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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우리들의 슬픔

바보시리즈

 

바보시리즈

 

최근 유행하는 바보 시리즈가 있다. 첫 번째는 '청와대'가 대학 이름인 줄 아는 사람이다. 두 번째는 '몽고반점'을 중국 음식점 이름으로 아는 사람이다. 세 번째는 며느리의 남편이 아직도 자기 아들인 줄 아는 사람이다. 장가 보낸 아들들이 며느리에게 푹 빠져 사는 모습을 보며 가슴 아파(?)하는 시어머니들이 만든 뼈 있는 농담이다.

요즘 개봉된 '포화 속으로'는 한국전 당시 나라를 지킨 학도병 71명의 장렬한 전투와 최후를 그린 영화다. 일부에서 반공영화 운운하며 폄하하기도 하지만 주인공을 포함한 전원의 연기가 일품이고 각본도 탄탄하다. 그런데 주인공을 맡은 빅뱅의 T.O.P이 언급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자신이 주연을 맡은 영화가 학도병에 관한 영화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T.O.P 학도병'이 인터넷에서 인기 검색어로 떴는데 엉뚱한 댓글이 올라왔다는 것이다. 'T.O.P이 무슨 병에 걸렸나요'. '학도병'이 심장병이나 위장병 같은 병명인 줄 알더라는 이야기다. 어찌 보면 웃어넘길 얘기지만 이 기사를 보는 순간 웃음이 나다가 곧이어 가슴이 턱 막혀 오던 기분을 잊지 못한다. 학도병이 병 이름이라…. 바보 시리즈 네 번째 감이다.

대부분의 투자자는 주식시장에서 투자를 할 때 주식을 매수한 뒤 가격이 오르면 이익을 본다. 하지만 선물이나 옵션시장 혹은 대주(貸株)제도를 이용하면 주식가격 내지는 주가지수가 떨어질 때 이익을 볼 수도 있다. 이때 가격이 올라가면 이익을 보는 포지션을 '롱(long) 포지션'이라 하고 가격이 떨어지면 이익을 보는 포지션을 '숏(short) 포지션'이라 한다. 그리고 시장에서는 '롱 포지션'을 보유한 투자자를 농담 삼아 '롱돌이'라고 부르고 '숏 포지션'을 보유한 투자자를 '숏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가가 떨어지면 좋아하는 '숏돌이'는 조금 특이한 존재들이다. 그 숫자는 적다. 그러나 이들은 무언가 부정적인 큰 사건이 터져 주가가 폭락하는 상황을 아주 즐긴다. 예를 들어 우리 시간으로 밤중에 미국 시장이 폭락하면 다음 날 우리 시장도 대부분 폭락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들은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미국 시장 동향을 주시하면서 혹시 9·11 테러 같은 화끈(?)한 악재가 나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는 사람이다.

만일 이 개념을 조금 확장한다면 우리 모두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이 잘되면 이익을 보는 대한민국의 '롱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숏돌이'들도 있다. 북한 정권이 한 예다. 이들은 천안함 사태 같은 방법까지 동원해 대한민국의 가치를 떨어뜨리려 한다. 문제는, 본질은 '롱돌이'인 것 같은데도 행동은 '숏돌이'처럼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함정이 공격을 받아 46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고 이를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상황에서 아직도 음모론 타령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자신이 어떤 포지션을 들고 있는지, 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한심할 지경이다. 유엔 안보리에 대한민국 정부가 사건을 조작하고 진실을 숨기고 있다는 식의 서한을 보내는 단체, 그리고 김정일 정권을 무비판적으로 찬양하는 어느 목사님 같은 개인을 보면 가슴이 막혀 온다. 조용히 숨어 지내면 좋으련만 대한민국의 가치가 계속 떨어지도록 행동함으로써 수많은 '롱돌이'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셈이다.

또한 인터넷 강의같이 가장 자본주의적이고 시장경제적인 사교육 메커니즘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벌고 명성을 얻고 있는 강사들 중 일부가 대한민국 체제를 조롱하고 악담을 하며 인기를 끈다는 얘기도 들린다. 얼마 전 “군대가 사람 죽이는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라고 폄하하는 인터넷 강사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본질은 '롱돌이'인데 행동은 '숏돌이'처럼 하면서 진짜 '숏돌이'들을 이롭게 하는 사람들에 대해 일찍이 공산주의자 레닌이 지적했다. “(적들에게) 쓸모 있는 바보들(useful idiots)”이라는 것이다. 바보 시리즈 다섯 번째다.

현 상황은 신세대들에 대한 대한민국 정체성 교육의 틀을 획기적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 강의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지침은 줘야 하며 영상물에 준하는 적절한 심의제도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 내일은 광복절이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이다. 대한민국의 예비주주들로서 신세대들이 계속 '숏돌이'처럼 행동하도록 해서야 되겠는가. 다섯 번째 바보들이 네 번째 바보를 만들어 내지 못하도록 주위를 둘러봐야 할 때다.

윤 창 현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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