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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의 겨울 46 (삼성 성장 과정9)

두바퀴인생 2010. 1. 25. 06:37

 

 

우면산의 겨울 46 (삼성 성장 과정 9)

 

 새벽숲

 

 

통일연구원이 2012년 이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이후 북한이 급변 사태를 겪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통일연구원은 19일 배포한 '연구총서-통일대계 탐색연구' 책자에서 "북한은 김정일의 건강 이상과 후계 문제, 급변사태 가능성 등으로 가까운 장래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북한이 강성대국을 이루겠다고 한) 2012년 이후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고 밝혔다.

이어 "김정일 이후 북한은 군부 쿠데타와 같은 권력지도부의 변동, 주민 소요와 폭동, 대량학살, 대량난민 발생과 같은 급변 사태가 발생할 개연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통일연구원은 "김정일의 유고는 북한의 새로운 지도부 등장을 의미한다"며 "어떤 세력이 등장하는가에 따라 체제 전환의 유형이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3대 세습체제 형성 △군부를 포함한 집단지도체제 등장 △군부나 당의 실력자에 의한 타 제압세력을 통한 1인지배자 등장 등의 변수가 있다고 봤다.

통일연구원은 특히 3대 세습체제 형성과 관련해 "(김정일의 3남) 김정은의 연령과 경력이 일천해 김정일 와병 이후 중요한 역할을 한 장성택의 후견 체제가 성립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통일연구원은 또 급변사태가 있을 경우 북한 내부에서는 △권력 갈등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군부의 등장 △소요사태 수습과 내부 불만 억제를 위한 대남 강경 도발 △대량학살 사태와 이로 인한 북한 정권 붕괴 등의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통일연구원은 김정일 이후 북한의 연착륙과 북한 체제의 안정적인 관리를 위해 △한반도 안정과 평화 관리 △북한 급변사태시 내정불간섭 원칙 지지 △유엔 중재와 결의 존중 △북한의 특수성을 인정한 통일정책 추진 등을 한국 정부에 조언했다.

 

대형할인마트 가격 경쟁

롯데,이마트,홈플러스가 가격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소비자들에게 유리한지 모르나 납품단가 인하 압력에 업체들의 손실이 예상된다.

 

동남아 설탕 대란 돈 주고도 못사

브라질,인도가 지난해 엘리뇨와 가믐으로 생산량이 40~60%로 급감하여 전세계적으로, 공급부족 현상이 나타나 수입국들이 재고 부족으로 설탕 가격이 150% 이상 상승하고 잇다고 한다.

 

휘발유가 3주째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1리터 당 1670.7원

 

대학 졸업생 10명 중 7명이 1천만원대 빚쟁이라고 한다. 설문조사에서 1179명 중 72.3%가 부채상태이며, 평균 1125만원의 부채를 지고 잇다고 한다. 이는 등록금, 가계생활비, 해외어학연수, 학원/사교육비 등에 사용되었으며 대학생들은 이로인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비선호 취업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홈쇼핑 허위 광고

공장생산품을 수작업이라고 속여 광고하여 문제를 야기하고 잇다. 공정위가 조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추노'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의 초콜릿 복근으로 닭가슴살 품귀현상이 발생되고 있다고 한다.

 

한파 보일러유 소비 30.1% 상승, 프로판 가스 36.3%, 발전유 43.3% 상승

 

  

 코엑스 조명 분수

 

 

삼성 이야기는 계속된다.

 

2000년 삼성자동차가 워크아웃. 프랑스의 자동차회사 르노에 인수되어 르노삼성자동차 출범

 

르노삼성자동차(Renault Samsung Motors)는 삼성 자동차로 1995년에 출발하였고 1998년부터 영업을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일본 닛산자동차와 기술제휴를 맺고 1998년부터 삼성 SM5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와는 별도로 트럭을 생산했던 삼성상용차라는 법인도 있었다. 삼성상용차는 설립 초기에 대형 트럭을 생산했으며, 2000년에 1톤 트럭을 생산했다. 그러나, IMF 구제금융사건과 겹치면서 삼성자동차는 르노에 매각되었고 삼성상용차는 퇴출되었다. 2000년 르노가 지분 80.1%를 인수하여 르노삼성자동차로 사명을 변경했다. 나머지 지분 19.9%는 삼성그룹이 가지고 있다.

 

 

SM3(사진은 SM3의 모델이 된 닛산 블루버드 실피)

                                          

 

SM5(사진은 SM5의 모델이 된 닛산 세피로)

 

생산 공장은 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있다.(예전 삼성상용차는 대구광역시 달서구 성서공단에 있었다)

 

 

삼성의 자동차사업 진출과 매각 배경 

- '93년 6월에는 삼성그룹이 자동차사업을 2000년대 주력사업으로 선정 발표
- '94년 4월 닛산 자동차와의 기술도입 계약 체결
- 상공자원부 '94년 12월 7일 기술도입신고서를 수리함으로서 삼성그룹의 승용차사업 진출

'94년 12월 7일 상공자원부로부터 기술도입신고서가 수리됨으로써 삼성자동차의 공식출범을 위한 준비작업을 착실히 추진하였으며, '95년 3월 28일 부산지방법원에 삼성자동차주식회사(英文名 SAMSUNG MOTORS INC)라는 상호로 본사를 부산에 둔, 법인설립 등기를 완료하였고, 동년 3월 29일에는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임직원 1천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회사창립기념식을 가졌다. 이어 삼성자동차(주)는 '95년 4월 26일 부산시 강서구 신호지방산업단지내 55만평 부지에 '98년 25만대, 2000년 50만대의 생산능력을 갖는 승용차 공장 착공에 들어가 '96년 11월 공장건립을 완공함으로써 삼성자동차의 국내 자동차시장 진출준비는 모두 완료되었다.

부산상공회의소의 삼성자동차 부산유치 활동은 '93년 삼성그룹이 자동차사업을 2000년대 주력사업으로 검토하겠다는 발표를 하면서 시작되었으며 '94년 4월 13일 부산상공회의소 제15대 의원부(회장, 강병중)가 출범하면서 본격적인 추진이 이루어졌다. 부산상공회의소 신임회장단은 '94년 5월 3일 청와대를 방문하여 삼성승용차 부산유치 건의문을 전달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3일후 삼성승용차 설립불가 방침이 발표될 것이라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부산상공회의소 회장단, 시민 단체, 관련 기관 등이 삼성자동차의 부산유치를 위한 여론조성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94년 12월 7일 마침내 삼성승용차 기술도입신고서가 정부로부터 수리되었고 '95년 3월에는 삼성자동차(주)가 공식 출범하게 됨으로써 삼성그룹의 승용차 시장진출은 본격화되기에 이르렀으며 그 동안 부산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한 부산지역 경제계의 노력이 훌륭히 결실을 맺게 되었다.

삼성자동차가 부산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함에도 불구하고, 첫차를 생산한지 채 1년도 안된 '98년 12월 7일 삼성자동차 빅딜추진이 공식화되면서 자동차 생산라인이 전면 중단되자 부산지역 경제계는 물론 시민들은 삼성자동차의 회생을 위한 다각적인 대책마련에 착수함은 물론 삼성자동차의 빅딜 거부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삼성자동차를 유치하였던 부산상공회의소와 부산지역 시민단체들은 관련 기관 등에 빅딜관련 호소문, 삼성차 계속가동 건의문 등을 잇달아 제출하면서 삼성자동차의 존속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한편 동 빅딜 거부운동에는 부산지역 시민단체들도 적극 참여하였다.

 

그러나 삼성자동차의 빅딜은 예정대로 추진되면서 3월 22일 삼성, 대우 그룹간의 삼성차 잠정인수 합의가 이루어졌고, 6월 30일에는 삼성에서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동시에 삼성자동차의 원활한 인수를 위해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의 사재출연(2조8천억원 상당 삼성생명 주식) 약속이 발표되기에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부산지역의 빅딜거부운동은 더욱 강력히 추진되었다.

 
부산상공회의소는 삼성자동차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향후 삼성자동차의 진로가 불투명해지자 '99년 7월 2일 긴급 의원간담회를 개최하고 결의된 사항을 관계부처에 건의하는 등  삼성자동차 조기 재가동 지원 건의 등을 통하여 청와대 및 정부당국에 삼성자동차의 조기 정상화를 지속적으로 촉구하였다.

 

이 결과 삼성자동차는 '99년 10월 3개월 시한부로 공장 재가동을 시작하였고 이 시점을 전후하여 삼성자동차는 빅딜이 아닌 제3자 인수방향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1년 1월에는 다시 3개월간 연장 가동에 들어가면서 삼성자동차는 사실상 잠정적으로 계속 가동하게 되었다.

2000년 1월 4일 프랑스 르노자동차가 삼성자동차 인수를 공식제의하고 3월 6일에는 르노사 인수제안서를 정식 제출함으로써 삼성자동차 매각은 급류를 타게 되었다. 그러나 매각협상 과정에서 채권단과의 이견으로 다시 삼성자동차의 공장가동이 중단될 위기에 빠지게 되자 부산상공회의소는 2000년 3월 20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주요 경제장관 초청 부산경제현안간담회를 가지면서 삼성자동차 인수협상이 조기에 타결될 수 있도록 강력히 건의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 결과 동 공익채권 문제는 원만한 해결되었고 4월 20일에는 마침내 삼성자동차 인수협상이 최종 타결되면서 삼성자동차는 4월 27일 르노삼성자동차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다.

삼성자동차의 빅딜 추진으로 인해 자칫 사라질 운명에 처했던 부산자동차산업은 르노삼성자동차의 등장에 따라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게 되었으며 위기에 봉착하여 노심초사하던 부산지역에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주면서 낙후된 지역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2000년 4월 27일 사실상 출범한 르노삼성자동차 (법인출범 : 2000.9.1)는 르노와 닛산의 기술지원하에 부품협력업체들의 발전방안을 모색하면서 삼성브랜드로 10∼15%의 국내시장 점유율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부산공장의 연간 5만대 생산능력을 2005년에는 40만대의 생산체제를 구축하여 소형차, 중형차, RV(레저용차), 대형차 등 기본 생산체제를 완비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이에 따라 2001년 SM5 부분변경 모델을 출시하고 2002년 6월 소형차 SM3(1,500cc ∼1,800cc)를 출시해 국내시장의 10%를 점유하고, 2003년에는 레저용차(RV) SM6를 출시할 계획이며 2005년 이전에 대형차를 선보여 국내 시장에서 본격적 라인업을 구축할 계획으로 있다.

 

2001년 5월 현재 르노삼성자동차는 자본금 8,054억원을 갖추고 있으며 종업원수는 2000년 9월 르노삼성자동차의 법인출범 당시 1,960명에서 3,067명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그리고 생산능력은 월 5천대, 연간 6만대의 생산규모를 유지하면서 '98년 2월 삼성자동차가 첫차를 생산한 이래 SM5 10만대 생산을 돌파하였으며, 2001년 6월에는 월 7천대의 판매실적을 기록하면서 국내 중형승용차 판매부문에서 소나타에 이어 2위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삼성자동차 관련 종합일지

▷ 93년 6월 삼성그룹 상용차사업 진출 공식 발표
▷ 94년 12월 7일 정부, 삼성자동차 진출 허용 (기술도입신고서 수리)
▷ 95년 3월 28일 삼성자동차(주) 설립
▷ 4월 28일 삼성자동차 부산공장 착공
▷ 96년 11월 부산공장 완공 및 설비 시운전
▷ 98년 2월 SM시리즈 신차발표
▷ 12월 2일 청와대 경제수석 삼성자동차-대우전자 빅딜 전격발표
▷ 12월 7일 김대중 대통령과 삼성.대우그룹 총수 빅딜 확인, 삼성차 가동중단
▷ 12월 9일 시민단체 빅딜거부 삭발투쟁 시작
▷ 12월 10일 시민단체 국민회의 부산시지부 방문, 삼성차 빅딜 항의 단식농성 돌입
▷ 12월 13일 부산역에서 삼성차 빅딜저지 부산시민 궐기대회
▷ 99년 1월 21일 삼성.대우 그룹회장 조속한 빅딜처리 합의
▷ 3월 22일 삼성.대우 그룹회장 삼성차 잠정인수 합의
▷ 4월 23일 김대중 대통령 부산선물거래소 개소식에서 "부산을 세계적인 자동차 메카로 만들겠다"는 약속 천명
▷ 6월 30일 삼성그룹 삼성차 법정관리 신청, 이건희 삼성회장 사재출연 발표
▷ 7월 3일 김대중 대통령 삼성차 정상화 방침 표명
▷ 7월 6일 부산자동차산업살리기 범시민비상대책위원회 발족
▷ 8월 14일 시민연대 삼성차 SM5판매 시민봉사단 발대식, 판촉대회
▷ 10월 25일 삼성차 부산공장 재가동
▷ 12월 30일 삼성차 법정관리 개시
▷2000년 1월 4일 프랑스 르노사 삼성차 인수협상 공식 확인
▷ 1월 18일 르노사 삼성차와 부품협력업체 실사 착수
▷ 1월 19일 르노사 이사회에서 삼성차 인수안 통과
▷ 3월 6일 르노사 삼성차 인수제안서 제출
▷ 3월 13일 삼성차-르노사 인수협상 본격화
▷ 3월 19일 삼성물산 삼성차가 지급하지 않은 공익채권 지급요구
▷ 3월 29일 삼성차 채권단-르노사 2차 협상 결렬
▷ 4월 6일 삼성차채권단-삼성물산 공익채권 채무조정 협상결렬
▷ 4월 11일 부산지방법원 삼성차 공익채권 처리 최종조정안 제시
▷ 4월 18일 삼성물산 부산지법 조정안 수용결정
▷ 4월 20일 삼성차 채권단-르노사 4차 협상서 최종타결
▷ 4월 27일 르노사, 삼성자동차 인수합의서 서명
▷ 6월 30일 삼성자동차 회사정리계획 인가신청
▷ 9월 1일 르노삼성자동차 법인 출범

 

 

2000년 삼성전자가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 하계올림픽 스폰서로 공식 선정

 

제27회 시드니 하계 올림픽은 2000년 9월 15일부터 10월 1일까지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 주 시드니에서 열렸다. 새 천년 들어 처음으로 열린 올림픽 대회였다.

 

삼성그룹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대한 5천 만 달러 후원을 계획하였으나, 당시 올림픽 후원 기업인 미국의 존 핸콕 보험사가 IOC 뇌물 스캔들이 해결될 때까지 올림픽 고리 문양을 마케팅에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철회 이야기도 나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뇌물 스캔들로 인해 올림픽 후원에 대한 위험부담이 높아졌으나 삼성은 코카-콜라, 비자 등과 함께 올림픽 후원 기업으로 시드니 올림픽을 지원하였다.

 

올림픽을 이용한 마케팅은 엄청난 효과를 몰고 왔는데, 이를 통한 삼성의 마키팅 효과와 브랜드 가치는 세계 시장을 향한 돌파구를 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삼성전자는 시드니 올림픽 공식파트너로 올림픽을 이용한 본격적인 마케팅 활동에 돌입하여 시드니 올림픽 무선통신분야 공식파트너로서 시드니 올림픽 조직위원회에 휴대폰을 비롯한 2만 5천 대의 무선통신제품을 공급, 후원하였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는 독점적으로 부여받게 되는 마케팅 권리를 활용, 호주와 세계 올림픽 회원국가를 대상으로 본격적으로 올림픽 마케팅 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을 세웠다.


삼성전자가 공급하는 2만5천여대의 무선통신제품은 올림픽 기간중 각국 선수와 임원, 조직위원회 운영요원들이 사용하게 되는데, 삼성전자는 이를 자사제품의 브랜드와 기술력을 동시에 인식시켜, 21세기에 정보통신 시장을 선점하는 기회로 삼는다는 계획인 것이다.


이외에도 동구, 러시아 등에서 이미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삼성 달리기 축제’를 호주, 미국, 중국 등 9개국에서 동시에 개최했다.


특히 9월11일 시드니 올림픽 파크에서 열릴 호주 삼성 달리기 축제는 호주내 삼성의 첫 번째 달리기 축제이며, 호주시민들에게도 올림픽파크내 첫 번째 달리기 축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삼성전자는 대중화와 고급화를 병행하는 차별화된 스포츠를 통한 브랜드 전략을 구사하였다.


그 해 9월23일부터 26일까지 스페인에서 열린 승마대회인 ‘삼성 내이션즈 컵’대회를 개최하고, 최근 시드니올림픽 무선통신부문 공식파트너로 완성된 브랜드 이미지 인식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 네이션즈 컵’ 대회는 국제 승마연맹(FEI) 29개 회원국 국가대표들이 참여하는 최고 수준의 국가대항 단체 장애물 경기 대회로 유럽 상류층들에게 인기있는 행사로 알려져 있다.


‘삼성 네이션즈 컵’ 대회를 지난 97년부터 후원해 오고 있는 삼성전자는 고급 스포츠인 승마 대회 개최를 통해 디지털TV, 휴대폰 등 고가제품 판매를 위한 브랜드 고급화에 일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2년 삼성전자가 미국의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스폰서로 공식 선정

 

IOC위원

김운용씨를 포함해 3명의 IOC위원을 보유하여 다른 국가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던 한국은 두 사람이 비리 스캔들로 중도에 낙마하고 이제 이건희(삼성그룹 회장)위원 한 명만이 남는 처지에 놓여 있다. 여기에 이건희 위원마저도 변칙적인 재산 상속문제로 국민적인 비난여론이 높아지자 공식적인 활동을 자제한 채 칩거에 들어감으로써 국내 IOC위원들에게 의존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활동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IOC위원은 스포츠계 최고의 명예직이며 대부분의 나라에 입국사증(VISA) 없이 입국이 허용된다. 또한 그들이 머무는 호텔에는 자국의 국기가 게양되는 등 국제적인 예우를 받는다. 특히 동·하계올림픽 개최지 결정권을 갖고 있기에 그들의 역할과 비중은 막중하다. 따라서 올림픽 유치를 희망하는 도시들은 어떻게 IOC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느냐를 놓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처럼 IOC위원들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보니 올림픽 유치를 둘러싸고 IOC위원들에 대한 뇌물스캔들이 끊이지 않고 터져 나오고 있다. 그 결정판이 1999년 초 터진 미국의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2002년) 유치를 둘러싸고 벌어진 추악한 뇌물사건이다. 표를 몰아주는 대가로 IOC관계자들에게 수천달러에서 수만달러의 뇌물이 제공된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올림픽 유치를 위한 성(性)접대 추문까지 잇따랐다. 이처럼 올림픽 개최지 결정을 둘러싸고 검은 거래가 이뤄지는 현실이 있기에 IOC는 `부패한 스포츠귀족집단'이라는 오명을 받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재벌그룹 총수출신의 우리나라 IOC위원들이 하나같이 비리에 연루되어 사퇴하거나 자격정지를 당함으로써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라는 국가적 대사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광복 후 초기에는 이상백, 김택수씨 등 순수 스포츠맨이 IOC위원으로 추천되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정치가나 재벌총수들이 권력과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IOC위원이 되었거나 IOC위원 자리를 노리고 있다. 물론 이들이 스포츠발전에 일정 부분 기여한 공로는 인정하지만 정치권력이나 자본이 아마추어 스포츠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올림픽운동에 개입함으로써 스포츠의 순수성과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의 후원 활동 

 

서울 1996,98 아시안게임,올림픽게임 로컬스폰서로 참가
FEI/SAMSUNG 국제승마대회의 메인 스폰서. 장애물 경기와 마장마술 경기를 통합하는 후원사로 선정
북경 1990 아시안게임 로컬스폰서로 참가
히로시마 1994 아시안게임 로컬스폰서로 참가
일본 월드컵 배구대회 스폰서 지정
삼성월드챔피언쉽 여자골프대회 공식스폰서 참가
애틀랜타 1996 올림픽게임 비공식 스폰서로 삼성 엑스포 타이틀 스폰서 활동. 메인스타디움 바로 옆에 삼성엑스포관 마련
FEI(Federation Equisterian International)와 Samsung Nations Cup(SNC) 3년 계약('97~'99) 체결
올림픽 TOP IV (나가노 1998 동계올림픽게임, 시드니 2000 올림픽게임) 조인식 실시
프랑스 라볼에서 Samsung Nations Cup의 Kick off 대회 개최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아테네) 및 그랑프리 파이널 육상대회 (후쿠오카) 지원. 2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국제 실내 육상대회 개최. 8월, 스위스 로잔 제33회 세계체조선수권대회 지원.
나가노 1998 동계올림픽게임 무선통신기기분야 공식스폰서로 참가, 전 유럽 육상대회의 스폰서쉽 확보
방콕 1998 아시안게임 공식파트너로 참가 A/V 및 백색가전 분야의 독점 후원권을 갖는 스폰서로 참가
SAMSUNG Nations Cup(SNC) 2차년도(2000 ~ 2002) 계약 연장 조인식 실시
시드니 2000 올림픽게임 무선통신기기 분야 공식스폰서로 참가
올림픽 TOP V(솔트레이크 2002 동계올림픽게임, 아테네 2004 올림픽게임) 조인식 실시
부산 2002 아시안게임 A/V, 백색가전, 무선통신기기분야 공식후원사 참가 조인식 실시
Samsung Nations Cup(SNC) 3차년도(2002~2005) 계약 연장 조인식 실시
솔트레이크 2002 동계올림픽게임 무선통신기기분야 공식스폰서로 참가
올림픽 TOP VI조인식(토리노 2006 동계올림픽게임, 북경 2008 올림픽게임) 실시
부산 2002 아시안게임 A/V, 백색가전 및 무선통신기기 분야 다수 부분(multi-category) 공식 스폰서로 참가
프랑스 라볼에서 Samsung Super League(SSL)의 Kick off 대회 개최


 

2004년 삼성전자 그리스 아테네 하계올림픽 스폰서로 공식 선정

 

삼성의 글로벌 마케팅

 


삼성은 지난 1988년 서울 올림픽의 로컬 스폰서 활동을 시작으로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과 2000 시드니 올림픽까지 무선통신기기 부문 월드 와이드 파트너로 활동했다. 또 지난 2002년 솔트레이크 시티 동계 올림픽 대회,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회,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메인스폰서로 활동했다.

또 지난 2007년 4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장기후원계약을 체결하면서 2010밴쿠버 올림픽, 2012 런던 올림픽과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은 물론, 2016년 브라질 리오 데 자네이로 올림픽까지 공식 후원할 예정이다.

세계 최대의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을 공식 후원하면서 삼성이 누리고 있는 홍보효과는 상상 이상이다. 삼성은 특히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5대륙 26개 나라와 33개 도시를 거쳐 그리스로 돌아오는 최초의 글로벌 올림픽 성화봉송의 공식 파트너로 참여했으며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도 성화봉송 후원사로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전세계에 삼성의 로고가 노출되면서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마케팅 효과를 얻었다.

축구를 통한 스포츠 마케팅은 더욱 극적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5년부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구단인 첼시를 공식 후원하고 있으며 최근 계약을 갱신, 오는 2013년 5월까지 후원 기간을 연장했다.

삼성전자가 후원기간을 연장한 것은 첼시를 후원하면서 삼성전자의 현지 판매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첼시를 후원하면서 삼성전자 유럽 전체 매출은 2004년 135억달러에서 지난해 247억달러로 83%나 늘어났으며 주력 제품인 LCD TV는 2004년 12.9%의 점유율로 3위에 불과했으나 2009년 5월 기준(GfK 집계)으로 23.7%의 점유율로 1위에 올랐다. 휴대폰의 경우 2004년 9.5%(4위)에서 2009년 5월 23.1%(2위)까지 점유율이 확대됐다.

삼성과 함께하는 동안 첼시 역시 2005~2006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 2006~2007시즌, 2008~2009시즌 FA컵 우승을 차지하는 등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유럽에서 최고 인기 스포츠이며 특히 젊은 층에 친숙한 이미지를 어필하기 위해 첼시를 후원하고 있다"며 "특히 파란 유니폼을 착용해 'The Blue'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첼시는 삼성전자의 브랜드 이미지와 잘 조화를 이뤄 시너지효과가 극대화되고 있다"고 말했다.(우경희 기자)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 후원 계획

2009년 한해 극심한 국제 경제 불황으로부터 탈출한 삼성전자가 동계올림픽 후원금으로는 자사역사상 최대 규모의 예산을 2010년 동계올림픽을 위해 사용한다고 하였다. 


삼성의 권계현 부회장은 “2009년은 우리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매우 호조를 보인 놀라운 한 해였다. 따라서 우리의 활동과 마케팅에 있어서 예산감축은 없을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삼성은 올 3/4분기에 총 326억 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했으며 순이익도 38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 위치한 거대 가전업체인 삼성은  거대 스포츠 후원기업이기도 하다. 현재 삼성은 한국 내에서 몇 개의 프로 스포츠팀을 운영하고 있을뿐 아니라 영국 프리미엄 리그의 첼시를 후원하고 있다. 특히 첼시와의 5년 후원계약으로 대략 9천만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의 전 세계 스포츠 마케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권 부회장은 2010년 올림픽을 위해서 얼마의 예산을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액수는 밝힐 수 없지만 그 액수가 어마어마할 것이란 사실을 강조했다.

“밴쿠버 올림픽에 투자되는 예산은 솔트레이크 시티나 토리노를 능가하는 동계올림픽 사상 최대규모가 될 것이 분명하다.”

삼성은 지난 1998년 일본 나가노 동계 올림픽때부터 올림픽 스폰서 업체가 되었으며 적어도 2016년 리오데자네이로 하계 올림픽까지는 지속적으로 스폰서를 맡기로 되어 있다.

공식 무선 통신 공급업체로서, 삼성은 밴쿠버 올림픽 임원단과 선수를 포함한 올림픽 관계자들에게 9,200개의 휴대전화를 제공할 예정이다.

권 부회장은 올림픽 스폰서는 전통적으로 회사의 브랜드 인지도와 가치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며 이번 2010년 올림픽 역시 그러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2005년 동남아시아 (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의 지진, 해일에 지원

 

 


2005년 3월 28일 오후 11시 9분경(현지 시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연안에서 리히터 규모 8.7의 강진이 발생해 진앙에서 남쪽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니아스 섬 주민 약 2000명이 사망하는 등 태국, 스리랑카 등 에는 해일이 일어 전체적으로 약 20만 명이상이 사망 또는 실종 되엇던 대재앙이었다.

 

2004년 말  남아시아를 강타한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津波)로 수십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태국, 스리랑카, 인도 등 인도양 주변국은 지진 발생 직후 지진해일 경보를 발령한 뒤 해안 저지대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2006년 삼성전자가 이탈리아의 트리노 동계올림픽 스폰서로 공식 선정

 

트리노 동계올림픽

 

2007년 삼성건설이 두바이의 버즈 두바이 건설에 참여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의 일곱 토호국 가운데 하나이다. 때로는 그곳의 중심 도시를 일컫기도 하며 최대 도시이다.

 

부르즈 두바이라는 높이 810m, 160층이 예정인 세계 최대 최고층 건물이 건설 중이다. 또한 세계지도 모양으로 인공 섬을 만드는 더 월드, 야자잎 모양의 인공 섬을 4개 만드는 팜 아일랜드, 맨해튼보다도 큰 워터프런트 섬, 수중호텔 하이드로 폴리스, 부르즈 두바이를 능가하는 또다른 초고층 빌딩 알 부르즈 등 발전을 향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건축물들 중 부르즈 두바이(삼성), 에미리트 타워(쌍용), 스페인 타워(현진), 상떼빌 두바이(성원)는 대한민국 기업들이 맡아 짓고 있다. 경제불황으로 두바이에 거주하는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국인이 감소조짐

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정책을 세우고 있다.

 

2009년 11월 25일 두바이 정부는 국영기업 두바이월드의 채무의 지급 유예를 선언하였다.

 

 

2007년 삼성 이건희 회장 취임 20주년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98년 신년사에서 "내 탓이요"를 강조했다. 남 탓하기에 바빴던 세상 사람들에게 그의 메시지는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바람이 강하게 불수록 연은 더 높이 난다"며 '연 경영론'을 주창하기도 했다. 앞서 이 전회장은 93년 삼성전자의 불량률 등을 질타하며 '신 경영'을 선언했다. 여기서 그 유명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명언이 나왔다. 이후 삼성은 뼈를 깎는 경영혁신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체질을 갖췄다.

 

2007년은 이건희 회장이 창업주에 이어 그룹 회장에 취임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였다.
카리스마에 바탕을 둔 리더십 스타일은 시대 상황이 바뀌면서 여전한 논란거리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리더십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CEO의 위기대응 리더십은 조직 구성원들에게 힘과 열정을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리더의 자기 희생과 결단, 그리고 도전을 보면서 스스로 결전의 의지를 다지고 주인의식을 유지해 나간다. 다른 대기업의 CEO 역시 그 동안 어려움을 이겨내온 과정을 통해 이 같은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거센 한파에 발가벗겨진 우리 경제계는 올 한해 위기에 대응하는 CEO들의 창조적인 리더십을 주목하고 있다.

'신 경영'을 통한 체질강화 작업을 시작한 지 불과 1년 후. 삼성은 1조7,000억원의 순이익(94년)을 달성했고, 그 다음해에는 3조원 대의 순이익으로 승승장구했다. 순풍에 돛 단 듯 자동차 사업 진입도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97년 말 몰아 닥친 외환위기는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국내 주가지수 300선이 무너지고 실업자와 노숙자가 넘쳐 났다. 기업들은 엄청난 홍역을 치렀고 삼성 역시 큰 손실을 입었다.

위기 상황이 이 전 회장에겐 오히려 기회였다. 구조조정을 더욱 가속화하고 기존 사업을 다시금 돌아보고 하나하나 새로운 틀을 만들었다.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완수한 삼성은 곧 흑자를 내기 시작해 99년 5조원, 2000년에는 10조원 대의 이익을 실현했다.

삼성이 90년대 수행한 '신 경영'과 '구조조정'은 일견 출발점과 지향점이 달라 보이지만, 한결같이 양적 경영을 청산하고 질적 도약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였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팽창 일변도로 성장을 거듭해온 한국의 주력 제조업이 90년대 중반 세계적 공급 과잉의 벽에 부딪쳐 외환위기의 역풍을 받았던 점을 감안하면, 이 전 회장이 주창한 '신 경영' 리더십의 타이밍은 적절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이 전 회장의 퇴진과 동시에 삼성의 조직도 대폭 개편됐다. 삼성그룹을 이끌던 삼각 편대의 한 축인 전략기획실이 해체되고 계열사별 독립경영체제가 출범했다. 계열사별 독립경영체제를 이끄는 사장단협의회 산하의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여하는 '브랜드관리위원회'와 '투자조정위원회'는 '뉴 삼성 시대'의 새로운 리더십으로 부각되고 있다.

                                                                 (계속) -서초동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