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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상의 겨울 41 (삼성 성장 과정 4)

두바퀴인생 2010. 1. 19. 04:44

 

 

우면산의 겨울 41 (삼성 성장 과정 4)

 

외등과 눈길 

 

휴대폰 전설

1996년부터 1998년은 한국 휴대폰 시장에서 중요한 시기다. ‘88 서울올림픽’에 맞춰 우리나라에서 개인 이동전화 서비스가 도입된 지 10년이 된 시점이자 한국 휴대폰 시장에 격변이 일어난 때다. 이 시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 휴대폰 시장은 미국의 모토로라가 석권하고 있었으며 시장점유율이 90% 안팎으로 당시 ‘스타택’이라는 전설의 브랜드가 있었고 이 브랜드는 휴대폰의 상징이었다.

한국은 선진국의 통신시장 개방 압력에 개방일자 연기를 요구하였다. 그러면서 정부는 발빠르게 약 4조여원의 자금을 들여 공짜폰을 보급, 97~00년까지 약 2200만 대의 휴대폰을 대중에게 보급하면서 국내 시장을 잠식해 버렸다.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는 삼성, LG를 포함하여 기술력이 미미한 상태였으나 갑작스런 보급리 확산되면서 생산라인은 풀가동을 실시하면서 기술력이 급성장하였는데, 특히 삼성은 미국과 달리 산악이 많은 지형적 특징이 있고 거기에 특화된 휴대폰은 따로 있다는 걸 강조했다. 그래서 삼성에서 만든 브랜드로 언제 어디서든 터진다는 ‘애니(Any) +콜’이었다.


그런 가운데 짧은 기간 동안 한국 휴대폰 시장에서 모토로라는 급격하게 쇠퇴하고 국내 제조업체들이 승승장구하였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전자 등 전자 3사를 비롯해 팬택, 텔슨전자, 어필텔레콤 등 휴대폰 중소 중견 업체가 속출하며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는다. 특히 삼성과 LG는 국내 시장 성공을 바탕으로 글로벌 휴대폰 기업으로 거듭나면서  나란히 세계 시장 2, 3위를 기록하며 모토로라를 제압한다.

당시만 해도 휴대폰 경쟁의 최대 핵심 요소는 ‘통화 성공률’과 ‘외관 디자인’이었다. 잘 터지고 예쁜 휴대폰이 좋은 상품이었던 것이다. 삼성의 ‘한국 지형에 강한 휴대폰’이란 전략 포인트는 적중하였고 마침내 시장 판도를 일거에 뒤집어버린 쾌거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이상 한국 휴대폰 시장은 세계 1위 노키아를 비롯한 글로벌 휴대폰 기업 어느 곳도 넘볼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었다.

그 후 삼성과 LG는 또 국내 시장을 토대로 고가 휴대폰 세계 시장을 대부분 점령했다. 세계 1위 노키아 휴대폰을 저가 시장으로 몰아붙이며 고급 브랜드로 안착했다. 두 회사는 한국 전자산업의 기반이자 수출 3대 품목으로 부상한 반도체가 국제 경기 파고 속에서 휘둘릴 때 휴대폰이 가장 유력한 ‘효자 수출 품목’으로 큰 역할을 해왔다. 한국 휴대폰 10여년은 그렇게 짜릿한 전설이었다.

이제 2009년 말과 2010년 초. 안정된 시장에 파문이 일었다. 전혀 엉뚱한 곳에서 또 하나의 전설이 태어났다. 애플 아이폰. 이 전설은 지난 10년간 휴대폰 시장의 게임의 법칙을 바꾸어 버렸다.

이 전설을 토대로 한국 휴대폰 시장은 다수 다국적 기업의 전쟁터가 됐다. 아이폰의 기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고 미미한 점유율로 퇴색한 모토로라도 구글의 운영체계를 채택한 안드로이드 폰을 들고 와 ‘명가의 재건’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LG 질주

우리나라 IT산업을 대표하는 삼성, LG의 성과는 가히 괄목할 만하다. 이들은 다른 분야 국내 대기업과는 다르게 세계 시장 점유율과 기술력에서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조명이 필요할 듯하다.

 

불과 7~8년 전만 해도 두 기업의 국제적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메모리반도체의 시장점유율과 기술력은 세계적 수준이었지만 글로벌 소비자들에게는 직접 인식되지 못했고 휴대폰이나 가전은 품질이 괜찮은 저가 정도로 인식돼 있었다.  

 

IT 강국?

스마트폰이 생활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국내에 스마트폰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연말. 애플의 아이폰이 상륙하면서부터지만 확산 속도가 무섭다. 아이폰은 출시 한 달 보름 만에 25만여대가 팔렸다.

스마트폰시장 규모는 올해 400만대로 예상된다. 두산, 코오롱 등 대기업들이 임직원들에게 스마트폰을 지급했고 언론사에서도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되고 있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은 노키아 38%에 이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각각 21%와 11%로 세계 2, 3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 존재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IT 분야 리서치 전문업체인 가트너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점유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3.2%에 불과하다. 노키아(39%)와 애플(17%)은 물론 캐나다의 ‘블랙베리’ 제조업체인 림(20%)과 대만 업체인 HTC(6.5%)보다도 못하다. LG전자는 준비단계라 순위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 스마트폰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폐쇄적인 국내 이동통신시장의 영향이 크다. 최근에야 해제된 한국형 무선인터넷 플랫폼인 ‘위피’의 탑재 의무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다 보니 일반폰을 제외한 스마트폰에서 세계시장 트렌드에 한참 뒤졌는데 우리가 최고라는 ‘우물안 착시 현상’에 빠져 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국내 업체들이 일반 휴대전화 단말기를 판매해 수익을 얻는 데 급급해 콘텐츠 개발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것도 한 원인이다. 한편에서는 세계적인 IT기업들이 한국에서 맥을 못추는 것처럼 아이폰 열풍도 곧 사그라질 것이라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이폰 열풍은 역설적으로 그간 국내 IT 시장을 보호하는 데 큰 역할을 해온 이 장벽이 깨지고 있다는 전조를 보여주고 있다. 폐쇄적인 보호막에 안주했다가는 IT강국에서 탈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최근 “삼성도 까딱하면 구멍가게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처럼 글로벌 트렌드와 글로벌 스탠더드를 무시하다가는 언제 IT 구멍가게로 전락할지 모를 일이다.

 

우면산 눈 

 

정보화 시대를 대비한 삼성의 변화

1973년 8월 ‘제2차 삼성 경영 5개 년 계획’에 중화학 공업 부문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포함시켜 조선 사업부를 설치했다. 또 섬유 분야의 국제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원료에서 최종 제품에 이르는 공정을 하나의 시스템 아래 통일시켰다. 그 결과, 1974년 7월 삼성석유화학이 설립됐고 8월에는 삼성중공업이, 1977년 4월에는 삼성조선이 세워졌다. 또 같은 해 5월에는 대성중공업을 인수하는 한편, 8월에 삼성정밀(현재의 삼성항공)을 설립했다. 1969년 설립된 삼성전자는 1970년대 초부터 TV, VTR 등의 가전제품을 생산, 세계 시장에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했으며, 1974년 한국반도체의 지분 50%를 인수하면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신화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1977년 한국반도체의 지분 50%를 전량인수하고 1978년 삼성반도체로 상호를 변경하면서 국내산업용 반도체를 생산하던 삼성은 1983년 들어서야 비로소 반도체 산업이 싹을 틔웠다. 그 해 12월 64KD램 VLSI의 개발 성공을 시작으로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라는 꼬리표가 붙은 각종 반도체 제품을 개발했다. 한편 1977년 설립된 삼성정밀은 또 다른 첨단 산업인 항공 분야의 밑거름을 다졌다. 삼성정밀은 1987년 2월 회사 이름을 삼성항공으로 바꾸고 항공 우주 산업 대열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이후 삼성정밀은 놀랍도록 빠른 기술 혁신을 보여 우주 항구, 월면 기지, 화성 기지 건설 등의 현실화를 21세기초로 앞당겼다.

 

1985년에는 삼성데이타시스템(지금의 삼성SDS)을 설립해 정보화 시대의 초석을 마련했다. 1986년에는 삼성경제연구소를 세우고, 1987년 삼성종합기술원을 개원해 이곳에서 배출한 인재들을 전자, 반도체, 광통신, 고분자 화학, 유전 공학, 항공 우주 산업 분야에 참가 시켰다.

 

또한 1987년 11월 19일 이병철 선대회장이 타계한 뒤 2대 회장으로 추대된 삼성 이건희 회장은 1988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제2의 창업을 선언하고 21세기 초일류 기업을 향한 도전의 깃발을 올렸다. 삼성은 제 2창업을 위해 신규 사업의 진출과 사업 구조 재편을 추진했다. 또 1988년에는 세계 5위권 진입이라는 장기적인 계획 아래 전자와 반도체 통신을 합병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를 통해 고부가 가치 제품 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갖추고 자금과 인력의 낭비를 줄이는 등 경영의 합리화를 꾀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1980년대 후반은 삼성의 경영력을 전자와 중공업 부문에 집중시켜 ‘첨단 기술의 삼성’을 세계에 알리기 시작한 시기라 할 수 있다.

 

1972년 제일합섬(현 웅진케미칼) 설립

 

웅진케미칼(제일합섬, (주)새한, Woongjin Chemical CO.)

웅진케미칼은 1972년 제일모직 경산공장을 모태로 제일합섬으로 설립되였으며 삼성그룹 분가 과정에서 1995년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회장의 2남 고 이창희(1992년 혈액암으로 사망)회장 몫으로 분류되어 삼성에서 분리, 새한미디어와 함께 새한그룹을 만들어 독립하였다. 그러나 무리한 사업확장 등으로 2000년 워크아웃을 신청하였고 2008년 웅진그룹에 매각되었다. 그 후 웅진케미칼 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현재 대표이사는 박광업이며 본사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하고 있다. 경북 구미, 경기 안성, 충남 공주(유구) 등에 국내 사업장이 있다. 경기 수원에 연구소가 있으며 모태가 되는 경산공장은 워크아웃 기간 중에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매각하였다.

 

1973년 제일기획 설립

주식회사 제일기획은 1973년 1월 17일 삼성그룹의 계열회사로 설립되었다. 1987년 8월 국내 최초로 클리오 광고제 본상을 수상했으며  동년 합작 자회사인 제일보젤을 설립했다. 1998년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으며 2000년 합작회사인 하쿠호도제일을 설립했다. 1987년부터 대학생 광고대상 제도를 만들어 현재까지 시행하고 있으며, 1979년 이후 매년 〈광고연감〉을 발행하고 있다.

 

 

제일기획은 텔레비전·라디오·신문·잡지 등 4매체 광고뿐만 아니라 조사 및 컨설팅, PR·스포츠마케팅·전시·이벤트 등의 프로모션 사업, 뉴미디어사업에 이르기까지 커뮤니케이션의 전 분야에 진출해 있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회사이다. 제일기획은 브랜드 자산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B-Master, 미디어 전략모델인 C-Map 등 클라이언트의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데 있어 고유한 자체 전략모델을 개발, 적용하고 있다.

 

제일기획은 설립 이후 대한민국 광고산업의 성장을 주도해 왔으며, 해외 선진 광고회사와의 업무제휴를 통해 선진 광고 마케팅 기법 도입과 전문 광고인 육성,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영역 창출 등을 통해 국내 광고 시장에 기여해 왔다. 특히 전세계 24개국에 걸쳐 31개의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제일기획은 국내 최초로 칸 국제광고제 은사자상(1991)과 금사자상(1997)을 수상하는 등 세계 유수의 광고제와 대한민국 광고대상 등에서 많은 수상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2002년 한일 월드컵대회 개막식, APEC 2005 문화행사 등 국가적인 이벤트를 주관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본사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에 있다.

 

 

1973년 '임페리얼'로 호텔업 진출, 그 해 11월에 '호텔신라 (현 신라호텔)'로 개칭

 

삼성그룹에서 1973년 3월 호텔사업부를 창설하여 1973년 5월 임피리얼호텔(주)을 설립하였다. 1973년 7월 영빈관을 인수, 1973년 11월 호텔기공식을 갖고 현재의 회사명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신라호텔


1979년 3월 서울특별시의 호텔 전관을 개관하고 1988년 3월 25일 제주신라호텔의 기공식을 가져 1990년 7월 1일 개관하였다. 1991년 3월 주식을 공개하고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하였다. 1995년 7월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하였고 1999년 4월 삼성그룹의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회사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지정받았다. 또 같은 해 5월에는 홍콩 아시안 비즈니스지() 2년 연속 아시아 최고의 호텔로 선정되었다. 2000년 6월에 신제주 면세점을 개점하였으며, 2001년 3월 FIFA(국제축구연맹) 선정 월드컵 VIP 투숙호텔로 선정되었다. 2003년 한국표준협회 선정, 서비스 품질 우수기업 호텔부문 1위를 차지했다.

주요 사업은 관광숙박업 및 관광객 이용시설업, 관광기념품 판매업, 보세 판매업, 스포츠시설 운영업, 부동산 임대업, 교육훈련사업, 관광업종에 대한 용역 및 위탁경영사업, 도·소매업 (생활필수품 및 식자재), 종합급식사업, 예식장업, 제과점업 및 동체인업, 전자상거래 및 인터넷 사업 등이다.

 

2008년 현재 종업원 1,693명, 매출 8,748억원, 영업이익 531억원, 당기순이익 249억원, 자산 1조 1326억원, 자본금2,000억원이다.


 

 

1974년 삼성중공업 설립

 

삼성중공업(三星重工業, Samsung Heavy Industries Co., Ltd.)은 조선해양과 관련된 선박 제조, 건설, 디지털시스템 사업을 하고 있다. 드릴십, FPSO,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기술 고부가가치 선박에서는 세계 1위이다. 또한, 세계 최초로 쇄빙유조선을 건조해 극지방 원유 운송의 새 지평을 열었으며, LNG-FPSO와 같은 신개념 선박을 개발하여 세계 조선산업의 변화와 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영국 클락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9월말을 기준으로 삼성중공업의 수주잔량은 세계 2위이다.

 

삼성중공업

 

1974년 삼성중공업 주식회사, 이듬해에 삼성조선 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1983년 삼성조선과 대성중공업이 삼성중공업으로 통합되었다. 1999년 ‘쉐르빌’이란 상표의 주상복합 아파트를 내놓았다. (대한민국에서 아파트 브랜드의 개념이 도입된 최초의 사례) 2009년 미국 씨엘로(Cielo)사와 2.5MW급 풍력발전기 3기를 2011년까지 텍사스주에 설치하는 내용의 투자의향서(LOI)를 체결했다.

 

브랜드로 삼성쉐르빌, 라폴리움, 삼성바하가 있다.

 

제품으로 2007년 11월 세계 최초 극지용 드릴십 건조, 동년 12월 세계 최초 쇄빙유조선 건조, 2008년 7월 현존 세계 최대 크기 LNG선 건조, 2008년 12월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을 건조하였다.

 

 

1975년 삼성산요전기를 삼성전기로 개칭

 

1976년 용인자연농원 개장

 

용인자연농원

 

1977년 삼성정밀 설립(2000년 삼성테크원으로 개칭)

 

삼성테크원은 2009년 12월 말 현재 종업원 4,276명, 매출 2조 3406억원, 업종분야는 시큐리티 솔루션, 항공기 엔진 정비.생산/에너지 사업, 반도체 부품/IT모듈 사업, 반도체 장비 사업, 방산사업 등이다.

 

삼성테크원

 

1977년 삼성정밀 설립. 미사일 추진기관 시제 생산, 1978년 제1,2공장 기공/준공식, 정밀기계연구소 설립, 1979년 항공기영 가스터빈 엔진 정비사업 개시. 카메라 생산. 1980년 제2공장 /정비공장 준공, 항공기 엔진 첯 정비 출하, 국산 제트엔진 생산 개시. 1981년 항공기 부품 사업 시작. 1982년 항공기 엔진 조립생산 100대 돌파, 국내 최초 항공기 엔진 생산. 1983년 항국중공업(주) 중장비 공장 인수(제3공장). 1984년 155밀리 자주포 생산, 독자모델 카메라 생산. 1985년 반도체 부품 사업 착수. 1986년 사천공장기공 F-X사업, KFP 사업 추진, 1987년 삼성항공산업(주)로 개명, 항공우주연구소 설립,항공기 생산 착수, 정밀기기연구소 설립, 가스터빈 엔진 1,000대 출고 돌파하였으며 그 이후 경과는 아래와 같다.

 

-디지털카메라사업부 분할
-중국 천진법인(TSTO) 및 상해법인(SSMT)설립
-美 Dresser-Rand社와 가스압축기 및 발전기 분야 전략적 협력 계약
-지식경제부 및 한국석유공사와 스마트 프로젝트 로봇사업 협약 체결
-삼성전자 CCTV 사업인수 결의
-세계최고 광학배율 37배줌 스피드돔카메라(SPD-3750) 출시
-800만화소 광학 3배줌 카메라폰 모듈 세계 최초 개발(두께 8.5mm)
-K-55자주포 성능개량 사업 및 K-55자주포용 탄약운반장갑차 체계개발 업체 선정
-5개 대학과 산학공동 연구센터 개소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성균관대)
중국 천진 TSOE 신공장 준공
창립 30주년
삼성서울병원에 국내 최초 가스터빈 열병합 발전시스템 준공
프리미엄 디지털 카메라 신제품 출시(NV20/NV15/NV8/i85 등)

렌즈 교환식 DSLR카메라 GX-1S 출시
세계 최초 PMP 기능 슬림형 #11PMP와 스탠더드 디지털 카메라 출시
3배줌 초소형 500만 화소와 300만 화소 카메라폰용 모듈 개발
세계 최초 개발한 로봇형 탄약운반장갑차 K10 초도 출하기념식 개최
삼성케녹스 2005년 국내 시장 점유율 1위
800만 화소급 디지털 카메라 케녹스 Pro-815 출시
칩마운터 SM 시리즈(SM320/SM310)출시
로봇형 탄약운반 장갑차 K10 개발
중국 천진 신공장 기공식
휴대용 카메라모듈 200만 화소 개발
칩마운터 5000대 누적 판매량 돌파
700만 화소급 디지털 카메라 케녹스 알파7 출시
2사업장, 차세대 전투기 F-15K의 국산화 엔진 1호기 생산
150만화소 실물화상기(SDP-6500)출시
T-50(고등훈련기) 엔진(F404) 초도양산 계약
초소형 압축기 기본형 출시 및 장영실상 수상
1사업장, 휴대폰용 카메라 모듈 생산라인 준공
XK-10 탄약운반차 시제품 생산
신형자주포용 탄약운반차량 개발계약 체결
2사업장, KFP-Ⅱ 2차 사업 개시
반도체시스템사업부, 바이오 장비 초도 출하
국방부 및 정부기관과 K9 자주포용 탄약운반차 XK10 신규사업 착수
신형자주포(K-9) 터키 수출 계약
칩마운터 CP-45 출시
코렌텍과 인공관절 공동 개발로 정밀의료기기시장 진출
한국형 구축함 KDX-Ⅱ 국산화 엔진 출하
MP3 재생가능한 디지털·PC카메라 Digimax 35MP3 개발 출시
전사 6시그마 관리시스템 오픈
3사업장, 상륙돌격 장갑차 1차 사업 완료
2사업장, KT-1 엔진 초도품 출하

미국 서머텍 사와 합작, 엔진 특수공정 전문업체 '서머텍 코리아' 설립
한국항공산업(주)에 항공기 사업자산 및 영업권 양도
초소형 포켓용 디지털 카메라 Digimax800K 출시
칩마운터 삼성브랜드로 미국 시장 첫 진출
美, GE사로부터 대형 여객기 엔진부품 대량 수주
美, 보잉사에 최신 항공기 날개구조물 3백여대 분 독점 공급
美, GE사로부터 항공기 엔진부품 생산 최우수 업체 선정
美, 얼라이드시그널사로부터 항공기 엔진부품 3천 7백만불 수주
美, 벨사로부터 헬기동체 3억불 대규모 수주
美, 록히드마틴과 고등훈련기 공동판매 계약 체결
美, 벨사와 다목적 군용헬기 공동개발 계약 체결
국산 자주포 독자 개발 출시
2사업장, KFP 국산화엔진 1호기 출하
한국형 KF-16 전투기 국산화 1호기 생산
3사업장, 상륙돌격장갑차(KAAV) 초도 양산
세계 30대 항공우주업체 진입
록히드 마틴과 고등훈련기사업 공동개발 계약 체결
삼성카메라 명칭 변경(삼성카메라 → 삼성케녹스 카메라)
세계 최초 현미경 겸용 실물화상기 출시
세계최초 1기가用 리드프레임 개발
세계 두 번째 국산 155mm 신형 자주포 개발
대형헬기 UH-60(블랙호크) T-700엔진 본격 생산
F-16 국산 1호기 첫 시험비행
KFP 국산 1호기 공군에 납품
신예 F-16전투기 국내 최초 생산
산업용 가스터빈 엔진사업 본격 착수
2공장, F-16 전투기 엔진 국내 생산 1호 출하
항공기술교육원 준공
12월 SCM1000(QSA130) 100대 누계생산/판매 돌파
항공기 엔진 2000대 생산돌파
사천 종합항공기 제작공장 준공
504핀 에칭리드프레임 개발
SCM1000(QSA130) 미국전시회 출품
KFP 사업본부 발족
3사업장, 방산사업부 중공업에서 항공으로 소속 변경
사천 항공기 조립공장 착공
전국 종합생산성대회 대상(대통령상) 수상
차세대 전투기 F-16으로 결정
차세대 전투기사업 국방부와 최종계약 체결
산업용 가스터빈 엔진개발사업 계약체결
SCM120 국산화 완료, ISIDA社 OEM공급, 국내시장 진입
GE사의 F404엔진 수주 생산
다기능 초소형 카메라 AF-슬림 개발 생산
카메라 생산 300만 대 돌파기념식 및 포토콤 첫 출하

 

1978년 삼성항공 설립(1991년, 삼성전자에 편입, 2000년, 삼성텔레스로 분사)

 

삼성탈레스는 삼성전자의 방위산업 부문과 유럽의 대표적인 방산업체인 탈레스사가 50대 50의 지분으로 합작 투자하여 2000년 삼성전자에서 분사되어 설립한 첨단 방산전자 시스템 전문업체이다.

 



 

 

삼성탈레스는 지난 1978년 삼성항공을 모태로 방산사업을 시작한 이래 1991년 삼성전자, 2000년 삼성탈레스로 변화해 오면서 주로 군 전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유도무기, 사격통제, 통신전자, 함정용 전투지휘체계, 전자광학, 항공전자 등의 분야에 월등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꾸준한 성장을 보이는 기업이다.

 

주요 업무 분야는 방산,민수, 종합군수 3 분야로 나누어져 있다.

먼저, 방산 분야는 전술용 정보.통신 무기체계, 감시.정찰 무기체계, 함정 무기체계, 항공 무기체계, 화력.기동 무기체계, 방호 무기체계, 미래 무기체계로 구분된다.

 

민수 분야는 비첩촉 데이터 무선 송/수신(RFID), 보안방재시스템(Security), 다목적 위성통신 시스템(CAST)이며,

 

종합군수 분야는 종합군수,ILS(군수자원요소통합시스템), PPS(경제적 무기체계 운용/유지 시스템) 분야이다.

 

사업장은 서울, 기흥, 구미에 위치해 있으며 공장은 사천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한국우주항공산업과 한국군 첨단 무기체계 현대화에 핵심적인 역활을 담당하고 있는 중요 방산업체이다.

 

주요 연혁은 아래와 같다.

 

1978년 야간투시경 방산업체로 지정되면서 84년 레이저 거리측정기 개발/양산, 86년 전차/함정용 사격통제장비 생산 착수, 89년 단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용 레이다 시제 개발, 91년 삼성항공 특수 사업부 삼성전자로 이관, 92년 전술용 전자식 교환기 생산, 94년 신형 자주포 사격장치/전술용 통신체계/열상장비 개발, 한국형 구축함 전투체계/지대공 중거리 미사일 체계 개발, 96년 천마 탐지/추적장치 실용 시제 개발, 포수 조준경/피아식별장치 개발, 97년 차기 전술통신체계 개발, 98년 한국형 구축함 전투체계/자주포 사격통제장치/ KDX-2 사업, 99년 고속무선전송장비,프랑스 톰슨 CSF 방산분야 JV 계약, 천마 양산, 

 

2000년 지상감시레이다,TICN.C4I 사업권 획득, 01년 삼성텔레스로 사명 개칭, 03년 천마 탐지/추적레이더, 차기 전차/장갑차 개발, 대형수송함/차기 고속정 전투체계 개발, 04년 포병 주.야관측장비 개발, 용인레이더 연구소 착공, 05년 차기 장갑차 사격통제장비 납품, P3C 레이더 사업, 06년 휴대용 열영상쌍안경 개발, KHP 체계 개발, 함정용 단거리 추적레이더 개발, 능동파괴체계/탐지/추적레이더 체계 개발, 07년 중고도 무인기 개발, 견마용 로봇 개발, 신궁 야간조준기 개발, 전자전 장비 개발, 검독수리 -A급 전투체계 개발, 08년 보안관제체계 개발, 표적획득 지능화 응용 연구, 무인기 탑재 화력탐지시스템 개발,UAVEO/IR 탐색개발, NG TOD 체계 개발 등이다.

 

 

 

1978년 호암미술관 완공

 

호암미술관

 

호암미술관은 경기도 용인 가실리에 위치하며 창업주 이병철이 30여년간 수집한 한국미술품 1천 3백여 점을 바탕으로 1982년에 개관하였다. 연건평 1천 3백여 평으로 전통한옥 형태의 본관 건물과 2만여 평에 이르는 전통정원인 회원 및 트랑스 조각의 거장 부르델의 대형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잇는 부르델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1982년 호암미술관 개관, 삼성 라이온즈 창단

 

삼성 라이온즈(三星 Lions)는 1982년 2월 3일 대구, 경북을 연고지로 창단되었으며, 홈 구장은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이며, 창단 당시 초대 사장은 이수빈, 감독은 서영무였다.

 

삼성 라이온즈

 

2009년 현재까지 롯데 자이언츠와 함께 한국 프로 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구단 명칭을 바꾼 적이 없는 유일한 팀이다. 또한 2008년 시즌까지 한국 프로 야구 구단 중 유일하게 최하위로 시즌을 마친 적이 없으며, 창단 이래 거둔 최하위 성적은 1996년 페넨트레이스에 기록한 6위였다. 또한 1997년부터 2008년까지 12년 연속으로 프로야구 구단 가운데 최장 기간 동안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기록을 세운 적이 있다.

 

1985년 전.후기 통합 우승을 했지만 한국 시리즈에서는 2002년에 처음으로 우승햇다. 2004년 시즌 종료 후 같은 해 11월 9일에 김응용 감독을 제10대 구단 사장으로, 선동열 수석 코치를 감독으로 승진 발령했다. 이후 2005년과 2006년 2회 여ㅑㄴ속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하며 2000년 이후 한국  시리즈 최다 우승팀이 되었다. 해태 아이거즈(1986~89, 1996~97년), 현대 유니콘스(2003년~2004년)에 이어 한국 시리즈 2연패를 달성한 3번째 팀이 되었다.

 

 

1983년 삼성조선과 대성중공업이 삼성중공업으로 통합

 

삼성중공업

 

 

 

 

1985년 삼성데이타시스템(현 삼성 SDS) 설립

 

삼성SDS(三星-, Samsung SDS)는 IT 서비스 기업으로 삼성그룹의 IS(Information System) 및 컨설팅, 시스템 통합(System Integration), IT아웃소싱 (ITO), IT인프라, SOC/U-City, EO(Engineering Outsourcing) 등의 6개 주요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LG CNS, SJ C&C 와 함께 대한민국 내 IT 서비스 업계의 Big 3 라 불리운다.

 

Capgemini, SAP AP, PRTM 등의 글로벌 기업들과 제휴를 맺고 있으며, 인도, 중동, 일본, 카자흐스탄 등지에 거점별 데스크를 운영하고 있다. 2008년매출 2조 5,194억원, 영업이익 2,597억원,2009년 7월 현재 종업원 8,548명이다.

 

2010년 1월 1일부로 삼성네트웍스를 1:0.1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였으며 이로인해 매출 3조원, 임직원 1만명의 대형 ICT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삼성네트웍스는 2000년 3월 1일 삼성SDS 정보통신본부가 분사하여 창립된 회사로 유니텔 주식회사로 불리었다. 이후 2002년 사명을 바꾸고 기존 PC통신 유니텔을 별도의 법인으로 독립시켰다. 삼성그룹의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 및 운영과 기타 대외사업, 인터넷전화 사업을 주력사업으로 하고있으며 2010년 1월 1일 삼성SDS에 다시 흡수합병되었다.

 

 

삼성SDS 본사

 

 

1987년 11월 삼성의 창립자 이병철 사망, 동년 12월 이건희 삼성그룹 2대 회장으로 취임

 

 

 호암 생가

 

                                                                      -서초동 퍼옴-