 15.미천왕(을불)(301~331)
├───────────┐
16.고국원왕(사유)(331~371) 무
┌────────┴────┐
17.소수림왕(구부)(371~384) 18.고국양왕(이연)(384~391)
│
19.광개토대왕(담덕)(391~412)
│
20.장수왕(거련)(413~491)
├──────┐
조다 승천
│
21. 문자왕(나운)(491~519)
┌──────────────────┴─────┐
22.안장왕(흥안)(519~531)══한씨미녀 23.안원왕(보연)(531~545)
│
24.양원왕(평성)(545~559)
│
25.평원왕(양성)(559~590)
┌────────────┼───────────┬──┐
26.영양왕(원)(590~618) 27.영류왕(건무)(618~642) 태양 평강공주══온달
│ │ (부마도위)
환권 28.보장왕(보장)(642~668)
┌──┬──┼──┬──┐
복남 임무 덕남 덕무 안승
자살,타살 등 일찍 죽은 왕자 타살된 왕, ══ 부부관계 |
.왕족인 고추가(古鄒加) 재사(再思)는 2대 유리왕의 아들이자, 6대 태조왕의 생부입니다.
.왕족인 고추가(古鄒加) 돌고(固, ?~293)는 13대 서천왕의 차남으로 형인 14대 봉상왕에 의해 죽음을 당합니다. 15대 미천왕의 생부입니다.
. 장수왕의 아들인 조다(助多)는 생부인 20대 장수왕이 413~491년 오래 재위하는 바람에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먼저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이 21대 문자왕(文咨王/?~519)으로 즉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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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2333년 고조선 건국
BC 108년 고조선 멸망.
BC 37년 부여의 왕족 주몽, 남하하여 졸본에서 고구려건국
BC 18년 주몽의 아들 온조(소서노와의 아들) 백제건국
003년 유리왕(주몽의 첫째부인 아들) 압록강 국내성으로 천도.
022년 고구려, 부여 공격 대소왕 전사.
242년 고구려, 요동의 서안평 공격
313년 고구려, 낙랑군 멸망시킴
391년 광개토왕 즉위, 백제공격
400년 광개토왕, 비려 후연 부여 말갈 정복. 내몽고까지 진출. 신라침범 왜구 격퇴.
414년 장수왕 즉위
427년 평양천도, 한강유역 정복
433년 백제-신라 동맹
475년 고구려, 백제공격 백제 웅진천도
554년 백제-신라 동맹 결렬
590년 고구려 온달장군 아차성에서 전사
598년 수나라와 1차전쟁 승리, 고구려 강이식 요서선제공격, 수문제 30만 대군궤멸.
612년 수나라와 2차전쟁 승리, 수양제 요동성,평양성,살수대첩에서 을지문덕에 패퇴
613년 수나라와 3차전쟁 승리
618년 수나라와 4차전쟁 승리, 수나라 멸망시킴
618년 이세민 당나라 건국, 고구려-당 우호관계맺음
630년 부여성-발해에 이르는 천리장성 축조
642년 연개소문 고건무 죽이고 쿠데타, 대당 강경노선으로 급선회.
642년 연개소문, 신라 김춘추를 사로잡아 감금하고 신라공격.
645년 당나라와 1차전쟁 승리, 요동성전투 연개소문. 안시성전투 양만춘.
647년 당나라와 2차전쟁 승리, 연개소문.
648년 당나라와 3차전쟁 승리, 연개소문.
648년 신라-당나라 연합
660년 신라-당나라 연합군 백제 멸망시킴
661년 당나라군 평양성 포위했으나 패퇴.
666년 연개소문 병사. 세아들 내분. 남생 당에 투항, 남건 설인귀에 대패.
668년 당나라군, 안시성 부여성 함락. 신라 문무왕 평양성 함락. 고구려 패망.
669년 압록강 이북 32개성 당나라와 계속 전쟁 - 검모잠등
676년 고구려 마지막왕 보장왕 말갈과 연합 고구려부흥운동 실패.
696년 거란 이진충 반란, 북경포위 측천무후와 전투끝에 패퇴.
696년 걸사비우,대걸중상,대조영 이해고의 당나라군과 격전, 요동에서 당축출. 걸사비우 전사.
698년 대조영, 진국이라 칭하고 건국. 송화강 연해주까지 정벌.
713년 당나라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칭하며 화친 제의, 대조영은 고려국왕 연호사용
719년 대조영 죽음.
732년 고려국(발해) 무왕 당나라 산동반도 공격.
733년 신라-당 연합군 고려국(발해)공격, 발해-돌궐-일본과 동맹. 나-당에 대항.
907년 당나라 멸망.
926년 고려국(발해) 멸망.
935년 신라 멸망.
제13대 서천왕 실록 (?~292, 재위 270년10월-292년 3월, 약 21년 5개월)
서천왕의 평화정착 노력과 북방정책
중천왕은 국력회복운동을 바탕으로 서천왕은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매진하며 북방정책을 추진한다. 고구려의 북진에 위협을 느낀 숙신은 변방을 노략질하며 항거하고, 이 때문에 고구려 조정에서는 숙신정벌론이 대두되어 모처럼 전쟁준비에 돌입한다.
서천왕은 중천왕의 차남이며 이름은 약로(혹은 약우)이며 태어난 연대와 모후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며, 서기 255년에 태자에 책봉되었다. 270년 10월 중천왕이 사망하자 고구려 제13대 왕에 올랐다. 장남을 제치고 태자에 책봉된 기록은 상세히 나와 있지 않다.
서천왕이 왕위에 오른 이듬해인 271년 정월 서부 대사자 우수의 딸을 왕후로 삼는다. 또 그해 7월 국상 음우가 죽음에 따라 음우의 아들 상루를 국상으로 삼는다. 이는 서천왕이 중천왕의 권력분립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즉 연나부에서는 왕후를, 비루나부에서는 국상을 뽑아 힘의 균형을 이루려고 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서천왕 대에도 중천왕 대처럼 조정의 안정을 유지하면서 내부의 평화정착에 주력할 수 있었다. 272-273년 사이 여름에 서리가 내리는 등 농사를 망치게 되어 백성들이 굶주리고 유랑민이 발생하는 등 민심이 흉흉해지자 서천왕은 국고를 열어 환곡을 나누어 주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어려움을 극복하게 된다.
경제 위기를 넘긴 서천왕은 내부적으로는 안정을 유지하면서 밖으로는 북방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하는데, 276년 4월부터 4개월 동안 동북방에 있는 신성을 직접 순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280년 10월 숙신이 고구려 변방을 칩입하여 노략질을 일삼자 고구려 조정에서는 숙신정벌론이 대두되기 시작하여 마침내 서천왕의 동복 아우인 대군 달가를 정벌대장으로 하여 숙신 정벌을 시작했다. 고구려군이 숙신 본토를 치고 들어가자 숙신군은 당황하여 도주하였으며 숙신의 본거지였던 단로성을 빼았고 추장을 생포하여 사형시킨다. 또한 끝까지 버티던 숙신인 6백여 호를 부여의 남쪽 오천으로 이주시켰으며, 7개 부락을 항복시켜 군영에 예속시켰다.
승전보가 전해지자 서천왕은 달가를 안국군에 봉하고 도성과 지방의 군사를 통괄하는 임무를 맡겼으며 양맥과 숙신 등의 여러 부락을 통솔하도록 하였다.
고구려가 숙신을 정벌하는 동안 서쪽에서는 선비가 힘을 키우고 있었다. 선비는 진이 오와 전쟁을 치르는 동안 서서히 남하하여 281년에 요서의 창려현을 습격하였고, 285년에는 추장 모용외의 지휘아래 진의 유주를 침공하였다. 또한 동쪽으로 부여를 습격하여 부여성을 함락시키고 부여왕 의려는 항전하다가 패색이 짙어지자 자살하였고, 선비는 부여인 1만 명을 자신들의 본토로 끌고 갔다.
이렇게 하여 부여 조정은 완전히 무너지고 일부 세력은 흑룡강을 건너 북옥저로 피신하여 임시 조정을 세웠으며 일부는 진나라 원군에 힘입어 부여국을 다시 세웠다. 이 때문에 두 개의 부여국이 생기게 되었다.
이처럼 모용 선비에 의해 부여가 둘로 갈라지는 사태가 일어나자 고구려는 북방으로 군사를 보내 부여 영토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북부여원이라 부르는 한편, 북옥저로 찿아든 부여 임시 조정을 관리하였다. 이처럼 고구려의 북방 영토가 상당히 확장되자 북방과 서방에서 선비와 패권 다툼이 이어지게 된다.
서천왕이 북방정책에 매진하여 도성을 자주 비우자 왕족 내부에서 모반의 움직임이 일었다. 서천왕의 아우인 일우와 소발이 모반 계획을 세우고 병을 핑계삼아 온탕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무리를 모아 유언비어를 유포시키고 국가가 위기에 봉착하여 새로운 임금이 필요하다는 등 불온한 말을 퍼뜨린다. 이에 서천왕은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 국상을 시켜주겠다는 거짓 칙서를 전하게 한다. 칙서를 받은 그들은 부랴부랴 도성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들은 도성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서천왕의 명을 받은 역사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후 서천왕은 다시 북방정책에 매진하다가 남방으로 진출을 모색하게 되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292년 3월에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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